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들어서자 새 먹이 스탠드가 부엌 창문 너머로 보였습니다.
뒤뜰은 작은 개울로 이어지고 많은 나무가 울창한데다가
꽃을 심은 화분으로 베란다를 장식하여 정말 그림엽서같이 예쁜 정경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그 그림 위에 새들이 여럿 날아다니며 모이를 먹는 광경은 참으로 평화스러웠어요.
어떤 새들은 머리가 빨갛고 어떤 놈은 앙징스런 흰색과 까만색으로 무늬가 있는 것도 있어요.
머리에 투구를 쓴 온몸이 빨간 새는 카디날이라고 부르고
머리에서 목까지만 붉은 놈은 핀치라고 부른답니다.
또 그 동네 참새는 이상하게 날씬하고 예뻣어요.
주인은 새들을 위하여 비싼 모이를 사서 날마다 공급하고 있답니다.
어제는 새로 넣어 주었는데 밤새 라쿤이란 놈이 와서 싹쓸이 먹었답니다.
밤에는 덩치 큰 놈들이 와서 도적질 해 먹는 바람에 감추어 놓는데
어제는 잊어버렸다고요.
새에 관한 책도 사놓고 비교해 가면서 연구하고, 이름을 알면서 바라보니 더 사랑스럽고요,
걔네들 때문에 둘만 사는 집 같이 않다고 좋아하셨습니다.
몇 년동안 못 와 본, 크지 않은 그 집은 항상 완벽하게 유지되어 왔지만 이번엔
훨씬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여주인이 화가임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많은 뛰어난 작품들이 벽마다 진열되어 있고,
방마다 색이 다른 대담한 색조로 칠해져 있었어요.
어느 방에 들어가서도 감탄이 나오도록 30 년만에 제대로 단장을 아름답게 했더라구요.
그런데 사실은 어제 그 집으로 들어가면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두달이 가까운 여행 끝 마무리에 여러 상념과 겹쳐 피곤한데다 우울 모드가 되어 버렸거든요.
외삼촌의 좋아지지 않고 꼭 일년 전에 발견한 폐암이 간으로 전이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걱정이 되었던 것이에요.
외삼촌이라도 조카 사위와 나이가 같아서 아직 많이 젊으신 미남 외삼촌인걸요.
우리 엄마가 가난한 집으로 시집 간다고
왜 그런 가난한 집으로 가냐고 가지 못하게 하라며 울었다는 정 많은 막내 외삼촌.
어릴때 제 얼굴을 들여다 보며
"에이~ 살짝 곰보~"하시며 놀리던, 언제나 눈에 웃음기 가득한 분.
남에게 과시하면서 살지 말고 남들이 볼때 중간 정도로 살라고 층고를 주시던
자상하고 온화한 분이거든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이가 같은 울 남편에게 반말도 못하는 분이시지요.
미국 땅에 같이 살아 항상 마음의 기둥이 되어주신 외삼촌.
그런데 이런 힘든 소식이 있다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러서 직접 만나서 위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상상을 뛰어넘도록 너무나 든든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시네요.
치료때문에 다 빠졌던 머리가 다시 나서 더 젊어 지셨고
날마다 출퇴근 하시며 일을 즐기시는 모습이라니!
저녁 식사하시면 그길로 돌아 나가 골프장에 가서 나인 홀을 완전히 걸어서 끝내시고
샤워하고 잘 주무시고 잘 잡숫는 모습..
워낙은 초기라고 알았는데 고백하시기를 워낙 4기가 되어서야 발견된 것을 너무 걱정할까 봐서
그랬다네요. 그리고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로서 최선의 치료를 받고 열심히 노력 하신다고
"난 괜찮아. 걱정 말아." 전화할 때마다 그러셨거든요.
이제 지나간 일년의 일들을 외숙모에게 들었더니 그게 아니었어요.
다들 수술하면 병원에서 못 나오실 거라고 걱정할 만큼 암 덩어리가 컸고 수술이 힘들었대요.
너무 많이 떼내어 조금 심한 운동을 하면 숨가쁘고 기침도 하시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몸을 가지고 직장을 쉬거나 놀지 않고 지금까지 일을 하시고 있는 거예요.
