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그날은 보기드문 늦가을 화창한 날이였읍니다.
오전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는 행복한 마음이 그득했었지요.
전날 손주녀석 보낼 어린이집 날짜도 확정되어서 여유로워지고
앞으로는 즐거운 노년을 만들어갈 계획도 짜 보면 좋겠지 싶은것이
종합예술......칠순에 연극무대는 또 어떨가........그래 모노드라마 한판 만들어 굿판도 벌려보고
삼사년뒤에 일을 계획하며 즐거워서 밤새 뒤척이며 거창하게 꿈을 꾸었지요
그리곤 늦으막하게 일어나서는 창문넘어 멀리 보이는
뒤늦게 마지막으로 조롱조롱 달려있는 쳥양고추 생각이나서
"멸치볶음 만들어야겄다 서리맞으면 그나마도 구경못하는데" 혼자소리를 하면서 고추밭을
설렁설렁 들어섰었지요
우리집 채마밭에는 소로록 피여있는 고추꽃들뿐만 아니라
밭 가상사리 울타리에 아직도 호박꽃이 그득하게 피여있어 노란색을 뿌려놓은듯 했었답니다.
야채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애호박값도 만만치않다는데 둘러보니 역시나 기대한데로
애호박 서너개
반지르르 윤기를 내면서 달려있구요
호박꽃사이로 애호박 하나 따들자 무언가 나에게 달려드는게 있네요.
물론 몇걸음인가 뒷걸음쳤읍니다.
둥근막대 쌓아놓은걸 밟고 다리는 비틀리고
..........넘어지고 그리고 긴박한 시간들이 지나고
졸지간에 한달 보름여를 환자가 되어 병원 병실신세를 지게 되었답니다.
입원기간중 이십여일은 혼자 병실을 쓰다가 간병인이 돌봐주는 다인병실로 옮겨서 지내면서
한달여 기간동안 환우 할머니들과 함께 지낸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써보려합니다.
.........귀여운 도둑 할머니.........
항상 옆방 903호실에서는 끊임없이 다투는 소리로 시끌법석이다 "이놈의 할망구 기여코 그 세수대야 쌔비갔네그랴" 무언가 그릇 내던져지는 소리가 나고 "내그가 어느거시라를 후무치었다느가" 목소리는 얄망구진데 발음은 이빠져 새는 소리로 확실치가 않다. 뉴 XX병원은 말 그래로 새로 지어진 소도시 병원이지만 제법 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환자들 대부분 불편없이 치료를 받고 의료진들도 친절하다. 병원이라지만 이렇게 소란스럽고 자질구레한 사건이 종종 벌어져도 간호사라든가 간병인들도 큰 동요를 받지않는걸 보면서 이곳이 병원인가 하고 갸웃둥 고개를 젓게도 된다. 난 한동안은 904호 한층 아래 811호 2인실 특실을 얻어 간병인 없이 부부가 함께 쓰면서 결혼생활 40년만에 부부중에 한사람은 환자노릇에 또 한사람은 간병인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병원신세를 지게되었다. 이 8층 병동의 병실은 응접세트에 4인용 식탁도 놓여있고 중형 냉장고에 침대에 화장대겸한 세수간 샤워실겸한 화장실 또 부엌살림까지 할수있는 싱크대까지 설치해 놓은것이 요즈음 흔한 원룸아파트 꾸밈새랑 얼추 같아보여 크게 병원이란 느낌이 들지않을정도였다. 그렇게 이십여일을 이럭저럭 지내다 간병인 노릇을 하던 산이할아버지 드디어 감기몸살로 두손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일정을 간병인 병실을 찾아서 옮긴곳이 이 9병동 904호였다. 8병동에서 있으면서 가깝게 지내던 우리방 청소담당 아주머니는 내 짐을 청소수레에 싣고 옮겨주면서 못내 아쉬워하신다. 인천만석동에선가 새벽 다섯시에 출근한다던 그 아주머니는 작은 체구에 항상 허리가 아프다면서도 그 힘든 청소일을 놓지를 못하나 그래도 자기는 아직도 일하는곳이 있어 행복하다고 누누히 이야기를 하곤한다. 산이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그 병실에 있는 일주일동안 틈틈이 혼자인 나를 도와주면서 이런저런 사사로운 이야기도 나누어서 그런가 나 자신도 먼곳으로 나가는것도 아닌데 웬지 섭섭하다. 또 다른 병실에 많은 환자들과의 만남도 걱정스럽고 두렵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층 올라오는 시간이 짧은 시간이면서 길기도 했으니말이다. 휠체어을 타고 엘리베이터문이 열리고 처음 본 9층의 광경은 전반적인 병원생활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순간이였다. 조용하다못해 괴괴했던 8병동에 고요함에서 벼란간 시장터에 옮겨진듯한 부산한 사람들의 바쁜모습과 부딪히는 순간을 생각해보라
젤로 어린것이 왕온니께서 입원을 하셨다는데도
찾아가 뵙지도 못하고 이리 인사를 드리게 되서 죄송스럽습니다.
퇴원을 하셔서 다행이긴하지만 많이 불편 하실텐데
글도 남겨 주셨네요.
저도 지난 여름에 교통 사고로 1주일 정도
병원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입원해 잇었는데
정말 사연도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심심할 사이가 없었어요 .....
무리하지 마시고 재미난 병상 일지 들려 주세요....
혜경이도 교통사고였다고?
다들 무소식이 희소식도 아니네.
근데 혜경아 너 분발해야겠다.
이제 찬정이도 정기모임 오게 됬는데 넌 무조건 올꺼지?
은희언니
글을 참 맛갈스럽게 쓰셔요.
전 댓글이 올라왔길래 언니가 다음 편을 벌써 쓰셨나하고
설겆이도 제쳐두고 들어왔어요.
위문은 못갔지만 암튼 재미있는 건 무조건 읽어야하쟎아요?
죄송해요.ㅎㅎㅎㅎㅎㅎㅎ
온니~!
참 지혜로우셔요.
괴로웠던 지난날을 창작으로 승화 시키시네요.
힘드셨지만 그곳의 생활도 지나가면 한갓 추억에
지나지 않을테니 나중에 읽어보시면 이런때도 있었구나 ~!
하시며 웃음 지으실꺼예요.
지난번 엄마 입원때도 집에서 역사가 오래된 당신이 쓰시던
스텐 대접 한개 갖다 드렸는데 간병인이 통째로 잡쉈는지
전자렌지옆에 놓고 병실에 다녀오니 없어졌다 하더라구요.
하긴 그아줌니가 쟁반에 놓여진 엄니 점심약도 기냥 내보내는 사람이니,,,,ㅉㅉ
계속 올라오길 기둘립니다~~~요.
???은희야!!!!
화이팅!!!
순호 말대로 괴로웠던 순간을 창작으로 승화시키는구나.
