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순애야
혹시 네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도 몰라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예술회관을 찾았다.
물이 잔뜩 오른 봄을 시샘이라도 하는지 바람마저 점점 차가와지는 오늘
강원도는 50센티의 폭설속에 갇혀있다고....
그러나 봄은 벌써 이곳 전시장에 와서
그 화려함을 수놓고 있는 중이네.
그 한켠에 단아하게 앉아 계신 너의 어머님 또한 꽃으로 피고 있었다.
몇일 전에 KBS에 소개된 모습을 뵈었다 하니
"글쎄 나를 풍경이라나" 하시길래
"맞아요. 어머님이 바로 풍경 이시지요" 했더니
"그래 나이를 먹으니 할 일이 그림 그리는 것 뿐 할 일이 없네"하시던 어머님
마침 찾아온 조선일보 기자의 요구에 의해
제일 좋아 하는 작품이라며 "배추"앞에 포즈를 취하신 어머님의 모습이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꼭 같았다.
오늘 아침 우리 순애가 PC방에 데려가 인터넷에 소개된 어머님 글들을 보여주었다며
"나는 그런 세상을 모르고 살았지"라며 회한에 젖던 모습에서
순애야 네가 얼마나 효녀인지 알았지.
나는 우리 엄마에게 한번도 내 글을 보여드린 적이 없는데 말이다.
마침 3기의 김혜경 선배님의 동생이 찾아와 얼마나 놀랍고 반갑던지.
"엉겅퀴꽃" 작품이 좋다고 언니에게 보낸다나...
예전에 내가 너에게 물었지?
엉겅퀴 꽃의 꽃말이 무엇이냐고.내가 산에서 만난 보라색 엉겅퀴 꽃에 한참 빠져 있던 때였는데
이곳에서 또 다시 만나니
이 무슨 행운인가 했다.
같이 간 언니는 꼭 갖고 싶던 "바다"가 이미 예악이 되어있다해서 서운해 하기도 하고.
꽃의 향연에 가서
꽃에 취하고 아름다운 인연들을 만나고 참으로 좋았네
우리보다 더 건강하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살아가는 너의 어머님에게 한없는 존경을 보내며
이대로 우리 딸들 곁에서
꿈꾸는 화가가 오래오래 되기를 기원했다.
어머님
건강하십시오.
제가 축현국민학교 다닐때(1,2학년쯤)
그때 어머님을 첨으로 보았었어요.
어떤 명절에 학교소사아저씨께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선물드리는 모습을 보았었지요.
어린 맘에도 참으로 아름답게 보여졌었어요.소외된 분들에 대한 배려로 느꼈었나봐요.
어머님이 검은한복을 입으시고 머리도 뒤로 묶으셨던거 같은데,
지금 그때를 기억하면 흑백으로만 떠오르네요...
어느 성탄절쯤 눈오는날 어머니께서 따님들 데리고
축현국민학교에서 자유공원쪽으로 올라가던쪽에 쭉늘어서 있던 문방구에서
미술도구를 고르시며 행복하게 웃으시던 모습도 떠오르구요.
그때는 어머님이 그림그리시던 것 전혀 몰랐었어요.
그후 그 시절 시행되었던 학군제로 다른 학교로 전학갔지만
축현국민학교시절의 추억속의 한부분이에요.
지금 언니가 올리는 글들을 보니 그시절 어머님이 대가족의 중심으로 참으로 바쁘셨는데도
자녀를 위해서 시간을 많이 할애하셨구나 싶네요.
어머님의 그림을 실제로 꼭 보고 싶어요.
여러분들의 기억력에 전, 단단히 신세지네요~
축현학교 앞의 문방구, 요기에 저희집의 또 절절한 사연이 있어요.
1) 우선은 대동문구백화점과 아주 긴밀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지요.
2) 둘째는....
저희 아버지께서 인천소년형무소 의무과장을 하셨었습니다 (당시는 겸직 가능).
늘- 상한음식을 먹고 복통을 하고, 고생하는 청소년들, 그중 한명을 양자를 삼아 돌보시다가
이 사람이 모범수로 출소하게 되자 축현학교 앞에 작은 문방구를 차려주셨습니다.
<대동>에서 보고 배울 수 있고, <대동>은 그 정도 아량이 있으신 곳이니까요.
