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전기가 들어왔다.
와!!!
구세주 만난 기분으로 컴을 켜서, 아이들과 한국에 있는 형제들에게 따딱 따닥…
“이 기쁜 소식을 전하노라. 꼬박 3일만에 정전과 수전에서 회복했으니 어찌 아니 즐거우랴!”
전쟁 영화에서 봤지. 전승의 소식을 전하는 교환수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토요일 (3월 13일)
금요일부터 내리치는 비바람 소리에 잠꾸러기도 재간이 없었다.
아침부터 전기가 들락날락하더니 드디어 저녁 7시쯤 종말을 고했다.
촛불을 켰다만 책 글자가 보이질 않아 그냥 꺼버렸다. 예전엔 어두운 등잔 밑에서 책도 곧잘 읽었었는데…
어렸을적 전기가 꽤 자주 나갔었지.
우리 다섯 형제가 이불 뒤집어 쓰고 귀신 예기 만들어 하면서 소리 지르곤 했었지.
촛불은 불난다고 금지 사항이었으니까.
옛 추억이나 더듬자며 이불 위에 담요를 한개 더 얹혀 그 속에 들어가 누었다.
시려오는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그럭저럭 밤을 지냈다. 집을 흔들어대는 강풍 소리에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니 물까지 나오질 않는다.
구입해 논 비상용 물이 아직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대충 얼굴 씻고 양치질 하고 일찌감치 밖으로 나왔다.
내 옆집의 벽 (siding) 일부가 떨어져 내 앞마당에 널부러져 있었다.
집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는데 양쪽 집 바깥 주인들도 나오셨다. 한분은 이타리아, 또 다른분은 크로에시아 출신 이민자들이다.
우리 동네 길 Henry Street에는 집사이가 2-3 미터 안팎으로 고만고만한 집이 10채 있다.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5채씩, 우리집 위치는 중간이다.
내가 사는 집의 첫번째 주인인 Henry를 기념한 길 이름이란다.
지은지 44년 된 집이고, 두번째 주인이 4년밖에 살지 않았으니 39년 이 집서 동네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셨나보다.
세 사람은 집들이 무사한지 돌아보았다. 마지막 집 차고 쪽으로 나무가 쓰러져 있는게 보였다.
도로 여러 곳이 막혀 돌아 돌아 첫 예배를 갔더니, 출석교인이 예상 외로 적었다.
한시간 일찍 당겨야하는 시간 변경일이라서 일수도 있구, 차고에 차를 주차시킨 경우 전기가 나간 동네 교인들은 꼼짝달싹 할 수 없었을게다.
오는 길에 새로 생긴 한인 식품점에 들렀는데, 문을 닫았다.
가족처럼 지내는 세탁소 아줌마네로 전화했다. 집 전화도 불통이라 이럴 땐 셀폰이 참으로 요긴하다.
내가 먼저 살던 동네 쪽이라 다행히 전기/물 공급에 차질이 없다 해서 하룻밤을 그곳에서 지낼 세면도구를 챙겼다.
일 다니면서 몸이 지쳐 내 집까지 갈 기운이 없을 때 늘 신세 진 언니같은 아줌마.
내 생일은 물론 한뜻/한샘 생일, 추수감사절, 성탄, 설날에 가족처럼 늘 같이하는 장성한 세딸은 한뜻/한샘을 친 형제처럼 여기는 family friends.
부러진 나무들을 옆으로 치워놓아선지 파크웨이는 다닐만 했다. 차량도 뜸해서 한손으로 운전하기엔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따스히 전기 담뇨가 깔려 있다고 같이 자잰다. 헌데 아줌마가 어찌나 코를 심히 고는지… 예전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구 잘 잤었는데.., 살그머니 사알 살 아래층 거실에 내려와 담뇨에 몸을 안겼으나 잠이 달아나 책을 펼쳤다.
월요일 (3월 15일):
아줌마 일터로 가는 시간에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왜 이리 썰렁한지…
밑층 젊은이들 차가 있는 걸로 봐서 그냥 집에서 잔나본데… 둘이 꼭 껴안으면 온기가 있었겠지 하며 중얼댄다.
화장실 갈 일이 급해 가까운 맥도날드로 갔다. 사람이 북적 북적.
펜케익을 주문했다. 근데.. 커피나 쥬스는 안판다나. 물이 없어서란다. 자가발전으로 전기는 돌아가게 한 것이다.
