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

사방을 크게 둘러 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 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네

우적우적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식어 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릴 때에도

목구멍으로 오롯이 넘어가는 쓸쓸!

손글씨로 써 보네 산이 두개나 위로 겹쳐 있고

그 아래 구불구불 강물이 흐르는

단아한 적막 강산의 구도!

길을 걸으면 마른 가지 흔들리듯 다가드는

수많은 쓸쓸을 만나네

사람들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쓸쓸을

손으로 살며시 떼어주기도 하네

지상에 밤이 오면 그에게 술 한잔을 권할 때도 있네

그리고 옷을 벗고 무념(無念)의 이불 속에

알몸을 넣으면

거기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나를 끌어안는 뜨거운 쓸쓸 <문 정희>

 

 

 

책을 읽다보면 와락 와 닿는 단어들이 있다.

요즈음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에 나오는 `뇌의 전족`이라는 구절도 그런 것 중에 하나였는데,

문정희 시인의 `쓸쓸`은 이 가을 더욱 쓸쓸을 쓸쓸답게 만드는 여운을 듬뿍 줘 공명이 크다.

쓸쓸함은 외로움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외로움에는 혼자라는 전제가 깔려있고 쓸쓸함은 삶의 페이소스가 둘러져 있는 것 같다.

 

`뇌의 전족`을 채운 지도 모르고 生을 하하호호 산다한들 누가 뭐라 하리!

그렇지만 아름다운 가을 날 나의 쓸쓸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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