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대한 민국 땅에서 봄이면 쉽고 ,흔하고,부담없이
볼 수 있는 겸손하고, 순한 진달래와 개나리!
민속촌에서도 곳곳이서 구경꾼들에게
소란피우지 않고 반겨주며 마냥 상냥했다.
길가에서, 냇가에서,뜰안에서도, 담 너머로 고개 내밀며...
지금 쯤 꽃날개 땅에 떨구고 연녹색 옷으로 갈아 입고 있으리라.
찬란한 벗꽃,산수유, 매화꽃들도 잊을 수없다.
종심이가 분류를 잘했구나
정말 제일 흔하면서도 마음을 푸근하게 안정시키는
친근한 꽃나무들이지
변치않고 우리곁에 있어주는 노랑 분홍색의 꽃들,
종심아
애썼다
독일가서도 계속 나와줄거지?.....
이종심 선배님, 안녕하세요?
용인 민속촌의 봄꽃들이 소박한 듯하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눈길을 잡아끕니다.
마지막 사진에서
중문 안으로 보이는 분홍 진달래와
담 옆의 노란 개나리의 조화로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안 보이는 저 안쪽 마당에서
반가운 누군가가 곧 나올것만 같군요...
정우야!
유혜동후배야!
반갑다.....자주 얼굴 봐.
종심아!
개나리 진달래가
우리나라의 꽃처럼 소박하고 참 친근하다.
봄에 노오란 개나리는 희망을 상징한다지...
또 축복을 의미하고
꽃이지면 파아란 잎이 냉중에 나오고...
그래 사랑하는이에겐
희망과 축복 행운을 뜻하고
돈도 많이 들어오라는 의미로
노오란 이불을 선사하는 풍습이 있다네.
알았는가?
그리고 언제 양국씨
민속촌에 나들이하며
초창기에 큰 일하신것 설명도 해 보세요
참 의미 깊은 일이시네요.
종심,
날짜가 하루하루씩 짧아가고 있네.
곳 곳에 피여있는 진달래들이 모두 다른 이모션을 보이고 있구나.
혜동 후배 말 처럼,
문안에 소복한 진달래 너무나 운치 있다.
진달래는 먼산에 홀로 외롭게 핀 꽃이 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문안에 곱게 핀 진달래는 갓 시집온 새 아기 만큼이나 화사하고 조신하구나.
네 가 무심코 누른다는 프래임이 자주 기쁨과 놀라움을 가져다 주는거 너 알아?
얼마나 예리한 관찰력인지! 아니면 타고난 "눈" 이겠지?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고향의 봄 이구나
감사해.
지천에 핀 진달래를 보니까
우리 아버지가 너무 너무 즐겨 부르시던
" 먼 산에 진달래 울 굿 불굿 피었고....." 가 생각이나
눈믈이 나네
미국 노래 "몰리 달링"에 한국 가사를 부친 노래야
들어봐
먼산에 진달래
울긋불긋 피었고
보리밭 종달새
우지우지 노래하면
아득한 저 산 너머
고향집 그리워라
버들피리 소리나는
고향집 그리워라.
종심언니의 용인 시리즈가 이걸로 끝이군요.
독일 가시는 날이 다 되가는 모양이네요.
언니들 덕에 눈호사 원없이 한 봄이었어요.
어디 안가도 몇 달씩 잠적하시는 분들 많으시니까 일부러 멀리 가셨다는 생각은 안할래요.
혜경언니 이 노래 정말 오랫만에 들어요.
아버님께서 이노래를 즐기셨군요.
평생을 자식들의 수호천사셨던 울 아버지가 몹씨 그리워지네요.
저희는 아버지를 야구인으로는 별로 의식 안했었는데 요즘 야구 시즌이라서
매일 시합하는 거 보면 역시 아버지 생각이 나요.
종심이가 떠날날이 몇일 않남었지.
덕분에 민속촌과 그곳의 아름다운 진달레 구경 너무 잘했고
그리고 기와집의 기와장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네.
진달래는 한국에만 있는것일까?
연분홍 그리고 보라색의 진달래를 이번에
호사스럽게 덕분에 잘 감상했네.
그럼 독일에 잘다녀 오기를....
