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현상

 

친구들과 헤어진지도 ? 1주일이 되었다.

희옥에게 '졸업45주년 그날의 스케치(5)'를 꼭 쓰겠다고 약속을 해서 컴 앞에 앉기는 했다만

어디를 다녔는지, 어디까지 쓴지도 가물가물하다.

어디를 다녔던, 무엇을 보았던 지금에 와선 아무 상관이 없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4월 25일 밤 8시 비행기로 떠나는 친구들을 7시에 게이트로 들여보내고 나는 원주행 버스에 올랐다.

즐거움에 푹 절였다 꺼낸듯 웃고 떠들며 보낸 2주간에서 나는 헤어날 수가 없었다.

말소리가 들리고, 자즈러지던  웃음이 귓전에 맴돌고,

기억속에서 꺼냈던 추억이 제자리를 찾지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에 왈랑증이 생기며 

눈에서 막 물이 솟았다. 

내가 왜 이러나 싶어 큰 기침을 하고, 눈을 껌뻑여도 마찬가지였다.

첫사랑과 헤어질때도 마음이 이리 허하지는 않았는데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쪽에 사는 ㅅ, ㅁ,ㅈ,에게 문짜를 보냈다.

나한테 왜 이런 증상이 생겼는지 걔는 혹시 알까싶어서.

그놈은 한술 더 떴다 .

대짜고짜 코맹맹이 소리로

"야, 친구들 먼길 떠나는데 울지마라. 난 그래서 지금 찬 물에 세수하고 왔다." 

지는 더 슬펐으면서...더 먼저 울고 있었으면서... 

 

지금도 또다시, 또 다시 눈에 물에 핑핑돈다.

내게 아직 금단현상이 남아있나 보다.

헤어짐이 슬퍼서는 그런거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아니고는 그때를 얘기 할 수가  없기에.

그리고 그 때의 아픔을, 그때의 회한을 발설했다는 자체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었나보다.

 

왜 대학에 못갔는지를.

원서가 마감되던 날 장독대에서 서럽게 울었던 일을.

가난했기에 사랑한다며 가까이 오는 그 사람을 피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형제들의 도움이 부담스러워 집을 떠나고 싶어 택했던 결혼.

남자의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2살 연하)애써 그의 진심을 외면했던 일.

아버지의 외도로  우울했던 학창시절.

꿈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가버린 친구.

사업실패로 보따리를 싸야했던 남루한 이야기.

남편의 죽음으로 감내해야 했던 힘겨운 현실. 

등.등.

각자의 길을 걸어 우리는 45년만에 한자리에 만났다.

 

나는 이번에 '시간과 생각'이란 단어에 천착했다.

모였던, 들었던 친구들의 현황을 보며, 내가 알고 있던 그녀들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대입해보는 과정을 혼자 즐겼다

어떤 길을 걸었던, 어디에 뜻을 두고 무슨 생각을 가지고 시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남이 즐거웠다면 우리 모두는 승리자요, 성공한 자이다. 

 

내겐 여전히 금단현상이 남아있다.

자꾸 보고 싶고, 자꾸 생각나고, 먹어도 속이 채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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