심지어 키모테라피를 받는 날도 윗층에 올라가서 받고 즉시 내려와 일을 계속하시고
그리고 시간이 되면 퇴근하셨대요.
지난 겨울 눈이 몹시 오던 날이었답니다.
집 앞에 쌓인 눈때문에 아침에 출근을 못 하실까봐 밤에 눈을 쓸고 또 쓸었는데
(병이 나서야 눈치우는 스노우 블로우 기계를 사셨답니다.)
그런데 눈 차가 와서 막다른 곳인 드라이브 웨이에 높이 더 쌓아 놓았답니다.
그래서 구멍을 내다시피 해서 길을 닦아 놓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무참하게도 또 다시 눈차가 눈을 높이 덮어 놓았답니다.
그걸 추운 아침에 다시 구멍을 뚫어서 길을 내고 차를 가지고 출근을 했대요.
그날 직속 두 병원 13 명, 5 명의 병리학 의사 중에 아무도 못 나오고
오직 우리 외삼촌만 출근을 하였더랍니다.
그래서 그 몸으로 혼자서 모든 응급환자들 일을 다 마치고 퇴근을 했다고요.
그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더 확실히 알게 된 것은
교민이 얼마 안되는 작은 동네지만 모든 사람들이 입원해 있는 내내 얼마나 자주
많이 찾아오며 마음을 쓰는지, 제발 그만들 오시라고 할 정도였다고요.
병원에서도 '미러클 보이'라면서 기이하게 여기며 너무들 아껴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연세가 들어서 그 과에서 제일 오래 되었기도 하지만
제일 믿음직하고 실력있는 의사로서 열심히 일을 하시기 때문에
없으면 안되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있고
죽는 날까지 일하는 것에 눈치를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네요.
남들은 일 그만하고 몸을 돌보라고 하지만 외삼촌 생각은 아주 달랐습니다.
담담히 자신의 생명 다하도록 일을 하기로 결정을 하셨다지요.
나 잘 해 낼 거야. 끝까지 일하며 살거야
언제라도 때가 되면 그때는 가야지.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하는거잖아.
담담히 말씀하시는 외삼촌이 너무도 대단해 보이고 훌륭해 보였습니다.
의사로서 폐암 말기가 얼마나 중한 것인지 제일 잘 아시겠지요.
간암, 췌장암과 함께 악명 높은 세 암중에 두개를 몸속에 갖고 계시니!
그러나 그런 마음이셔서 그런지 잠 잘 주무시고 아무거나 잘 잡숫는다고 하네요.
이 모든 이야기를 빠짐 없이 하시면서 외숙모도 참 담담하고 훌륭하셨어요.
의사부인이라지만 남들같이 쉽게 살지 못하고
이북에 넘어가신 큰 외삼촌 때문에 미국 나올 때 진 빚을 이십년 이상 갚으며 고생고생 하셨어요.
세 아이 사립대학 다닐 때 하나도 혜택을 못 보고
얼마나 쪼이는 생활을 오래 했는지..
이제야 아이들 교육 다 마치고 십년을 여유롭게 살고 있는데 또 너무 빨리 어려운 일을 당한 것이지요.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 뜻을 백프로 존중하며 따르는 아내란 얼마나 복된 것일까요!
다행히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외숙모도
오히려 더 건강하고 젊어지셨더라고요. 나라도 힘내자 하셨다구요.
그리고 두분이 더욱 더 서로 아끼게 된 느낌이었어요
인생의 가장 큰 미덕인 겸손을 배우는 마지막 과정을 이렇게나 잘 헤쳐나가시는 장한 외삼촌!
부디 잘 이겨내시고 이 세상에서 평범 속의 위대성을 보이며 오래도록 살아주세요.
저도 본을 받아 불평없이 남은 고난 잘 헤쳐 나갈께요.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여느날처럼 출근하시는 아침을 배웅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그 집을 떠나 왔습니다.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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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이 왔네.
감동적인 스토리 잘 읽었어.
그런데 사진이 모두 배꼽으로 보여요.
이진화목사님께는 전화 드리고 교회로 물건 가져다 드렸다.
사모님과 통화했는데 마침 그날은 경주로 가시는 날이라고 하셔서 사무실에 맡겼지.
일주일 후에 새성전으로 이사하신다고 하셨으니까 이사 끝났을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