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미국에 와서 처음 장만한 집에서 생각지도 않게 일어나는 많은 사건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지구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처럼 내 가족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며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힘을 다해 안락한 하루하루를 위해 살았다.

단순한 목표 속에서 오로지 내 가족을 내 인생의 전부인양 흡족해 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 남편의 신학을 향한 신앙 결단으로 나와 아이들은 우리들이 안주했던 환경 속에서 벗어나 가장을 따라 생소한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결단의 시기에 부딪쳐야 했다.

어쩔수 없이 줄줄이 끌려 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일단은 남편의 수입이 끊어진 현실 앞에 힘에 버거운 집부터 복덕방에 내놓았다. 그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이 아주 어두운 상황이었다. 우리의 계획대로라면 일년 안에 집이 팔려야 우리가 지닌 은행의 잔고가 남편의 학비와 남은 세월의 학교 과정을 지탱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계획은 우리의 생각일뿐 집을 보러 드문드문 사람들이 오고 갔어도 시간만 지나가고 팔릴 기미는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우리가 집을 내놓았던 복덕방 아줌마는 바로 우리 옆집에 이사 온지 얼마 안되는 이웃이었다. 가끔씩 집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나와 마주치는 그녀는 부동산 경기의 저조함에 우리집을 빨리 못 팔아 주는 것에 대해 미안해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이럭 저럭 조바심속에서도 시간은 사정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주일 아침이면 우리 식구는 아침 일찍 교회를 가느라 아이 셋을 씻겨서 입히고 아침을 해서 먹여 시간에 맞혀 가려고 집안 구석구석은 난리 법석으로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그렇게 어질러진 상태로 다섯 식구가 썰물처럼 밀려서 집에서 빠져 나가 교회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식구들이 밀물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고픈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집을 부동산에 내놓은지 어느덧 2년 가까이 되던 어느 주일날이었다. 늘 그랬듯이 그 날도 예배가 끝나고 특별한 친교가 없는 날이라 집에 돌아와서는 마침 남겨둔 김치찌게가 있길래 따끈하게 데워서 식구들이 올망 졸망 테이블에 둘러 앉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김치찌게 냄새가 진동하는 분위기에서 식구들이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누군가가 초인종을 띵동 띵동 누르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 시간에 누구지?” 하며 문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더니 나에게로 돌아와서는 “여보 복덕방이 집 볼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꼭 좀 보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하지?”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나는 밥 먹던 것을 멈춘채 급작스런 상황에 당황을 하며 시야에 들어오는 집의 상태를 휘익 둘러보았다. 정말 내 눈에 비친 집의 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온 집안을 진동하는 김치찌게 냄새는 내가 맡아도 지독했다. 문제는 2층 욕실에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져 있는 빨래들과 내복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아무리 집을 팔고 싶어도 오늘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을 했다. 나의 강경한 태도에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무어라 한참을 옥신각신 하더니 다시 나에게 돌아와서 전하는 것이었다. “여보! 복덕방이 아무래도 좋으니 잠깐만 보여 달래는데 어쩌지?” 하며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는 그들에게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럼 그냥 들어 오라고 승낙을 했다.

내 말이 떨어지자 마자 우리 복덕방과 어느 젊은 부부가 좀 미안한 기색을 하며 쭈빗 쭈빗 들어 왔다. 그들은 사전 약속도 없이 집을 보여줘서 그랬는지 “스멜 굿” 하며 2층 계단으로 올라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집안을 대강 둘러 보고는 돌아갔다. 나는 속으로 또 틀렸구나 하고 한숨을 내 쉬었다.

그날 저녁 우리 복덕방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라며 들려준 말이 그 부부가 우리 집을 산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 오랜동안 행여 누가 집을 보러오면 불쾌감을 안 주려고 사다가 꽂아 놓은 방향제가 몇번이나 다 날라가 버리도록 집이 안 팔려서 이제는 그런 것 조차도 귀찮아서 신경도 안쓰고 한국 사람이 살던 집은 김치냄새 간장냄새가 배어 있다고 사람들이 말을 해서 냉장고에 냄새 나는 반찬 종류도 신경 쓰고 매일 쓸고 닦았는데 그렇게 애를 쓸 때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가 이제는 지쳐서 에라 모르겠다 하며 엉망인 상태였는데 집이 팔린 것이었다.