외출이 자유롭지 않을 때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이 최고의 방법같다.
음악듣고, 그림 올리고, 글 쓰면서
마음의 평화와 함께 행복을 찾기를.......
................귀여운 도둑할머니(두번째 이야기)............................
엘리베이터문이 열리고 보이는 9병동 복도는 환자들과 문병온 사람들로
분주하고 거기다 의료진들의
부산한 움직임까지 섞여 그야말로 북새통이였다.
그날은 유독 더 그러했던것같다. 그래서 더 나는 주눅이 들었고
904호로 들어서면서 언듯 보이는 환자들 침상에 얼굴들이 낯설어 보여
시선 둘때를 찾지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들어섰다.
그러면서도 용기를 내어 "잘 부탁합니다" 누구에게라 할것없이
인사를 건네며 들어서는데
어디에선가 "젊은이가 오시는구랴" 무안하지않게 걸쭉한 대답이 들린다
간병인으로 보이는 분홍색 에프런을 걸친 아주머니가 반갑게 휠체어를
병실 안쪽에 창가옆 병상으로 끌어주는것이다.
방금 새로 바꾸어놓은듯한 병상시트커버가 구김없이 팽팽해보인다.
겨우 한숨 돌리고 병실을 둘러보니 병상에 보이는 환자들 모두가
꽤나 나이들어 보이는 할머니들이시다.
"오호 그래서 날더러 젊은이 운운 했구먼....나이 육십중반에 젊은이 소리를
다 듣는다 했더니...." 혼자 내심 중얼거리면서 이것저것 소지품들은
서랍이나 장에 챙겨넣는데 누군가에 시선을 가까이 느껴서 돌아보니
왜소하다못해 깡마른 할머니 환자 한분이 날 노려보고 서있는것이다.
"내 자루에이 느가 와 이느가 해서 와 보느거이야"
아주 작은 얼굴에 나이에 비해 반짝이는 눈동자를 쉴새없이 굴리면서
합죽한 입에서 혀는 삼분의 일쯤 이랄가 내어밀었다 들어밀었다 한다.
너무 희극적인 모습으로 발음도 부정확한 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오니
하마트면 소리내서 웃어버릴뻔했다.
그러고보니 이 할머니가 환자의 인연으로 첫대면을 한 할머니시고
앞으로 이 병동에서 벌어지는 소란중 대부분의 주인공이되는
보호1종의 팻말을 걸고있는 귀여운 도둑 김 정염 할머니(85세)신 것이다.
알고보니 김 할머니는 이곳 간병인이 상주하는 병실인 904호에서 지내다
한달에 육십여만원의 간병비가 부담이 된 아들의 권유로 내가 차지하게된
병상을 떠나서 옆 보통병실인 903호로 옮겨간 것이었다.
마지못해 자리를 비워준 꼴이 되었으니 그 심사가 보통심사가 아니였으리라
병상 명패에는 병명과 이름과 나이와 함께 적혀있는것이 있으니
보호 1종이라던가, 공단, 보험,등 의료비 지원단체의 소속이랄가 그런것이
적혀져서 붙어있다.
나는 처음엔 무심히 지나치다 어느날 눈에 띠여서 그것이 뜻하는바를
어림짐작으로 알게되었는데 유독 김 할머니의 등장으로 보호 1종이란
65세 이상인 노인들이 받는 (1종보호 의료급여제도는 생활이 어려운 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여 주는 제도로서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를 의료급여수급권자로 선정하여 의료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제도라는것도 알게되었다.
은희언니~
아~ 힘든 병상 생활을 이렇게 글로 승화시켜 추억하시네요.
재미도 있고 나름 간접적인 삶의 체험을 하는것 같아요.
언젠가 우리 소설 릴레이 할때도 느꼈지만 글솜씨 여전하시네요.
그 김정염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연히 그려져요.ㅎㅎ
언니~~ 화이팅!!
그려 화림아
`
봄날의 그 언젠가가 그립네.........
다리 다쳐 꼼짝 못하니 살림도 놓고 그저 우두커니
있을순 없고..............
잠깐 눈부치고나면 꼭두새벽에 꿈지럭거리니
사람은 적당한 노동을 해야만 잠도 제대로 곤하게 자게 되나보다
......에고.....핑계낌에 밤도깨비처럼 이러고 앉아있네.....
글쓰다 음악듣다 하다
저녁나절에 산이할아버지 친구인 교수퇴임한 시인친구
출판사 내고 책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자기들 옛시절 여행 다니면서 듣던 노래 제목서부터 가수이름
알려달라고 산이할아버지한테 묻다
너무 오래된 노래라 한참 찾다 .......내가 드디어 찾아주고
그러다 고 김 광석 노래도 만나고했네
한번 들어보렴 2기에도 올렸어........노래끝나고 하는
고 김광석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서말이지.....우리가 이야기속에 그 나이가 되었네그려
김 광석이도 간지 꽤 오래되었네.
언니~
정말 어느새 우리 얘기가 됬네요.
어제 우리 아파트 관리단에서 송년회 간다고 꼭 나와달라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부회장을 맡게 됬거든요)
할수 없이 갔는데 식사 끝나고 노래방 간다고 해서 난 그냥 올려고 했어요.
여자 중에는 내가 젤 나이가 많아서 젊은 사람들이 싫어 할까봐 (젠장~ 벌써 이런 눈치를 보고 있으니~) 지들끼리 놀게 하려고
했더니 관리소장이 같이 가자고 내 빽을 감추고 안주더라구요.
할수 없이 따라갔지만 젊은 애들이 (그래봤자 40대) 노는것이 예뻐보이고 어느새 모임에서 자꾸 젤 연장자로 되니까 기분이 좀 씁쓸하기도 했어요.
이번 여행도 다섯 부부중 우리가 젤 나이가 많았거든요.
나이가 많으면 지갑도 자주 열어야 하고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뭐든 많이 부족한거 같아 안타깝네요.
아직도 감성 풍부하시고 이렇게 음악 올리고 글도 쓰시는 언니 멋져요.
노래 아주 잘 들었어요.
..............귀여운 도둑할머니(세번째 이야기)...................
병실밖 복도가 또 한바탕 시끌법석 큰소리로 다투는 소리인지 누군가에게 소리치는
남자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모처럼 병원 코인 인터넷 피씨방이라는 층마다 두대씩 차려놓은 컴퓨터앞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그림도 찾아올리고 있었다.
점점 소리가 가까이 들리는걸 보면 이곳 휴게실겸 피씨방이라는곳으로 소리의 주인공들이
오는듯했다.
결국 문제의 김 할머니와 육십은 되어보이는
초로에 남자가 할머니의 손목을 잡아끌고 와서는 의자에 앉히며 긴 한숨을 쉰다.
"도대체 왜 그래요 정말! 정 그러면 요양원으로 보낼거요.........속터져 환장하겄네...."
