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동고동락 한평생 짝지를
흰머리 서로 다듬어 주지 못하고 먼저 가신
하늘나라
이국 땅에 내린 땀뿌리
서리서리 맺힌 서러움도 열매로 달게 맺은 나이에
두고 떠나가시는 그 하늘나라
사랑보다 아름다운 추억을 두고
이젠 여엉영
먼 하늘나라의 메아리
오열의 통곡도
가다가 숨찬 그 곳
홀로 가신 높은 하늘나라
부디 세상 수고 다 놓으시고
영면의 그곳에서
평온하소서
LA에 살고있는 김성자 남편의 별세를 애도하며 회장 김용선 명복을 빕니다
성자야 좋은 님 보내드리느라고 고생 많았다
일 중에 큰일이 돌아가시는 일인데
인간의 힘으론 어찌 할수 없는 상황....최선을 다 한다지만 속수무책일뿐
몇 년 전에 성자네 놀러 갔을 때 한 번 뵈었지만
정말 쾌활하시고 훌륭하신 분인데
먼저 가셔서 더 이상 고통이 없는 천국에서
성자와 두고 가신 아들들 가족들 위해 기도 하실꺼야
성자야 간호하느라고 지친 몸 잘 회복하고
밝게 웃으며 사는 모습 기뻐 하실꺼야
성자야 시간 되면 한국에 오렴. 보고싶다
어제 입관예배에 다녀왔어요.
5회언니들, (김인숙, 우명례, 이미자, 박헤옥, 이수인, 이은신, 이옥진,)이
연휴인데도 불구하고 LA에 사시는 언니들은 다 오셨더라구요.
연재언니는 지금 크루즈여행중이라 못 오셨지만.......
어제 우리 남편이 추모사에 너무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오면서
차안에서 감복하여 말 하더군요.
오신분 모두가 그 추모사에 많이 울고, 큰 은헤를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분이 우명례선배님의 부군되시는 분이었더군요.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신 우명레선배님 부부가 정말 많은 은헤를 받았을것 같아요.
나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인일여고 동문회"리고 적힌 커다란 화환도 여러개 보여서 참 좋았어요.
사진을 짝으려니까 좀 그래서 그건 못 했지요.
두 아들의 추모사 특별히 막내아들이 울면서 하는 그 추모사에 모두가 다 울었답니다.
장례식에 가면 늘 많은 깨달음을 갖고 오지만 이번 장례식은 더욱 더 그랬어요.
그래서 성경에 잔칫집보다 상갓집에 더 가라고 햇나봐요.
사진은 해외지부에 올렸습니다.
오늘, 장례 예배에는 백경수 후배가 다녀왔습니다.
한달 쯤 전. 어느날 밤에 제게 성자가 전화를 해 와서, 남편이 암세포도 없어졌고 많이 좋아져서
자신도 좀 여유가 생겨서, 홈페이지를 이것저것 보다가 , 제가 생각나 전화를 한다고 했지요.
그런 이틀 후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한 달여를 고생하시다가 가셨습니다.
이제는 고통도 눈물도 없는 천국에서 편히 쉬리라 믿습니다.
어제 본, 성자는 많이 야위었고, 지쳐서 보기에 아타까웠지만
이제 다시 힘을 차리고 일어서리라 믿으며
일상으로 돌라왔을 때, 친구들이 관심 가지고 들려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영희 선배님과 김춘자 후배님께 특별히 감사드리며
소식 받고 즉시 달려 간 혜옥과 정숙이에게 감사드리며
어제 본 친구들......
화한으로 함께 한 쿠르즈 떠난 친구들-연재, 용화, 명은, 순자-모두 감사합니다.
송재순 선생님을
딱 한번 혜옥언니 아드님 파티에서 뵈었고
오늘 장례식에서 뵈었습니다.
한번 뵈었을 뿐인데,선하신 인상하며 남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잊혀지지 않아서 장례예배에 가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장례예배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아드님 조사중에 이런 귀절이 기억에 남는군요.
"아버지는 자칭 엘에이의 시장이셨습니다.
어디를 가도 한분이상이 아버지를 알아보셨습니다.
얘기하기를 즐겨하셨고,더 이상 얘기가 길어져서 남들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계속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남녀노소,직업이나 명성, 빈부의 차이를 두지않고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분입니다.
제가 STATE BOARD에 처음 낙방 했을때에도 다음엔 꼭 될 거라고
기대를 버리지 않으셨고,임종 며칠 전엔 저의 합격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땅을 사랑하셨고,나무와 꽃들을 사랑하셨던 분입니다.
엘에이 식물원에 한국 정원을 만드시는데 혼혈을 기울이셨던 분입니다.
땅을 사랑하셨던 아버지를 다시 땅으로 보내 드립니다."
송재순 선생님
부디 편안 하시고 행복 하시길 바랍니다.
백경수후배가 오늘 장례식에 참석했구나.
참 잘 했다.
장남의 추모사를 번역하여 이렇게 올렸구나.
역시 백경수다
아들의 낙방에 격려하며 힘을 불어넣어주었던 다정하고 훌륭한 어버지를
보내면서 그 아파하며 슬퍼하던 두 아들의 그 울음섞인 조사가 모두를 울음바다로 만들었지?
나도 우리 남편도 많이 울었어.
백경수가 일 하느라 바ㅃ느 사람인데 오늘 장례식에 참여했다니 참 고맙다.
김춘자 선배님
우리가 먼 이국에서 만나서 선후배,동기로 정을 나누며 산 지가
꽤 시간이 흘렀지요?