정말 오랜 시간을 마켓에 내 놓고는 빨리 팔리지를 않으니 복덕방과는 몇번을 재계약 사인을 했었다. 보통 사람들은 복덕방이 시간이 지나도 집을 팔지 못하면 계약이 끝나도 다시 싸인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한 복덕방만 믿고 기다려 주었으니 우리 옆집 아줌마 복덕방이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는 것은 그날 저녁 늦은 시간에 전화상으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톤이 말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복덕방 아줌마는 큼지막한 SOLD 간판을 우리집 앞 정원에 보란듯이 갖다가 세워 놓았다. 그리고 집을 산 사람들은 은행의 융자 과정을 밟아 나가고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끝에 집이 팔려서 개운한 마음보다는 왠지 섭섭한 맘이 한편에 있었다.

이제 이사짐을 꾸릴려고 마음을 먹던 어느 주일날이었다. 그날도 주일 아침부터 온 식구가 아침에 한바탕 전쟁을 치루듯 교회에 다녀 와서 저녁 시간에 또 아이들을 일찌감치 밥을 해서 먹이고 쌍둥이 딸들에게 어린 동생을 부탁하며 잘 타일러 놓고 저녁예배에 참석을 했다.

그날 저녁 목사님의 설교는 이사야 43장 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 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하는 말씀을 주제로 설교하셨다. 나는 그날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집에 돌아와서도 남편과 같이 은혜의 말씀을 다시 나눴다. 그날 저녁 이상하게 설교의 주제였던 이사야의 성경 구절이 잠들기 전까지 계속해서 입가에 맴돌았다. 그리고는 그날 밤 식구 모두가 아주 달콤하게 깊은 잠에 빠져서 잘 잤다.

새벽녘에 내가 눈을 뜬건 집 밖에서 부릉대는 차 엔진 소리 때문이었다. 아직 이불 속에서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 밖에서 소리가 나니, 나는 벌떡 일어나서 이층 침실 창문 커튼 한쪽을 살짝 들추고 내다 보았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어둠이 깔려 있었는데 내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왠 차가 바로 우리집 정원 앞에 세워져 있고 누군가가 열심히 우리 집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분위기가 하도 이상해서 나는 아직도 이불속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하고 있는 남편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여보 여보 일어나봐요.” 나의 조심스런 부름에 남편도 궁금증이 동했는지 벌떡 일어나서 창가로 다가와 무슨 일이냐며 밖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한참을 희끄무리한 빛속에서 선명치 않은 두사람의 모습을 살피던 남편이 “아니! 저 사람들 우리집 산 사람들 아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희미한 형체의 집 앞의 그들은 바로 우리집을 산 부부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이 왜 새벽 시간부터 우리집 앞에 와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 할수가 없었다. 남편의 말은 ‘그들이 자기집을 장만하고 너무 좋아서 잠도 안자고 새벽부터 둘러보러 왔나보다’고 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추측도 썩 만족한 답은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않은 부부의 등장으로 아침 잠을 설치고 그날도 아침 일찍 예전과 다름없이 직장으로 출근을 했다.

회사에 들어가며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웃는 얼굴로 “굿모닝!” 하며 걸어 들어 가는데 모두들 이곳 저곳에서 몇명씩 무리로 모여서서 뭔가를 수군수군하며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었다. 내가 궁금해서 그들 가까이 가자 그들이 나에게 몸을 돌리며 “하이! 그레이스. 너 어디 살지?”하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리치포드길에 산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들이 깜짝 놀라면서 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더니 “너의 집에 어제밤에 아무일 없었어?” 하며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어정쩡하게 대답을하며 그들에게 “왜?” 냐고 되 물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야! 어제 밤에 토네이도가 너희 동네를 싹 쓸고 지나갔어! 그것도 몰랐다니?” 라고 소리를 높이며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 보고 왁작지껄 난리들인 것이었다.

나는 도대체가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되는 중에 그럭저럭 일을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급하게 서둘러 운전을 해서 달려 와서는 우리동네 입구에 들어서면서 늘 내가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쪽 길을 통해 들어가 보았다. 그 길로 차가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놀라움의 외마디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들은 온 동네가 밤 사이에 폭격이라도 맞은 것 같은 그런 참혹한 눈 뜨고는 차마 볼수 없는 동네의 모습이었다.

옛날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자연 재해를 입은 도시의 참상을 사진이나 기사를 통해 본적은 있었지만 그런 참혹한 광경이 내 눈앞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다. 큰 고목이 쓰러지면서 반 동강이가 난집, 그리고 어느 집은 이층 전체가 어디론가 날라가 버려서 아이들이 갖고 노는 인형의 집처럼 집안이 훤히 다 들여다 보였다. 차고가 옆에서 쓰러진 큰나무에 납작하게 푹 가라 앉아버린 집, 파킹랏의 나무가 차 두대를 한번에 덮쳐서 폐차장의 앞축된 폐기 직전의 차 모습으로 찌그려 놓은 모습, 그리고 온동네 주위는 어데로부터 날라왔는지 오만가지 쓰레기 더미로 인해서 차가 맘대로 지나 다닐 수도 없는 아수라장의 귀신이 어디선가 튀어나올 듯한 동네 분위기였다.

