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45주년이라... 그냥 나이 마흔 다섯도 많은데...

여고를 졸업한 후 45년이 흘렀단 말이잖아..

아이고... 참 나이를 많이 먹긴 먹었구나.. 배도 하나도 안 부른데..

어디로 그 나이를 다 먹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 나이는 모두 얼굴에 몸짓에 묻어 있었더라는거...

주름진 얼굴에 어둔한 움직임들이 세월이 흘렀음을 느끼게 했지만

모두들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석양의 낙조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매일 아침이면 인근에 야트막한 산에 1시간 반씩 부지런히 걷고는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니 산행은 집어치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전날 저녁 은희가 전화해 부탁한 맥주를 한 박스 사서 차에 싣고는

양산으로 줄달음 쳤다.

 

그런데 부산 양산간 고속도로는 평소보다 차가 많아서... 1시간 남짓 걸려서

소석농장에 닿았다.. 체험장인 농막 앞에 알록달록 풍선이 달려 있다.

이틀 전에 멀리 미국에서 온 희옥이 복자 그리고 강원도에서 온 현심이가

문자와 함께 풍선을 달고 그림 붙이고 제법 행사장다운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

 

혹시 비 올 때를 대비해서 빌려놓은 정수장의 회의장도 둘러 볼 겸 정수장에

내려가서 우리는 정수장 소장님이 주시는 차도 얻어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돌아오니 향식이와 인순이가 오고 조금 지난 후에 향실이가 옆지기님과 함께 왔다.

옆님께선 인사 후 다시 떠나셨고..

 

문자와 희옥이가 볼일 보러 시내에 나간 사이 우리는 행사장 테이블에 둘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현심이가 하는 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고 나온 권오인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번 행사에 함께하는 사람이 그 사람일지 아닐지 궁금하다” 는 거다.

“ 아니 인천사람이고 제물포 고등학교를 나오고... 그런 사람이라면

그사람이 100% 맞겠네, 흔치도 않은 이름인데 그런 이름이 또 있겠느냐?”

며 그 사람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시내에 나간 문자한테는 시내 나간 길에 볼일보고, KTX 타고

서울에서 오는 손님( 권선생님과 후배들)을 태워 올 테니 미리와 있는

친구들과 점심 챙겨 먹으라는 연락이 왔다.

 

호랑이 없는 굴에서는 여우가 왕이라던가!... 문자 없는 이곳 농장에서는

내가 주인 노릇을 할 수밖에.. 도우미 아주머니가 갖 뜯어온 신선초 부추등

채소를 무쳐서 점심상을 차려 친구들과 점심을 뚝딱 먹고 나니

두시 반쯤에 시내에 간 문자가 권 선생님과 춘자 광숙 두 후배와

함께 돌아왔다.  서로들 수인사를 나누고... 소개 받고 인사하는 중에

 

춘자 후배 왈 “언니는 누구세요?” 내게 묻는다..

“언니는 장은숙 인데요.” “어머머머! 언니가 장은숙 언니구나.”

두 후배가 반갑다고 끌어안는다.. 오앵? 나를 알아?

워낙 유명한 춘자후배니까 본 일은 없어도 그 이름은 익히 들어

내 알고 있었지만... 내 이름을 듣고는 알고 있었다는 듯

반갑다고 할 줄이야 !  그리고 권 선생님이 역시나 현심이와

아주 오랜지기 임이 밝혀지고 두 사람도 반가와라 인사가 분주하다.

 

그런 와중에 서울에서 떠난 버스가 정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는 연락이 와서

먼저 와 있던 우리는 정수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 소석농장 진입로는 꾸부렁 꾸부렁 좁은 길이라서 대형버스는

들어올 수 없는  길인지라 경계가 맞닿은 정수장에 버스를 대고 정수장 뒷문을

통해서 농장에 들어오게 되어있다.**

 

버스에서 친구들이 내려오고 서로들 반갑다고 끌어안고 야단법석이다.

“어머! 너는 졸업 후 처음 보는 가봐.”

 정말 졸업 후 처음 보는 친구도 여러 명이 있었다.

시끌벅적 손잡고 겅중겅중 뛰고.. 난리 난리다.

인사도 참 요란하게도 하지.. 인천에서부터 버스를 운전해온

기사 아저씨가 신기한 듯 쳐다본다.

 

앗! 그런데.. 버스에서 선생님이 내려오시려는 게 보여 얼른 버스에 올라

 “선생님 저는 장은숙입니다. 저를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 첫마디가 “마영옥이는 안 왔니?” 하신다.

 

아니? 왜 나를 보시고 영옥이를 물으신담? 서운한 생각이드는 순간

선생님의 기억력에 깜짝 놀랐다. 중, 고 6년을 영옥이랑 붙어 다닌 걸

45년이나 흘러버린 뒤인데도 기억하신 게 아닌가?