"내 ...내...내...내가 ...모..머..머..르 으짜아끼래....그려어...."
"왜 남들 물건을 가져다 쌓아놓아요.........그리고 싸움박질을 하냐구요 ....
그걸 무어다 쓰려고 쓸데없는걸 모아놓는냐구요...어이구 미치겄네..."
두 모자의 싱갱이는 끝이 날거같지가않다.
그러는 와중에 903호실에 건장한 할머니 한분이 나와서 모자사이에 비집고 앉는다.
"에이구....너무 몰아치지 마시구랴....어머니가 아주 맑은정신이 아닌거 알면서
야단치고 가르쳐서 될일이 아니구먼"
처음에 그방서 제일 많이 다투던 그 할머니였다.
김 할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그 늙은 아들은 이삼일에 한번씩 찾아오곤 한다는데
올때마다 병실식구들에게 머리숙일 일로 속상한듯보였다
은희언니~몸조리 잘 하고 계시나요?
다리 들고 왔다갓다 하시죠???
절대 안돼요.
지저분하고 속상해도 눈감고 귀막고 계시도록 노력하셔요.
많은 시간 병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뇌리를 안 떠나죠?
우리가 사는 게 다 그렇고그런 것 같아요.
인간사 정말 복잡하지 않나요?
살기가 그리 힘든 것 같아요.
벌써 이 해도 다 기울어가고 있어서 못내 아쉽네요.
참 시간 빠르네요.
언니 다리 빨리 나으셔야하니까 시간이 빨리 가야하죠???
언닌 참 젊으셨어요.
그림, 음악까지 모두 가까이 하시니 부러워요.
김광석이 우리 곁을 떠나지가 벌써 10여 년이 다 되었네요.
언제나 들으면 왜 그리 슬픈지 모르겠어요.
제 찻속 CD에서 흘러나오는 " 서른 즈음에 "
자기 형을 잃고 슬프게 부른 " 어느 일등병의 이야기 "(?)가 저를 슬프게 하네요.
광숙아~
김 광석이는 1996년에 갔다더라
노래끝나고 화면밑에 조그맣게 뜨는 창을 보면
김광석에 곡 대부분 들어볼 수 있단다
이등병의 편지......도 있거든.
요즈음 신세대의 노래도 귀엽고 신나고 좋더라
그래도 옛 추억이 되살아나는 옛노래도
가끔은 좋네.
집에서 문밖출입이 안되니 꼼짝없이 방콕이고
.........어쩌겠냐...........
................귀여운 도둑할머니(네번째 이야기).................
그러고보니 이 병원 특성상 노인분들 대부분이 나처럼 골절로인해 수술을 하거나
인공관절수술을 하고 또는 교통사고로 인한 복합적인 치료 환자가 대부분인데
김 할머니는 특별히 어느 부분이 잚못되어 있지가 않아보였다.
보통은 우리병실은 아홉시경이면 소등을 하는데
그날따라 여덟시가 지나기가 무섭게 전등 불을 끄니
어쩌는수없이 난 조용히 휠체어에 몸을싣고
병실을 빠져나와 컴퓨터를 찾아 나섰다.
우리병실과 제일 가깝게 자리하고있는 휴게실을 겸한 피씨방엔
어찌된일인지 어린 남학생들이 잔뜩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학생 아이들이 패싸움을 해서 층마다 병실을 차지했다하더니 그렇군"
난 혼자소리를 하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못하고 기다리다 쉽게 자리를 얻지못할것같아
오늘은 이 노릇도 포기하고 초저녁부터 무엇을하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숨과 함께 병실로 돌아오는데 904호병실문이 열려있고 의사 간호사들이 보이고
긴박한 상황이 벌여진듯한 수선스런 몸짓들이 보인다.
나올때 불이 꺼져있던 병실이 환하게 밝혀져있고 엊그제 본 그 김할머니 아들인듯한
사람도 보인다. 병실을 떠나고 학생아이들 눈치를 보며 기다리던 시간이라야
불과 이십여분이나 지났을가싶은데 이건또 뭔 일이벌어진거란말인지
휠체어에 몸을 싣고 있으니 양해를 구하고 일단 내 병상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 김할머니는 교통사고로 일주일 치료끝에 한방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환자가
퇴원한 맞은편 끝자리에 링겔병을 매단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거의 혼수상태인것처럼
보이는 몸짓으로 누워있는게 아닌가
노인들은 밤새 안녕이라더니 이게 바로 그런 상황인게 아닌지 나는
입원내내 그저 병실환자 대부분과 그날이 그날인 나날을 보냈기에
이런 위급한 환자의 상태에 내심 두렵기조차 했다.
아니 저런 환자를 중환자실로 데려가야 되는일이 아닌가 싶기도하고
처음으로 이 병원에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은근히 들고 일어나기도 하는것이다
김 할머니 아들 또한 의사에게 소리높여 고함을 지르며 어머니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으름짱을 놓고 간호사에게도 이거하라 저거하라 명령조로
다그치고 있는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의사나 간호사는 침착하게 대처하며 조용히
김할머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아무일 없을것이니 다른 환자들도 있으니
밖으로 나가시자고 아들을 데리고 나가는것이다.
병실에 있는 옆자리 최 복순 할머니나 다른 할머님들도 무덤덤하게 쳐다보고있고
그저 옆방에서 다시 돌아온 김 할머니를 돌보게된
간병인 아주머니만 난감한 표정으로 다시 가지고 온 김 할머니짐들을 정리하기 바쁘다.
"무슨 일이래요 어제만해도 쏜살같이 복도를 누비고 다니시던데"
내가 이 상황이 믿기지않아 간병인 아줌마한테 물었다.
"병실서 갑갑하니까 종종 뭘 빨기를 좋아하는데 세수수건 빨러 공동 목욕실에
갔다가 넘어졌다는군요......이 병실에 있을때도 너무 빨리 종종걸음으로 다니다 곧잘
넘어지곤 했는데 그래도 이런일은 없었는데요...."
은희야!!!!
그 병원이 암만 골절 환자가 많이 있는 데라지만,
병원이란 원래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곳 이잖아.
우리 나이에 골절은 사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하드라.
특히 대퇴부의 골절은 치명적이라지 아마?
지금 아침에 깨어 거뜬히 일어나 하루를 시작 할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하겠다.
오늘은 올해 들어 처음 눈다운 눈이 내리고 있다.
내리는 눈은 저리도 희고 깨끗한데,
현실은 '아이구 자동차 운행이 힘들겠다'
하는 생각이 드니 참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이것이 이성과 현실의 차이같구나.ㅎㅎㅎ
웃기라고 해야겠다.
.................귀여운 도둑할머니 (다섯번째 이야기) ...............