나는 넋을 놓고 참상을 보고 있다가 우리집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서 차를 돌려 집으로 들어오는 길로 차를 향했다. 나는 우리집 골목길로 들어서면서 또 한번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우리집 쪽의 켐프화이어 길은 정말 다른 세상인양 아주 고요하게 예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채 평화로운 모습인 것이었다. 그 줄 선상의 집들은 어느집도 상처를 입은 집은 없는듯 보였다.

나는 우리집 앞에 당도를 해서 차를 멈추고 집을 살펴보았다. 바로 오늘 아침 우리집에 이른 새벽부터 달려와서 집을 살피고 간 그 부부들 처럼 나도 똑같은 곳에 차를 세워놓고 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 집의 모습은 우스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벽면 곳곳에 다른 집에서 날려온 보온솜과 석면들이 붙어 있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낮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곳도 다친 곳이 없었다. 집 뒷뜰로 돌아가 보니 집 뒤에 놓여 있던 쓰레기통 조차도 넘어지지 않고 그대로 서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이리 멀쩡하게 남겨진 우리집이 너무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TV를 켰다. 모든 방송의 체널마다 그 전날 밤의 참혹했던 현장들을 생방송하며 온 지역이 난리 법석들인 것이었다. 어느 부부는 이층에서 정신 없이 자는 중에 윗층이 날라가면서 침대가 아래층으로 떨어져 사고가 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집안에 놓여있던 피아노가 날라 가버려서 온데 간데 없어지고 또한 그 동네의 ‘K-마트’라는 큰 매장안의 냉장고 TV 같은 전자 제품들과 모든 물건들이 모두 날라가 버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넓은 공터만 남아 있는 것이었다. 길가에 세워진 조명등의 굵은 철기둥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정말 무서운 밤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넋을 잃은채 텔레비젼을 보다가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전화를 받으니 우리와 같은 동네에 살며 같은 교회를 다니는 혜진이 엄마인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흥분된 목소리로 어제 밤에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애기엄마 집도 큰 고목이 쓰러지면서 차고가 망가졌다는 것이다. 그들 식구가 잠을 자던 중 차고가 부서지는 굉음에 놀라서 깨어 집 밖으로 뛰쳐 나가보니 태풍이 쓸고간 엄청난 피해가 눈앞에 기가 막히게 벌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혜진이 엄마는 만일 그 큰 고목이 차고에 안 넘어지고 집위에 넘어졌다면 자기 세식구는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라며 무서움에 떨며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 부부는 그런 엄청난 사건 중에도 우리 식구가 걱정이 되어서 우리집으로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숨을 헐떡이며 켐프화이어 길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 부부는 헐떡이던 숨을 순간 멈춘채 놀라운 광경에 할말을 잃고 넋이 나가서 멈춰 섰다는 것이었다. 그길 선상은 정말 다른 세상에 있나 착각을 할 정도로 어느집 하나도 상하거나 쓸어진 나무도 없더라는 것이었다. 너무도 평화로운 고요속에 집들이 불이 모두 꺼져 있는채 잘들 자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혜진이 엄마는 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이 쌍둥이네를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와 대화를 하고 난 후 나의 심령에는 한 없는 감사와 고요한 평안이 흘러 넘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날 저녁예배 설교말씀의 본문 성경 귀절이 입가에 맴돌았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너무나도 보잘것 없고 부족한 우리 가정을 그날밤 이사야의 말씀대로 눈동자같이 무서운 역경속에서도 보호하여 주셨던 것이었다.

만일 그 당시 그 집이 망가져서 팔지를 못했다면 그해 가을 남편은 학교 시작을 못했을 것이다. 나의 보잘것 없는 신앙은 늘 어리석은 걱정이나 근심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계획을 늘 이해하지 못하고 괴로워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한 때가 아닌 당신의 때에 맞춰 일을 진행시키시는 것이었다.

내가 지구속에 살아가면서 지구 밖의 우뢰와 같은 엄청난 소리는 들을수 없는 것처럼 오늘도 나는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울고 웃으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어마어마한 인류를 향해 펼치시는 사역을 도대체가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매일 죄를 짓고 회개하는 평범한 피조물인 것이다. “주여! 늘 어리석은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