싸늘한 날씨에 비가 오니 더 을시년스럽다. 아침 의사 진찰 약속이 있기에 전화하니 받지를 않는다. 혹시나 해서 가보니, 그곳도 깜깜이다. 컴이 나가니까 환자에게 연락할 수 없었나 보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어딜 간담.... 도서관? 좋지!
셀폰 충전기까지 챙겨 이웃 동네 도서관에 가니 문을 닫앗다. 그 동네도 피해를 봤나보다.
먼저 살던 동네 근처 도서관에 전화해보니 열었단다. 어찌 사람들이 많은지...
왠만한 사람들은 큰 백화점 등으로 나가 있는다는 속삭임을 엿들었다.
잡지 들쳐보고, 인터넷도 하고. 졸리면 책상에 엎드려 눈좀 붙이고
온종일 도서관에 있어본 때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세탁소 아줌마는 저녁 7시가 넘어야 집에 오신다.
어둑어둑한 시간, 집에 들러 혹시나 불이 들어왔나 했더니만 여전했다.
집집마다 차고 앞에 주차되었던 차들이 보이질 않는다. 모두 어디론가 간게다.
땅거미가 지는 시간이라선가! 영화에 나오는 ghost town 같았다.
운전 중에 대학 동기의 전화를 받았다. 자기넨 지금 방금 전기가 들어왔으니 남편이 빨리 전화해서 데려 오란다.
따스한 마음을 선물로 간직하겠다고 말하는데 목이 잠겨왔다.
참 고마왔다. 친구가 이래서 좋구나.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호텔로 가고, 보험 신청한다고 들었다.
화요일 (3월 16일)
오늘 아침 일찍 다시 집에 와보니 여전하다. 하긴 수요일에 전기 공급이 된다 했으니 하루만 더 참으면 된다.
근데 오늘은 지난 몇일간의 저기압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만큼 청명한 대기에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따스한 햇살로 낮엔 집에 있을만 했다.
부러진 잔가지들을 집앞 한구석에 모아 놓았다.
우리 집엔 나무가 딱 두그루, 게다가 크지 앉아서인지 피해를 보지 않았다. 대신 정원수 한그루가 뿌러져 있었다.
수술 들어가기 전 딱 8일 남아 있어 이것 저것 할 일이 꽤 있다. 땅거미가 질무렵 세번째 밤 외박을 나갈 참이었다.
"전기 들어왔어요." 흥분된 어조의 아래층 젊은이의 소리가 이렇게 기쁘다니. 둘이선 기분 낸답시고 산보 나가겠단다.
난 얼른 컴을 켰다. 그래서 이렇게 내 마음을 '따 따닥..." 키보드를 누르니 기분이 상쾌하다.
전기! 고놈이 나가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게 정말 어이없다.
가정용 자가발전기가 날개돗친 듯 팔리고 있다는 뉴스.
추운 겨울이 아니길 다행이다 싶은데 왜 이리도 마음이 저려오지?
2박 3일 외박인데도 이재민의 마음을 쬐금은 헤아릴듯하다
지구 도처에 헤아릴 수 없도록 많은데... 다시금 미안하구 이렇게 잘사는게 죄진거 같구.
우리 인간의 오만으로 이보다 더 자주 난리가 날지 모르는데...
나라도 각성해야 겠다.
전 같으면 이걸 고생이라 했을거야.
'이럴 수 있구나 싶구나' 뭐 그런거 있지?
나이가 들어선가봐.
그동안 의사 네분의 진단을 받는 가운데 마지막 한분에게 감명받고
쉽게 결정했지.
다른 세 사람은 사고 후 독일서 찍은 사진을 가져다 주어도 들여다 볼 생각을 않하시더라고.
"필요없어요." 그게 다였지. 그리고 다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수술해야 한다고 하는데 뭔가 이해가 되질 않는거야.
근데 67세 되신 Dr. Choi는 과거와 현재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가면서
어찌나 설명을 자세히 해 주시는지.
왜 수술을 해야하는지 이해가 너무 잘 되더라구.
너무 먼데 분이라, 그분의 추천을 받아 동네 의사에게 받기로 했어.
그 경험 또한 내겐 절대자의 음성같앴어.
"정례야, 네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던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정성을 다하렴."
예행 연습. 그래서 오히려 잘 견딜거 같애. 고마와.
함정례선배님
이영규선생님
안녕하세요?
