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나 요즘 매일 매일 그렁그렁 눈물 달고 살고있는데
정말 나답지 않다.
산전 수전 공중전 지하전 핵전까지 치루며 살아왔다고
고생이 무슨 생활의 훈장인양 소리쳐 왔는데
내가 앞으로 맞이할 죽음앞에서도 친구 맞듯이 초연해질것이라며 나에게 최면 걸고 살아왔는데
내 엄마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는 내맘을 어찌해야 될지 통제 불능이다.
누나 생각 엄마생각
추워지는 날에 걱정하며 앞선 생각과 행동개시하는 동생들과
나는 분연이 맞서서 홀로이 임전태세로 나가며
타협없는 강공으로 엄마 지키기작전에 돌입하여
좌충우돌 칼자루 휘두루며 대적하다
홀로이 승부없는 전투가 휴전으로 돌입하면
그냥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길 없어
울고 또 울고 운다.
요즘 나의 거처는 엄마네 집이다.
워낙 연로하셔서 기력이 쇄하시니 그 강인한 의지와 정신력도 이미 끈을 놓으신지 꽤 된다.
"얘야!~~~ 네가 열흘만 나와 같이 있어주면 나 아픈것 다 낳을텐데....."
"엄마~~~ 나 쭉 있을테니 걱정하지마!"
일주일 중 주말 뺀 날들
사랑방 퇴근시간이 일정치는 않지만
밤시간 부터 오전 11시 도우미 아줌마 올시간까진 꼭 엄마 옆에서 시중 들어 주고
친구 해 주는것이 나의 일과이다.
아가처럼 간식 챙겨주고 떠 먹여드리며
조반 봉양 정성것 죽쑤어서 올리고
하루 하루 몸상태가 좋아지는 엄마를 볼때 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데.....
누나 고생한다며 그리고 추워지는날 엄마 폐렴 걸릴까 걱정된다며
동생들이 의견모은건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 드리는 일이라고하는데
처음엔 멋모르고 동생들 의견이 과연 타당 한것인지
일차로 요양원 시설을 알아 보러 갔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나
이틀동안 생각에 생각을 한것은
엄마를 집에 편히 계시도록 최선을 다 하는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란 결론을 나름대로 내고
엄마를 슬프게 하지말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엄마 ~` 카토릭에서 경영하는 요양원이 생각만큼 좋지 않아
날마다 엄마 볼 수있는것두 아니구
엄마가 원하는 매일 미사 있는 것두 아니구 한달에 두번 미사 있다하구
한방에 노인어른들 셋이 공동으로 쓰고 냉장고도 테레비도 없어요 "
"나두 가구 싶은 맘은 없다.
집이 편해
집에서 만나고 싶은사람 만나고
몸추수리고 봄엔 외출두해서 아픈 상숙이 엄마랑 혜숙이 엄마 문병두가구......"
오늘낮 주말 당번인 동생이 찾아와
또 나를 설득한다.
다수결에 의해서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겠다구......
요양원에 가면 엄마가 외롭지 않을거라며
겨울을 잘 날수 있을거라며
일단 요양원에 들어가 2주쯤 지난 후 엄마가 싫다하면 도로 집으로 모셔 오자며...
난 엄마를 자식들이 늙어 기운없이 귀챦은 존재가 되어 팽한다는 기분을 들게 하는것은
엄마를 간접 살인 하는것이란 생각이들어
타협없이 결사 반대하니 동생은 골질하며
휑하니 차몰고 가버리고
난 또 가엾은 엄마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난 내가 흘리는 눈물이 결코 헛됨이 없게 할것이다.
절대루 내 엄마는 내가 지킬것이다.
오매 불망 자식 위해 살아 온 엄마의 일생이
나하나 만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이밤 두 주먹 불근 쥐어 본다.
그 누구도 내엄마를 내엄마집에서 빼 내가지 못하게 할것임을.....
엄마~~~
부디 챙겨주는것 잘 잡숫고 건강 찾으세요!
나 자꾸 울리지 말고....
엄마 사랑해요!!~~~~
미선아!
아직도 울고 있을텐데 이제 눈물 거두고
정신 차리고 힘내기 바란다.
엄마 정신이 총총한 한 요양원에
모시는 건 정말 생각할 문제야.
네가 힘들어도 지금껏 하고 있는대로
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라 본다.
할 수 있는 날까지 도
!
미서나!
수고 많이 한다.
맘도 불편했을텐데 경주여행도 책임감과 성의로 다녀 오고...
