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떤 영화든지 나이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영화 `시`만큼 연령과 성별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영화도 드믈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 두분의 감상문을 봤는데 영화를 보는 관점이 아주 다름이 이채로웠다.

그래서 이 영화를 더 보고 싶었다.

 

주인공은  파출부 일을 하며 딸 대신 손자를 기르는 66세 미자 할머니(윤정희 扮)

고운 꽃장식 스카트에 꽃무늬 브라우스,그믈 스카프,챙있는 모자 차림을 늘 고수하는  미자는

꾸미기를 좋아하나 촌스러운 경지는 넘지 못하는  수준에 문학소녀가 늙으면 그리 될 것 같은

여성성을 잃지 않은 할머니이다. 

사분사분한 말씨,가만가만한 걸음걸이.......그녀는 어느날 문화센타에 시강좌에 등록하여 시 쓰기를 배우려 한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에 그 반에는 소도시에 사는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섬진강 시인이라는 김용택 시인이 선생님이다.

자기 인생에 아름다운 순간이 언제였냐는 화제가 수강생들에게 주어진다.

영화의 수강생들이 주저리주저리 자기 얘기를 하는 동안 관람객인 나도 나는  어느 순간이었지?  감정이입이 된다.

이렇다할 한 순간이 떠오르지 않음은 아름다운 순간이 너무 많아서인지 아름다운 순간에 너무 절대가치를 부여하는 심각함 떄문인지 헷갈리는 동안 영화는 느슨느슨 흘러간다.

 

미자의 손자는 중학교 삼학년인데 성폭행 후유증으로 자살한 여학생 사건 가해자 여섯명 중 한명이다.

가해자 아버지들이 모여서  오백만원 씩 걷어 합의금으로 주자는데 미자에게는 오백만원도 없다.

가해자 아버지들은 딸에게 말해 돈을 구하라지만 미자는 그러잖아도 불쌍한 딸에게 아들(미자에겐 손자)의 탈선을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잡동사니 너절한 좁은 아파트,게으르고 한심한 손주,간병인 겸 파출부 일........

그런데 66세의 미자는 시를 쓰려 한다.왜일까?

그녀는 알츠하이머 병 초기이다.의사는 지금은 명사를 잊어버리다가 조금 지나면 동사를 기억못할거라 진단한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녀에게 `시`란 실날같은  희망을 잡기위한   마지막 구원의 손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장면, 시를 쓰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미자는 드디어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를 쓴 원고를

시 창작반 탁자에 두고 사라진다.

 

영화를 보면서 60대 여자의 행복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아릿답던 여배우 윤정희의 늙은 모습이 영화보는 내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레타 가르보가 늙은 자기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던데 비로소 이해가 됐다.

뭐니뭐니 해도 시간이 가장 잔인한 것을 새삼 느꼈다.

영화 속 미자 할머니가 그리도 여리게 보이지 않고 여장부 스타일이었으면 내 마음이 덜 아팠을 것 같았다.

잔인한 세월에 外暴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 철옹성을 쌓는 일  같기만 했다.

노인의 性이 어떻다고들 하지만 그건 슬픔만 줄 뿐이었다(영화 속 간병 노인의 경우 김희라 扮)

 

영화는 늙어서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老醜에 속하지 않을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한다.

`시`는 60대 우리가 보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