제목이 2박 3일의 외박이어서 나름 상상하기론
뭔가 스릴 만점의 이야기? 아니면 중년의 로맨틱한 이야기일까? 상상을 하면서 클릭했어요
함선배님의 글을 보고
인간이 똑똑한 것같지만
인간이 발명한 문명의 이기에 노예가 되어
그 혜택을 받지 못하면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실례를 실감나게 표현해 주셨네요
단전, 단수되는 날은 정말 불편한데 그것도 2박3일씩이나 얼마나 번거로우셨을까요
전기가 들어오자마자 제일먼저 컴퓨터를 켜셨다는 선배님 마음
저는 아주 많이 이해를 했어요
정례야.
혼났구나.
그런데 혼자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네.
아기라도 있는 집들은 어쩌겠니?
그러게 인간이 똑똑해보여도~~~~~~~~~~~~~~~~~~~~~~~~~~~~~~
수술 잘받고 전보다 더 튼튼해지기를 기도할께!
이번에 어려움 당한 가족들 참 많을거야.
정전된 그 다음날 동네를 돌아보는데 지하실에서 물빼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더라구.
나도 12여년전 지하실에 물이 들어와 딸애랑 물퍼내기 했던 적이 있었어.
높은 지대에 집이 있었는데도 그렇더라구.
구호 요청해도 올 사람이 없더라구.
장대비가 하루종일 쏟아지는데
난 열심히 양동이에 물을 퍼 담으면 딸애가 창밖으로 버리면서
도저히...
자연과 싸우는게 아닌가 싶어 그냥 포기하고 윗층에 올라가버렸지.
물위를 둥둥 떠다니는 꿈도 꾸고. 깨어보니 멀쩡히 침대에 누어 있구.
두려운 마음으로 밑으로 내려와보니.
발목까지 차있던 물이 다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비그친 밤사이 빠져 나간게지.
그 땐 대통령의 재난 비상선포를 한 지역이 될 정도였으니까.
수술날 자기 집에 데려가 일주일 머물게 하겠다는 막무가내 언니
오하이오에서 비행기 타고 와 2주 정도 같이 있겠다는 언니
같은 동산에서 공부했다는선후배 인연이 친 언니/동생처럼 되어서
우리나라 정서가 이래서 좋구나 싶단다.
참 좋은 사람, 이 세상엔 너무 많아.
나쁜 사람은 글쎄. 나쁘다는 정의도 꽤 주관적이 되겠다만, 비교한다면 만의 한명꼴 정도, 아님 그 보다 훨씩 적은 비율?
있긴 있는 거 같으니까. 원래는 좋은데 환경이 나쁘게 만들어서 이겠지.
고생했네....
팔도 아픈데.ㅉㅉ
수술 잘되어 빨리 완치 되기 바란다.
이곳도 봄이지만 날씨가 춥단다.
봄도 없이 여름 오게 생겼어.
그래도 남쪽엔 꽃이 피었다더라.
정례야
너는 나의 열 배나 고생했구나
우리 동네는 장대비가 4일을 쏟아지는 가운데 하루가 불이 나갔단다
저녁 7시 쯤이니까 남편이 그냥 자면 되겠네 하며 자리에 눕는데 나는 불이 없으니까 뭘 꼭해야할 것 같아
Blackberry 로 불을 비치며 양초를 찾으러 갔다가 떨어 뜨려 깨뜨렸지
그 옛날 초 하나 켜놓고 숙제도 하고 그랬는데 일곱 개를 켜놔도 침침한 건 내가 노안이 되어서일까
아침이 되어 밖을 내다 보니 잔듸 밭에 물이 너무 많이 괴어 오리 두마리가 여유롭게 수영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우습 던지
이제 해가 나고 옆 집 꼬마가 피터와 룰루라고 이름 지어 준 오리 부부도 떠나고 컴퓨터 방엔 초록 불빛이 다시 깜박이네
우리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폭풍이 불고 바람이 잦아 들고 해가나고.....
건강 해
함정례선배님~~몇일씩이나 집에도 못 머물고
얼마나 불편하셨어요?
더구나 팔까지 불편하시다는데~~~
지난번 미주 동문회에서 뵐줄 알았지요.
선배님을 찾아보니 안계셔서 아직도 독일에 계신줄 알았어요.
식구가 주위에 안계셔도 주위 분들이 챙겨주시니 다행이에요.
수술 잘 하시게 기도하겠습니다. 늘 건강 챙기시길 바래요.
은열 후배님,
기도해 주심 고마와요.
