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 안에 밥 먹을 테이블을 정리하고.. 6시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뷔페음식이 부지런히 놓여지고.. 접시들도 자리를 잡고, 더운 음식엔 불도 지피고...

난로에서는 불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식사 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

 

누군가가 선생님께서 기도를 드리시게 하자고 했고 우리는 모두 음식앞에

둘러서서 손에 손을 잡았고.. 선생님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를 축복하는 기도를 하셨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린다.”

는 말씀으로 기도가 끝나고 저녁식사가 시작 되었다.

 

여러 가지 음식이 고루고루 차려졌고, 형형색색 진수성찬이었다.

음식을 접시에 담아서 오순도순 끼리끼리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2부의 여흥순서가 시작 된다고 하며 문자는 친구들을

이끌고 모두들 방석을 들고 노래방 기기가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갔고,

난 홀로 남아 두 도우미 아주머니와 남은 음식 정리를 시작했다.

 

빈 그릇과 음식찌꺼기, 쓰레기를 따로따로 모아 정리를 끝냈다.

애고.. 힘든다. 이제 다 끝났구나. 한숨 돌리고는 박수 소리와 노래 소리가

흥건한 식당으로 갔다.

 

오호라!! 여기는 가히 노래와 개그가 합쳐진 콘서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일식씨 두식이놈 삼식이 세끼를 들먹이며 춘자 후배와 명애후배

그리고 칠화후배 3인의 기쁨조 공연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언제 준비를 했는지... 빨강 파랑 가발에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으로

언니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데... 어느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이 우리를

그렇게 웃길 수가 있을까?  세 사람이 손발을 맞출 사이가 없었을 텐데..

언니들을 모두 일으켜 세워 춤을 추게 하고...

 

순발력 뛰어난 춘자 후배의 말솜씨에 보조를 맞추고 후렴을 넣는 명애후배

그리고 노래에 춤에 몸을 아끼지 않고 재롱을 떠는 칠화 후배까지

순식간에 10년은... 아니 20년 30년은 젊어진 듯했다.

 

거기에다 춘자 후배는 언니들의 노래가 처지거나 분위기가 다운 된다 싶으면

사진 찍기에 분주한 권오인씨 까지 불러내어 분위기를 확 끌어 올리는

솜씨를 발휘했다.

 

아니! 그런데 권 선생님께서는 준수하신 용모에 사진도 작가 수준이시라 하고...

노래는 어찌 그리 잘 부르시는지?

춘자 후배의 분위기 띄우기 특명을 충실히 수행을 하시고 계셨다.

친구들이 모두 흥에 겨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데...

문자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몇 시에 돌아가느냐고 묻는다.

 

오늘의 행사를 마치고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친구들 모두

내일은 인천에서부터 타고 온 버스로 경주와 거제도의 외도 등으로

추억의 수학여행을 떠나기로 예정이 되어 있는 터 였는데...

나는 처음부터 여행에는 참가 할 수가 없노라고 했었다.

 

금요일 토요일에 오래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어서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친구들이 다음날인 목요일이라고 함께하자고

모두를 권하는 바람에 그럼 오늘은 부산으로 돌아갔다가 내일 아침 일찍

이곳 양산에 와서 합류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었기 때문에 부산에 몇 시에

돌아가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내가 9시쯤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야!! 너 돌아갈 때 권 선생님을 구포역까지 모셔다 드릴 수 있느냐”

고 묻는다. 구포역? 난 부산에서 30여년을 살았어도 구포역에는 아직

한 번도 가본일이 없었다. 길을 몰라도 네비게이션이 있으니 네비가

시키는 데로 가면 되겠지만... 며칠 전부터 이 네비는 영 손가락질이

먹히질 않는다. 아마도 그동안 네비에게  너무 많은 손가락질을 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밖은 어두워 비까지 주룩 주룩 내리는데... 가보지도 않았던 구포역에

네비도 없이 가려니까 자신이 없다. 오래전에는 밤에 운전을 제법 했지만

근래에는 한 2년이 넘도록 밤에 운전해 본 일이 없는데...

 

구포역보다는 부산역이 가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부산역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일찍 나가면 될 것 이라고 하고 8시 45분쯤 떠나면 기차시간에 맞춰

부산역까지 갈수 있을 거라고 계산을 했다.

마지막으로 권선생님의 요구에 모두들 단체사진 모드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직 여흥을 즐기고 있는 시간 8시 40분에 나는 서둘러서 떠날 준비를 했다.

행사장 앞에 주차된 차를 식당 문 앞으로 옮겨놓는데 문자가 뭔가를 두 개 들고 나와

차에 싣는다.   뭐냐고 물으니... 오골계 알을 두 판을 실었단다.

하나는 권선생님 드리고 하나는 날 위한 것이라고..

 

모두의 인사를 받으며 권 선생님과 나는 차에 타고 양산을 떠났다.

운전 경력이 20년은 되었지만 아무래도 오래 동안 하지 않던 밤 운전에

비까지 내리니 조금은 서툴렀다.