오늘 내가 아니고 영옥이를 보셨다면 분명

 “장은숙이는 안왔니?”

라고 물으셨을 거라고 생각하고 혼자 웃음 지었다.

 

순영이와 내가 모두 40명이 넘는 인원을 체크하고 방을 배정하고

이리저리 방의 위치를 알려주고... 어수선한 분위기속에

두 명의 후배가 어디에서 부터인가 걸어서 왔다고 하면서 배낭을

짊어지고 들어섰다. 10회 후배라고 한다..

10회라고 하면 적지도 않은 나이인데 국토 순례를 한다고?

여기 또 대단한 후배들이 있구나.. 생각했다. 왜냐하면 3회 조영희 후배의

책을 읽고 나도 멀리 외국은 못가더라도 우리국토라도 걸어보겠다고 맘먹고

이리저리 계획을 세우고 걷는 훈련도 했던 나인데.. 결국 실천에 옮기지 못 했으니

그 후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들 (권칠화 조명애)도 조영희의 책을 읽고

가슴이 뛰어 걷기를 시작했단다.

 

권 선생님이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시는 동안 1부 여흥이 시작되었다.

까만 정장을 차려 입고 춘자 후배가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문자가 나를 밖으로 불러낸다..

“야~.. 서울에서 버스타고 온 아이들이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모양이야..

 저녁이 시작되기 전에 우선 뭐라도 좀 먹이려면 지금 두부를 만들어야해..

난 나가서 막걸리를 사 올 테니 네가 두부를 좀 만들어.”

 

하면서 잔뜩 물에 불은 콩을 내 놓고는 차를 몰고 휑하니 막걸리를 사러

가 버렸다. 소석농장에 다니면서 가끔 두부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양은 해본일이 없어 당황스럽기만 하다.

도우미 아주머니 두 사람과 마침 두부를 해 본 일이 있는 명옥이와

함께 두부 만들기에 나섰다.

 

안에서는 마이크에서 춘자 후배의 말소리에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들리고 궁금해서 힐끗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는지..

알 길이 없다. 얼핏 보이기는 미국에서 온 아이들이 요상한 빨간 치마를

입고 있는 게 보이고... 미국아이들이 준비해온 무슨 춤인지 연극인지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저 아이 현심이는 미국아이가 아니고 강원도 아이인데...

어찌 미국아이들과 함께 빨간 치마를 입고 난리 인고?

 

아이고~.. 즈이들은 재미있어 죽겠다고 웃고 난리인데... 난 즈이들 먹이려고

두부 만드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두부가 다 만들어지고 문자가 막걸리

사가지고 오는 동안 일부 순서가 끝이나 버렸다.

 

명옥이와 만든 두부를 여러 그릇에 썰어 담고 젓가락에 양념장을

갖다 주면서 우리 콩에 화학약품이 안 들어간 무공해 두부라고

맛있을 것이라고 어서들 먹어 보라고 설명을 하면서 나눠주었다.

 

난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리저리 분주히 바삐 움직이는데.....

도대체 순간순간 문자는 어디로 없어져 버리고 나 혼자 바뿐거여..

이 아이들 춥다고 난로를 피워 달란다..

하긴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요즈음 날씨가 춥기는 하지..

불은 피워야겠는데.. 문자는 보이지 않고.. 성냥도 라이터도 없고..

누군가가 권 선생님한테 라이터를 빌리잖다.

 

라이터는 담배 피우는 사람이나 가지고 있을 텐데 생각 하면서

“그 선생님 담배 피우시 남?”

내가 물으니... 누군가가 담배 피우는걸 보았단다.

 

그런데 문득 아까 두부 만들 때 불을 피웠던 불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궁이를 열어보니 제법 숯덩이가 남아 있었다..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불씨를 난로에 옮겨 달라고 하고 잔가지를

난로속에 넣고 향식이가 가져온 황남빵 담았던 뚜껑으로 냅다 부채질을

했더니 불이 활활 타오른다. 그래서 굵은 나무토막을 여러 개 넣어 불을 활활

붙여 놓으니 그때서야 문자는 어디에선가 불을 피울 아저씨를 데리고 왔다.

불은 이미 붙였다고 아저씨를 돌려보내고.. 모두들 옹기종기 난로가로 모여들고...

그사이에 뷔페음식을 실은 차가 도착을 했다..

시간은 5시 30분..

 

뷔페 음식을 차려놓으려는데... 문자는 또 어디로 가버리고 보이지를 않는다..

먹던 두부 치우랴.. 의자 정리하랴.. 뷔페 아저씨들은 음식을 어디 차리느냐? 묻는데...

아이고 바쁘다 바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