뒤숭숭한 병실 분위기로 인해 그동안 그냥저냥 잘 지내오던
내 병원생활에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것 같은 예감이든다.
904호병실에 입실하던 첫날 내게 뭔가 심상치않은 맨트를 던지고 사라졌던
김 할머니의 출현이니 더욱 그랬다.
어찌되었든 진짜 환자가 되어서 돌아온 김 할머니의 상태로 우선 걱정이 앞서고
오늘 이밤 잠은 천만리 달아나 버린채 마주 보이는 할머니 병상만 쳐다보게 된다.
어느만큼 시간이 흘렀나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서 놀라 눈을 떠보니
이런~! ....링겔병을 매단 지지대를 붙들고 서있는 김 할머니가 내 병상옆
창가에서 무언가를 만지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환자복 주머니에 냉큼 그 무언가를 집어 넣는다.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것인지도 몰라 "그려 꿈이지 분명 저 할머니는 몹씨 아팠자녀"
간병인 아주머니도 인기척에 "아니 할머니 어쩐일이세요"
그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김 할머니는 지지대를 굴리며 자기 병상으로 다람쥐처럼
쪼르르 순식간에 가버린다.
내가 놀라서 윗몸을 일으켜 앉으니 김 할머니 옆자리에 자리잡고 누워 있던 간병인 아주머니도
화들짝 일어나서 할머니한테 달려가본다.
할머니의 찰과상을 입은 얼굴은 눈부터 부어있어서 그 반짝이는 눈이 더 작게보였고
합죽한 입에 혀는 빼어 문채로 병상에 냉큼 올라앉아있다.
그리곤 천연덕스럽게 눕더니 앓는소리를 한다.
간병인 아주머니 "에이그...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네요.." 혀를 찬다.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보니 새벽 두시다.
그리곤 간병인 아주머니는 링겔주사액 줄도 만져보고 주사맞은손도
살펴본다.
"어이구 놀래라 이게 뭔일이래..."순간적으로 난 이 상황을 분석하느라 머리를 흔들었다.
"사모님 놀래셨어요?....허긴 나도 요번참엔 상처도 생기고해서 진짜로 뭔일이 생기나했네요
이쯤되면 긴 설명이 뭐가 필요하단 말인가.
우리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다른 병상의 할머니들은 깊은잠에 빠져서
미동도 하지않고있다.
김 할머니의 병상 머리맡등 불빛이 작은 무대위의 스포트 라이트처럼 비추어보인다.
연극의 주인공인 김 할머니의 연기는 아직도 계속중이다.
간병인 아주머니도 이젠 아예 마음놓고 잠자리엘 들었나보다.
오직 한사람 이 주인공의 공연을 처음 관람하는 관객인 나는 한 부분이라도
놓칠세라 시선을 떼지못하고 조용히 열중하고있다.
무대의 주인공은 이제 슬며시 상반신을 일으키고 주위를 살핀다.
관객이 없는 혼자의 공연인것이 판단되었는지 앓던 소리도 멈추고 다시 살포시 일어난다.
창문밖으로 바라보이는 아파트의 불빛들이 켜지기 시작하는걸로보니
새벽에 아침을 준비하는 부지런한 여인네들이 일어날 시간이 되어가나보다
이렇게 잠못이루는 병실의 두 사람 김 할머니와 나와의 새로운 인연은 시작되었다.
쳐다보고있는 내 시선을 모르는 김 할머니는 아주 가볍게 병상에서 일어나더니
지지대도 숙달된 몸짓으로 밀고서는 바로 옆 화장실로 들어가버린다.
조금후 덜거덕 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저건 또 뭔 소리인가........화장실에서 들리는 소리래야 뻔한 소리이니.........
두가지 일로 발생하는 소리가 아니면 화장지 빼내는 소리임에 분명한데
그소리 너무 길다.
얼마후 김 할머니 살포시 화장실문을 열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병상으로 돌아와
주머니의 무언가를 꺼내 한쪽주머니에서 꺼낸 한뭉텅이 화장지로 재빠르게 꾸린다.
그리고는 병상옆 장문을 열고 커다란 비닐백을 꺼내더니 그 무언가를 집어넣고는
다시 병실안을 살펴보고는 장안에 가볍게 들어서 넣는것이다.
"환장 허겄네...." 하던 김 할머니 아들의 목소리가 떠오르고
그 환장할 일을 903호 병실에서 미쳐 다 이루지못할 처지가 되었나
나름 머리를 굴려 넘어지고 생병을 만들어 꿈에도 그리던 병실로 온것인가보다.
번하게 아침이 밝아오는 시간이 되자 간병인 아주머니가 일어나 병실불을 켠다
누워있던 내가 슬며시 일어나자 "아니.....안 주무셨어요?......"
"글쎄..................잠이 안오데요....김 할머니랑 같이 못잔거같아요..."
"처음이라 그러실거예요........여기 할머님들은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이제는 하도 그래서..."
"거기 창가에 두신거중에 아마도 비누 가져갔을걸요.....왜그리도 비누에 집착을 하는지몰러"
그러더니 무슨 생각이 나는지 화장실로 급히 들어갔다 나온다.
"그렇지...에이구....화장실 빨래비누도 집어갔네....에이휴... 못살아..."
"귀찮아서 어쩌나....매번 ....."
ㅉㅉㅉ...그할머니가 불쌍하네요.
얼마나 맺힌게 많으면 그럴까?
도벽이라고 하기엔 좀 안쓰러워요.
근데 그도벽은 고칠 수 없나봐요.
제주변에 어떤사람도 도벽이있는데 주위에서
눈치를 주어도 알면서도 그러는지,
모르는줄 알고 그러는지,
눈만 돌리믄 지가방에 넣더라구요.
심지어는 그집 아이까지 그런다는거,
이웃들과 놀러가서 물건이 없어지면 사람들이 찾을 생각도 안해요.
다음 놀러갔을때 잘보면 시침뚝따고 그집 가방에서 나와요.
자기것인냥 자랑스레 꺼내 쓰지요.
첨엔 모두 기막혀 하다가 기냥 냅둬요.
가난해서 그런것이 아니고 아마도 어려서부터
습관인것 같아요.
그집아이는 백화점 가서 작은 소품들을
집어와선 자랑스레 친구들에게 털어 놓는답니다.
어릴적 남의 물건 탐할때 하면 안된다는걸 정확하게
알려줘야 했는데 그시기를 놓친것 이겠지요
저 5살때 구멍가게에서 눈깔사탕 1개 훔쳤다고 잠안재우고
방바닥을 내려치던 울엄니덕에 남의 물건에 눈도 안돌리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어릴적에 잡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옛날 딸 어릴적에 우리집에 친구가 4살짜리 자기 아들을 몇시간 맡긴적이 있어요
그아이가 집에 가서보니 주머니에 100원짜리가 있더래요.
우리집 식탁밑에서 주웠다고 하면서.
