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3월 22일 고란 브레고비츠 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공연장이 Theater an der Wien 인데.주로 오페라공연을 하는 곳입니다.
모짜르트의 "마적", 베토벤의 "휘델리오" 요한 스트라우스의 "박쥐"가 초연된 곳으로서 정통 고전극장입니다.
영화음악 " Arizona Dream" 들어보셨어요?
바로 이 음악가가 작곡한 것이지요.
그외에도 20여개 영화음악을 작곡했으며 "Times of the Gypsies","Underground"등 유명하지요.
이 사람의 혈통을 보면 복잡해요.
아버지는 크로아티아사람,어머니는 세르비아사람
그리고 이 사람은 보즈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유고연방국 시절 6개국 중에서 3개국에 소속된 사람이랄까요...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6살에 벌써 음악밴드 활동을 하면서
당시 아마츄어 영화감독이자 베이스 기타주자 Emir Kustrica와 친분관계을 맺어요.
(이 사람은 후에 영화" 아리조나 드림"의 감독으로서 유명해지지요.)
15년 정도 연주생활하다가
1989년 전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의 정치적 혼란기에 파리로 망명합니다.
이곳에서 위의 언급한 영화감독과 손잡고 영화음악을 작곡하면서 이음악인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1950년 3월 22일 태생으로서 이날이 60세 생일이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느낌을 옮겨봅니다.
연주 시작 30분전쯤 도착했는데,
극장 앞에는 표를 뒤늦게라도 구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미 오래전 부터 매진이었으나 그래도 혹시나해서 찾아온 사람들이라고 동행친구가 전한다.
요즘 연일 방송을 통해" 발칸음악의 영웅이 비엔나에서 60세 생일 연주회를 한다!"라고 보도 되었다.
전 유고슬라비아가 붕괴되면서 흩어진 민족들이 그들의 음악가가 비엔나에 온것을 보고자 극장앞에는
독일어 하는 현지인보다 그쪽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
CD를 통해서 그의 음악을 접하면서
민속적인 음률과 리듬에 이 작곡가 나름의 화성이나 효과적음향처리가 특이함을 좋아했었다.
자칫하면 집시음악에 머무르기 쉬운 것을 이사람은 무대예술로 승격시켰다고 할까...
안으로 입장해서 자리를 잡는다.
비인 자리가 없이 꽉차인 극장안은 벌써부터 음악의 열기로 들끓는 것 같다.
평소에 모짜르트의 오페라, 쉔베르그의 발레음악,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등등
고전 공연을 보러 왔을때하고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음악가들이 마이크를 사용하므로 음향담당가가 로열박스 자리에 음향기구를 설치했으며
청중들의 옷차림도 아주 자유스러운 복장이다.
관례적으로 무대에 쳐있던 커텐도 없이 시간이 되자 관악연주자 5명이 청중석 문으로 부터 입장하며
민속축제 음악을 연주한다.
관중의 박수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무대위의 현악4중주자들도 음악을 연이은다.
드럼과 아코디언 성악등 세분야를 담당하는 남자하나가 어슬렁 거리며 등장 하는데,
복장도 평소복장 같고 모든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웁다...
뒤이어 민속의상을 입은 여자 성악가 두명과 검은 연주복입은 남성 6중창단이 등단한다.
이들이 두곡정도 프로그람곡을 마친다.
잠시 장내가 조용~~. 무대 조명이 점점 더 밝아 진다.
드디어 눈부시도록 하얀 양복을 입은 Goran Bregovic가 나오는데,
와~~~~~~~~~~~~~!!!! 박수소리가 온극장을 무너뜨릴 듯 하다.
Goran을 위한 생일축하곡을 영어로 관객도 같이 부른다.
그가 무대위에 준비되었던 샴페인을 마신다...완전히 환영무드다.
다시 조용해지며
영화 '아리조나 드림"중에서 여자 듀오의 애절한 목소리에 남성 6명의 아카펠라곡이
장래를 숙연하도록 가라 앉힌다.
CD를 통해서많이 들었던 곡이라 익숙하다.
시간이 갈수록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관중중에는 춤을추는 젊은이들도 있다.
나도 모르게 맘 속이 울컥해진다.
바로 이런 감정이 외국에 사는 교포들이 본국의 음악가로부터 더불어 향수와 애수가 깃드는 것이리라.
몇년전 부터 발칸지역여행을 하면서 그들의 역사를 가슴아프게 생각했던 차라
지금 이들 속에서 나도 그네들이 되어보는 것이다.
1918년 까지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지내던 이 민족이 독립후
나치시대에는 독일 지배하에, 2차세계대전 후에는 소련의 내정간섭 받다가
1980년 오랜 독재자 Tito의 사망으로 정치적 혼란을 일으켰고...