그런데 이 오빠가 동네 여자분과 눈이 맞아 달아났습니다.
여기까지 얽힌 사연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ㅎㅎㅎ (옥인 후배 기억이 맞다는 얘기죠, 고맙습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무슨수를 써서라도 꼭 가보고 싶은데 아주 아쉽군요.
산학후배님 글에 그림사진을 함께 올려 주셨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멋진 인애네 가정의 경사를 축하합니다.
산학아-
얼른 취소해, 아냐. 큰언니가 젤 닮았어요. (큰언니가 네말 들으면 실소한다).
-난 어렸을 땐 아버지 어머니 어느쪽도 안닮았다고... 줏어왔다 하셨지, 철로다리 밑에서 ㅎㅎ
-큰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꼭 엄마다!> 소리를 달고 살았다.
-내 생각엔 우리 자매들 모두, 조금씩 어머니 한부분을 닮았겠지.
큰언니는 어머니에 대한 독점력 또한 강해서... 아마 아는 분은 깨닫겠는데, 어느 매스컴에도 다른딸이 어머니랑 단 둘이 노출된
경우가 없다. 왜 어머니를 그렇게 매스컴에 노출시키느냐... 야단치고는 취재 당일엔 언니가 엄마랑 단둘이-ㅎㅎㅎ
그리고 큰언니가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부분 또한 우린 헌자궁에서, 자긴 새자궁에서 나왔다....는 즐거운 오만~
산학아-
내 없는 전시장에 왔다니, 아쉽다.
그런데....IICC란에 올라온 <꽃처럼 살아요> 요건 어머니 보여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
난 새벽에 PC방갔지만, 어머니는 아침 6시반, 일어나시자마자 전화해서 화평동 농협 건물 6층, <유비쿼터스>에 오시라 했지.
너무 황홀하셔서.... 입을 못다무시데.
실은 10년전에, 당시는 싸지도 않던 데스크탑을 설치해 드리고, 반드시 걸음마처럼이라도 인터넷을 컴퓨터를 배우시라...했었거든.
어머니 사이트에 댓글이라도 직접 달으시면..... 하고 바랐던 거지.
몇년후에 그냥 깡통으로 놓여있던 PC를 '가져가라 나 못한다',.... 하셔서 가져오면서 허전했던 생각이 난다.
이젠 PC나 노트북 가격이 많이 내렸잖아.
게다가 카드포인트로도 준다, 돈내지 않아도-
그래서 많아진 노트북(넷북...요즘은 이름도 다양해) 하나, 아예 화평동에 가져다 드려야겠다. 인터넷 구경이라도...하시도록-
순애언니! 우리 선생님 전시회에 꼭 가고 싶었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네요. 국민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 미술을 배웠어요.
그림을 그리는 법을 아름답게 가르쳐 주신 선생님! 일년동안 평화의원 안 채에서 그림 배운 덕에 정물화 (파스텔) 풍경화(수채화)
많이 그렸지요. 명애언니가 국전에서 수상하신 토끼그림은 3학년 이었던 나에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선생님을 따라 주안역 근처 언덕에서 논밭을 그리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습니다. 남궁란하고 같이 배웠지요.
순애언니는 미국에서 오하이오 콜럼버스 장로교회에서 성가대 하실 때 한번 뵈었는데..
선생님 , 늘 고맙고 감사해요. 주님 은혜 안에서 늘 강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순애 어머님과 언니의 작품전 김영희 후배님이 올려주신 "꽃처럼 살아요" 를 통해 남편과 같이 그림들의 꽃향기를
맡으면서 너무 잘 보았어.우리들의 오염된 마음이 순화됨을 느끼며 산학이의 글과 함께 "환희" 라는 낱말이
생각키워지네. 정말 아름답고 기쁘게 살라고 하시는 어머님의 메세지와 함께 고맙게 감상했단다.
순애도 바쁘겠구나. 정말 잘 감상했어. 순애어머님 감사드리오며 늘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아멘.
산학이 말에 동의함. 날 좋아지면... 봄나들이 놀러 나가보자. (나이들면 자꾸 모여야 해, 나들이 아니라면 꽃뜨루에라도 모이자)
오늘은 어째 봄날씨인데... 눈발도 흩날리네.
썰렁한 날씨에 언덕길 올라온 학생들 때매 강의실에 히터 켜놓고 있었다, 아침에- (난 새벽에 하전했음)
재화야- 넌 확실히 문인이야.