내친구가 그추운 겨울날 어스름한 저녁에 우리집으로 보내
잘못했다 하고 100원을 나에게 되돌려주게 했어요.
추운데 내일 보내라고 해도 부득이 그밤에 보내더라구요.
언니~!
이젠 좀 집에 적응 되셨나요?
손주들이 있으니 심심하진 않으실테고....
책도 많이 보시고,
언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가족들이 아시게
많이 움직이지 마시고,
꾀병도 좀 부리시고,
정기모임엔 무슨일이 있어도 활짝웃으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시길 바랍니다.
......ㅎㅎㅎㅎㅎㅎ......순호야~ 명옥아~ ........
불 꺼진거
이 언니 신경 써주는거....내 다 안다.
우리집서도 시 아버님, 친정 아버님 두분은 치매로 결국은 본 모습은 보여주시지 못하고
가셔서 치매라면 어느정도는 알고는 있었다.
그리곤 친정어머니도 치매끼가 시작 되기 바로 직전에 돌아가셔서
천만다행 이다 싶었었지......................
착하게 사신 분이셨는데 말이지.
내 피붙이가 아닌 분의 치매 과정을 또 보게되니
병실에서 잠은 못자고 불편해도 마음이 써 지더구나
순호 말대로
우리도 알 수 없는 마지막 우리의 행적을 미리 보는듯해서 말이다.
도벽도 유전되는구나.
참 무서운 일인데 정작 본인들이 모르니....................................
도벽 뿐 아니고 잘못을 했을 땐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혼을 내고
사과를 시키고 해야 애들이 그 중요성을 알아차리더라구.
그리고 왜 야단 맞는 가를 확실하게 설명해야겠더라구.
우리 꼬맹이 6살 땐가 하도 나를 열받치게 해서 막 화를 내고 야단쳤는데
밤에 형이 왜 엄마가 화냈느냐고 물으니까 저도 모른다고 그러더래.
그 말이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더라구.
이유를 모르면 완전 엄마가 히스테리 부린 걸로만 기억되쟎아?
은희 언니.
지가요.
하는 건 없어도 읽는거만큼은 무지 애독자걸랑요.
다음 글 빨리 써주세요.
집안일은 좀 내버려 두시고 그냥 요기 전념하시는 게 나아요. ㅎㅎㅎ
오전중 회진 시간에 김 할머니 담당 의사는 할머니 아들이 원하던 철저한 검진중
넘어진 상처부위에 엑스레이를 찍는 시간을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알려주고
자고있는 할머니 상태를 살펴본다.
"할머니 새벽에 일어나셔서 화장실도 혼자 가시고 했어요" 간병인 아주머니 환자의
밤사이의 상태를 설명해준다.
담당의사는 이미 알고있다는듯 그냥 고개만 끄덕일 뿐 별말이 없다.
나야말로 김 할머니가 이 병원에서 벌써 여러번째 이런 일을 벌였다는걸 알았다.
4층에선가부터 시작해서 층층이 다인병실이라면 다 둘러서 이젠 마지막 층인 9층까지
올라왔다하니 이 병원에선 더이상 올라갈곳이 없잖은가.
나는 밤새워 잠을 못자도 낮잠을 잘 못자는 편인데 할머니 오전중엔 한 밤중이시다.
엑스레이 촬영시간에 마추어 간병인 아주머니 서둘러 할머니를 깨우고
"어르신 어서 사진 찍으러 가십시다..........시간 되었어요..........."
부시시 일어난 할머니 ...물끄러미 쳐다보다 자기상황이 지금 어떤지경인지를
께딜았는지 도로 아픈척 눕는다.
"하...하...이젠 좀 그냥 일어나세요....공연히 넘어져선 얼굴이 그게 뭡니까
어제보다 더 부어올랐자녀요...자 어서 가십시다 시간 넘기면 차례 많이 기다리게되니까"
"저 니 이젠 얼굴 씻어대긴 글렀당게.......어찌야 쓰까나 저 화상을 "
옆자리 최 할머니 안타까우신지 오랜만에 한마디 거든다.
같은 동갑네인데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 양반은 저절로 양반 이라고 대접하고푼
그런 할머니시다.
착하게 늙는 모습의 표본이랄까 아니면 슬픈 삶의 달관된 경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팔십오년간의 세월을 보낸 두 할머니들이 보여주는 극명하게 다른 일상이
내 병실생활에 있던 일들을 쓰고싶게 펜을 들게하고 있는 계기다 되었으니 말이다.
가니 안가니 싱갱이끝에 겨우달래서 휠체어에 앉혀 함께 나갔던 간병인 아주머니가
나간지 얼마 지나지않아 혼자 돌아왔다.
"어떻게 혼자오세요?"
"아이구....기운 다 빠졌네...글쎄 엑스레이실에 가서는 환자복입고 사진을
어찌 찍냐고 그리고 혼자 무슨 사진을 찍냐고 여럿이 같이 찍어야지 하면서 난리를
난리를 부리는거예요 ....처음 엑스레이 촬영을 하는것도 아닌데...촬영기사선생이랑
붙들고 해보려다 어찌나 빨리 도망쳐 나가는지 주사바늘도 뽑아지고 난리도 아니였어요"
"여럿이 같이 찍는건 또 뭐여요" 어이없어 모두 웃자
"기냥 기념사진이라도 찍는줄 아나보죠"
김 할머니 피해서 먼저 우리호실로 옮겨온 건너편 병상의 전씨 할머니 말이다.
주사바늘 사건으로 간호사가 불려 내려가고 하는 와중에 마침 할머니 아들이와서
김 할머니 촬영사건은 마무리가 되고 아들도 또 어머니가 만든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는
옆방에 자리가 비면 다시 옮겨달라 부탁을하고 긴 한숨과함께 자리를 떴다.
"이러나 저러나 저 할머니 아들은 효자지 싶네요 그래도 환경이 좀 나아보이는
병원에 어머닐 계시게 하니 말이지요.......어떤 사정이 있어 집에 모시지는 못하는줄은
몰라도 ...."
" 며느리 있대도 어디 저러는데 함께 살려고 하겄어요?"
"눈 떠 있는 시간엔 칫솔질하고 얼굴 닦느라 물에 매달려 있지요...또
한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싸돌아 다니지요 그러다 넘어져 병원에 들어오곤 하니.."
보호 1종의 혜택이 이렇게도 이용이 되는거로구나 나는 그제서야 눈치를챘다
그날 이후 비누와 화장지 훔치기나 신 새벽서 부터 이 닦기 세수하기로
김 할머니는 나를대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거기다 보태서 깔고 덮는 이부자리도 끊임없이 털고 반듯하게 정리하고
병상에 깔아놓은 전기요도 수시로 코드를 끼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빗고 그리곤 다시 생각난듯 이 닦기 세수하기를 하고
이도 없는 잇몸을 그렇게 닦아대는데도 잇몸이 단련이 되어선지 아파하지도 않는다.
