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길목사님이 요약하신

<왜? 성경이 복음으로 읽혀져야만 구원을 받는지의 간절한 이유>

우리는 쉽게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진실한 의미를 알고 실행하는지!!!!

은혜의 시대에 산다는 말은 우리는 연약하여 의롭게 할 수 없는 일을

예수그리스도꼐서 우리 속에 임하셔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실자)는  원래 은혜아래 오신것이 아니라

율법아래 오셔서 율법아래서 꽁꽁묶여 노예생활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할수 없는 일을 대신 해 주시면서 자유를 주신 것이지요.

 

그러면 언제부터 우리에게 은혜의 시대를 주시는가? 

그 시기는 사도행전2장 오순절날 12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하면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이 시점에서 이전 즉 율법속에서 12제자를 선택하셨고

이후에 한 제자 바울을 은혜속에서 선택하셨읍니다.

 

이외에도 열두제자 명단에 들어가는 한 사람이 더 있는데 이는 맛디아라고 

바로 은혜의 시대가 시작되기전 사행1장 마지막에서 찿아볼 수 있읍니다.

그러나 이는 불행이도 예수님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각대로 선택한 사람이기에 

예수님께서 이 제자를 쓰신적이 없읍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연구하려는 것은 율법속에서 선택된 제자들이 쓴 성경과

은혜속에서 선택된 바울이 쓴 성경이 어떻게 다르며

우리가 알고 지켜야 할 점들을 지적하며 진행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서 진실로 예수님의 축복속에 은혜를 만깍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 은혜의 시대에는 주님이 우리에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세상적인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를 믿음에 따라 이기고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히브리 11:33-40에 그 능력이 무엇을 말하는지가 잘 나타나있읍니다.

(히11: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가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히11: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히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히11:36);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히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  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히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11:39);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신약의 사람들)를  위하여 더 좋은 것(예수그리스도)을 예비하셨은즉

                우리(신약의 믿는자들)가 아니면 저희(구약시대 사람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읽기전에 시작/원점으로 돌아가시어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자세로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가장 중요한것은 같은 성경적 단어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성경 전체를 좌우한다는 겁니다.

즉,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뜻하시는 바를 좀더 바로 헤아릴수 있는가? 하는 마음과,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의 감정과 이권에 따라 해석함으로서 어마어마한 죄를 저지를뿐만 아니라

특히 내가 가르치는 지도자의 위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실족케하는 죄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에서 제 일계명은 우리가 다 아는바와 같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제 이계명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허나 오늘날의 우상에 대한  정의는

                                                               꼭 어떤 상을 만들어놓고 절하는 것뿐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오직 한분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배제한

                                                                어떤 말과 행동,,또 나로 하여금 예수님과 나의 사이를 헷갈리게 하는

                                                                모든것이라고 정의가 됩니다. 그럴떄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의

                                                                위치에서 나의 말로 인하여 수많은 성도들을 실족케 한다면 나 자신이

                                                                어마어마한 우상숭배의 본체가 될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올바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될 막중한 책임이 있읍니다.

                                                               

                                                                예수님만 성경을 들어 증거하기도 시간이 모자른데 왜 세상의

                                                                갖은 달콤한 말로 마치 원맨쇼 코메디같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앙꼬없는 찐빵같은 설교들이 난무하는 현실은 누구의 책임인지요?

                                                                

그러기에는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들을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세상:::::::성경은 우리가 사는 즉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패역한 우리를

                 사탄에게 내어주시고 떠나신 사탄의 세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세상은 죄악세상이라고 합니다.

                 (창6: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엡2:2)-그떄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좆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철학::::::(골2: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 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철학이 인간에게는 가장 고상한 지식이나 하나님의 안목에서는 역시 이미

                 하나님이 떠나가신 죄악세상에서의 지식이기에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유?::::::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는 우리가 보기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차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기준을 교회에 나가는 사람과 안 나가는 사람의 세상적 기준이 아니고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 태어난 사람과 아직도 믿는다 하면서도 

                 그 마음이 육에 머무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진정한 자유는 (갈5:19.20,21)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의 하지 말아야 할 육체의 정욕을 

                 죄인인 우리의 힘으로 할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성령의 힘으로써만

                 (갈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같이 이행할수 있는 능력을 받음입니다

 

 

 <<<갈라디아서 강해설교>>> ? ?둘째 날

 

갈 1:11-24 복음으로 자유의 사도가 된 바울

 

?11절부터 24절까지 세부적으로 분해 해 보면

 

        (1)  11절과 12절은 그의 복음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복음이다.

