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하늘과 땅이 진동한날,
그날 그시간에 그분은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다.
큰별이 지느라고 그리도 시끄러웠던가?
너무나도 힘들게 생명의 줄을 안놓으시고
이어가셨다.
아드님이 필담으로 물으셨단다.
아버지 왜 이리 힘드시게 못떠나세요?
누가 제일 보고 싶으세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그분은 눈감으시는 그순간까지 성도들을 잊지 않으셨다.
88년도에 친구가 전도집회에 참가하면 밥사준다는 한마디에
밥얻어먹으려고 따라나서 옥목사님설교에 붙잡힘을 받아
목사님에게 세례받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울며,웃으며 하냥 긴세월 그분 설교에 사람된 나다..
제자훈련을 위해 평생을 열정과 헌신으로 보내신분.
오늘......
그분의 입관예배를 드리고 왔다.
옥목사님에게 세례받은 내딸도 같이 참가했다.
한참 어려웠던 그시절,
그분은 나에게 영적인 아버지면서 어머니였다.
가슴에 멍이 쌓여 피가 되어 흐를때 쯤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어느덧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했다.
초신자 시절,
친교실에서 예배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앉아있을 때
그분은 슬며시 다가 오셔서 나의 어깨를 쓰다듬고 가셨다
아마도 몹시 추워보였나보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힘든것들 모두 교회에 내려놓고
다른 신자들과 똑같이 많은 영성 교육을 받으며 나는
감사와 기쁨의 나날을 보냈다.
제자반에서....
사역반에서....
옥목사님과 함께 찍은 사진들은 이제
추억의 한페이지로 넘어가고 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40년을 탕자생활을 한 나를 이만큼 키워주신 그분 옥목사님,
교회가 성해도 당신은 서서히 쇠퇴해야 한다는 옥목사님,
교회가 목사와 함께 늙으면 안된다는
소박한 신념으로 조기은퇴를 결심,
2대 오목사님 49세에 홀홀히 넘기시고
사역계승의 모범을 보여주신 옥목사님,
힘찬 설교에 단어 하나 하나 정곡을 꿰뚫는 예배시간....
이제 그것은 과거가 되어 가고 있다.
옥목사님이 내밀던 영성의 나침반을 아직도
이땅은 필요로 하고 있는데 그분은 천국의
열두 진주문에 들어서셨다.
목사님~!
힘든 아픔 모두 내려 놓으시고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예수님의 인내를 마음에 새기면서
이제는 눈물 흘리지 않을께요.
그리고.......
.
.
.
.
.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
권권사 ~!
같이 아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주일예배에 그분의 생전 영상을 보여주는데
다시는 뵐수 없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이
힘들어 했습니다.
늘 뒤에 옥목사님이 계셔서 오목사님이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었는데
아비잃은 자식같이 안쓰럽더이다.
우리들이 작은 힘 이나마 옆에서 지켜드려야 겠지요.
김순호권사님~~
몇년전에 텍사스 어느 한인교회에서 한국에서 강사를 모셔와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가 있어서 저희 부부가 참석을 했습니다.
그 강의중에 강사님께서 참석한 목회자들에게
모두 눈을 감고 이 시간 떠오르는 ~ 나에게 가장 맘에 와 닿는~
교인이 있으면 떠 올려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눈을 감은 나의 마음에는 그 많은 교인들 중에
딱 한사람이 떠 올랐습니다
그 사람은 돈도없고 학벌도없고 신앙을 가지기전에는
이 동네 사람들 눈에 늘 한손에는 줄 담배를 달고 다니며
옷 매무새도 아무렇게나 걸치고 나오는대로 욕을하며
동두천에서 몸을 팔던 과거가 아주 최악의 상태인
우리교회 권사님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말씀안에서 거듭나고 예수님의 은혜로 체험을 한후엔
목회를 하는 우리부부에게 가진것은 없는 교인이지만
채소밭을 가꾸어 이웃과 나누고
깡통을 모아 팔아서 성전 건축에 보태고
교회안의 굿은 일은 모두 나서서 하며
특별히 목회자가 어려울땐 어느누구의 말에도 귀 귀울이지않고
그냥 우리를 믿어주던 권사님이셨습니다.
옥 목사님도 김권사님같은 제자를 남기셨으니
참으로 행복하신 분이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차사모님~!
하나님을 알기전까진 나의 우주는 부모님이셨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서 나의 우주는 교회가 되었답니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에게서 많은 핍박을 받았지요.
나는 그들에게 몸으로 실천하며 보여주자 하면서
무대응으로 나갔답니다.
얼마전에야 그들은 비아냥거림을 멈췄습니다.
점철된 제삶을 보며 끄덕거리게 된것이지요.
난 지금도 무언중에 그들에게 나를 보여줍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즐거운지.......