많이 고마웠어
가을이라 사무실에 일이 좀 많아서 글도 잘 못 썼어
특히 39살 먹은 남자 닥터를 올해 안에 꼭 장가를 보낼려고
신경 쓰느라 더욱 바쁘고
고냉지 배추 6개를 아는 분이 보내줘서
또 바쁘긴 했네.
내가 일을 빨리 못하고 꼼꼼히 해야 만 하는 습관 (김치는 나에겐 아주 중요한 반 양식)
종심이가 구운 케익에 김치하고 먹고 싶다고 했다가 구박 받은 일 알지...커피하고 먹지 하고
종심이 화는 안났지...난 재미있다 하는 의도 였으니까
우리 가장이 난 당신 먹는 것에 수저 하나만 놓으면 된다나
속으로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뜻이겠지만.
금욜 낮에는 양화진(외국 선교사님들의 묘원)
그곳에 우리 구역 식구들과 같이 다녀오고(마포옆 합정역에 있음)
그 중 가장 나이 많으신 분께서
난 아침 일찍 나올려니 바빠서 남편하고 둘이 아침 식사 떡뽁이 먹고 왔다 하시길래
바깥 집사님이 싫어하시잖아요 하니
이 나이에 아무거나 해 주면 고맙게 먹어야지 따질 수 있나
이젠 먹는 것은 일절 잔소리는 못해
그럼 다른 것은 하시나요?
다른 것도 못하지...친한 친구 한분이 마나님 병간호로 (치매) 어디고 바같출입을 함께 하시는데..고생 많으시지.
난 늘 건강 그만한 것에 영감님이 고맙게 생각하셔
하시더라고....
미서나
숙자야
자기네 들은 정말 효녀 효부다.
이 글을 읽으며 다 우리들의 이야기 아닌가?
미서나 그래도 힘내!!!
미선언니 지금 처하신 형편이 다 우리들 처지지요.
사실 숙자 언니 말씀대로 이건 정답이 있는게 아니쟎아요?
저도 아버지 겪어봤는데 저처럼 도움이 안되는 사람은 일단 곁에서 힘든 사람들 입장을 먼저 챙겨주게 되더라구요.
사실 집에서 모시고 싶지 않은 자식은 없어요.
단지 그로 인해서 모든 생활이 엉망이 되니까 장기적으로 힘이 든다는 거지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강하게 병원행을 주장해줘야 그나마 본인들이 마음을 좀 편하게 결정할 수가 있더라구요.
곁에 있는 자식만큼 효자는 없고요.
또 그사람들만큼 환자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도 없어요.
그걸 잠깐씩 보고 가는 다른 형제들이 조금이라도 불평을 말하는 건 전 사실 용서가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남동생보고도 항상 니네가 대신 할 자신 없으면 절대로 형이나 형수에게 불평하면 안된다고 그래왔지요.
저희집 경우는 엄마가 생존해 계셔서 좀 사정이 달랐지만 앞으로 닥칠 엄마의 일이기도 하거든요.
미선언니 동생들도 아마 언니가 스스로는 결정 못하실테니까 언제라도 편하게 하시라고 더 강하게 밀어부치는 지도 몰라요.
물론 아들들이 자기의 심적 부담을 덜고자 하는 얄미운 점도 포함이야 됬겠지만요.
이런 상황이 여러번 반복되야 결정할 수가 있더라구요.
이제 시작이에요.
한번씩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그럼 심각하게 요양병원 알아보러 다니고
가서는 실망해서 도저히 안되겠다고 그냥 돌아오고~~~~~~~~~~~~~~~~~~~~~~~~~~~
저희도 엄마 잠시 입원해 계신 동안 종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잃어버려서
지옥문을 들락날락 한 후에야
행방불명보다는 그래도 병원이 낫겠다고 겨우 결정한 일인데
엄마는 지금도 한번씩 후회하시고 계신다니까요.
그럴 때마다 맏 딸인 제가 잘한 일이라고 무조건 우겨대지요.
제 역할이 감상에 젖을 수 없쟎아요?
악역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요.
누구나 자기 감정에만 충실할 수는 없다는 걸 우린 다 아는 나이니까요.
그러지않아도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가 많은데 곁에서
그런 허전함에 불이나 지르는 건 참 무책임한 거라고 전 생각해요.
사실 아버지 병원에 모실 당시는 아버지보다도 엄마와 오빠가 먼저 쓰러질까 아슬아슬 했다니까요.
언니 힘내세요.
그리고 동생들 결정이 불효라고만 너무 몰아부치시지도 말고요.
그게 언니에 대한 사랑이라고도 여기세요.
