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길에 넘어져 오른팔에 깁스를 했다.

왼손으로 밥먹고 세수하며 자판을 두드리자니,

보통 불편하고 힘든 게 아니다.

수족 못쓰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지내는 나날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간암말기 선고를 받으신지 석달만이다.

나는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 조문객을 맞았고,

하늘나라 여행을 보내드렸다.

오른팔의 골절로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술 한 잔 올리지 못하는

불효를.......

 

살아 생전에 어머니는 나를 미워하셨다.

결혼한지 두 달만에 시댁에 우환이 생겼다.

어머니는 집안에 며느리가 잘못 들어왔다며

노골적으로 나를 학대하셨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내게 그 것은 날벼락이었다.

 

인일여고를 나온 자랑스러운 내가

시댁에서는 잘못 들어온 며느리라니.

나는 그 것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만회해야 했다.

구겨진 자존심을 어떻게 해서라도 회복시켜야 했다.

 

나는 낮은 자리를 택했다.

마을의 노인정에  나가면 어르신들의 신발부터 바르게 놓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 질서정연한 신발들을 보며,

나를 다시 보았다.

노인정마다 신발을 정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나의 명성도 높아만 갔다.

 

어머니,

살아 생전에 저를 미워하셔서

제 마음을 평생 모양빠지게 하시더니,

제가 깁스를 하고 있을 때 돌아가셔서

모양빠지는 상주를 만드셨군요,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

어머니는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스승이셨습니다.

인일여고의 자존심을 앞세워 낮은 자리를 택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 마을에서 칭찬받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테니까요.

 

작년이었나.

어머니는 뜬금없이 내게 말씀하셨다.

"에미야, 미안하다"

나는 속으로 대답하였다.

"괜찮아요. 저도 날마다 어머니를 미워했거든요"

 

떼를 입힌 어머니의 봉분에,

 머지않아 잔디가 파릇파릇해질 것이다.

그 때쯤이면, 나도

온전한 팔로 어머니께 술 한 잔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편안히 가세요.

사랑도 미움도 다 살아있을 때의 감정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