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회 - 아이러브스쿨 게시판담당 : 김영자
" 형, 이거 가질래?"
형이 갖겠다고 하면 형에게 주어서 좋고, 안 갖겠다고 하면 자기가 가져서 좋고....
동생들이 선택권을 형에게 먼저 주고 형의 결정에 따르던 질문으로 우리 아이들에게서 자주 듣던 말이다.
다른 이들에겐 그냥 한 질문에 불과하지만 나에겐 참 특별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는 말이다.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큰 애는 낳자마자 어머니 손에서 컸고 어머니 품에서 자랐다.
16개월 차이 밖에 안 나는 둘째는 내 손에서 크고 내 품에서 자랐다.
아이들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었어도 혼자 계신 어머니품에서 큰 애를 데려 올 수가 없어서 큰 애는 여전히 어머니 품에 있었다.
둘째 아들은 걸음을 떼면서 부터 형만 좇아 다녔다. 형이 가는데는 어디나 좇아갔고 형이 노는 데는 언제나 끼고 싶어했다.
큰 애는 이런 동생을 떼어놓고 마음껏 놀고 싶어 했지만 귀찮아 하지 않고 잘 봐 주엇다.
한 몫 더 붙여서 나는 큰 애에게 동생을 챙기는 부담까지 주었다.
그래도 동생을 예뻐하고 잘 봐주더니 6살 부터인가 동생을 때리기 시작했다.
동생은 형이 좋다고 죽자고 좇아 다니는데 형은 동생을 자꾸 때리니 나는 점점 큰 애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큰 애가 작은 애를 때리면 나도 큰 애를 때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너무 속상해서 큰 애를 붙들고 왜 동생을 자꾸 때리느냐고 물었더니 못 생겨서 때려 준다고 하면서 한마디 더 덧붙였다. "못 생긴 놈이 맨 날 엄마랑 자"
이 때는 이 말을 듣고도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채지를 못했다.
한 집에 살고 있었지만 할머니와 자는 큰 애는 엄마랑 아빠랑 자고 싶어했다.
엄마랑 아빠랑 함께 자고 싶어 우리 방으로 자꾸 오는 큰 애를 우리는 언제나 달래서 할머니 곁으로 돌려 보내곤 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프고 후회 스럽고 큰 애에게 너무 미안하다.
" 그 땐 왜 그렇게 미련했을까, 어쩜 그렇게 어린 아들의 마음을 몰라 주었을까, 어머니가 섭섭해 해도 그냥 데리고 잘 걸...."
자기는 엄마 아빠랑 자고 싶어도 못 자는데 언제나 엄마 아빠랑 자는 동생이 미울 수 빆에....
엄마면서도 어린 마음의 갈등을 헤아리기는 커녕 동생을 때린다도 또 때려주었으니 미련한 엄마때문에 큰 애는 동생을 더 때렸다.
서로 사이가 좋아도 아이들은 티격태격 싸우면서 큰다.
어려선 형이 때려도 형이 좋다고 좇아다니지만 더 크면 때리는 형을 미워할텐데 어떻게 하나......정말.....
어느 책에서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사춘기 때 주먹질하며 심하게 싸우면 대부분 평생을 원수지간으로 지낸다고 자녀간의 갈등은 사춘기 전에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글을 보니 더더욱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할 때 새 학기가 되면 학기초에 모두 함께 남대문 시장에 가서 자기몫의 학용품을 사는 것이 우리들의 한 연례행사였다.
학용품이 떨어질 때쯤 혼자 가서 학용품을 사선 동생들 모르게 모두 큰 애에게 주었다. 그리고 큰 애가 동생들에게 주고싶은 데로 나누어
주도록 시켰다. 공책이든 연필이든 색종이든 지우개든 .. 모두 다.
처음 연필을 나누어 줄 때 동생들에겐 한 자루씩만 주고 자기가 열자루를 다 가질 땐 정말 화가 났다.
빼앗아서 공평하게 4자루씩 나누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동생들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형이 연필도 주고 공책도 주고 지우개도 주고 , 이 것 저 것 주니 항상 형이 고맙고 좋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받기만 하는 동생들도 자기가 가진 것을 형에게 주고 싶어 했다
형은 형대로 동생들에게 나눠주는 양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자기 스스로 동생들에게 모두 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지내면서 동생들이 형에게 하던 말이 바로
" 형, 이거 가질래? "다
때리고 맞던 형제지간이 서로 자기 것을 주고 싶어하는 맘으로 바뀌었다.
주는 것이 기쁘다는 말씀이 이 사랑을 가능케 했다.
서로 주고 싶어하는 맘 속에서 형제간의 사랑을 보니 부모로써 이보다 더 감사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다 큰 지금도 자주 듣는 이 말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모른다.
' 형, 이거 가질래? '
죽기 직전에 아들들이 내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면
'너희가 우애있게 사는 거란다'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거 같아.
아들들이 서로 사랑으로 베풀고 의지하며 산다면
그래도 걱정없이 죽을 거 같다는 얘기.
그래서 폐백을 받을 때 며느리에게
'시부모에게 베푸는 사랑보다는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하게 해주는 거,
그리고 너네 둘이 알콩달콩 잘 사는 게 훨씬 값진 일이다'
라고 했었어.
현재 잘들 지내고 있지만 모두 일가를 이룬 뒤에도 지금 같기를 소원하고 있단다.
병숙아, 네가 말한 사진들을 7기에 올리기 전에
오늘 먼저 동영상을 편집해서 올리려고 했었어.
근데 겨우 파일 좀 열어보고는 그냥 밤이 깊어버렸네.
여행, 그리고 사진과 씨름하면서 늦게 잔 여파가 길어.
전 같지 않게 몸이 힘들단다. ㅎㅎ, 긴장이 풀린 탓이겠지?
동영상은 천천히 올릴게. ^^
느끼는 게 있는 좋은 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