세상일이란 게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고 다 그대로 되는 건 아니더라구요.
어머님 일도 그냥 하늘에 맡기시고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해 보세요.
어머님의 여생이 물론 최 우선이긴 하지만
언니의 건강과 또 언니가족들의 행복도 소홀 할 수는 없쟎아요?
미선언니는 정말 정말 효녀세요.
저도 반성 중입니다.
미선아, 강결단을 한 경주여행을 끝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구나,
무어라 할말이 없구나,,,
또한 숙자, 명옥후배, 종심이,,방장, 다 적절한 말을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어느것도 정답일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냥 나의 야그를 들려주고 싶구나,,
우리는 이미 다른 시대에 사는구나,,
어느날 이곳 교회의 노장로 한분이 돌아가셨단다,
그 댁에서 모여서 예배를 보는데,,,
그 혼자되신 노부인이 방바닥에 앉아계시다가 일어나려하시길래
도와드리려고 가서 그분 겨드랑 밑으로 손을 넣어 깍지를 끼어 일으켜드리려 하였더니,
글쎼,,,꼼작할수도 없이 천근만근인거야,,,도저히 한치도 움직이지를 않는거야,,
나는 그떄 무척 충격적이였고,,,,,,,,,,그러면서 두고 두고 나의 그날을 생각해 보았단다,,
아아,,,나의 그때가 올때 나는 워찌해야하나???
아아,,,내가 결코 그 일을 자식한테 맡길수 없다는 나의 답이 나왔단다,,
내가 평소에 그런 마음을 연습하고 결심하여 떄가 오면 나는 그곳으로 보내지도록 하리라,
그것이, 그일이, 절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자식에게만 맡겨질일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속하는 일이구나,,,라고,
내가 그것을 스스로 경험 안 해 보았으면 나도 이런 마음을 먹을수 없었으리라,,
우리는 평소에 만이만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연습과 결단을 해야만 한단다,
속절없이 보낼수 밖에 없을떄,,,,불가항력의 그 길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가볍게 보내주는 연습도,,,,,,,,,,,,,,
예전에는 오복에 죽는 복도 들어있어,,
내 집, 내 침상에서 자녀들에 둘러싸여 임종받는것을 최상의 복된 죽음이라 생각했으나,
지금으로서는 그럴수 있는 병이면 벌써 오랜 병상에서 육신을 못쓰고 기저귀차고 남의 짐덩어리리라,,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뒤바뀌어 객사도 뭐도 읎시,,,
이왕 한번 가는것,,,그저 썡썡 내 두발로 디디며 살다가 굿바이란 말도 없이 자는듯,,,,,,,,,
또는 칵! 하고 쓸어져 가버리는것,,,
그 옛날에는 객사니 급살이니 하고 아주 벌받은듯한 죽음이였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이 제일 축복받은 죽음이렸다,,
예전에는 우리 관념으로 도저히 받아드릴수 없었던 화장이 지금은 아주 보편화되고,
장기기증도 아주 편하게 받아들여 너도나도 하고들 있잔니???
이제 우리도 양로원에 대한 개념을 좀 더 편하게 삶의 한 일부분으로 받아드려지기를 바라지,
그러나 테레비도 없는 이유를 왜 그런지 모르겠구나,,,아마 카도릭계통이기 떄문에???
침상에서 장기간 자식들에게 폐끼치지 않고 갈수만 있다면,,,,
누구도 어쩔수 없는길,,,동생들의 의견도 그렇게 야속한것만은 아니리라,,
그런들 어머니의 감성이 아직도 너무 자식을 주위에서 안보면 안될듯이 간절하시니,
막상 어떤 결론을 내리기야 어디 쉽지 않으리라,,,
너무 네 가슴 절이지말고,,,좀 더 마음을 가다듬기를 바란다,
나는 그 유명한 영화 'Forrest Gump'에서 군대에서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허급지급 돌아온 좀 어눌한,,,덜 떨어진듯한 아들,,,당황하여 무슨말조차도 잃고 멍한 아들에게
병상에 누운 엄마가 미소지으며 하는말씀,,,,,"Son, it's my time! It's just my time!"
???미선아!!!!
여행중에 밝은 모습만 봤는데 속으론 울고 있었구나.
고생이 무슨 훈장인양 소리쳐 왔다는 대목에서는
의연함 마저 느껴 지는구나.
사는것이 다 苦인데, 또 몇 백년 사는 것도 아닌 인생인데
우리에게는 항상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 같다.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이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네 글을 읽다가 보면 5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 엄마 생각이 간절해지곤 한다.
