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 집으로 다시 돌아 왔습니다.

즐겁고도 무거운 임무였던 '손자 보기 프로젝트'를 5개월 반 동안

제대로 수행하고 돌아온 것이죠.

그동안 딸과 사위, 내 눈앞에서 싸운 일 한번도 없이 잘 지냈고

아기도 큰 사고없이..아니, 꼭 한번 침대에서 떨어뜨리고 한번은 감기를 앓았지만

이제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자라고 있으니 만족할 만한 성과라고 할수 있지요.

떠나는 전날 밤에는 사위의 제안으로 셋이 앉아 기도까지 함께 했으니 멋진 마무리였어요.

 

문제는 홀로 남아 있던 남편과 집구석 형편입니다.

차마 그럴줄은 몰랐던 것은 아니예요. 워낙 대강 사는 양반이라서요.

자기가 아끼는 마루 바닥만 반질 하게 해 놓고

집안 구석구석 먼지가 켜켜로 쌓여있음은 물론

나 오기 전날 김치병을 엎지른 채 내버려 둔 냉장고며

씻지도 않고 올려놓은 것 같은 그릇들과 유리 잔들..

밥솥이 그렇게까지 더러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

부엌 살림이 더 이상은 도저히 봐 줄수 없는 홈레스 수준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집에 도착한 그 시로부터 부랴사랴 냉장고 부터 샅샅이 씻기를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이 어렵지, 손에 붙으면 청소하는 것도 재미 있는 일이 아니겠어요?

젊고 바빴던 때는 청소가 왜 그리 귀찮기만 했었는지 몰라요. 

게다가 최근 손자 보면서 집안일 하는 것 보다는 조금 더 쉬웠고, 

덕분에 오랜만에 반짝반짝 새것처럼 변한 냉장고를 보니까 신이 나더라구요.

 

손에 닿는대로 씻고 또 씻으면서 보니 정말 철저히도 더럽더라구요.

이런 집에 사람들을 불러 들여 식사 대접도 몇번 했다고 하는데

정말 철들줄 모르는 무식용감한 남편때문에 얼굴 뜨뜻해 하며 닷새 꼬박 일했습니다. 

 

엣날에 남편을 집에 두고 친정 나들이를 한 부인 이야기 들어 보셨지요?

남편이 얼마나 게으른지 잘 아는 그녀는 떡을 해서 실에 꿰어 남편 목에 걸어 두고 갔더래요.

배 고프면 하나씩 떼어 먹으라고요.

그런데 다녀 와서 보니 남편은 누워 있고 목에는 떡이 말라 붙어 그대로 다 있는데

글쎄, 굶어 죽어 있었더라..는 우스개 소리죠.

 

내가 집안 꼴 더러운 것 때문에 게으른 남편 흉을 보았더니

그동안 혼자 잘 지낸것만 해도 황송하게 여길것이지 무얼 그러냐고 오히려 내가 뻔뻔한 사람 처럼 생각하는 친구도 있고,

혼자서도 잘 챙겨 먹어서 살이 좀 붙었으니, 그만하면 한국 남자치고 잘 했다고하는 사람도 있으니 할말이 없어집디다만

다음날 아침 뒷마당에 나가 보고서는 결국은 화를 내고야 말았네요.

 

베란다로 내다 보이는 뒷마당에도 잡풀이 없지 않았지만 이해 할만은 했었어요. 아마 거기는 조금 손을 댔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집 양 옆쪽 안보이는 데는 허리까지 오는 잡초가 빼곡이 늘어서 있더라구요.

지난번 두세달 전에 다녀 갈때 내가 손을 본뒤로 한번도 나가 보지 않은 모양인데

더운 피닉스 기후에 무성히 자라서 이제는 뽑기도 힘들 정도로 커 버린 거예요.

걸으러 나간 남편을 기다릴 새도 없이 누가 볼까 무서워 뽑아 쌓기 시작하는데

아이구야 정말 속상해 미치겠습디다.

 

세탁소하면서 살때도 동네에서 쫓겨날까봐 그정도는 안되게 하고 살았는데 아무것도 할일 없는 양반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비명이 나오기 시작하데요. 

집안 일이야 백번 이해 해 줄수도 있지만 바깥일까지 나보고만 하라고라?

마침 들어온 남편에게 쏟아부었죠.

글쎄 굶어죽지 않은 것만 감사해야 할까요? 게을러 빠진 남편, 어쩌면 좋아요?

"서방을 팝니다"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저도 그 시인과 딱 동감이 되고 말았어요.

 

언제나 무슨 일을 시키면 "내일 할께.." 그럽니다. 내일은 영원히 안 오니까요.

내가 화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어요.

평생 싸우기 싫어서 내가 혼자 해 치우곤 하는 집안일을 남편보다 내가 열배쯤 하는 것으로 항상 낙착을 짓고 마니 이거야 약올라 살수가 있느냐고요.

물론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지만요.    

 

남편에게 당한 세월들...대체 누구에게 탓을 할 건가요?

아들이라면, 또 공부좀 한다면 집안일 손도 못대게 하고 키운 한국 엄마들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요?

아니면 어떤 목사님 말씀 맞대나 같이 산 세월이 수십년 되었으니 그동안 버릇 못잡은 것은  완전 "내 탓이로다!" 마누라 탓이기도 합니다.

 

이제라도 제발 아들들 집안 일도 좀 시켜가면서 공부시키자고요.

남편들도 집안 일 잘 돕지 않으면 굶기기라도 하면서

한국 남자 길들이기에 모두 마음을 합해야 할게 아닙니까?

게으른 한국 남자, 인기가 바닥이래죠.

벌써 소문나서 한국 남자들 장가 가기 힘들답니다. 

발 게으름을 대물림 하지 맙시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 하신 성경말씀을 기억하면서 넉두리를 마칩니다.

(2010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