쫑심아!~~~~~~
이것으로 한국에서 올리는 사진 마지막인겨?
아니지?
민속촌 씨리즈만 마지막이지?
난 네 사진첩에 들은 무궁무진한 사진을 알고있거든~~~
가기전에 좋은 사진 올리라구 하면 너무 힘들게 하는건가?
모쪼록 기운빼지 말구 남은 몇일 잘보내구 독일가기 바란다.
혜경아,
아니 그노래가 우리노래곡이 아니었구나?
너무나 친근하고 정겨운 노래인데,
몇십년을 잊고 있었던 곡인데
반가움에 눈물이 나려하네,
백령에서
쓸쓸했나?
정우 잘있지?
나도 그노래가 한국 동요 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우리가 아주 아주 어렸을때 부터 기분이 좋으시면
부르시곤 했는데
그 가사를 쓴 사람이 월북울해서 이젠 금지곡이 되었다고 네이버에 쓰여 있더군
지금 다시 그가사를 되새기니
진하디 진한 고 향 생각이였었는데
아버지가 자주 부르실때는
우린 전혀 그 감정을 알아 채리지 못했지.
이제 이렇게 멀리 뗠어져 살고 보니
저 간단한 노래말에 가슴이 져리네.
정우도 그런 느낌 일꺼야. 반가우면서도 먹먹한.
모두 모두 안녕?
진달래 동요 노래 들으니 왜 이리 가슴이 뭉클할까?
나도 이 노래가 우리 곡인 줄 알았는데...전혀 몰랐지.
또한 금지된 곡인지도 몰랐네. 아직도 일까?
얼마만에 들어보는 곡인지~~~~!!!
위의 노래는 1957년에 불렀으니 우리 국민학교 4 학년 때네.
온갖 추억들을 불러 일으켜주는 그리운 곡이구나.
혜경씨가 돌아 가신 아버님을 회상하면서
더구나 아버님이 고향을 그리워하시면서 부르시던 진달래 노래를 올려 주시니
저도 가슴이 웅클해 지네요
기타 연주곡을 들으니
잊혀졋던 멜로디가 가물 가물 생각나면서
어린 시절 추억과 함게 떠나온 고향이 생각나게 하는 군요
?<그후 용인 민속촌>?
용인 민속촌 감정은
설립자가 자금이 모자라 은행에 융자를 받으려고
감정을 의뢰하고 감정 가격에 의해 융자금를 받는 것이였는데
그 길목에 못난 제가 있었던 것이지요
의뢰자는 투자금액에 더하여 알파까지도 요구하는 입장인데
반하여 나는 정말로 투자금액이 맞는지 그걸 조사하여 가격을 매기는 것인데
처음 부터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가격을 깍는 것이 능사인 줄 알고 얼마나 가격을 짜게 매김 했는지
나중엔 회사 직원과 언쟁까지 하게 되었지요
건물 가격이 투자비에 못미치는 부분은 토지분에서 얼마큼은 보상을 해 드려지만....
융자금은 정부의 산업 정책 자금으로 이자가 싼 자금으로 설립자에게
정부가 어느 정도 보상을 한 것이지만 설립자가 문화재 노굴 사건과 연류되면서
민속촌이 부도가 나고 말았지요
그후 박대통령 시절 관료 실력자 ㅈ아무게 인척이 인수하여 현재의 소유자 입니다
민속촌내에 있는 양조장은 정부에서 허가한 쌀로 술을 만들어 팔 수 있는 2곳중 하나로 경주 법주와
민속촌 양조장이였는데 쌀로 빗은 술은 민속촌에서만 먹을 수 있었고 반출이 금지되었는데
나 한테는 특별히 업무를 마치고 나 올 때 쯤이면 민속촌 직원이 작은 프라스틱 통에 술을 담아
차에 실려 주곤 햇습니다
그 시절엔 어느 누구도 쌀로 술을 못 담그게 한 것이 박대통령이시지요
부족한 쌀을 조금이라고 아끼실려는 박대통령의 고육지책이였으나 관광 산업에는 예외를 인정한
것이랍니다
지금 남아 도는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쌀막걸리를 권장하는 지금과는 격세지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