옥목사님 하관식을 보며 다시한번 다짐했습니다.
하늘에서 보실때 기뻐하실일만 하리라고.....!
글읽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순호야,
요즈음 홈피 들어오지 못했다가
방금 머리 좀 식힐 겸 들어왔더니 네 글이 있어서...
귀한 목사님의 말씀으로 믿음을 간직 했었구나.
고인의 신실하셨던 흔적이 네게서도 묻어나오니
하늘에서 기뻐하실거야.
그래 네 고백처럼 나도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할 일만 하고 싶구나.
나같은 죄인 살리신...
정말 나도 그래.
이번 주 설교 제목을 "Lost and Found"로 삼았기에 찬송 곡으로 택했는데 부를 때마다 감격야.
내일이 9.11 (뉴욕 무역센터 붕괴된 날), 희생자 유가족을 추모하고 그 가운데서 화해 사랑을 상기시키자는 의미에서 택한 날인데.
Korean Dinner Night으로 정해서 교인들과 주민들에게 목회자로서 접대하는 날야.
틈틈히 만두를 다 빚어 놓았고, 불고기, 잡채, 김밥, 등 대접하려고.
150여명 정도 생각하다보니 사택은 좁고 해서 교회에서 하기로 하고.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봐.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대.
이 교회 부임해서 벌써 70여일 되어가네.
교인들과 지역 분위기를 파악해보니,
동양인이 적은 이곳 사람들에게 음식을 통해 신앙인의 교재를 나누는 기회가 되었음 싶어서.
몇가지 한국 음식 재료를 미리 준비해 놓아야 했는데 아직 남아 있어서 오늘 밤 잠 포기해야 할 거 같아.
내일 여선교회 회원들이 와서 재료들을 갖고 지지고 볶고 ... 도와주실거야.
손주들을 돌보려면 주중에라도 시간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파트-타임 목회지를 택한 건데
일 자체는 전임야. 주일 예배 설교 랑 소그룹 성경공부 등은 딸네 집에서 다 준비하고,
금 아침-월 밤까지는 여기에 와서 행정, 심방 등...
교인 수가 적어 재정이 넉넉치 않지만, 참 신실한 교우님들과 신앙생활을 같이할 수 있는 기회라서 고마울 뿐야.
혼자 사니까 이처럼 두가지 역할을 겸임할 수 있는 거 같아 감사할 뿐이지.
순호야,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서 행복한 거 넌 늘 경험하니까
복받은 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지?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우리도 사랑받는 자".
순호언니께,
인일 바자회 날 아침, 목사님 소천하신 날에.... 얼핏 보이시더니,
나 웃을 기분 아니다....하고 자리를 뜨셨지요?!
저는 옥한흠 목사님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어요. 그러나 CBS 등 위성방송에서 자주 뵈오며, 가장 귀한 알맹이가 들어있는
말씀을 전해주실 때.... 영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지요.
목사님은 하늘나라에서 그 영혼이
드뎌 모든 세상의 힘든 짐을 내려놓으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 소리를 들으며 품에 안기셔서
아마 언니를 위해 간구하고 또 기다리실 겁니다.
승리하는 삶으로.... 보답하시고 또 훗날... 만나시기를~
정례,순애 댓글이 있었네.
같이 걱정해주고 같이 아파해주고....
종교난은 또 다른 우리홈피의 기도하는 골방 같은곳이네요
목사님 소천후,
우리 권사회에서 안성 수양관에 갔었지요
그곳엔 목사님이 양지 바른곳에서 당신께서 그리도 사랑하시던
성도들을 기다리고 계셨어요.
사모님께서 우리들에게 마이크 잡고 목사님 생전에 못해드렸던 일을 얘기하시는데....
젊은날부터 사모님께선 늘 아낀다고 방마다 다니시며 불을 끄셨대요.
목사님은 답답한데 불끈다고 싫어하셨다는데 개의치 않고 끄셨답니다.
40대때 폐결핵을 앓으셨다는데 가슴을 쓰다듬으며 답답해 하시는걸
그병이 가슴병인데 기침과 얼마나 답답하셨겠어요 하시며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불을 끄셨다고 울며 말씀하시는데....
우리들에게 가족들에게 잘해드리라고 끝내시더라구요.
그말씀하시는 사모님뒤에 후광이 비치더이다.
아무도 못보았겠지만 제눈엔 분명히 환하게 보였어요.
아마도 옥목사님이 같이 계시지 않았나 싶어요.
순애 말 처럼
교회 구석구석 안팎에서 목사님의 체취가 느껴지지만
나중에 목사님 뵈올때 승리하는 삶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한국교회의 영적 멘토셨던 옥 목사님의 소천에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옥 목사님께 세례받으시고 섬기셨던 선배님께서
많이 섭섭하셨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