특별히 선후배가 따로 만나거나 할 기회가 많진 않지만 시간이 가면서 마음의 정이 깊어지는 듯 해요.
그 과정엔 선배님의 인일 사랑이 큰 몫을 담당 했던 것 같구요.
마음으로 부터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올린 송선생님 사진을 유심히 봅니다.
김성자 선배님은 좀 화가 난 듯 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 때 즈음 남편의 발병 소식을 접하셨던 것 같아요.
남편때문에 화가 나 있는 부인을 위로하시는 송선생님의 표정을 보세요.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아내,그를 위로하는 남편
이런게 사랑이 아닐까?---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언니,편한 밤 되세요.
아!!
그랬었구나~~ㅋ
참 자상하고 인자한 남편이었을텐데 성자언니가 이젠 얼마나 허전하고
외롭고 사무치게 그리울까???
요즈음 정신없이 보내느라
얼핏 제목만 보고 글을 인제야 읽네요.
오랫동안 본인보다도 더 힘들었을 성자에게
한마디 위로를 보냅니다.
우리도 잠시 잠간 후면 다 갈 그곳이니 힘내어 남은 고난의 길을
잘 지내시기를 빕니다....
엘에이 우리 동문들의 함께 하신 소식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한국일보에 난 기사가 눈에 들어옵니다.<반드시 세워질 한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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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자: 2010-06-03 (목) |
메모리얼 연휴 마지막 날 로즈힐 공원묘지의 스카이 로즈 채플로 가면서 팰리시어 길에서 습관처럼 내렸다. 그길 막다른 곳에는 ‘한국 정원’ 설립에 누구보다 앞장서 온 송재순 선생이 32년간 운영했던 J.S.너서리가 있다. 그 앞에 서니 송 선생이 아직도 흙 묻은 손에 전지가위 들고 뛰어 나올 것 같았다.
송 선생의 평소 삶의 자세를 보여주듯 장례식 날 요란한 화환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한인뿐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들이 채플 밖에까지 늘어서서 선생님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어했다. 특히 선생이 10여년의 삶을 올인했던 “미국내 한국 전통정원 조성” 캠페인을 이어가야하는 우리들은 큰 기둥을 잃었다. “일본 정원은 미국에 300여개나 있는데 더 훌륭한 한국정원이 단 한개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송 선생은 개척자가 되어 한인사회를 일깨웠다. 생각만큼 신속하게 진척되지 않아 속앓이도 많이 했다. 그래서 발병 사실이 알려지자 “전통정원 조성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란 자성적인 의견이 많았다. 선생의 한국정원 만들기 열정은 두 아들에게 물려진 것 같다. 입관식의 주제는 배우자, 아버지, 친구, 선배를 잃은 슬픔이 아니라 ‘한국정원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임종 며칠 전 병상 옆에서 변호사 선서식을 한 장남은 이날 아버지의 긍정적이고 헌신적인 삶에 경의를 표하면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약속했다. 감동의 물결이 구석구석까지 출렁였다. 한국 전통정원은 조만간 만들어질 것이다. 송 선생이 뿌린 씨앗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제시카 김 / 미주 한국문화유산재단 이사 <송선생님은 일찍 유학을 오셔서 이곳의 유수한 대학원에서 농과로 석사를 받으신 분이십니다.
장례식에는 많은 미국 친구들,수녀님들이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셨습니다.
'참 인생을 아름답게 잘 사셨구나' 하는 걸 장례식에 가 보면서 알게 되었답니다.> |
2000년 여름이었어요. 딸이랑 성자네 집에서 이틀인가 머물었던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꾸시던 농원을 구경시켜 주셨는데 수수한 인상으로 나무와 자연을 사랑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이후, 언제인지... 연도가 기억나지 않네요.
성자의 전화가 있었지요.
부군이 <LA 한인 청소년 오페라단>의 단장의 자격으로
중고등학생 약 40여명을 인솔하시고 뉴욕 공연을 오셔야 되는데
뉴욕의 어떤 교회 목사님께서 이미 약속하셨던 숙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였답니다.
갑자기 그 많은 아이들을 어디다 재우워야 할런지 난감하다고요.
아이들을 재울 수 있는 교회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이었지요.
한 열흘 남직한 그런 임박한 때에 대인원을 책임진 부군의 노심초사를
지켜보는 아내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아는 교회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카펫이 깔린 교회 마루에서라도 재우면 싶어 전화를 드렸더니
그 교회 목사님은 청소년들은 매일 목욕을 해야한다며, 교인 가정집에서 잠을 자게 해주시고
식사는 교회가 맡아주신 걸로 압니다.
좋은 일을 한 교회니까 공개해도 좋겠지요?
뉴저지에 있는 베다니 연합감리교회 (장동찬 목사 담임) 였습니다.
전 그 때, 출장이 겹쳐선지 하여튼 일 땜시 공연을 가보지 못한 형편으로
어찌나 미안했는지요.
이처럼 지역 한인사회를 위해서 수고하시던 열정으로 제게 감명을 주신 기억은 잊어지지가 않네요.
자연을 사랑하시고, 남을 위한 배려가 남다른 분이
이처럼 일찍 세상을 떠나셔야 하는지요.
하나님 나라에도 일군은 여전히 필요하신가요?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드네요.
지난 2여년 동안 어려운 시기였지만
고인의 사랑하는 아내랑 두 성장한 아드님께서
남편과 또 아버지와의 시간을 함께 나누고
마음을 다듬을 수 있도록 하여주신
하나님께
크신 위도도 간구드리게 되네요.
5월 27일 별세하셨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