자유게시판
재 독일동문 두분이 모국을 방문하여 어제 만났습니다.
41년만에 절친을 만나게 된 것이 홈페이지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말씀하시더군요.
홈페이지를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고 참여하는 외국에 거주하는 동문들이 모국을 방문 시,
감사의 뜻을 전할 때 제 나름대로 무척 보람으로 여기는 부분입니다.
요즘 동문들의 화두는 단연 50주년 행사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일 것입니다.
오랜만에 뵈온 스승님에 대한 반가움,가수들의 공연, 연혁관, 50주년 편찬사,발전기금등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갑니다.
대선배님 몇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동창회 50년 역사에서 8/50 가지는 비중은 50/50에 해당할 만큼 의미가 있지 않겠나 하시더군요.
저는 지금부터 아래와 같은 글을 씀에 있어서 전영희 개인이 아닌, 정보위원장 자격이 아닌,
24,769명 중 한 일원으로서, 그리고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일선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역사과목을 가르친
교사의 입장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8/50의 시작을 담당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쓰고자 합니다.
행사 후 몇 분에게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왜, 편찬사의 홈페이지 탄생과 정보화 부분에 전영희이야기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CD는 잘 보지 않게 되어 그제서야 저는 책을 열어보았습니다.
편찬사 제작 과정에서
개인 소장기록이나 기타 다른 원고와 달리 동창회 역사 중 일부분에 대한 산 증인으로서
정보 기록에 대한 원고 제의가 없어 의아하다 싶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편찬위원장과 회장님에게 이 부분에 대한 것을 넣어야 함을 이야기 하자
그제서야 제출 허락을 받아 제일 먼저 경기여고 100주년 정보화 기록 부분을 찾아 참고를 했습니다.
명문답게 정리가 대단히 잘 되어 있었기에 그 부분을 참고로 저는 A4 용지 5쪽에(표지 1쪽 포함) 걸쳐 기술을 하였습니다.
그 동안에도 홈페이지 역사에 대한 것은 제가 중간중간 자유게시판에 올렸고,
그 기록은 컬럼에도 복사를 해서 자료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료들은 사실에 기초한 것이고 아무래도 제가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동문 여러분들도 대략 알 것입니다.
A4 4쪽의 분량이 양이 많아 반으로 줄였다는 말을 임원회에서 듣긴 했었습니다만
만약 분량이 많다면 파일을 반환받아 제가 수정을 했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결과론을 이야기 해봅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50주년 편찬사 240쪽 03 동창회 홈페이지와 정보화교육 챕터 첫줄- 둘째줄 부분을 보겠습니다.
제가 보낸 원고의 초반 부분이 모두 빠지고 왜곡되게 표현되어 있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더군요
두리둥실 얼버무려 표현한 귀절은
인일여자고등학교 총동창회 홈페이지는 정보화 시대를 맞아 열린동창회를 지향하는 동문들의 뜻이 모아져 2003년 8월 1일 탄생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문장가가 아니기에 다소 문장력이 미흡하지만
언제 누가 어떻게 무엇을 왜 ... 역사적 사료에 기초한 이런 기본적인 기술 내용입니다.
시대적 변화에 의한 열린 동창회를 지향하는 동문들의 뜻이 모아지고 홈페이지를 통한 동문 정보화 물결에 동참하고자 하는 1회 허 회숙 선배님(당시 인일여고 교장으로 재직 교장님)의 인터넷에 대한 마인드가 모아져 두 달의 작업 기간을 거쳐 2003년 8월 1일 탄생하였다. 2003년도 당시는 홈페이지 제작에 대한 제반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11회 전 영희 동문이 비용을 대어 inil.or.kr 도메인 작명과 호스팅을 임대했고 제작을 무료로 하였다.
이후 운영 역시 전 영희 동문 맡아 봉사를 해주었다. 여러 가지 어려운 가운데서도 3회 박 광선 동창회장님(산부인과 전문의로서 당시 동창회 총동창회장)의 홈페이지에 대해 재정적, 정신적 뒷받침이 있어서 튼튼한 기초를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었던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41쪽 2-3 줄에
정보위원장(구, IT위원장)의 기록도 빠져 있습니다.
아래의 원문에서 윤혜경, 김영주 위원장의 이름도 삭제가 되어있습니다.
홈페이지 규모와 참여인원이 점점 증가하여 서버가 다운되는 일이 잦아져 보다 안정적 운영을 위해 공식적으로 7회 김병숙 동문을 초대 위원장으로 하여 IT정보위원회가 동창회 산하기구로 조직되고 회칙이 2004년 8월 30일 통과 되었다. IT 정보위원회는 IT위원회, 정보위원회로 개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7회 김병숙 동문에 이어 3회 윤혜경 동문, 7회 김영주 동문, 11회 전영희 동문이 제 4대 정보위원장으로 이어지면서 안정을 꾀하게 된다.