       (2)  13절과 17절까지는 사도바울의 간증이고,

       (3)  18절과 19절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믿는 형제들과 가졌던 교제,

       (4)  20절은 사도바울의 진실한 고백

       (5)  21절에서 24절까지는 복음으로 자유된 사도바울의 열매 또는 하나님꼐 드린 영광,

 

<복습> 잠시 지난 시간을 생각해 보면,,,

바울사도가 일차 전도 여행때 세운 교회들이

이차여행때 다시 가 보니 가짜 사도들에 의해서 진짜복음이 

다른 복음으로 변질되어 있는 것을 보고 견딜수 없었던 사도 바울이

경고의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을 생각해 보았읍니다.

더우기 그들은 바울사도의 복음이 잘 못 되었다고 공격했을 뿐만아니라

바울의 사도직은 진짜가 아니라고 공격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사도바울과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배척하기 시작했읍니다.

 

지금도 한 사람의 말씀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자격에 대한 배경을 먼저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불신하게 만들면 그 사람의 말씀은 자연히 불신되어지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11절부터 자기가 사도된 경위와 자기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확실하게 변론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옹호하고 자기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위있는 복음이라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위해서였읍니다,

바울은 오늘의 본문에서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도되어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받아

그 복음속에서 자기가 맺은 열매를 증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1)  그의 복음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복음이다 

     11절과 12절: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에서 바울이 천명하는 것은 내가 너희들에게 전하는 이 메세지는 다른 어떤 세상으로부터 받은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로부터 받은 예수님의 메세지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절들에서 사도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메세지는 신적근원에 바탕을 두었음을 주장합니다.

  

     잘 알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이야기를 좋아하고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저도 설교에 아무 세상 이야기를 미하지 않읍니다.

     만약 제가 어떤 예화를 말씀드리면 복음보다는 그 예화가 더 좋은 말씀처럼 들릴까하는 두려움에서,,,

     우리는 아직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것을 더 그리워하기 마련입니다.

 

     11절을 봅시다. "전하는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는 곳일뿐만 아니라 

     그 복음은 사람의 뜻으로 오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복음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갈1:4; ?그리스도개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즉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뜻으로 된 복음만이 선포되어야 한다고 저는 철저히 믿읍니다.

     더우기 사도바울은 12절에서 선포하시길 자기가 전하는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은 물론 아니지만

     학습이나 교육을 통해서 받은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전하는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에수그리스도 그 자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초점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성경밀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인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성경 공부를 합니까? 말씀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기 위해서가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자체는 우리에게 어느 능력을 줄수 없지만 그 말씀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기 떄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생각나시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앟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 보세요 하나님이 저의 말씀을 믿는 자마다 하시지를 않고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라고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시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생사는 그 속에 예수님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읍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을 찿지 말고 예수님을 찿으라고 그렇게도 간절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느날 우리가 육신의 옷을 벗고 하나님의 심판대위에 서는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어떻게해서 이곳에 왔느냐고 물어보실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마음속에 없었던 사람은 예수님 아닌 다른 방법으로 왔다고 증거할 것입니다.

     잘 알아두세요. 성경은 말씀하시길 예수님을 제외한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하늘나라에 갈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되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서 올 자가 없느니라

     (사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제라도 예수님만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소위 훌륭하다는 목사님들의 설교테잎이 난무한 이 세상에

     목사님들 이름을 파삭히 외우고 다니면서 목사님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요즘 세상엔 너무나 많은 현실입니다.

     그 분들의 말을 가만히 분석해보면 그 훌륭한 목사님이 전한 예수님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그 목사님이 했다는 코메디같은 웃기는 얘기만으로 실컷 웃은 감동만이 그들의 기억에 있읍니다.

     목회자도 다 인간입니다. 

     누가 더 나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거룩성아래 우리는 모두가 다 죄인인것입니다.

     목회자가 누구보다 더 의인이 아니라, 복음을 미리 꺠달았음으로 해서 오는 두려움과 절박감으로

     더 예수님에 대해 목마름으로 연구하여

     나는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이 성도들에게 심어지도록 말씀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3: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꺠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찿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그런데 오늘의 그리스도교의 현실은 어떻읍니까?