얼굴은 다친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지만 부기도 빠지고
염증이 안생기는걸 보면 타고난 좋은 피부지 싶기도하다.
한달이상 병실에서 김 할머니를 겪은 다른 할머니들은 견디기 어려우면 피해서
다른 병실로 옮겨 가거나 하고 그렇지않으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904호 할머니들 대부분이 참는데는 이골이 나신 분들이라선지 큰 마찰없이 지내시는것이다.
그래서 간병인 아주머니는 김 할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우면
딴에는 감추어놓은 비닐백을 꺼내 병실 식구들 비누등을 찾아내 주인에게 되돌려 준다.
그러면 어느때인가 다시 가져가고 또 다시 되돌려 그 자리에 놓아주는 일에 반복을 하곤하는것이다.
유독 김 할머니는 먹는일에는 욕심이 없어서 끼니때마다 올라온 반찬중 일부분을
당신 마음에 드는 그날의 누구에게 꼭 가져다 주곤하는데
이사 오고나서 이삼일은 옆호실 건장한 이 할머니에게 식사전에 다녀오곤 한다.
싸우면서 정이 들어 그런지.................................
903호실로 입실하면 든든한 이 할머니가 게시니 다행이다 싶기도하고
오래도록 병실 생활을 해야할 같은 처지인 할머니들 이시니 서로 힘이 되어줄것이다.
그러나 다른 호실에 환자 이동이 없는지 아들의 부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루밤에도 몇번이나 깨어나 할머니의 대부분의 행동을 지켜보아야하는 나는
아예 밤에 자는걸 포기하다시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문병온다는 둘째 언니와 조카에게 부탁해서 두루마리 화장지하고 비누를 사오라 부탁했다.
의아해 하면서도 언니는 가져다 주었고 그 물건들은 할머니 머리맡 선반에 잔뜩 올려 쌓아놓아졌다.
그러나 혹시나해서 였던 내 생각은 역시나 헛되고 헛된 어리석은 짓이였다.
마음놓고 잠을 청하던 나는 또다시 내자리로 살금살금 다가서는 인기척에 다시 잠자기를 포기한다.
다른때와 달리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서 말을 부쳤다.
자려니 하던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나름 놀라 돌아서는 김 할머니 등을 향해서
"할머니 ......제가 잠이 안와서 그러는데 할머니 전에 돈 버시던 이야기좀 해 주실래요"
그 할머니는 좀도둑이라기보다는
아주 전형적인 치매의 한 증상을 보이고 계시는거 같아요.
사람에 따라 치매의 양상이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대요.
제 친구 어머니는 아주 얌전하고 교양있는 분이셨는데
어느날 부턴지 모르게 느닷없이 쌍욕을 하며 분노를 표출하시게 되었대요.
일평생 욕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분이 미친듯이 퍼부어 대면
딸은 그저 망연자실하여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더군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저도 그 친구의 하소연을 듣고 정말 놀랐었어요.
인간의 잠재된 감정과 본성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가장 기본적인 증상은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프다는 허기증.
그래서 치매 노인의 단골 대사가 바로
"저년이 날 굶겨 죽이려고 작정을 했어. 배고파 죽겠어"
치매 노인 모시느라 골병이 드는 사람 속도 모르고
어쩌다 한번 들른 자발없는 자식(특히 딸년)은 눈을 허옇게 뒤집어 흘기며
모시고 있는 형제를 원망하느라 속을 끓이곤 하는거 많이 봤어요.
남의 경우에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도 자기 부모 일에는 서운해 하면서 말예요.
암튼.....
늙으면 자꾸 헛헛해지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자꾸 먹으려 들고 무언가를 모아 놓으려 들고 관심을 끌려 들고....
김할머니는 아마 비누나 휴지를 모으는 것으로 헛헛함을 채우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은희 언니 ~
할머니를 바라보는 언니의 시선이 따뜻하네요.
어여 다음 이야기 들려 주셔요.
늙음과 쇠함,
모두가 자연소멸의 한 과정이겠죠?
정말로 남의 일이 아니에요
은희 언니
참으로 서글픈 이야기를 쓰시네요.
저희 인천여중 시절 아주 예쁜 아이의 일입니다.
위문편지 쓸 때 항상 "사람들이 윤정희와 꼭 닮았대요" 라고 시작하는 아이였지요.
그런데 맨날 시계며 돈등을 훔치고
그러다가 들키면 "그래 내가 그랬\다. 어쩔래, 주면 될 것 아니야" 라면서 오히려 큰소리를 쳤지요.
그 아이의 엄마가 오셔서 맨날 울고 했지만 결국은 퇴학을 당하고 다른 학교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퇴학을 당하고 어찌어찌 굴러 다니다가 유명한 조폭 두목 조양은의 여자가 되었지요.
조양은이가 자기의 자서전에 자기가 평생 사랑한 여자라 했습니다.
그런데 조양은이가 몰락의 길을 걷자
한밑천으로 해 주었던 영화관을 운영하던 그 아이의 친정오빠가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이제는 돌아 오지 말라고요.
결국은 막 살아서인지 예쁜 모습도 사라지고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번 잘못 된 길로 들어선 것이 온 집안을 나락으로 이끌고 말았지요.
세상엔 별의 별 일이 다 벌어지고 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은희 언니 때문에 잊었던 그 아이가 다시 생각 났네요.
언니
날씨가 몹시 차가와졌습니다.
조심 하십시오.
그리고 보고싶어요.
글 잘쓰는 경선이....춘선이...산학이....
언니가 좀 부끄럽네.
산이 할아버지가 내가 그냥 초고없이 글 쓰는 모습보고
어이없어 하더라구...............
언제인가 작가 김훈씨가 산이할아버지 한테 보내온 편지가
연필로 쓰여져 있는걸 본적이 있었지.
항상 원고지에 연필로 쓴다고 한걸 보면......
생각이 많으면 쓰게되지 않게 될게 뻔해서 그냥 쓰네.
24일은 손주랑 놀아주느라 글은 못쓰고 잠깐씩 들어와 보곤했는데
24일 이후 인터넷 광케이블이 끊어졌다는군
방금전 다시 연결해 주고갔는데.....큰 길에 지나던 차가 끊어놓았지 싶다고
문명의 이기중에 인터넷이
이젠 제일로 중독성이 강한거 같네.....내겐.
연결해주자마자 시작하고 있으니.
그리고 그 유명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 이 태영씨가
그 훌륭한 분이 84세에 돌아가시기 전 치매를 앓으셨는데
어느 곳을 가던 신발을 꼭 품안에 넣어 가지고 왔다더군
어려웠던 시절 신발에 얽혔던...........그것이 뇌리에 박혀서였을까
우리들도 어찌 될지는 장담못할거란 생각에
나이먹어 이제 겨우 나도 나의 일처럼 피부에 닿은건지..................그러네.