가만히 생각하니 우리 대한민국의 1979년 전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후 정치적 혼란기와 비교가 된다.
1990년 내전 터지기 직전 이 음악가는 파리로 망명을 하여 그후 명성을 쌓아갔으나
그의 조국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은 이미 붕괴 되었으니...
지금 Goran의 가족들은 파리에 있으나 그는 음악활동의 본거지를
세르비아의 수도 벨그라드에 두고 연주여행을 다니며 두도시를 왔다갔다 한단다.
어느한곳에도 정착할 수없는 사람...
오늘 그의 60회 생일음악회를 이곳 비엔나에서 하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혹시 아주오래전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왕국의 자존심을 가지고
일부러 지배국이었던 곳에와서 연주를 하며 그의 동포를 위로하는 것은 아닐까?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Ferdinand의 암살사건을 도화선으로 1914년 1차세계대전으로 이어졌었다.
그것이 96년이 지난 현재,모든 역사는 과거로 묻히고
이 작곡가가 비엔나의 유서깊은 공연장에서 연주를 당당히 하는것임이
예술은 모든 역경을 초월하는 것일까?
너무 과장해서 생각말자. 음악에 집중하자.
연주중 Goran이 몇곡에 주역을 붙인다.
영어로 독일어는 못한다고 강조한후 곡설명을 간단히 한다음 세르비아말로는 길게 설명한다.
그의 언어는 이미 하나의 언어자체가 아니고
저 땅아래를 뚫는 저음으로 나 같이 그나라 언어를 이해 못하는 사람에게도 심장에 뜨거움을 주고도 남는다.
1월초에 이미 표를 구했으니 시간만 비워두라는 친구의 얘기에
"그때 봐서 혹시 중요한 일 생기면 다른 사람이랑 가쇼"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주었었는데,
연주회가 가까워 오면서 시내 곳곳에 포스터가 점점더 붙어가고
신문과 방송의 그에 대한 보도를 대하며 그의 모습을 꼭보고 싶어졌다.
60이라는 나이에 더 호감이 갔으며
10년후에 70세기념음악회가 비엔나에서 한다는 보장도 없고...
몇년전 엔리 모리코가 80이 넘은 나이에
대규모 음악편성으로 체육관정도의 대공연장에서 했었는데 그때는 실망을 남겼었다.
공연장이 너무커서 평소 CD음악의 음향에 습관들여진 나를 만족시키기에는 섬세함이 모자랐었다.
그러나 오늘은 오히려 좀더 큰 공연장에서 했었어도 될 정도로 음향관계가 풍부하다...
역시 오페라 전문 공연장이라서 그런듯 음향이 시원스럽고 분위기도 고전적으로 차분하다.
드디어 정규프로그람이 휴식 시간없이 2시간에 걸쳐 끝났다.
이제 관중은 더이상 자리에 앉아 있지 않는다.
그가 나온다. 모두 기립박수로 그를 맞이한다.
세번 혼자 나와 인사한다.
그래도 관중은 떠나지 않는다.
그가 관악연주가 두사람과 나와 간단히 연주를 마친다.
관중의 박수소리는 끊임이 없이 진동한다 .
연이어 모든 연주자가 나온 후 45분간 앵콜곡이 연주되고서야 드디어 끝났다.
관중은 홍조의 얼굴과 감격한 맘들을 가지고 떠나간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일어설 기운이 없다.
이내 몸은 3시간여의 음악에 융화되어 정신이 혼미하다.
아주 오랫만에 무대의 음악가와 관객의 혼연된 공연을 체험했다.
그의 생일을 맘속으로 다시한번 축하한다
Happy Birthday!! Goran Bregovic~~~~~~~~~~~~!!!
2006년 전에 한동안 뮤지칼극장으로 사용되어오다가
모짜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새롭게 단장하고
2006년 1월에 플라시도 도밍고의 지휘아래 Opernhaus로 재개장 되었습니다.
옛 모습으로 복원된 실내의 모습이에요.
그러나 공연은 오페라에 한정되지 않고,
무용,연극등등 다채로운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몇년전에 연주회를 하였었습니다.
이곳은 칼광장( Karls Platz) 전철역 근처에 있어서
시민들이 공연보러 올때 전철을 이용합니다.
승용차를 대동하면 주차하기가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지요.
지하철역에서 Secession 쪽으로 나오면 Gustav Klimt가 만든 둥근 것에 금으로 입힌 하얀 Secession 전시회장 건물이 나옵니다.
밤새도록 조명에 금빛이 휘황하지요^^
이 건물 지하에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주제를 클림트가 벽화로 그린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2~3분 정도면 공연장에 도착합니다.