    복음의 본체인 예수그리스도를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과 두려움으로 가르치는것이 아니라,

    많은 교회가 아직도 구약으로 돌아가서 교회자체가 믿음의 대상인듯 교회성장에 촛점을 맞추고,

    만인 제사장설로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 각자가 제사장임에도

    아직도 목회자가 구약의 제사장인것 처럼,

    그리하여 교회는 있는대로 양적으로 성장해서 하나의 엄청난 세상적 왕국을 이루고

    목회자 자신이 세상의 영광을 다 받고 예수님은 십자가로 명목만 걸어놓은 현실이 아닌지요?

 

    ?야고보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마태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다시 말하면 목회자 자신이 지금 이 순간도 살아서 이 모든 우주를 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

    즉 그냥 관념적인 하나님을 믿는것이 아니라 산 하나님을 믿는다면 거짖증거, 왜곡된 증거를

    할 수가 없다는 거죠.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도 아닙니다. 이미 죄를 지어 원수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찿을/부를 자격도 없기 떄문이지요,,

     그 자격을 바로 십자가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과 화해를 시켜주심으로 우리가 감히 하나님 아버지라 부를수 있는 산 길이 열린것입니다.

 

     즉 교회의 지도자나 한 그리스도인 자신이 어떻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구원계획의 매스터 포인트인  

     예수그리스도에 촛점을 맞추어 가르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전하여

     성도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심어주고,,

     성도 자신도 어떻게 올바른 메씬져를 구별하여,

     설교자가 과연 예수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전하려는

     목마름과 두려움의 사명감이 있는 분인지를 엄밀히 분석할수 있는 능력을 길러

     나의 지도자를 올바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 열심한 믿음은 말짱 헛것이 될것입니다.

 

     ?(마태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떄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9):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바울은 계시를 통하여 복음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선지자들에게 주신 영감에 의해서 인간에게 주어졌읍니다.

     이 계시란 하나님과 교통하는 한 방법이였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래서 바울의 모든 권위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받은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라고 선포하십니다.

     보세요! 여러분의 믿음은 복음에 입각한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적인 것에 매료되고 오염되고 왜곡되어 있는 믿음입니까?

 

     이 복음이 없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시작했으나 이 성경공부 자체가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 성경공부 속에 있는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은 거듭날 것이요.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치 못한 사람애개는 그 성경공부는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영성에 부딪혀서 내 마음이 전엔 할수 없었던 일들을 해 내는 순간

     나는 주님의 체험을 겪게되고 그 순간 나가 예수님안에서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종파가 거듭나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교파, 즉 장로교, 감리교, 안식교 등등의 인간의 분열로 갈라진 교파가 나를 거듭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거듭나게 해주고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이 철저한 진리를 꺠닫기 간절히 간구합니다.

 

     여러분들이 평생의 몸과 마음과 물질을 바친 믿음이 이 생을 마치는 다리를 건너는 순간

     한낮 물거품이 되기는 커녕 평생 오히려 우상숭배를 한 저주의 길로 갈수 있는 어마어마한

     선택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사도바울의 간증

    13절과 17절에서 자기의 간증을 말하면서 바울은 먼저 자기의 과거를 논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 자신이 유대교의 종교인이였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박해자였다고 진술하며

     예수를 만나고 나서 나는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신자가 된 나는

     지금 예수님을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백합니다.

     사실 바울이 지금 무엇하는 것입니까? 자기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간증이란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하는 무슨 신비함을 말해 병고침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였는데 예수님 만나고 자기 생활이 어떻게 변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간증의 초점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간증은 간증이 아니라 중언부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기의 과거와 현재와 앞으로 자기가 걸어가야할 영광스러운 미래를 여기서 말하고 있읍니다.

     다시 간략하게 바울의 간증을 정리해보면 바울은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유대교에 속해 있었는데

     하나님을 안 믿고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그 사람들을 잡아 죽이러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유대교인이였던 그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때 그는 바울이 아니라 사울이였읍니다.

 

     사도행전 7장 58절을 읽어보세요 "성밖에 내치고 돌로 칠세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이 사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가 꺠달은 것은

     에수님이 이땅에 오시고 그가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시고 흘리신 피를

     내가 받아 내 자신에게 뿌릴 때 비로서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받아 주신다는

     이 하나님의 뜻--즉 자기가 믿는 하나님의 구원계획 그 자테였다는것을 전에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체험한 바울은 이름까지 바뀌고 완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사역을 맏아하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아무리 교회에 오래 나오고 봉사 잘하고 감투를 써도

     아직 예수님을 체험하고 실질적으로 거듭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14절에서 그는 다시 증언하기를, 자신은 동족중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어느 사람보다도

     더 지나치게 자기 조상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였노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제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날의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은 서슴없이 말해도

      예수님은 정말 마음속에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읍니까?