언니~!
다리 한쪽에 목발을 짚으시고 휠체어를 타셔도
언니는 늘 우리들의 언니세요.
우리가 가슴이 헛헛할 때 늘 찾아가 뵐 수 있는 우리언니.
우리가 어릴 적에 친정음식이 생각날 때 처럼 그리울 때 생각나는 우리언니.
우리가 멀리 바다쪽을 보면 아련히 떠오르는 대몀포구 앞에 우리언니.
우리가 여름날 입맛이 없을 때 열 손꾸락을 쪽쪽빨며 먹었던
간장게장이 사무치게 그립도록 생각나게 하는 우리언니.
언니~!
집에만 계시니 답답하시지요?
불편하신건 잠깐이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그래도 우리 낼모레 만나잖아요.
우리~~~~~
낼모레 만나서 찐~~~~하게 허그해봐요.
............귀여운 도둑 할머니......(여섯번째 이야기--2)
깔끔하기도하고 부지런한 몸놀림은 예사롭지않은 할머니의
지나온 세월의 삶의 행적을 상상케 한다.
"전에 저 어르신 기분이 좋아지면 이야기하곤 했는데
큰 건물 청소원으로 일 하셔서 돈 많이 버셨다고 자랑 하시곤 했어요"
간병인 아주머니중 연세 많으신 윤 여사가 할머니 짐 속에서 이것 저것 챙겨
정리하다가 해준 말이 생각이나서 나는 할머니를 불러 세워보았다.
"그려엉....내...돈번....야기이 ....듣고시포오...."
돌아서는 김 할머니 얼굴이 어두침침한 흐린 불빛에도 밝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이리 앉아서 이야기 해보셔요" 이불 한자락을 거둬 치우고 자리를 만들었다.
할머니는 아주 가벼운 몸짓으로 냉큼 병상으로 올라 앉는다.
나는 내병상위 불을 켰다. 병실안에 모든 할머니들이 깊은잠에 빠져있는 시간에
이렇게 김 할머니의 두서없는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내가 ....까갑해서어...노올지못해서...돈옹을 벌러 다녀찌이...며느리라앙은
아안 마자서...전세똔두 내가 맹글어찌이...육빽마넌언을 ..."
"아들 하고는 같이 안 사셔요. 퇴원하셔서 혼자 지내시고 계셔요"
할머니는 이 없이 식사를 하는거 말고는 시력이나 청력이 모두 건강한 편인걸
가까이 대면하고 앉아서 확실하게 알게되었다.
"할머니 ...모두 주무시고 계시니까 우리 조금 목소리를 작게하고 이야기하지요."
"오....오...오...으..응...그려.....그으려...."
그 작은눈에 잔뜩 웃음을 머금고 소곤거리는 할머니의 얼굴표정을 보면서
티없는 어린 손자의 장난끼 어린 모습이 떠오른다.
"아니...그 할멈이 뭐 땀시 요기 와 있쏘이...."
옆 병상에 최 할머니가 우리가 소곤거리는 소리에 부시시 일어나신다.
"어째요 할머니 주무시는데 공연히 제가 김 할머니 더러 이야기나 하시자고
주무시지 않기에 그랬거든요.....죄송해요...."
"우째쓰까이...그 할멈 하는 소리래야 돈 벌어서 전셋돈 맹글어 방 자기가 얻어
살았다는 야기....겁나게 자꾸 허고 허고 하는디 그러나 저러나 또 뭐 꼬불치려고
온 거시기가 분명 헌겨...에이고..." 안쓰러워 한숨을 쉬신다.
저녁약 말고도 대부분 우리 병실 할머니들에게 약을 드시게 하는데 알고보니
최 할머니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전 5년 동안이나 밖출입을 못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제한된 세상만 바라보셨다한다.
그로 인해 생긴 여러증상 중 우울증약을 복용 하신다는 것인데
왜 나는 그 약 복용이 그리 생경하게 느껴지는걸까
잘 웃으시고 무어든 양보가 우선이고 큰소리 한번 안하시는 최 할머니
보살피는 간병인 아주머니들 조차도 착한둥이로 통하시는 분인데 우울증약 이라니
그 새벽이후 김 할머니는 옆호실 이 할머니 몫이었던 반찬중 한가지를 챙겨
최 할머니 아니면 내게 그 묘한 합죽미소와 함께 가져다 주시곤 한다.
나는 또한 새벽 그 시간을 위해 세수간 선반위에 비누 한장을 올려놓곤 한다.
그건 자연스런 우리들의 묵계였다.
그리고 당신 정해진 일과가 끝나면 부지런히 내게로 와서
할머니 며느리가 자기와 맞지않아 홀로서기를 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곤 한다.
"고 .....나뽀온 녀언니가....지.....서어방노옴헌티...맨날 일루어 바쳐야
내에가...쏙 터지는데에....지가...미치거따네....서어방 업시면 날 자바 먹을랴혀"
"뭐 땀시 그라갔쏘 할멈이 자꾸 딴 짓꺼리 하니 그라지"
"내나 할멈이나 살 만치 살았응게 후딱 가야 쓰겄는디......워째야 쓸래나 모르겄소이"
내가 뭐라 할새 없이 옆 최 할머니가 먼저 말 댓구를 하신다.
순창이 고향이지만 육이오 전란 이후 초년에 과부가 되어 온갖 풍파를 헤치고
남매를 데리고 일찍암치 서울로 와서 살았다는데도 고향 억양이나 말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것이다.
"할멈은 그래도 아들이 겁나게 효자요....어디메 요새 자슥들이 에미한티 그리 가찹게 군다요"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할머니 자기 병상으로 달려가 시트밑에 깔아놓은
전기요를 들추어 보이면서 큰소리로 손짓 몸짓 흥분한다.
"그려어.....어..어...어...이 쩐기...요..오 도....우리 ...아드을...이이가 사...아다...주어써..."
밤마다 코드를 끼었다 뺐다를 하느라 몇번씩이나 신경을 쓰고
낮에도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려는듯 일부러 쓸고 닦고 하는양이 딴에는 자랑인듯싶다.
그렇기도 한것이 아들은 이삼일에 한번은꼭 들리곤 하는데 음료수 몇병이라도 들고 오고
같이 있는 병실 우리들에게도 한병씩 들려주곤한다.
앞 병상 전 할머니는 교회 식구 빼고는 정작 기다리고 기다리는 아들은 오지를 않는다.
당뇨를 앓고 있는 유 할머니 또한 며느리가 잠깐씩 주 행사처럼 마지못해 들려가고
간병인 아주머니들에게 돈 몇푼 쥐어주고 원하는거 사주시라 부탁은 하는걸 보면
그나마 다행한 일인듯싶었다.
