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일.
인일여고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렀다.
고속버스를 타고 인천터미널에서 내려, 21번 버스를 타고 동인천으로 갔다.
옛날엔 눈감고도 다니던 동인천.
몇 번을 묻고 또 물어 인일여고를 찾아갔다.
인일의 정문에 서니 왈칵, 서러움 같은 게 솟구친다.
35년.
긴 세월이다.
흘러간 버린 세월을 나는 서러워했던 것일까.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 나는,
인일여교 교정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원형교실이 없어졌다.
분수대도 사라졌다.
운동장의 위치도 변했다.
점심시간이면 앉아 있다가 오던 뒷동산도 작아졌다.
토요일이라,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교실을 나온다.
그 옛날의 우리들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우리는 무거운 가방을 팔이 아프도록 들고 다녔는데,
지금은 멜빵 가방을 사뿐하게 등에 걸치고 다닌다.
우리는 검정색 두꺼운 스타킹을 신고 다녔는데,
지금은 얇고 투명한 살색 스타킹을 신었다.
우리는 귀밑 2센티 단발머리 일색이었는데,
지금은 긴머리 짧은 머리가 다채롭고 자유롭다 .
변했다.
모든 게 변했다.
하늘만 그대로다.
햇빛만 바람만 그대로다.
나는 두 개의 가방을 들고 갔다.
하나의 가방엔 친구들에게 나눠줄 친환경 수세미를 넣었다.
100% 아크릴사는 기름기를 잘 흡수하고 분해하는 성질이 있어,
미생물이나 세균 번식을 억제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친환경 수세미를 떠서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곤 한다.
"참기름보다 아껴야 하는 것이 세제랍니다"
주방 세제의 사용을 줄여 수질오염을 완화시키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한다.
분홍빛 원피스 모양으로 뜬 친환경 수세미.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니, 다들 좋아라한다.
그래.
모든 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하늘 햇빛 바람 공기........
변하지 않는 것을 지켜야 한다.
비누랑 샴푸도 줄이고, 주방 세제도 적게 써야 한다.
나의 후손들에게, 변하지 않는 것을 깨끗이 물려줘야 한다.
나도 변했다.
몸무게가 늘어서, 인일여고 시절의 날씬한 모습은
온데 간데가 없다.
그러나
나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을 해도 목숨을 걸만한 가치관이 없다면
얼마나 허망하랴.
인일의 그 정신, 인일에서 배운 것을 나는 잊지 않앗다.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는 인일의 가르침을........
변하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인일여고 나들이.
친환경 수세미를 나눠준 빈 가방에,
나는 또다시 100% 아크릴사를 사 넣어야 한다.
5월의 햇빛이 빈 가방을 따라온다.
인일여고를 들어설 때 왈칵, 치솟던 서러움이 햇살에 부서진다.
그래.
이젠 서러워할 틈이 없다.
얼른 돌아가서 친환경 수세미를 하나라도 더 떠야하니까.
명숙아, 잘 갔구나.
네 글을 보니 왜이리 눈물이 나니?
그래, 우리가 간 그 곳은 모든게 변해있더라.
장미도 보기 힘들고 분수도 사라졌으며
점심시간만 되면 열심히 오르던 동신도 구석에 쳐박히듯 외면 당하고
우리 IPS물상 배우던 과학실도 사라지고
처음에 들어가 미로 게임을 하듯 신기해 했던 원형교사도 사라지고...
풋풋하고 순수했던 우리들 그 마음이 가장 조금 변한 것에 감사해야 하나?
변했을 것을 알고 갔는데도 그리 마음이 싸 해지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련가?
명숙아, 네가 준 그 수세미 너무 예뻐 일단은 넣어두었어.
너의 그 예쁜 마음이 뭔가 훵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마음을 슬며시 채워주는 것 같다.
네가 우리의 친구라는 것이 고맙다.
친구야, 오징어!
왜 항상 일은 겹치는가 몰라.
토요일도 일이 겹쳐 인일에 가는 것을 많이 망설였는데
정말 가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신영이는 수세미 아까워서 넣어두었다지만
난 오자마자 멀쩡한 수세미 버리고 명숙이가 준 것으로 바꿨어.
설겆이 끝내고 물기도 뺄겸 한 켠에 걸어두었더니
평범한 주방이 환해보인다.
이 수세미는 예쁘기만 한게 아니라
도톰한 볼륨덕에 설겆이도 참 잘된다. 아주 작은 세제에도 거품이 부글부글...
명숙이 얼굴엔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있더라.
수줍어하던 그 옛날처럼 여전히 쑥스러워 하던 그 순수함!!
우리 친구들은 다들 나이들지 않는 소녀들같아.
각자가 살아온 삶의 모습은 다르지만 마음들이 참 곱다.
신영이 말처럼 우리들이 친구라는게 참말로 고맙다.
친구들아, 어제 친환경 수세미 못받은 사람 손들어. ㅎㅎ
다음에 만나면 꼭 줄게.
너희들을 위해서는 매번 가방을 두 개 씩 들고 다닐게. ㅎㅎ
연옥아, 정인아, 재숙아.
집행부에서 고생많았다.
수고하심에 백배로 복 받으시옵소서^^
정인이 애쓴 덕에 인천을 새롭게 보게 되었지.
프린트해준 거 잘 갖고 있다가, 나중에 찬찬이 돌아볼게.
옥규야, 떡 잘 먹었어.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저녁으로 먹고, ㅎㅎ
오늘 아침에도 식구들이랑 냠냠.^^
선옥아, 인일 12기 깃발든 네 모습 멋졌어.
깃발을 따라다니던 시간들, 참 즐겁고 소중했지.
결혼식에 갔다가 헐레벌떡 달려온 정숙아 고맙다.
운동회 마치고 땀도 못 식히고 뛰어온 경숙아 고맙다.
돌아올 때, 차 태워준 은숙아 인순아 고맙다.
혜숙아, 찬조해줘서 고맙다. 분위기 있는 찻집에서 차 잘 마셨어.
모두 모두 반갑고 고맙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스~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