 

      정말로 영생을 얻고 싶으신 분은 유대교인이 되어서는 절대로 하늘나라에 가지 못함을 재차 확인 해 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답시고 예수님을 그 마음에 영접하고 붙들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 세상 생명이 다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자기의 잘못된 믿음을 꺠달았을떄는 이미 늦었고 이를 갈며 영벌속에 던져지는

      비참한 종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마태: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15절에서는 바울의 전환점에 이릅니다.

      (갈1:15)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신 이가

      예수님을 전도하도록 예수그리스도를 내 속에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부르심이 우리가 말하는 체험에 해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체험을 하고나면

      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오직 예수님만 보이도다,,,이런 시가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흘러나오게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찬송가 204장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불러진 찬송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 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찬송가  338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니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아멘

     ( 이 찬송의 의미는 누구도 다 자기주장대로 자기 잘난 맛으로 도취되어 살다가

       결국은 막다른 길에 부딪혔을때야, 즉 세상 어디에서도 평안을 못 얻는다는 것을 알고

       손들고 예수그리스도 앞에 돌아 온다는 간증노래,,,,

       

      여러분 마음이 지금 그러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아직도 십자가의 체험이 없어서 하나님과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지 못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원된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을 전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   사도바울이 믿는 형제들과 가졌던 교제

      18절과 19절에서 그리스도안에서의 생활 즉 믿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말합니다.

      18절에서 바울이 누구를 만나려고 에루살렘에 갔는고하니 게바를 만나려고 갔다는 것입니다.

 ??     게바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처음 시몬을 만났을떄 지어주신 이름이 게바입니다.

      뜻은 반석이란 뜻입니다.

      요한복음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를 번역하면 베드로라)"

      그런데 누구를 에루살렘에서 만났느냐하면 주님의 동생 야고보를 만난 것입니다.

      이 야고보는 야고보서의 저자입니다.

      이들은 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였읍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면 제일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누구겠읍니까?

      실제로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읍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의 첫번쨰 변화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나 안 했나를 점검하는 방법의 하나가 이것입니다.

 

      요한일서 3:14절을 보세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ㄷ니라".

      예수님은 사실상 우리가 볼수 없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알수있읍니다.

     

      요한복음 13장 35절을 읽어보세요.

      그래서 바울도 옛날에 자기가 핍박했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든 것입니다.

      에루살렘으로 제일 먼저 올라가서 그들을 만나려고 했읍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만 보아도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 사람이 아니냐?

      그리고나서 다시 자기 고백을 나눕니다.

 

(4)   사도바울의 진실한 고백

      20절에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쓰는 것은 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디다. 그들에게 신뢰를 줍니다.

      우리가 자식을 훈계하거나 교육시킬때 하나님 앞에서 한다는 것을 신실하게 말해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인간 앞에서는 인간이 변할떄마다 그 약속도 변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오직 우리가 모든것을 통찰하시고 변화가 없으신 하나님앞에서 모든 것을 행한다고 생각할떄

      우리의 생활이 비로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5)   복음으로 자유된 사도바울의 열매 또는 하나님꼐 드린 영광

      21절부터 24절까지 바울은 자기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맺은 열매에 대해서 피력합니다.

      한 두가지를 찿아볼수 있는데

      첫째는 전도하기를 원하

      둘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루살렘 다음으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읍니다.

      수리아는 지금의 시리아를 말하는데 그 당시의 수도는 안티옥이였읍니다.

      

      안티옥교회에서 파송을 받았고 돌아와서는 이 안티옥교회에 보고를 했읍니다.

 

      다음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는데 이 나라는 바울이 태어난 나라입니다.

      바울은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 났읍니다. 사도행전 21장 39절을 보면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래서 사실 바울은 자기 고향을 찿아 간 것입니다.

      에수님을 영접하면 제일 먼저 그리워지는 것이 내가 아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의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여기서 바울은 한 7년간 전도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이 떄에 안티옥에서 한 사람이 바울을 데려가려 오는데 그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그래서 안티옥으로 가게 되는 동기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복음이 전 세계로 전도하게 되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24절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내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꼐 영광을 드리는 것이지

      우리가 말을 함으로서 영광드리는 것이 아님을 아십시오,

      오히려 몸으로 드린 영광을 입으로 망치는 일이 되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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