자녀들이 있는 가정에선 어려웠을거예요.
이번 폭풍으로 타격이 심한 이웃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구요.
이보다 더 엄청난 재난을 겪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지금도 엄청나잖아요?
그분들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와요.
참으로 작은 불편이예요.
이번 기회에 몸 속에 퍼져있는 근육, 핏줄, 하나 하나가 너무 소중한 걸 깨달았어요.
실핏줄 하나도 꼭 필요하기에 존재한다는 것.
그동안 너무 무시하고 살아왔다는 것
몸이 불편해지니까
밖의 출입이 적어지고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보니
왜 이런 시간을 진작 갖지 않았는고 하게 되요.
산다는 게 무얼까?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 - 인간이 말하는 생명이 있건 없건
간난아기 다루듯 사랑하는 거.
함선배님~
선배님의 글 현장감 있게 보았어요
몇시간동안 전기가 나가도 동동 거리는 저에요.
며칠동안 참으로 힘드셨겠어요.
다행히 이제는 허드슨 강도 산책하신다니 반가워요.
제가 거닐었을 때는 눈이 쌓였었는데
지금은 봄빛이 완연하겠지요?
건강하세요
너무나도 소중한 옥인님,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인지는 몰라도
다양한 세상살이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객관적으로 맞부닥치는 거 같애요.
아님, 어려움이 극심하지 않아서인지도 몰라요.
후배님이 아는 허드슨 강변은 뉴욕시 쪽이죠. 제 사무실이 그쪽 강변에 있어서 지난 15년간 점심 시간이면 무척 즐겼었지요.
제가 요즈음 찾는 오솔길은 강 건너 뉴저지 편이예요.
제 사는 곳이 바로 죠지워싱턴 다리를 건너자 마자 1마일 북쪽 방향에 있어서지요.
깍아진 절벽 밑으로 내려가면 강가로 오솔길이 나와요.
자동차소음이 거의 없고, 바로 다리 밑으로 가까이 가더라도 절벽 아래라서인지 뉴욕시 쪽보다는 훨씬 적더라고요.
흘러가는 강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물줄기 마다 나름대로의 개성이 엿보이는데 예뻐요.신기해요.
예전엔 뉴욕시민들이 배타고 건너와 강변 수영장소로 사용되었더군요..
송도 해수욕장에서 처럼 바글바글 수영하는 1930년대 흑백 사진이 한장 달랑 안내판..
역사의 흔적을 알려주는 강변 모래터가
지금은 욧트 배들의 선적터로 바뀌고.
70년전엔 강물이 꽤 맑았었겠지 싶어요.
허드슨 강변을 운전할때나 산책할 때마다 미원주민들의 생활을 혼자 그려보곤 해요.
'여기쯤에선 고기가 잘 잡혔겠다. 아 여긴선 애들이 물놀이 했겠네' 하면서요.
2-300년전 때묻지 않은 이곳에서 물고기 잡고 자연이 주는 쉼터에서 평화롭게 살았을 그네들...
1979년 여름학기에 미원주민 역사를 공부할 때 받았던 그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거 같애요.
옥인님, 다음에 뉴욕 오시게 되고 저랑 어찌 시간이 맞으면 한번 모시고 싶어요.
참 여기 참 따사해졌어요. 근데 지금 창밖은 찌뿌둥...
맨날 맑으면 지루하다 싶어 우리에게 주는 자연의 변화,
놀랍고 신기할 뿐예요.
함선배님 설명을 읽으니
제가 거닐었던 Hudson 강변 건너편에 사시는 군요.
요기 지도에도 나오네요
유람선타고 죠지워싱턴다리도 지나갔었어요.
제가 강변을 거닐면서 바테리 파크 등등 둘러보았는데
바로 사무실 고층건물 옆에 녹지대들이 유럽과 달리 현대적 조경건축으로 이루어 진곳이 대부분으로 개성적인 적인 곳도 있고요.
이날 거희 하루종일 강변과 주위의 Park를 거닐면서
현대와 옛것의 조화도 보았지요.
쌍둥이 건물 재 건축장주위도 보았고요...혹시 그쪽부근에서 일하셨어요?
제가 아기자기한 유럽에 살다보니 미국의 신건축물도 새롭고요^^
아래 브루클린 다리쪽 항구에는 골동배도 보이고,,,생선식당들도 즐비하고,,,
정감이 가더라구요.