하루 접속인원 1000명을 상회하고, 댓글이 하루 200여개 올라오며
회원수가 2000명/24,769명으로 동문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50분의 8년이
불과 1쪽 반에(사진 두장 포함) 해당하는 의미로서 50년사에 기록될 만큼 미약한 것이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어차피 책은 출판되었고 정확하지 않은 기록은 그대로 후배들에게 100년사까지 갈 것입니다.
좀 더 동창회 시대별로 분담해서 증언과 자료들을 기초로 검수하는 과정을 거치고
전문기록자에 의해 문장화하는 과정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수원여고, 이화여고, 경남여고 등, 다른 여학교 동창회에서 인일홈피를 부러워하며
인일 홈페이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동문들에게 직접 들었을만큼
우리 모두는 홈페이지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 곳은 다듬어지고 채워지고 수놓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후배들에게 남겨주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선배들의 노력과 앞서가는 미디어 정신이라 생각합니다.
50주년 축제도 끝났고, 4월도 이제 마무리가 되는 시점입니다.
잠시 잠깐 화려한 꽃이 피고지면 파릇한 새순이 돋지요.
화려함은 순간이지만 새순은 연록에서 푸르고 푸른 녹음으로 이어져 한 여름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앞으로도 홈페이지에서 새순이 솟듯 많은 만남과 소통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봅니다.
참고로 편찬위원회에 제출했던 홈페이지와 정보화에 대한 원본 화일과
2003년 이후 홈페이지에 기록된 총동창회 큰 행사기록(회장별로) 정리 파일을 첨부하여 올리겠습니다.
문장력이 미숙한 부분이 있음도 아울러 말씀 드립니다.
인일 개교 50년 기념행사를 무사히 치룰수 있었던것에 대하여..
홈피가 큰 역활 했다는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입니다.
당연히 개교 50년사의 기록중에 홈페이지의 비중이 큰 부분을 차지 할것이라는것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는 일 일것입니다.
받아온 50년사 cd 는 아직 앞부분만 보았고.. 더우기 책자는 구경도 못했으니
무엇이라 말할수 없지만.. 홈페이지 부분이 실제 우리에게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활에 비해 너무도 축소된듯한 느낌이군요..
인일의 연혁을 기술함에 있어... 후배들에게 길이 남겨줄 역사인데...
잘못 되어진 부분은 더 늦기전에 정정 또는 추가를 해야 하는것 아닌지요?
행사를 치르기 위해 애쓴 모든 동문들의 노고를 치하 합니다.
그러나 모든일은 시작 도 물론 중요 하지만...
마무리도 시작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일이 성사된 후에는
수입 지출에 대하여 대차대조에 의한 결산도 있어야 하는 것이고..
또 기금이 꼭 써야 할곳에 쓰여졌는지? 과다 지출은 없었는지?
등등에 대한 감사도 이루어져야 할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공과 사를 구분하여 잘 이루어진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가려
공로상도 주어지고 일이 마루리 되는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50주년의 기념을 위하여 사용되고 난 후의 발전기금은
어떤식으로 사용할 것인지... 기금을 출현한 동문들의
의견도 사이버 상에서 논의를 해보는 것도 바람직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간만 ...
유순애, 장은숙선배님
제가 말하는 것은 전영희에 대한 공로, 홈페이지의 공, 그런 부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기술되어져야 하는 점을 말씀드린 것이랍니다.
인일 홈피에 대하여... 물론 전영희 후배의 공로가 막대하다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전영희 후배 혼자서 이룬것은 아닐것입니다.
홈피가 개교 50년 역사중 중요한 역활을 했다는 것이
전영희 후배의 개인적인 공로를 이야기 하는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바르게 기술 되어야 한다는것을 말한 것입니다.
맞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저는 책도, CD도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연혁관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CD는 많이들 가지고 계실텐데요....
확실히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을
의견이 난 김에 살살 모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제작도 워낙 급히된 점을 모두 혜량하여주세요)
저는 바빠서 그 정리할 틈은 없습니다만...
이메일로 제게 보내주시면 <창고>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to (say1000@pcu.ac.kr)
전영희님
이 글을 읽으니 인일 50년사를 꼭 한번은 봐야겠네요.
그리고 청탁된 원고가 원본대로 쓰여지지 않았다면 문제가 큽니다
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제가 겪은 일중
제아들이 복무하던 8사단에서의 일입니다.
어머니 대표로 격려사가 채택되었는데, 채택되고도 이것은 부적합하니 고쳐라를 수없이 한 끝에 장병들 앞에서 읽었습니다.
제일 폐쇄된 사회인 군대에서조차
남의 글을 함부로 손대지않고 본인 허락하에 수정을 하는데
원본이 뭉턱 잘라지고 내용의 객관성에 문제가 있다면 큰 일이지요.
더 더군다나 엄연히 존재하는 살아있는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서는 말 해 무엇할까요?