어머니께 한번 더 www.inil.or.kr 열어 보여드려야겠다.
너의, 그리고 많은 분들의 축원(건강하시라- 오래 사시라-)과 간구를 전해드려야지.
?순애야, 반갑고도 고맙구나.
어머님과 언니의 그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평화로운 시간을 갖게 해주심에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오며 부디 내내 건강하시어 많은 이들에게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선물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나도 올 한해는 어머님의 꽃그림을 머리에 떠 올리며 좀 더
순화된 마음으로 살고싶구나.아울러 늘 감사한 마음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돌아가신 김추기경님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주신 말씀과함께,,,,,,,,,,,,,,
IICC갈 때 함께 가실 걸 그랬어요
어쩐지 안 보이신다 했지요
사진으로 감상하는 수채화와 글로 표현하는 수채화로 인해
요즘 홈피자체가 온통 한폭의 수채화입니다.
할머님께서 유순애선배님의 도움으로 홈페이지를 보신다 하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네요
모든 이에게 기쁨의 한마당이 되는 2010년 봄날입니다.
오랜만에 인일 홈피에 들어오니 박정희 할머니와
유순애 선배님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추억의 지난날들이
수채화속의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군요.
수채화전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정말 가서 뵙고 싶습니다.
박정희 할머니의 년륜에 자유로우신 미소와 감성 그리고
그림을 보는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시는 수채화~~~
유순애 선배님과 모든 가족의 사랑이 ~찐~~하게 보인답니다.
박정희할머니께서 저희 동기들의 미술선생님이시고
대동문구점 아저씨와 그런 사연이? 정말
훌륭한 부모님을 두신 유 선배님~~ 부럽습니다.
차은열 후배, 안녕하세요?
제가 이번 인천신문사 기자에게 얘기했는데... 그게 기사화되었는지 모르겠어서 여기에 다시 적어봅니다.
어머니는 참 열심히, 치열하게 살은 분이세요.
1) 가족은 항상 대가족이었죠, 한 25명 가량....
하루 종일 보통 아낙처럼 일하지만, 저녁밥상을 치우고 나면 완전 딴 세상이 집에 펼쳐집니다. (둥근 밥상은 공부상 혹은 작업상이 됩
니다. 초등을 다니다말고 남의집에 온 '우리집 일꾼들은' 한글도 배우고 영어도 일어도 배웁니다. 수를 놓거나 뜨게질을 배우죠.
어머니 자신은 원고지를 앞에 놓고 글을 쓰십니다. 예전엔 헝겊에 그리는 물감이 있어서 요걸 이용하여 그리고 (물론 밑그림
디자인은 어머니께서 하시죠), 라인은 수로서 표현한다 등등.
그래서 저도 나중에 기여한 것이 '우리집 일꾼들'인 동생들이 노래배우길 원해서.... <학생애창 365곡집>을 하교 후
한곡씩 배워주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이네들이 어머니 친딸들보다 부자로 살아요! 그 까닭은... 간식주실 때 넘 맛있다고
난 서울 통학으로 수고했잖아.... 하며 난 사과하나 더주세요. 했던 탓에... 저들이 더 부자로 살게 하늘이 작용했다고 난 생각합니다.
(그네들은 나 더달라 말 못하잖아요)ㅎㅎ
2) 저희는 교회 일에 열심이었는데, (할아버지께서 평양에서 목회하심)
우리 어렸을 땐 온 가족이 함께 출연하는 추수감사절, 성탄절 연극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각본, 감독, 미술 등 모든걸 지휘하셨는데.... 강단 앞면 전체를 종이로 덮고 연극장면을 그리는 대형걸개그림이 최고봉이죠!
어머니가 밑그림을 그리고, 모두들 달라붙어 칠하고 나면..... 드디어 설치하고 절기를 맞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는 교회 유치원
원장을 한 20년 가량 하심)
해마다 성탄의 가족 이벤트는 너무 찬란해서... 어디 말하기도 쑥스러워요.
하여간 자녀들과 가족을 [엔돌핀 과다증]으로 만들었던거 같습니다. (아무 딸도 어머니를 카피하여 살지 않습니다 =못합니다.
