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꼭 다시 읽고 싶었던, 바다의 침묵

나는 이 책을 오래토록 찾았다.
정중하며 예의 바르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프랑스를 사랑한 독일 장교.
침묵과 긴장과 아름다움과 안타까움이 그 속에 흐른다.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 단지 그 느낌과 분위기가 먼 안개처럼
단아하며, 기품 있는 그 아가씨가 오래토록 기억에 남아있는 책.
읽은 지 오래되어 책의 제목도 잊어버렸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사는 경선이 조차
우리 함께 읽고 좋아했던, 그 책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충 줄거리를 얘기하자 경선이는, 너는 기억력이 참 좋아, 한 마디.
어느 날,
태워 없애 버린 줄 알았던 나의 오래된 갈색 노트 맨 뒷장에
그 해 읽은 책의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바다의 침묵’...1978년에 읽은 책이었다.
한국 가는 친구 정숙에게 부탁했다.
인터넷으로 찾았다고 메일이 오고, 주문을 했다고 한다.
드디어 손에 넣게 되었다.
그동안 절판이라도 되었는지
작년에 새로 출판 된 책이었다. 다행이도.
그 책을 손에 들고, 나는 정말 감격했다.
30년도 더 전에, 그 책에서 느끼던 그 느낌이 나에게 전해질까, 긴장하기도 하고.
조금 긴 단편인 책을 읽기가 아까워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페이지 한 장 넘기는 것도 아까워서 천천히.
물론 그동안 내가 보는 시각도 견해도 변했다.
전에는 단지 로맨틱한 사랑의 감정을 중심으로 읽었다면
이제는,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분명한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점이
다르긴 했어도, 여전히 그 분위기는 아직도 내게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 소박하게 삼촌과 조카딸이 살고 있는 집에 독일군 장교가
그 집의 이층에 기거하게 된다.
베르너 폰 에브레낙....그 장교의 이름이다.
장교는 아침과 저녁 지나가며 인사를 한다.
저녁마다 거실에 와서 얘기를 한다. 자기가 얼마나 프랑스를 사랑하는지,
수많은 문학가를 배출한 프랑스가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
자신은 음악가라고 했다. 작곡을 하는.
그러나 침묵만이 흐른다. 아침 안개처럼 더 짙어지는 침묵.
삼촌은 파이프 담배를 태우고
조카딸은 점점 더 뜨개질에만 몰두한다.
침묵이 압박처럼 존재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자는 베르너 한 사람이다.
시간이 갈수록 침묵으로 일관하는 삼촌과 조카 에게,
장교의 존재는 은연중에 그들의 삶에 하나의 존재로 자리 잡아간다.
사복 차림의 장교.
두꺼운 회색 플란넬 바지와 베이지 색 스웨터 그 위에 걸친 강청색 트위트
아무렇게나 걸친 듯 했지만, 우아함이 베어나는 장교.
그가 가슴에 담고 있는 주제들은 그의 나라의 음악과 프랑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의 독백이 이어졌지만
삼촌과 조카로 부터는 대답이나 동의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침묵 하는 그들에게서 프랑스의 자존심을 발견해 오히려 행복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신은 그 침묵을 극복해야 한다고.
장교는 평화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결혼 관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정복자로 서가 아닌 사랑의 관계여야 한다고,
독일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 장교는 두 주 동안 휴가로 파리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독일군들, 형제처럼 친했던 이상주의자 친구까지,
프랑스는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 특히 그 정신, 영혼을 파괴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힘으로 정복은 할 수 있지만, 지배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파괴해야 한다고
그게 그들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그가 돌아왔다.
그가 돌아 온 것은 보지 못했어도, 그가 돌아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 장교로 인해 삼촌과 조카는 긴장한다.
그의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릴 때 조카는 뜨개질에 더욱 열중한다.
어느 날 저녁 장교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문을 노크했다.
문을 노크 한 후 바로 들어왔는데, 그 날은 고집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두 번의 노크 소리.
‘들어오시오. 선생’...적군의 장교를 신사로 초대한 것인가.
삼촌은 자기의 대답에 갈등이 일어났으나, 나도 모르겠다. 아무려면 어떠랴.
사복을 상상했는데, 장교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군복 차림은, 어떤 결의 결단을 담고 있는 것인가.
중요한 말씀을 드리겠다고, 지난 여섯 달 동안 자기가 한 말,
이 방의 벽들이 들은 그 말을 모두 잊어셔야만 한다고 한다.
조카딸이 처음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백한 눈으로 장교를 바라보았다.
조롱을 당한, 절망한 장교는 야전군으로 발령을 내 달라고 했다한다.
내일 떠난다고.

