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3일(토요일) 오후 6시

인천 하버파크호텔 3층 IRIS홀에서 인일 7기 40주년 기념 모임이 있었습니다.

인일여고를 졸업한지 벌써 40년

몸은 중년여인이지만

19살 소녀의 얼굴을 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11월 초겨울 차가운 날씨가 오늘따라 포근함은 하늘도 우리의 설레임을 알아서일까요?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누군가가 큰소리로 "산학아"라고 부릅니다.

돌아다 보니 상숙이 입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보자 왠지 울컥해 반갑다는 말대신 " 너 왜 염색도 안 했니"라는 말이 먼저 튀어 나왔습니다.

마치 어제도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멀리   노르웨이에서 직항이 없어 헬싱키를 경유해 일본에서 일을 보고 잠깐 정희를 만나고 이곳까지 달려온 상숙이는

염색이 좋지를 않아서 그냥 흰머리 그대로 산다고요.

나는 오늘을 위해 어제 염색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인 노르웨이에서 온 상숙이는 자연 그대로인 아름다운 노르웨이를 닮아가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서둘러 연회장을 들어서니

남완우와 윤승숙이 나란히 앉아 오늘의 접수 일을 도우고 있습니다.

벌써들 와서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친구들이 여기저기에서 반갑다고 인사를 건넵니다.

 

일본에서 어제 도착한 정희도 보입니다.

여고시절 미술대회에만 나가면 상을 휩쓸던 정희는 38KG의 가녀린 몸매로 화판을 질질 끌고 다니더만

이제는 일본에서 성공한 한국화가로

이번 G20 세계대회에 맞추어 초청된 20인의 화가로 11월 15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 개막식에 참석할 겸 왔다고요.

미술계에 우뚝 선 정희가 유난히 자랑스럽습니다.

 

회장님의 인사가 길어지자

이제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 하는, 나이를 못 속이는 우리는 먹고 하자며 아우성인데

순애는 빵을 들고 다니며 먹으며 이곳저곳을 바지런히 뛰어다닙니다.

학창 시절엔 나같은 사람은 감히 순애 곁에 가지도 못 했지요.

늘 일등이고 얼굴도 예쁘고 선생님들의 자랑이었던 순애는 나에게는 먼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같이 어울리니 세월이 좋긴 좋은 모양입니다.

 

이런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찍는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회장 정갑순은 얼굴은 딱 영부인인데 하는 양은 철부지 소녀만 같습니다

흥에 겨워 춤을 추며 캠코더를 찍고 다니니

카메라에 무식한 나는 화면이 흔들리지 않으려나 걱정이 앞섰지요.

그러나누구보다도 걱정이 앞선 것은 최재화 때문이었습니다.

혼자는 다니지 못 하는 아내를 위해 함께 온 서방님을 답동성당에서 기다리게 해 놓고

혼자만 좋아라 사진을 찍어대니

과연 누가 이런 복을 타고 났을까요?

장선수는 차분하게 생긴 그대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셔터를 눌러댑니다.

 

만찬은

인천에서 소문난대로 훌륭했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시장한 김에 후딱 먹어 치우고

자칭 "언니"라 불러달라던 사회자의 재담으로 여흥의 시작입니다.

어느새 우리의 분위기를 파악한 사회자

"선구자"같은 무거운 음악은 자제해 주십시오 부탁했건만

처음부터 "동요" 라든가 "만남"을 부르니

재치있게 옆에서 조그만 눈을 깜빡이며 두 손 모으고 기도를 하던 장면은 지금도 미소를 짓게 합니다.

 

그 와중에 황춘자의 익살은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입에 꽃 한송이 물고, 도도하게 거만한 표정을 짓던 그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춘자"라는 이름이 유난히 어울렸던 오늘

숙대 약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 황춘자가 맞나요?

오늘 또 한명의 스타는 뭐니뭐니 해도 김영수 이었습니다.

내 기억속에 영수는 언제나 사려깊은 눈을 가진 매사가 조신한 모범생이었지요.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찰랑찰랑"이란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벌떡 일어나 환호의 박수를 쳤습니다.

영수를 보니 몇년 전의 일이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남편을 따라 제고총동문회 주최 망년회가  힐튼호텔에서 열렸습니다.

1000명쯤 참석을 했는데 갑자기 인일 2기 선배님이 화장실로 우리 인일 출신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곤 훈시를 했습니다.

"인일 출신들은 공부만 했지 놀 줄은 모른다" 이런 소리 들으면 안되니 알아서들 해라 하는 바람에

더우기 그 선배님이 먼저 "열아홉 순정"을 멋드러지게 부르는 바람에

모두 신나게 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이 놀 줄도 안다"

영수는 오늘 그 모범사례를 훌륭히 증명했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후딱 지나갑니다 

인수는 막내딸의 호출을 받고는 서둘러 일어섭니다.

수능을 몇일 앞둔 늦둥이 덕분에 아직도 고3엄마를 벗어나지 못 한 젊은 엄마인 인수는 

막내 뒷바라지에 오지 못 할 사정임에도 친구들이 보고파서 달려왔는데 결국은 일찍 자리를 떴습니다.

내 친구 옥화는

오늘이 집안모임인데도 불구하고

물가에 내 놓은 아이같은 내가 걱정이 돼

남편의 지청구를 들으면서까지 달려 왔지요.

10시,

즐거웠던 예정된 시간도 끝나고

서로를 포옹하며 건강하게 다시 만나기를 기약합니다.

먼 훗날 50주년이 되면 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마주할까요?  

 

돌아오는 길

천지에 가을 바람만 가득합니다.

낙엽 바스라지는 소리에 눈시울이 붉어지며 가을이 깊어갑니다.

가을은 낙엽을 떨굼으로써 채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텅 비워두자며 내게 속삭입니다.

돌이켜보면

가을은 우리 나이 60살과 너무 흡사한 진한 갈색의 중년여인 입니다.

벌써 여고를 졸업한지 40여년...

문득 시간너머의 시간

공간너머의 공간을 넘어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새벽안개처럼 몰려옵니다.

 

돌아와도 돌아와도 고향에 닿지않는 아득함처럼

잡히지 않는 행복이란 이름에 집착했던 것은 왜 였을까요?

쥐어도 쥐어도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세월의 흐름에 그 날들을 이어온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무의미합니다.

운명을 진즉에 알았다면 

피해 갈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다면

꿈많은 여고시절 순수했던 그때로  너무 늦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40여년이 무심히 흘렀어도

오늘 하루 순수했던 시절로 살짝 돌아가

열아홉살 꿈많은 소녀로 다시 만났던 오늘....

 

영원히 잊지 못 할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