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었다.

춘분도 벌써 지난 3월 22일 오후

비가 부슬부슬 나리기 시작하더니, 그 비가 느닷없이 함박눈이 되어 펑펑 쏟아져

순식간에 세상을 하얗게 수놓던 아름다운 날

마지막 신문 교정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거리를 나선 길이다.

비가 눈으로 변하는 순간을 놓치기 아까워 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동인천 역에서 서울행 전철을 기다리는 중

펑펑 나리는 하얀 눈은 끝없이 이어진 선로위로 쌓이고 쌓여 흡사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을 떠 오르게한다.

"유라친"으로 가는 길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던 눈덮인 풍경을, 자작나무 숲속을 기차는 달리고 달린다.

지바고

라라

그리고 유라친....

지금같은 눈이 몇일이나 계속 내리면 저런 장면이 나올까?

 

어제 저녁

느닷없는 반가운 소식에 서울을 가는 중이다.

난곡동으로 부임을 받았다는 친구 수녀님을 만나기로 한 시각에 축복처럼 눈이 나린다.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나는 오랜만에 커피향에 취해 창밖을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우리는 이렇게 스킨십을 자주 해야 되는거야"

아하! 요즈음 아이들은 애정표현도 과감하구나 하며 그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들었다.

손을 마주 잡은 남녀.

"너는 내가 무엇을 사 준다고 하면 그냥 맛있게 먹어 주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런 네 모습만 보아도 나는 행복하니까. 그리고 만나자 하면 아무말 말고 나오기만 하면 돼"

무심코 고개를 든 그 남자를 보니 시각장애자이고

그래도 말이 없는 여자는 나갈 때 보니 남자보다 더 심한지 짙은 썬그라스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자의 팔짱을 끼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는 뒷모습에서 오랫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여자는 자기보담은 장애가 덜한 남자에게 짐이 될까봐 만남을 꺼려하고

그런 여자의 마음을 남자는 아는지 지극정성으로 보듬는 마음이 둘의 대화에서 느껴졌다.

장애조차도 장애가 될 수 없는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오늘 나리는 함박눈만큼이나 아름다왔다.

저 남녀의 사랑이 아름답게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범죄의 심리학중

"죄수들의 딜레마"'라는 게임의 법칙이 생각난다.

공범자를 심문할 때

1..두사람중 먼저 자백을 하는 사람은 무조건 석방이 되고, 나머지 한명은 13년을 복역해야 된다.

2...둘 다 자백을 하면 또같이 8년을 살아야 한다.

3...둘 다 끝까지 모른다 하면 똑같이 1년을 산다.

이런 게임을 적용하면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은 제일 적은 1년의 형량을 받고

서로를 배신한 사람은 똑같이 제일 무거운 8년의 형량을 받는다는 게임의 법칙.

신의를 이해관계에 따라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상에서

비록 죄속에 있어도 서로의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더 큰 잘못임을 심리학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 젊은이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서로의 믿음속에서 사랑을 키워나간다면

세상을 살아 갈 때에 서로에게 빛이 되고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걱정끝에 친구들이 환한 모습으로 들어온다.

친구들에게 방금 목격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더니 수녀님 또한 거든다.

내 안에 넘치는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남에게도 사랑을 줄 줄 아는 법이며 그런 사람만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란다

작년 한 해 몸이 많이 아파 수도원 생활을 하던 수녀님은 그 일년을 이야기하며

병마와 싸우면서도 자서전을 끝맺음 했다해서 우리를 놀래켰다.

아픈 중에도 책을 쓰다니........

그 책속에 우리들의 이야기도 썼다고.

중2때부터 난초라는 클럽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온 우리들의 이야기....

眞 善 美 聖 義 라 이름 지어진 5명의 소녀는

각자 세상속에서 지금의 달라진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어떤 상념에 젖어 있을까?

만나면

세상 온갖 시름 잠깐 내려놓고

잠시 여고생이 되어

촛점을 더 먼데, 더 먼 과거로 맞추며 행복해하는 우리들

 

오늘은

하늘도 땅도 함박눈이 펑펑 내려 축복을 퍼붓고 있는데

그속에 예쁜 사랑이

예쁜 우정이

온통 밤하늘을 동화의 세계로 수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