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문득 잠을 깼다.

몇시쯤이나 되었을까?

밖은 캄캄한데 천둥, 번개에 쏟아붓는 빗소리.....

지난 밤 꿈에 분명 누가 왔다 갔는데 통 기억이 나지를 않아 자리속에서 뒤척이며 빗소리를 듣는다.

지독히도 무더웠던 여름의 끝자락에 마지막인양 하늘에서 나리는 비....

올 여름 삽십일 중 이십일을 내렸다는 비는

다들 잠든 한밤중에 잠깐 벼락치듯 쏟아내곤 한나절은 내내 쨍쨍이어서 인색하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를 모두를 힘들게 했다.

 

올 여름은 피서랍시고 첩첩산중 강원도를 찾았다.

피서행렬로 꽉 막힌 찻속에서 5살짜리 조카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무료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고모, 구름이 자꾸 따라오네.

*그래. 구름이 예원이가 예쁘다고 친구하자고 따라오는거야

*그런데 구름은 왜 자꾸 까매져?

*응, 그건 구름이 혼자 오기 심심하니까 친구를 같이 끌고 오려니까  힘들어서 얼굴이 까맣게 변한거야. 구름의 친구는 비거든

*아하, 그렇구나. 제냬들도 콘도에 가는거야?  

*그런데 사이좋게 지내다가 비가 심술이 나서 구름의 손을 놓아버리면 땅에는 비가 오는거야.

*조금만 더 가면 아마 비가 올껄.

  얼굴이 까맣게 미워졌다는 것은 성질이 오를대로 올랐다는 증거이니까.

*정말?

까우뚱하는 아이........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니 아이는 손뼉을 치며 좋아라한다.

*고모 말대로 싸우다가 둘이 손을 놓아 버렸나 봐.

  진짜 비가 막 오네.

 

그리고 얼마 후 비 개인 하늘 너머로 쌍무지개가 떴다.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하늘에 걸린 쌍무지개가 신기하기만 한가보다.

*저건 뭐야?

*그래, 저건 무지개라고 예원이처럼 예쁜 아이들을 보러 하늘에서 꼬까옷 입고 천사들 건너오라고 만든 다리이란다.

 정말로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내 딴에는 동화라고 들려주며

훗날 이 아이가 만날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아이를 힘들게 할까 슬며시 걱정이 앞섰다.

 

얼마전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가 청문회를 넘지 못하고 자진사퇴를 했을 때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심경을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가고 싶어하네"라는 중국고사을 인용해 표현했다.

주요종이라는 서생이 장원급제를 한 뒤,

아들 하나 뒷바라지에 평생을 쏟은 홀어머니에게 열녀문을 지어드리기 위해 황제의 허락까지 받았으나

느닷없이 어머니는 아들의 스승인 장문거에게 시집을 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놀란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기를  "어머니가 개가를 하면 황제를 속인 죄로 저는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하자

어머니 진수영은 입고 있던 비단치마를 풀며 "이 치마를 빨아 널어 내일까지 마르면 개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렇게 쾌청하던  마른하늘에 짙은 구름이 끼더니 폭우가 종일을 쏟아져

비단치마는 마르지 않고 결국 어머니는 개가를 했다는 내용으로

"막으려 해도 하늘의 뜻은 어쩔 수 없다"를 뜻하는 이야기이다.

1971년 모택동이 측근인 임호가 자신을 암살하려다가 발각돼 비행기를 타고 도주하자 땅을 치며

"天要下雨 娘要嫁人"

이 구절을 인용해 "어쩔 수 없으니 가도록 두라" 해서 더 유명해진 고사이다.

 

하늘의 뜻을 누가 막을까?

그 무섭던 더위도 백로가 지나니 하룻밤 사이에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는 것을.....

요즈음 특히 하늘의 뜻이 무엇일까 가끔 생각해 본다. 

 

비가 오는 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은 것은

내가 특히 비 오는 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면 무언지 가슴이 뻥 뚫리고 비와 함께 막힌 곳이 쓸려내려 가는 느낌이다.

맺힌 것이 그리 많을 것도 없건만

누구는 내가 수분이 모자라기 때문에 체질적으로 비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나는 한 남자의 마음을 알았다.

거칠 것 없고 당당하던 남자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스치던 손길이 심하게 떨렸다. 

당황하며 허공에서 부딪힌 두 눈동자의 떨림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 날의 떨림도  하늘의 뜻이었을까?

 

비가 오면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봄, 여름 가을, 겨을의 자연의 법칙이 엄숙하듯, 그래 오는 비를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다 하늘의 뜻인 것을..........

비 온 뒤 무지개 곱게 뜨듯,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런 날도 오겠지.

 

비오는 날

나는 잠깐 꿈꾸는 소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