다만 큰언니가 어머니처럼 생활 속에 가족 이벤트를 늘- 하더군요. 지난주 춘천에 교회를 새롭게시작하면서, 음악예배를 멋지게
했답니다! ( 제 경우는 언니에게, ' 아니 한국에 교회가 부족해?' 하고 웃어주죠. 저는 그런 면에서 참 무뚝뚝한 삶.....)
3) 우리 어렸을 때, 송도유원지 생기기 전후
우린 돈이 여유가 없으니까, 어머니는 수영복을 재봉틀로 박아 온동네 아이들을 입히고 수영을 다니셨는데, 2,30명의 동네 아이들이
함께 걸어서 만석부두 정도까지 가서 수영을 합니다. 거기서 해변 발리볼도 하고요, 수영도 하고요, 그리고는 다같이 걸어서 귀가합니다.
싸가지고간 김밥, 간식도 먹지요.
(이제 생각해 보면 탁아원도 비쌌던 시절에.... 엄마들이 얼마나 마음적인 위로를 받았을까, 싶습니다)
이때의 동네아이들 A,B,C도 우리집 형제자매보다 잘 되어 잘살고, 어디 살던지 늘 어머니께 문안하며 지냅니다.
어머니는 운동만능이시니 스케이트도, 탁구도, 배구도, 수영도-
그림그리기도, 글짓기도, 하여간 모든걸 배워주셨어요. (일제시대에 선생님이셨으니)
4) 어머니는 귀중한 걸 식별하고 모아놓는데... 귀재셔요.
친할아버지의 세필 붓글씨 일기
송암 할아버지의 모든 기록..... 다들 치우고 버리지만, 어머니는 가져다 귀하게 여기고 보관하셨죠.
그래서 인천연수동의 인천시각장애복지관 1층,
송암기념관은 어머니가 평생 보관하신 할아버지의 기록들로 가득- 채워질 수 있었답니다!
5) 어머니는 요즘 치매를 막기 위해 주무시기 전에 일기를 쓰시더군요.
지금도 기차에 앉으시면, 또 어디던 앉으시면 앞 사람들을 크로키 하십니다.
늙어서 성글어지고 하얀 머리를 덮는 모자를 스스로 만들어 쓰십니다. 요건 정말 잼있더군요. 저도 늙어서는 무게없는 천으로 이처럼...
[이분은 결함이 없는 사람이다]라는게 아녜요!
하루 24시간이 다른이들의 몇배 농밀합니다.
그리고 너무 수고가 크신 삶을 사셨기에..... 아무리 많은 잘못이 있어도 사람은 그녀를 정죄할 수가 도저히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은열 후배,
인일총동피에서 본문보다 댓글이 넘 길다고.... 저를 요주의인물로 지적하던데
이번에도 또 그렇게 됐네요- 미안합니다. 이상의 모든 얘기는 증인이 많아요, 모든 일에 함께 참여한 11.유성애를 비롯~)
순애야
답글을 달아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고
거기에 관심이 커서 길어지는 것은 글쓴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영광인데
"요주의 인물" 이라고?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이고?
좋은 것이라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싶고
좋은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너는
우리에겐 친구보다는 "엄마"같은 존재란다.
설혹 잘못된 이야기가 들리더라도 신경쓰지마.
너를 아끼고 존경하는 동문들이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훨씬 많으니까?
얼마전 자살한 서강대 스타 물리학자의 사연이 기가막히더라.
유서에 쓰인대로 연구실적이 부진해서가 아니라
재직하던 대학에서 모교로 옮긴다하니 연구비유용 등으로 힘들게 하고, 경찰 조사를 받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왜 우리나라는 유능한 물리학자 하나를 보호하지 못 하는 것일까?
당연히 노벨상에 근접한 물리학자 였다는데.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풍토가 정말 아쉽다.
도산학선배님~~ 안녕하시지요?
얼마전 은진이 결혼 사진을 친구들이 보내주어 잘 봤어요.
혹시 사진속에 산학이 언니가 있나? 살펴도 보았지요.
언니의 글은 참 많은 폭 넓은 이해와 정이 담겨있어요.
어느때는 모든이들의 다른 인생을 챙길줄 아는 큰 마음이 있구요.
삶에 대한 귀한 사랑도 느껴져요.~~~
그래서 언니 글들을 사랑 한답니다.