석달 밖에 다녀온지가 안되었는데 벌써 꽤 오래된 기분이 드네요.
나중에 가면 더욱 추억을 더듬으면서 좋겠지요?
옥인님,
남부 만하탄 (low Mahattan이라 불러요) 강변에서 거니셨군요.
제가 작년까지 일했던 사무실은 북부 만하탄 (upper Mahattan)에 있어요.
뉴욕시 관광버스( Apple Bus - 뉴욕시의 상징이 사과)를 타면 북부 만하탄을 돌 때 꼭 가는 곳이 있어요.
Riverside Church 와 General Grant Monument가 있는 곳을 안내 받게 되어요.
Riverside Church는 록펠러가 기부해서 지어진 교회로 긍정적인 사고 (Positive Thinking)의 설교로
명성이 높았던 Vincent Peale 목사님 등 쟁쟁한 설교가들이 강단을 지키는 교회이지요.
대통령이라도 참석하는 행사가 있게 되면 바로 옆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백미터 이상을 걷어야 하는 고초(?)를 감수해야죠.
바로 그 건물 앞 강변쪽으로 그랜트 장군 묘지가 있지요.
링컨 대통령을 도와 북군 사령관으로서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후에 대통령이 되었지만 국가원수로선 업적이 그다지 없었나봐요.
뉴욕시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할 당시 빈털털이셨데요. 뉴욕시 주민들이 기금을 모아 기념관을 만들고 거기에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네요.
제가 근무하던 Interchurch Center는 바로 그 옆건물이예요. 1980년대 까지만 해도 <개신교의 바티칸> 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왠만한 개신교 본부가 다 들어와 있었는데... 지금은 비싼 렌트비 감당이 어려워 타주로 이전한 교단들이 많지요. 이 건물 역시 록펠러가 비영리 단체를 위해 지어준 건물이라서 다른 곳보다는 저렴하다고 하네요. 로비 층 복도 벽과 별도의 작품 방에 지역 화가들의 작품을 매달 바꾸어가며 전시하고 있어요.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엔 다양한 음악 컨서트가 열리고 있지요.
건물을 나가자 마자 강변 공원이예요. 감자, 옥수수, 고구마, 당근, 사과 등 손에 들고 산책하며 점심을 들기도 했죠.
뉴욕시의 공원 구성을 보면, 중앙에 놓인 Central Park과 허드슨 강가의 공원이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는 최고죠.
올리신 사진은 만하탄 남쪽 자유의 여신이 보이는 엘리스 섬 근처인가봐요.
제가 언급한 강변은 조지워싱턴 다리 바로 옆이랍니다.
올 겨울을 나기가 참 힘드네, 그곳은.
폭설에 비에...정전까지.
여기는 산과들이 초록 벨벳에 유채꽃이 넘쳐나게 피고...미안.
꼭 약 올리는 것 같지?
며칠 만에 여기 들리니, 이렇게 난리였구나.
강변 산책 나간 것 보니, 안심이네.
수술 잘 받고, 속히 회복되기 만을 바랄께.
고마와, 수인아.
나 이사 참 잘왔다 싶어.
외과, 내과, 산부인과, 치과 등, ... 다 강변 옆 도로에 나란히, 집에서 1-2 마일 거리면 다 통하는 곳.
의사 만나고선 바로 100미터도 되지 않는 절벽 입구로 자동으로 마음이 가게 되더라.
잠시라도 강물을 끼고 걷다보면, 그 흐름따라 호흡을 가다듬게 되.
앞으로 몇년간 정해진 목회지로 가서 살게 되면 그곳에서 또 아름다움을 찾으면 되겠지.
하지만, 은퇴 후엔 이곳으로 돌아올 생각야.
물론 미래를 구상하고 사는 게 어리석은 거 알면서도 그렇게 되네.
수술 후 한동안 이메일도, 산책도 못갈거야.
지금은 오른 손으로 받쳐주기라도 하는데 ...
그냥 동네 길이라도 걸으면서 봄을 맞이할 생각야.
솔직히 겁이 난다. 통증이 얼마나 심할 건지.
출산시 아팠긴 했는데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듯이
그런가?
정례야
큰 고생 했구나
전기가 그렇게 고생을 시켰어? 고맙기도 한 것이
자연이 한 번 성나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아
팔은 수술 받는 구나. 한동안 많이 불편하겠다
그 동안 미리 예행연습 했으니 이제 완치만 기다리면 되겠네
치료 잘 받고 건강하게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