누구나 다 세상 하직 할 때는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같다.
오늘 외출에서 돌아 오다가, 남편이 무심히 요양원의 폐해에
대해서 TV에서 보았다고 말하드라.
좋은 곳도 있지만, 문제가 많은 요양원 들도 많다고....
그 말속에선 자신의 병든 후의 미래가 겁나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을 이심 전심으로 느꼈어.
난 속으로 중얼댔지.
'당신이 뭔 걱정야? 내가 있는데. 남자가 먼저 가고 난 뒤에 내가 걱정이지.'
우리가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 요양원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고
내일 같이 마음에 와닿는 나이가 되었어.
지금 미선이는 마지막 효도하는 세대에 살고 있는거야.
우리들은 다같이 요양원 가야할 세대가 아닐까?
미선아!!!!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서 엄마를 보살피는 것이 정답인거 같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병치레도 끝 날때가 돌아 오드라구...
위로는 못해주고, 너에게 참고 잘하라는 소리만 해서 미안하다.
미선언니...
언니의 지금 마음과 형편을 우린 마음으로 위로할 수 있지만
언니는 얼마나 가슴 절절히 안타까우실지...
언니한테 힘도 못되드리고 마음만 전해여...
언니의 효는 훗날 언니에게 축복이 되어 돌아올거예여...
언니...
힘내시고 마음 잘 추스리세여...
사랑해여~~~
미선언니~무슨 말로 언닐 위로할 수 있겠어요?????
참 많이 힘드시죠?
언니 조금만 참으셔요.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꺼예요.
언니~힘내세요.
선배님
동병상린 이라고 선배님의 아픔이 전해져서 한말씀 올리렵니다.
한국의 양로원은 안 가 보아서 형편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희 아버지때문에 양로원이라는 델 처음 가 보았지요.
제가 생각했던 그런 곳이 아니더군요.
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런데로 오손도손 잘 지내실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곳에 계시다가 집으로 모셔 온다는 건 거의 비현실적인 것 같더군요.
침대에서 떨어진다고 내려오지도 못하게 하고 휠체어에 앉아 계실때도 묵어 놓았었어요.
그렇잖아도 혀약하신 분이 침대에서 기저귀 차는 신세로 계셨지요.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고,식구들이 같이 있을 수 있지도 않고요.
제 경험으론 거동이 가능하시고 정신이 온전하시면,집에 계시는 게 옳을 듯 해요.
곁에서 돌보는 식구들이 힘은 들지만
어머니는 집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실 거예요.
이건 그냥 제 형편을 얘기 드린 거고 어머니 상태를 잘 모르는 삼자의 얘기예요.
선배님의 형편과 어머니의 상황에 마추어서 어떤 결정을 하시던,
마음 아파하시는 선배님이 최선의 결정을 하실 땐 어머니도 충분히 이해를 하실 줄 믿어요.
추워지는 날씨에 모쪼록 건강 하세요.
댓글과 전화로 쪽지로 제게 용기와 사랑주신
선배님 후배님 그리고 친구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웃음달고 즐거움만 있을것 같은 제 일상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사건들로 정신 차리기 힘들었던 올 한해도
마지막 달력 두장을 남긴채 겨울 채빌 하라고 손짓하네요.
입에 독기 품으며 쌍칼장군 노릇하느라 눈물도 말라버렸습니다.
일대 삼으로 싸운 전쟁은 일단 일차전에선 제가 승리 하였습니다.
화요일 엄마를 요양원 보내겠다는 동생들의 계획은 무너지고
잠정 유보된 엄마의 요양원행은 아직 불씨가 다 꺼진건 아닌 상태입니다.
이럴땐 엄마의 진실된 결단을 동생들에게 말해주면
동생들과 저와의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는데
몸과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동생들에게 단호하게 당신의 생각을 말 못합니다.
천상 제가 방패막이 노릇과 상칼장군 노릇은 계속해야되나 봅니다.
하지만 엄마의 요양원행은 엄마의 급격한 건강이상이 오기전에는 불가능 할것입니다.
제가 옹고집 불통으로 동생들 말을 묵살하고 엄마 지키기를 사수 할것입니다.
다행히 엄마의 건강이 호전되어
일요일엔 연안부두로 장보시기
월요일엔 동네 노인친구분집 마실
화요일엔 경로당 나들이까지 다녀 오셨습니다.
오늘은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큰아들과 단잠을 주무시고 계십니다.
저는 덕분에 모처럼 집에와 컴에 소식 전할수 있게 되었구요.