그리고 유순애 선배님의 모든 분야에 해박한 글들~~
남의 것을 그냥 배낀다는 차원이 아니고
그분 머리속에 남 다르게 채워져있는 연구지식들이에요.
모든 일들에 대해 다양한 열정과 해박함 그리고 순수~~~~
많은 배울점이 있는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선배님~~~계속 유익한 글들 부탁드립니다.
산학아-
이 나이까지 살다보면, 누구던지.... <죽음>에 근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린 사람이 왜 죽을 수 밖에 없는지, 죽음에 왜 내몰리는지...에 대해 좀더 이해가 깊어졌다.
1) 얼마전 삼성전자 부사장이 자살하였는데, 매스컴에선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죽었다 했다.
그러나 일이 힘들어서 죽는 경우는 없어. 그냥 사표내고 쉬면 되지 뭐-
어처구니 없이 창피한 일이 생겼거나 도저히 회복불가능한 절망에 빠졌을 때.... 죽음을 택하게 된다.
2) 서강대 교수님은서강대로 옮겼기에 몸담고 있던 대학에서 '연구비 관련 조사'로서 개망신을 주려고 한다....하였다고.
가슴아픈 일이다. 사실 대학의 통장에 수십억 연구비를 따서 넣어주는 교수들....이분들 때문에 학교의 통장의 이자는 무럭무럭
늘어나고 있지 (내가 배재 1대 연구처장을 했기에, 그 재미를 좀 알거든; 배재 정도의 대학은 연간 백억 정도/ 설대나 포항대
정도는 연간 거의 천억에 가까운 연구비가 대학 통장에 들어옴/ 연대/고대/인하대 이런 곳은 수백억.... 앞 숫자 역시 차이가 큼 )
그래서 경희대는 스타- 교수의 정년을 원하면 70세로 늘여준다 하잖나- (즉 자기 월급은 자기가 벌어오는 경우임)
이런분들에게는 학교가 파격적인 혜택 (공간/물과 전기/청소부/사무직원)을 베푼다. (이런 혜택 안주면 나라가 돈을 안줌)
그랬는데.... 모교로 간다는거야. 배재의 서강대출신 교수도.....그렇게 떠났다.
그러니 이쪽 대학으로보면 온갖 것 다 주었는데, 다른 애인에게로 간다는 사람처럼 야속한거지. 그런데....
없는 죄를 있다 하지 못하듯, 옛날에는 <굴러다니는 눈먼 돈>이라 여기던 연구비는 이젠 나라의 관리가 너무 엄중한 것이
사실이다. (영수증처리, 감사 등등 지겨워서도/연구 이외의 일이 넘 많고 힘들어서도 연구비 신청이 싫을 정도야).
이분이 비리에 대한 협박을 받고 죽을 생각을 했다.....면 이분은
연구비를 유용한 것이라 난 확신한다. 게다가.... 연구가 힘들어 죽는다 했는데.... 사실 그 부분도 수긍해. 헌데-
며칠전 내가 연구비를 주는 높은 분(=내 절친)을 만나서 난 이런 일에 특허도 있고 시류에도 딱 맞는데.... 큰 연구비 줄 생각
좀 살펴해봐라_ 했더니 그 연구는 '사기'라고 나라가 결정했다는거야. 그의 말은 하도 그 일이 인기가 있고 또 만만해 보이니,
어중이 떠중이 모두다 나 그일 하는 사람이니 연구비 많이 달라.... 하고는 모두 실패했다는거지. 그래서 정부에서는 그 일을
[사기]로 간주한다고 하데. 그래서 난 진짜배기 연구자이고 정말로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환경조성이 되어있다...는 걸 수긍
시키고, 그 일이 사기가 아님을 실은 피차가 다 알고 있음을 말하며 즐거웠단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분은..... 자기가
대한민국 대표주자라고 자부하면서 해오던 첨단의 일이.... 어느날 너무 힘들어 진거야. 무리하게 난척했음을 스스로 알게된
거지. 그게 그 사람만의 잘못인가?
성숙의 도가 조금 낮을 때.... 어디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다년간 해온 연구가 힘들면? 연구비 반납하고 이제는 자기 연구실
에서 특성화된 그 간판을 떼련다... 공포해야겠지.= 이상이 성숙한 판단// 그걸 도저히 할 수 없다면? 죽음을 생각할 밖에-)
순애야
이즈음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는 "김길태"를 보면서 문득 너의 어머님이 생각났다.