옥인후배 ~~설명 하나 하나 모든것이 감동입니다.
설명을 보면서 실황을 느끼는듯합니다.
시대 국가적 상황 설명이 음악적 영향에 미치는부분까지
너무 구구절절하여 나의 수준으로는 감동이란말이외의 표현으로는
어덯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 아름다운 음악회에관한 휼륭한 부가적 설명까지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옥인후배께,
그 시간에 댓글을 올리려던 사람은 내가 아니었구요...
옥인후배가 "작업중입니다"라고 올린 글은 보았습니다. 누굴까..... (우선 질문에 답: 제가 아주 심한 early bird 에요)
그런데, 제가 지어준 저의 서방님 별명이 walking encyclopedia 에요. 그런데... 이제 그 별명을 옥인후배에게 적용해가지고
백과사전도 남성여성이 있는지 모르지만... Lady Walking Encyclopedia 즉, 옥인후배 별명 이니셜이 Lady WE 입니다, 제가 드리는
선물임다. 아셨죠?! 어쩜 요렇게 재밋게... 역사와 문화와 자연과 음악, 즉 예술과 엮어 나가는지..... 참 귀한 재주이심다.
Mr WE는 요기서 음악미술은 빠트리지고 엮지요 ㅎㅎ
기실, 아버지의 나라, 어머니의 나라 더하여 내가 태어나 자란 나라... 등은 모두 내게 짙은 영향을 미치고 친근감을 줍니다.
고란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 여러 나라와 가토릭과 정교회 및 모슬람 등 여러 종교에 태생적으로 친밀감을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진정한 세계인이라 할 수 있네요. 거기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의 연결고리가 아닙니까.
태생적으로 많은 나라와 역사와 종교와 문화를 품는 세계인-
우리가 세계인이라 하면 지구촌이 좁다고 뛰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통 지칭하는데.....고란은 신개념의 세계인이네요.
반가워요, 알게돼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히려 예:술가는 그 천재성을 인정받나 봅니다.
모든 위대한 작품은 전쟁이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김옥인님의 다양한 예술감각에 또 한번 놀라고 갑니다.
옥인님의 봄은 음악과 더불어 생기가 파릇파릇 돋네요.
옥인이 대단혀~~~!
이러다가 우리(인일총동문) 모두 수준이 너무 높아질꺼 같으유~~~
고맙네!!!!!
그런데 어찌 육십갑자에 저리 청년같은거람???
감동 받은 그대로, 현장감을 살려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김옥인 후배의 마음이 더 감격스러워요.
어쩌면 그렇게 자세히 표현해 나갈 수 있을까요?
동영상을 보고 음악 들으면서 기분을 느끼려 하지만 어림없지요.
그래도 그런 곳에서 그런 사람이 그런 연주를 했다는 걸 옥인 후배 아니면 어찌 알겠어요.
고마운 마음. ^ ^
김영주 선배님 오랫만이에요.
이제 좀 한가해지셨어요? 그동안 밤잠도 못주무시고 고루고루 댓글 다니시느라고 힘드셨을 텐데요...
이날 연주회 보고 나서 며칠 내내 머릿속에 어른거리고 귓가에 머무르는 소리가
홈피에 올리면서 진정이 되었어요^^
그 다음날 홈피에 들어올 시간이 없어서
이왕 시작한 것이라 마무리 하려다 보니 몇시간이 훌쩍 지나드라고요..
아마 누가 강제로 하라고 했으면 안했을텐데요 ㅎㅎㅎ
선배님께서 다정하게 격려해 주시니까 힘이 솟아요.
고마워요. 건강하시고 또 뵈요.
김자미 선배님~
선배님께서는 작년9월에 사라예보를 다녀 오셔서 아직 실감이 나시지요?
강대국 사이에서 아직도 기를 못피는 나라가 Bosnia- Herzegovina이지요.
원래 두나라가 단독국가 였었는데 20세기초 지배국 오스트리아가 강압으로 합병시킨것에 불만으로
그당시 보스니아 레지탕스 소속 젊은이에게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했던 라틴다리건너 박물관이 사라예보에 있어요.
역사의 현장이지요.
구시가지 민속거리는 돌길로 아직도 오래전 모습을 간직하고요.
선배님도 이거리 거닐면서 민속기념품 사셨나요?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보면
모슬렘성소의 긴 기둥들이 여기저기 보이고요.
터어키가 오랫동안 지배할때에 세워진 것들이지요.
바로 이런 종교적 원인으로 유고스라비아 내전에 제일 타격을 받은 이유가
바로 정교국가인 세르비아가 산넘어에서 이곳을 집중 쳐들어 왔기 때문이라네요.