그러나 두 할머니는 나름대로 욕심도 부리고 투정도 하고 해서 간병인 아주머니들을
애태우고 힘들게 하곤해서 옆 착한 최할머니나
젊은 나는 아예 스스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지기도했다.
요실증이 있는 최할머니는 기저귀를 차시곤 했는데 갈아야 할 시간이 넘어도
바쁜 간병인에게 채근하는일이 단 한번도 없어서 오히려 간병인 아주머니들을 미안하게 만든다.
이런 착한 최할머니에게는 남매가 있다는데 그중 아들은 일찌기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고있고 이곳에는 단 하나 혈육이고 살붙이인 나와 동갑네인 딸 하나가 있다.
이 딸도 일주일에 한번 수술한 어머니를 찾아오곤 하는데 살가운 곳은 찾아 볼래야 볼 수가 없다.
그나마 찾아오니 다행이랄가.
옆 최할머니에게 오랜만에 휴대폰이 울린다.
잘 웃으시는 할머니 활짝 웃으시면서 "우리 로버트가 온다요....허...허.....허.." 정겹게 나를 쳐다보신다.
매번 올려 주신 글 의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늦었지만 병원퇴원하심을 함께 기뻐하며 집에서 하시는 치료도
빠른 성과가 나타날 수 있기를 빕니다.
장시간 걷지 못하시는 갑갑함을 갑갑다 않으시고
특유의 섬세하심과 해학으로 모든 이들을 배려하시니
오히려 가끔 소식을 접하는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선배님!
토끼해가 밝았습니다. 토끼처럼 깡총깡총 힘차게 뛰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발목에 다시 불끈 힘이 솟는 빠른 쾌유를 다시 한번 빕니다.
고맙습니다.........김 춘식님...........
선배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러모로 미숙한점이 많지요.
우리 봄날 식구들을 많이 좋아해 주시고
말 건네 주시고..................
올 한해도 사랑 깊은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귀여운 도둑 할머니.......(여섯번째 이야기-3-)
걸걸한 목소리에 터프한 몸놀림으로 "꺾끼 운동은 제대로 하슈"
옆 병상 최할머니의 기다리던 딸의 등장은 모든 병실 식구들의 시선을 한데모은다.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태도나 말솜씨를 갖춘 딸 에게서 오늘은 또 어떤 위로와 상처를
둥시에 받을까 하는 염려로 마음이 써지기 때문이다.
딸을 곧잘 로버트에 비유하는 까닭을 아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안 걸렸다.
보통의 모녀지간이라면 살뜰한 대화가 한 두번쯤은 있게 마련인데
던지듯 내뱉는 말이라고는 추궁하고 야단치는 소리만 하다 가는것이다.
"어찌 밥먹고 꼼짝 안하고 누워만 있는거유.....닭발 졸여 왔으니 아주머니한테 챙겨
달라하고 .........이거 먹어보슈"
오늘은 그래도 닭발을 삶아 뽀얗게 국물을 내서 가져오기도 하고 말랑한 홍시 대여섯개를
냉장고에 들여놓는다.
"일어나슈..........저 보조대 끌고 자꾸 걸어봐야쓰지 않겄쏘 돈은 쳐 들여서
수술 해 가꼬는 누워 있기만 허면 뭘할러...했다요."
"어머니는 제가 보기엔 지금은 좀 무리실것 같은데요...의사 선생님이
때가 되면 하시라고 안하겠어요?"
"그깟 어린 애들이 뭔 안다요....인공관절 수술은 퍼뜩 퍼뜩 움직여야 제대로
된다합디다....경험자들 말 들어보면...병원에 오래있게해서 돈만 들게 하려고
하는거지...에잉..."
한마디 거들다 보기좋게 무안을 당하고 나는 동갑내기라는 최할머니 딸에게 말문을 닫았다.
하늘이 내려 준 인연이라해서 천륜이라고 한다는데
하늘이 내린 이 관계도
이해득실에 매달려 가면서 갈수록 삭막해 져 가는게 피부에 닿는 요즈음이다.
고전에 나오는 심청이 같은 효녀 효자는 어쩌다 특별 프로에나 큰 이슈로 등장하고있다.
나 또한 내 살기 바쁘다고 친정부모님은 뒷전이였으니 딸로서 최할머니의 로버트딸 보다
못하면 못하지 나을건 없지 않았나싶다.
생각해보면 최할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을 보면서 마음이 쓰여짐은
그나마도 하지못한 내 친정어머니의 대한 미안함의 발로이리라.
내 사는 여건때문이라고 또는 가정을 이루고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이름 붙은 날 빼고는 특별히 해 드린게 없는것같다.
지구가 끝날때까지 인간에겐 끝없이 되풀이되는 이 관계의 개선은 없을것같다.
내 부모님에게 한것과 같이 내 자식들이 또 물려받는 길이고
인간의 생노병사는 모두가 겪을 길이기 때문이다.
최 할머니는 로버트딸이 돌아간후 그나마 생기가 돌았던 기운이 쇠해 지셨는지
"저거시 왔다가문 쪼까 고단해 뿌리요........." 허전한 표정이다.
"아직도 하시는 일이 있으신가보아요"
"먹고살기 아직 고달푸요...지 영감도 없어진지 오라고 장사라고 하는디
이제 지도 나이있어 가꼬 고달프기만 하지 돈은 뭘 벌가쏘"
"내 팔자가 사나우니 저것도 에미 팔자 따라서 편치는 않은것 같아서
짠 하요...." 눈시울이 붉어지신다.
맞은편 김 할머니는 최 할머니 딸이 와있는 내내 눈치만 살피다
이때다 싶은지 쪼르르 다가와서
"어....어...우리이...아들이가...더 마니....효오자요...쩌언기 요오도 사왔찌"
"윤여사....이 할망구 연시 하나 꺼내 주시유"
말대꾸 대신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부탁을 하신다.
누구이든 앞으로 아플 생각하고 있다 병원신세를 지게되는건 아니겠지만
나는 건강을 항상 자신한건 아니라고 말은 하면서도.........
아마도 내게 있을 일이라곤 미쳐 몰랐지싶다.
신체에 일부분이 아픈것이
일부분이 아니라 신체에 전부라는것
그러면서 육체가 정신과 또 분리되어 있어 따로일 수가 없다는것
모든 이들이 아는걸 육순 중반이 되어서도
나만 모르다 이제서야 철이 들려고 하는가.............
한달보름여를 병원에서 지내면서
힘들기도 하고 지루할수도 있는 병원생활이
내 인생에 작은 전환점도 될 수 있었음을
못쓰는 글이라도 병상일지를 이런 방식으로라도 써보려합니다.
차일피일 미루다보면 또 포기할수도 있겠기에
어깨와 팔은 좀 아프지만 쉬엄쉬엄 쓰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