간난아기때 버려져 아이있는 집에 업둥이로 들어가
길에서 줏었다고 길태라 이름 지어진 남자.
가난한 집에 여자 많은 집에 들어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는 성장배경을 보고
만약 너의 어머님같은 분의 눈에 띄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했지.
물론 용서받지 못 할 죽을 죄를 지었지만
30년 그의 성장배경은 가슴이 아팠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이다.
기독교 사상이 뿌리내려 장애자조차도 입양해 훌륭하게 키우는 그네들....
우리나라는 그런 날이 언제나 오려나?
유순애 선배님,
선배님의 어머님에 대한 글을 잘 읽었습니다.
가족들만 챙기기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일꾼들, 동네 아이들까지 그렇게 여러가지를
가르쳐주셨으니 참 선생님이셨습니다.
선배님 글에서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나는 느낌을 받는데
그런 이유가 있네요.
참으로 귀감이 되고,
한가지라도 본받아서 살아야겠습니다.
산학후배~그 날 못 봤죠?
엄마를 잃고 헤매는 한 마리 양이 되어
홈피를 멀리하다보니
IICC번갯팅이 있는지도 모르고
선배님따라 전시장에 가게되었어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넘치는 그림들이 맘에 들었어요.
박정희할머님은 식사 시간 빼고는 그림을 그리신다지요???
난 언제나 그려볼까???
맘에 드는 작품 하나 들고 왔으나
몰라서 구경 못 갔다고 안타까워하는 수채화를 좋아하는 후배가 가져갔어요.
언제나 좋은 글로 편안함을 줘서 고마워요.
김광숙 선배님
병원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던 모습이 아직도 아려 가슴이 먹먹합니다.
더 더군다나 남달리 정이 많으신 선배님이기에
털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으리라 짐작했습니다.
오늘 법정스님의 타계소식을 듣고
구름이 왔다가
구름이 흩어졌는데
무슨 생각이 있겠냐 하시던 생전의 그 분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하루에 한가지씩 버리면서 무소유를 실천하시다
입던 옷 그대로 가신 법정스님.....
선배님
좋아서 산 작품을 후배가 좋아한다고 선뜻 건넨 모습에서
스님의 그림자를 언뜻 보았습니다.
빨리 털고 일어나셔서
붓을 잡고 그리운 어머님부터 그려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ㅎㅎ 이런 말 해도 되려나? (고인에 대해 안좋은 말이니 지우라.... 하심 지울께요)
법정스님 살아 생전에, 그 생각 많이 했어요. 출가전- 여성들 꽤나 울렸겠다..... 미남에, 카리스마 넘치시고
http://people.joins.com/news/people_read_200605.asp?total_id=4055832
http://people.joins.com/news/people_read_200605.asp?total_id=4056846 "아쉬운듯 모자라게 살아라!"
책 많이 쓰셔서 일반인들에게 불교가 다가오도록 해주신 분이죠!
택시에 붙인 스티커 문구, [맑고 향기롭게].... 이 문구가 싫었던 기독교인은 아마 하나도 없을 거에요.
전 귀한 외국손님 오시면, 길상사(=대원각)에 모시고 가서 차 대접하곤 했었죠
순애야~~
어머님 많이 힘드셨다지?
훌륭한 어머님 내내 건강하셔서
더 좋은 작품 많이 그리시길 바랄게.
대단하신 어머님이 계셨기에 순애도 대단하지!!!
경기도 연천에 있는 "주라이등" (644미터)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38선 이북으로, 6.25때는 격전지로, 그동안 군사통제구역으로 해제된지 얼마되지 않은 보기드문 청정지역이지요.
고대산과 이어져있고
멀리는 백마고지 철원평야가 펼쳐져 있는 주라이등을 찾았을 때
진보라색 엉겅퀴의 아름다움에 깜짝 놀랐습니다.
야생화들 속에서 도도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엉겅퀴꽃
홀딱 빠졌답니다.
그대가 나에게 보고싶었어 라고
낮게 속삭였을 때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 들었지요.
그대가 나에게 예뻐 라고
얼굴을 쓰다듬었을 때
나는 가슴이 떨려 눈을 감아 버렸지요.
그대가 나에게 바보라고 꾸짖었을 때
나는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아파서 울고 말았지요.