정치나 종교의 내분에 의한 국민들의 희생은 아직도 도처에 남아있어요.
물가가 아직도 저렴하고 사람들이 순박해서 웬지 정이 가기도...
도산학 선배님~
선배님께서 언급하신 '역사의 소용돌이'라는 어휘가 정말로 딱 맞아요.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의 중심국가 세르비아의 수도 벨그라드를 가보았더니
아직도 1980년 이전 Tito 독재자 시절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예를 들자면 박물관에서 안내하는 여인이
꼭 여군처럼 유니폼차림으로 세르비아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연방국 시절얘기 할때는 향수가 뚝뚝 떨어지게 얘기하더라구요.
바로 이웃국가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국경지역은 보통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건너에요.
연방국 시절은 양쪽 강가 동네 사람들이 이강가에서 서로 수영도 하면서 이웃사촌이었겠지요.
이국경지역에 있는 정교회들이에요.
저녁 노을이 지기전에 목가적 풍경이었어요.
전쟁때 이지역 사람들은 왜 서로 총대를 겨누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울면서 대처했답니다.
이러한 모든 분단의 분열역사를
이 음악가는 가톨릭(아버지나라 크로아티아), 정교(어머니나라 세르비아)모슬렘(본인 출생지)을 초월하여
음악으로 단합하는데 커다란 업적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세르비야의 작고 한산한 뒷길이 인상적이네요.
아래서 다섯번째 사진...(지붕이 모두 붉은...도시) 이 정경은 달력 등에서 참 많이 본 사진입니다.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은 52년생 동갑네, 늘- 맘속 친구로 생각했는데
고란은 50년 생이니 용기를 내어 맞먹는 오빠.... 연배.
동문들이 고란을 나이에 비해 너무 젊다 하시지만, 이것이 바로 21세기 특징이에요. 늙지 않고 병없이 장수하는....
(물론 한편으론 이름도 모를 병들이 많죠)
유순애 선배님 아직 안주무세요?
아니면 벌써 일어 나셨어요...
그 사진자리와 같은 아래사진은 사라예보(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의 수도: 영어로 약자 B-H로 표기)의 구도시에요.
터키의 영향이 아직 많아서 민속품들도 터키것 비슷한것이 많구요.
커피도 터키식이 대부분이더라구요. 요건 아래설명 식당의 카푸치노
그 붉은 지붕이 보이는 언덕위에 한 고급식당이 있는데...
많은 유명인사가 방문했었으며 지금도 한다고 식기들이 어느유럽식당에 내놓아도 좋을 만큼 좋더라고요 ...
이나라 빈부의 격차가 심함을 느꼈지요.
경치가 참으로 좋은데, 오르막 내리막길이 가파르고 좁아서 승용차들도 오고 가지 못할정도...
고란은 그쪽사람들 중에서 유별나게도 젊게 보이는 형이에요.
원래 결혼들을 일찍해서 40세에 할아버지 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사람은 뒤늦게 파리에서 1993년(당시 43세)에 결혼하고 15세,8세, 6세인 세딸들이 있는데
어린 자식을 두면 늙지 않는지도 ㅎㅎㅎ
김옥인후배 안녕하세요. 실상 저는 음악은 거의 잘 모르지만
이렇게 자세히 고란 브레고비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셔서
흥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그분의 이름이 다시 나오면
무척 반갑겠지요.
옥인후배를 통해서 동유롭의 역사 와 문화를 자주 올려주시고
설명해 주니 많은 공부가 되는군요. 잘 감상 하고 감니다.
김숙자 선배님
사람들은 그동안 들어왔던 음악에 익숙해서 좀처럼 색다른 음악을 잘 안듣게되는데,
첨에는 어색하게 들려도 자꾸듣다 보면 친숙해져요.
저도 이쪽 발칸음악이 청승맞게 들리기도,,,경쾌한음악은 가끔 시끄럽게도 들려었어요.
그런데 Goran의 음악중 맘에 드는 음악을 종종 듣다보니
시시때때로 꽉 제맘이 사로 잡히면서 스스로 상상의 집시가 되어보기도 한답니다.^^
제가 이 지역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감상이 같이 엮여져서 그런지도 ...
선배님의 꽃시리즈 잘 보고있어요. 고마워요.
이공연장은 시내 중심 칼광장 쪽에 있는데, 모짜르트 마적을 초연했슴을 나타내는 파파게노 마술피리 조각이 옆문위에 있어요.
요문 옆에는 베토벤이 이곳에서 살았었다는 것과
여기서 작곡한 작품이 명시된 글이 문화재 지정깃발 아래 적혀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