노인문제는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요양소 보내지는 노인네는 현대판 고려장이란 생각이 듭니다.
노인 본인 스스로가 택해 가게 되면 문제는 달라지지요.
우리도 20년후면 닥치게될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노후 대비를 심각히 생각해야 될때가 왔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허물어지는 건강에 과연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될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세대완 사뭇다른 환경에서 커왔기에 부모에 대한 책임감을 기대하긴 어려울것 같습니다.
우리 또한 자녀에 대한 기대를 원하면 시행착오이겠지요.
정답없는 노후를 현명하게 보낼 연구를 하십시다.
가는 세월은 붙잡지 못하고
나이드니 당긴 화살 처럼 달리는 세월은 너무 빠르게 지나갑니다.
길지 않게 남은 세월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로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순영언니
그리고 명옥 인애 광숙 경수아우님들
늘 든든한 울3기 친구들과 양국님
관심과 사랑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게 많은 위로와 힘을 실어 주셨어요.
모두 모두에게 제 사랑을 보내드립니다.
엄마 건강이 호전되어 밖으로
거동하시게 된 건 네 수고의 결과야.
엄마 좋아 하시는 음식만 챙겨 드리며
입에 떠 드리기까지 한 네 정성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에 박수 보낸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란 말 맞는구나.
굳세어라, 미선아 !
미 선 아
따 뜻 한 가 슴 과 손 을 가 진 네 가 이 세 상 의 아 름 다 움 이 구 나 . 어 머 님 옆 에 꼭 지 켜 드 려 야 되
지 금 계 시 는 집 보 다 더 편 안 한 요 양 소 는 이 세 상 에 없 어. 너 희 들 같 이 사 랑 으 로 돌 볼 수 없 으 니 까.
어머~~~~!!!
춘선이!
얼굴 예쁘고 늘씬하고 무용 잘하던 춘선이 아니냐?
미국 산단 소식 들었는데 이리 홈피에서 직접 글로 만나니 반갑구나.
혹시 고국에 나와 인천 쪽으로 오면 연락 하려므나.
우리 사랑방엔 늘 친구들을 불러 모을수 있단다.
춘선이 말대루 엄마곁을 지키려고한단다.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니/
워낙 연로하시거든...
댓글 고맙다.
언 제 나 수 고 많 은 선 민, 미 선, 그 리 고 늘 그 리 운 인 일 동 문 들
이 번 수 학 여 행 참 석 못 해 서 속 상 하 고 그보 다 미 안 해 . 속 히 소 식 을 못 보 내 서 결 례 를 했구나. 용 서 를 빌 어.
대 학 원 졸 업 하 고 미 국 립 연 구 소 에 혼 자 배 치 받 은 (아 주 외 지 란 다) 딸 아 이 를 찿 아 가 주 어 야 했 어 .
대 학 원 갈 때 는 이 넓 은 미 대 륙 을 혼 자 서 운 전 해 서 횡 단 한 딸 인 데 이 번 엔 그 때 와 어 쩐 지 달 랐 어. 아 들 때 엔 이 렇 게 염 려 한 것 기 억 에 없 는 데 . 가 보 았 더 니 미 국 땅 을 40년 가 까 이 누 비 고 다 닌 나 에 게 도 새 로 운 땅 이 였 어. 사 진 많 이 찍 어 왔 어.
28 살 이 나 되 었 으 니 이 젠 학 교 공 부 그 만 하 고 착 한 짝 을 만 나 서 가 정 을 이 루 었 으 면 하 고 기 도 한 단 다 .
모 정 이 더 강 해 서 인 가 가 고 파 하 던 수 학여 행 도 빠 지 고 말 이 야.
내 한 글 타 자 실 력 이 조 금 씩 향 상 되 고 있 으 니 또 연 락 할 께.
자녀들중 특히 맏딸 따라갈 자녀는 없다는 생각이지.
우리집도 큰시누님이 제일 어머님 걱정을 많이 하시고 계시단다.
미선이는 정말 효녀다 효녀야. 헌데 몸살나지 않게 미선이도 몸조리
잘하기 바라고 어머님 마음편하게 해드리기를 바라네.
미선이 말도 이해가 되고 헌데 동생들 의견도 이해가 되는듯 하네.
시설은 불편할지 몰라도 아마도 외롭지는 않으실꺼야. 그러니
아마도 한달간 계셔보면 적응이 되실지 모르지. 가장 좋은것은
집에서 같이 사는것이지만 다 집마다 형편되로 모셔야겠지.
미선아, 화이팅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