거기다가 양산에서 직접 부산역까지는 초행길이라서 권선생님이

불안해하실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빨리 부산역에

도착을 하였고, 댁에 들어가실 시간은 새벽 1시 30분이나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내릴 때는

“선배님 덕분에 편히 왔습니다.” 인사가 깍듯하다.

문자가 싸준 오골계 알을 한판 가져가시라고 드리고,

 난 10시 30분쯤에 집으로 돌아왔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이친구들 재잘재잘 밤잠이나 자겠나?

하루 일을 생각하면서 나도 밤 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일찍 아침을 먹고 설거지도 미뤄놓고 8시에 집을 나섰다.

집에 있던 책 이미륵 평전을 5권을 가지고 갔다. 이미륵씨는

나의 외할머니의 막내 동생이시니, 즉 우리 어머니의 외삼촌이시다

얼마 전 미륵할아버지의 평전이 나왔는데.. 우리 집에 보내온 것 중에

5권을 챙긴 것이다. 많은 친구들 모두 줄 수는 없고 마침 강순옥 선생님과 

김춘자 김광숙 그리고 권칠화 조명애 후배들에게 나눠 주리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양산에 도착하니 마침 9시였고 친구들은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떠나려는 버스에 올라 친구들에게

“책이 많아서 다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너희들은

돈을 주고 사서 읽어라”

고 하고 선생님과 광숙 춘자 후배 그리고 칠화 명애 후배에게 책을 주었다.

다시 걷기를 시작하려는 명애, 칠화 후배가 남았고, 문자와 나는 나머지

남아있는 일들을 정리하고 내 차로 경주에 따라 가기로 하고..

버스는 추억의 수학여행을 떠났다.

 

명애후배 하는말이 춘자 후배는 칠화 명애 후배들을 밤새 잠을 안 재웠다고 한다.

명애 후배는 감기는 눈을 어쩌지 못하고 황토방에서 잠시 쉬었으면 좋겠다고

하여 문자를 뺀 우리 셋이서 황토방에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이 걷기를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앞에서도 말했듯 그녀들이 걷기를

시작한 동기가 조영희 후배의 책을 읽고 시작한 것이란다...

 명애 후배는 그 책을 읽고 뛰는 가슴을 어쩔 수가 없더라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뜻이 맞아 이번 걷기가 시작되었다는 설명이다.

순간 그녀들 두 사람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을 쉬라고 뜨끈한 방에 두고 밖으로 나와 문자를 찾으니 보이지를 않는다.

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번 일을 자기 농장에서 치루면서 그녀는 얼마나

애를 쓰고 신경이 쓰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안쓰럽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를 않는다. 어서 마무리를 하고 경주로 떠나야 할텐데..

 또 어디로 간 것일까?

 

한참동안 만에 그녀는 양산 시장에 나가 프라스틱 통 50개를 사들고 왔다.

그리고는 내게 친구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자기가 담아놓은 찹쌀고추장이라도

한통씩 주고 싶다며 시장을 다녀온 것이었다.

 

문자와 나 그리고 쉬고 있던 칠화 후배까지 나와서 셋이서 부지런히 통을 씻고

고추장을 담고 마무리해서 뚜껑을 덮는 작업을 하여 40여통의 고추장을 담았고

 칠화 명애 후배를 하나씩 나눠주었고 이제 곧 떠날거라는 두 후배를 남겨놓고

11시 30분이 다되어 나머지 고추장들을 차에 싣고 부지런히 경주를 향해 달려갔다.

 

전화 통화를 하니 그들은 통도사에서 막 떠나서 경주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도 부지런히 경주로 향해 질주 했다.

간간히 통화를 하니 천마총에서 안압지를 향하고 있다고 하여 우리는 먼저 안압지에

도착을 하여 아침에 떠난 친구들과 해후를 하고 같이 안압지를 돌아보고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엘 갔다.

 

미리 예약을 해 준비된 음식을 먹으면서... 이 점심의 성찬은 미국에 남아 있는

친구들이 함께 할 수 없는 마음을 담아서 45주년 파티에 참석한 모든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식사라고 한다. 그래서 여행에는 함께 할 수 없는 내가 점심식사에는

꼭 참석하기를 원해 이 식사를 위해 경주행을 하게 한 이유였다.

모두에게 막걸리가 따라 졌고.. 배정희의 선창으로 건배를 했다..

자기가 건배를 외치면 “재 건 축” 하란다..

뭐?  [재미있고 건강하게 축복받으며 살자] 라는 의미라고..

 

점심이 끝나고... 친구들은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늘 남은일정

불국사와 석굴암을 향하여..

 

여기까지가 나의 이틀 동안의 행사는 끝이었다.

문자는 친구들과 남은 여정을 함께 하기로 하고 버스에 합류했다.

나는 버스에 올라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 안녕을 하고 서울로 향하는

두 친구를 경주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주는 것으로 나의

모든 책임이 끝난것이다...

 

50주년 기념 축하 행사 때 모두들 다시 모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버스를 타고 추억의 여행을 계속하는 친구들아!!

좋은..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고 모두 즐거운 기분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가 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 줄 것을 부탁한다..

룰루랄라... 나는 혼자서 고속도로를 가벼운 마음으로 부산을 향해 달려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