전혀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글자 하나 틀려도 되지를 않는데 뭉턱 잘렸다니요?
왜 전영희님은 책이 나올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이제야 알았을까요?
더 더군다나 디지탈 시대인 요즈음은 너무 편리해졌습니다. 교정도 메일로 주고 받으며 수정하니 말입니다.
순애야
알고 있었다고?
경악할 일이다.
인일의 50년 역사가 누구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말인데
알고도 그리 발간되었다면 ...............?
편집위원들은 직무유기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을까?
제가 올린 글에 대한 방향이 엉뚱하게 흐르는데요.
홈페이지와 정보위원회의 연혁 중에
가장 핵심적인 태동 동기, 시기 제안자, 제작자 , 지원자등에 대한
초기 연혁 부분과 각2-3대 위원장 이름이 원문에서 삭제된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어느날 하늘에서 덩그만히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것처럼 두리뭉실 문장화 한 것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신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성적이고 현명하게 해결이 되기를 바라고
화두가 다른 방향으로 댓글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혹, 의견을 내고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다른 주제로 번호를 따서 해주셨으면 하는 말씀 드립니다.
이번 개교 50주년의 행사를 치르면서... 아쉬웠던 점들...
아~.. 이건 정말 아니었다.. 라는 의견들이 분분하면서...
늦게나마 잘된점 잘못된점을 찾아 내어 고쳐저야 할 부분이 있으면
수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였는데..
마침 연혁의 홈페이지 부분의 이의가 제기 된걸 보면서..
더 늦게전에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번 참에 50주년에 관계된... 그동안 진행되어온 모든일의
잘, 잘못을 되짚어 보자 싶었고, 그 모든일이 같은 맥락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또 다른 이의를 댓글을 통해 제기 한 것입니다.
꼭 이일 저일 구분하자 한다면...
따로이 번호를 따서 토론을 해야 겠지요..
전영희님
제가 잘못 보았나하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답글들이 뭐 잘못 되었습니까?
역사선생님 입장에서 이 글을 쓰신다했지요?
역사란 제가 알기로 어제와 오늘의 대화입니다.
그럼 그런 대화가 왜 필요하고 중요할까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미래의 길잡이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 연유로 전영희님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를 보냈습니다
인일 50년사에서 8년을 차지하는 홈페이지의 영향이 막강함에도(예로 하나를 들라하면 인일을 하나로 모으는 힘 등)
홈페이지의 태동에서부터 성장까지가 누락되었다면 이는 당연히 문제가 되고
만약 알고도 누락되었다면 더 더군다나 경악할 일이라고 답글을 썼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습니다.
전영희님이 제기한 이 문제 하나가 얼마나 큰 것을 말하고 있는지 전영희님은 모르셨나요?
"따로이 번호를 따서 토론을 꼭 할 필요가 있다" 라는 말에 "왜?"라는 물음표를 달아봅니다.
연혁관이니, 인일50년사니
다 꼭 같은 "인일 50주년 행사 " 아니던가요?
물론 그 이유로 발전기금도 모은 것이고요.
우리의 50주년이 훌륭하기를 모두 바라고 있습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있는 그대로 쓰여지고 누가보아도 객관적인 그런 행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의 이 말을 전영희님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잘못되었나요?
알고싶습니다.
ㅎㅎ 너무 길어서 천천히 다시 읽겠습니다만......
50주년 행사날,
뭐 공로상 등.... 아마 천만원 발전기금에 내었다는 때문인 듯. (그 뒷사정은 하나도 모르는 분들이 선정하셨음) (받은 분들은 주니까
받았겠지요) (그럼 천만원 이상 내고도 누락되신 분들은?) (이상, 50주년 행사 전반에 공의로운게...... 참 없어요)
저는 마음으로 <인일50주년 발전 공로상>을 전영희 교수에게 드렸습니다. 또
1허회숙, 3박광선 ........... 당연히 이 어른들부터죠, 지난 50년을 되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
(어떤 분들은 그날 저녁, 저에게 네가 수고했다....쪽지를 보내주시기도 하였지만, 전 인일을 위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입니다.
제 공은 없구요.... 발전기금모금위원장으로서 살펴보니, 좋은 뜻만 있었더라면...2,30억 정도는 인일50년간의 동문들이 함께
출연할 수 있겠다....... 생각하였습니다 )
인일50주년!
너무나도 꿈스러운 우리 모두의 중요한 날이었기에
각자들 꿈을 꾼거 같습니다.
준비위원장님의 꿈,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고....참 컸고, 우리 모두를 위해 앞서서 수고해 주신 점 감사드리지만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미흡했고
1회성 행사는 저와같이.... 잘 마쳐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겐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있듯이....
그와 함께 인일의 역사가 계~~~~속 이어질 거라는 점이 위로가 됩니다. http://inil.or.kr/zbxe/?document_srl=1592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