책의 마지막 장을 인용 해 본다.
[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
그는 나가지 않고 조카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안녕히]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팽팽하게 굳어 있는 그 얼굴의 눈은 조카딸의 눈(활짝 열려 있는, 너무나 창백한)에 매달린 채,
더욱 팽팽하게 긴장되고 굳어졌다.
시간은 그렇게 멈추어 있었다. 마침내 조카딸이 입술을 움직일 때까지.
베르너의 눈이 빛을 발했다.
나는 들었다.
[안녕히]
그 말을 듣기 위해서는 그 말이 나오기만을 숨죽여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마침내 그 말을 들었다. 폰 에브레낙 역시.
그는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의 얼굴과 온몸이 뜨거운 목욕을 즐기고 난 것처럼
부드럽게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웃었다. 그리하여 내가 간직하게 될 그의 마지막 이미지는
미소를 머금은 것이 되었다. 문이 닫혔다.
그의 발소리가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 내가 우유를 마시러 내려갔을 때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조카딸은 여느 날처럼 식사를 준비했다. 그 아이가 우유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우유를 마셨다.
바깥에는 뿌연 안개 너머로 창백한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날씨가 많이 찬 것 같았다.
(1941년 10월)

*책을 한국에서 구입 해 온 친구 정숙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수인! `모정`의 주인공 이름과 같은 수인아~
내가 좋아할만한 곡이 여럿 들어있다는 바람에 인터넷 원격조정을 받아서 드디어 음악 듣고 있다.
음악은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기도 했었잖어 ㅎㅎ
오늘 천재와 凡人은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교수의 강의 중 한 수강생 할머니가 종이 한장 차이지요 하며 벅벅 우기는데
선생님도 열 받으시고 ...아마 그녀는 모든 차이는 종이 한장이라고 생각할거야. 왜냐면 종이 한장이라는 차이를 나타내는 비유법이
그녀의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버렸으니까.
사람 사는 거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만 실은 거기서 거기의 영역은 잔머리지수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야 올곧게, 성실하게,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맥빠지지 않을 것이야.
사는 質에 차이는 엄청난 것 아니겠어.`거기서 거기`도 `종이 한장`과 같이 무의식적으로 고정관념이 된 표현법이라 믿는다.
같이 강의를 듣는 한분이 어떤이를 가리키며 이런 강의 안듣게 생겼다고 말해 한참 웃었다.
적나라한 말 펀치는 항상 웃기게 만들지.우리만큼 살고보면 외양에 많이 뭔가가 묻어있는 모양이더라.
강의 중 선생이 나한테 세월이 빠르다고 느끼세요 느닷없는 질문, 내 답은 미소.
`왜 사냐건 웃지요`란 싯귀가 떠오르더라.
아! 세월
어제 내방 작은 책장에 꽂혀있는 책 `금난새와 함께하는 클래식 여행` 읽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빌린 책은 분명한데 그 누가 누군지 도무지 생각이 안나는 거야.
이러저러한 기억력 상실의 징조,세월만 탓하면 되겠니?
경선아~
니 글을 읽으며, 많은 시간 함께 한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암만 생각해도.....세월은 많이 흘렀지.
때론 이것이 눈물겹기도 하구.....
사람 사는 모습....일상은 거기서 거기 같지만
안으로 들여다 보면, 참 천지 차이지...싶다.
특히 사고의 차이는.....
얼마 전에 걸으려고 갔는데, 산에서 내려 올 때 쯤 생각하니 핸 폰이 없어서
자동차에 둔 가방에 있겠지....했는데, 없는거야.
집에 다 오도록 걱정 했는데, 집에 오니까 아들이 내가 전화기를 두고 갔다고 하더라.
전화기가 어디에 있었냐 하면, 세탁실에 있었어.
그곳에 둔 운동화를 신으려다가, 전화기를 그곳에 두었던 거지.
어떤 사람은 냉장고에 전화기를 두고, 종일 찾았다고 하더니.....
이게, 자연스런 현상 아니겠니? 너무 염려말자.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ㅎㅎㅎ
그래도 잃어버리는 물건 중에 핸드폰이 제일 칮기 쉬워.
전화해보면 어딘가에서 소리가 나니까!
두고 오는 사람도 많지만 초창기에 나온 핸드폰은 꽤 길고 컸쟎아?
우리 성가대에는 가끔 테레비 리모콘을 들고 오는 형님들이 계셨단다.
게다가 핸드폰이 비쌀 때라 젊은이들이 가지기 힘들다 보니 조작법을 몰라도 물어볼 곳이 없는거야.
어느 분이 예배 시간에 자기 핸드폰이 울리니까 당황해서 그냥 문 밖에 던져버렸대.
난 못 봤는데 내가 반주 하기 전에 실제 일어난 일이래네.
우리 교회가 예전 건물은 성가대석 바로 옆에 출입구가 있었거든.
기억력 감퇴가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불편함 중 하나더라.
수인아!
잔잔한 음악에 배경처럼 깔려있는 글의내용..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심오한 음악과
침묵이 이어지는듯 하면서도 한없는 평화로움을 안겨주는 그림이
너무도 조화로와서 잠자기 전에 몇번 더보고 듣고있어.
좋은 밤 이루게해주어 고맙다.
"바다의 침묵"
제목은 전혀 생각 안나지만 나도 읽은 책이야.
줄거리보니 그대로 떠오르네.
눈이 피로하다는, 잔 글씨가 안보인다는 핑게 속에 예전에 읽은책만을 기억 속에서 곶감 빼먹듯하는 요즈음!
이렇게 선명하게 다시 생각이 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수인아 경선아!
너희들 곁에 있다는 게 축복이다.
이른 새벽
오늘 하루가 행복할 듯한 예감에 모처럼 포근해지는구나
수인이 잘 지내는구나.
이런 글을 보면 눈물겨워...
모두들 이해타산의 주판알을 굴리고 있는 세태에 홀로 문학적인(혹은 예술적인) 이미지를 따라 감동을 배고 싶어하는
너의 순수가.
그림도 좋고 근데 음악은 안들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