깊은 산속에
찾는 이 없어도 홀로 핀 엉겅퀴꽃은
그대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버린 보라색 멍인가요?
갈래갈래 찢겨진 상처가
가시가 되어
여름내내 꽃피우고 그대를 기다렸어도
엉키고 엉킨 그리움처럼
수십겹으로 늘어진 꽃잎이 시들도록
그대는 오지를 않고
화려한 태양아래
덧없이 지는 그리움
그래서 엉겅퀴꽃은 가시나무, 가슴앓이 꽃입니다.
광숙,산학,순애후배님들 안녕!!
맘이 어머님을 닮아 순수함이 묻어나는 유순애 교수님~
지난번 개인사정으로 작품전에 참석하지못하여 미안하군요.
존경하는 박정희 할머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산학후배님의 글에 봄의 싹이 쫗긋이 내미는군요..
해외멀리에서 아름다운 음악 공수에 이 아침 커피들고 즐깁니다
베토벤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에....
옥인후배님 늘 건강하시어요.
.
전초현 선배님
90이 넘은 시아버님께 음식의 간을 봐 달라는 다소곳한 며느리
손주 2명을 키우는 다정한 어머니
거기에 남편 뒷바라지에 알뜰살뜰한 아내의 역활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명랑함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는 선배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누가 있어
선배님처럼 주어진 삶에 충실할까요?
경인년
선배님에게 기쁨이 넘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김광숙 선배님
그래도 실컷 울고나니 좀 편해지셨지요?
눈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
머리에 고인 상처일까?
심장에 고인 상처일까? 라며 고민한 적도 있었답니다.
법정스님은 왜 입던 옷 그대로 화장해 달라고 유언을 했을까?
그 분의 깊은 뜻은 무엇이고
남은 자들에게 남기고자 한 메세지는 과연 무엇일까?
활활 타오르던 불길속에서 재가 되어가는 허망함 속에서
결국 "보아라, 육신은 자연의 일부일 뿐" 임을 손수 보여주고 싶어하신 것은 아닐런지요.
김광숙 선배님
잠깐 왔다 가는 세상에서
"힘내라" 라는 아름다운 말 한마디, 잊지않고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님도 힘 내십시오.
법정스님의 깊은 뜻을
우리가 저버리지 말고 가슴속 깊이 간직해야하지 않을까싶어.
자연의 일부로 잠깐 살다가
다시 한 줌의 흙으로,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우리 인생이기에
법정스님의 無所有가 참이라 생각되네.
김광숙 선배님
오늘 "열화당" 발행인인 출판인 이기웅 이사장의 "위대한 절판" 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법정스님의 유언을 듣고, 몇날 며칠을 깊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는 출판인은
"말"로써 지은 죄가 우리가 깨닫지 못 한 사이에 탐욕의 물결을 이루고 영혼을 갉아먹는 독임을 알고
"절판 유언"을 남김으로써
법정 스님은 위선과 편견 교만으로 범벅이 된 우리에게 매서운 죽비로 후려치신 것이라고요.
말은 우리의 영혼이고
말로써 평생을 산 스님은, 더 이상 진리를 향해 갈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하신 것이라고요.
이 글을 읽고
저도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온갖 말로 제가 지은 죄는 얼마나 많을까요?
고운 말과 진실된 말의 값어치를 저울질 해 본 하루입니다
김광숙 선배님
49재를 용화사에서 하셨네요,.
용화사는 우리집에서 가까이에 있는 절이랍니다.
미리 알았다면 참석해도 되었는데........
이제 우리 부모님들이 가시기 시작이니
다음엔 우리 차례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엔 지나가는 영구차만 보아도 무서워 했는데, 요즈음엔 수시로 드나드는 영안실이 가까이 느껴지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지요.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품위있게 죽을 수 있을까?"를 종종 생각합니다.
품위있게 살아야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제게 명쾌한 답변을 주었지요.
얼마전에 읽은 글 중
내일이면 죽어갈 사형수를 위해(요즈음 사형제에 대해서 말이 많지요)
교도소장이 밤중에 혹시 원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 해서 찾아갔답니다.
평소에 적대적이기만 하던 사형수의 입에서 "비엔나 숲속의 합창"을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곡은 자기가 나쁜 짓을 하고 도망다닐 때 멀리에서 숨어 듣던 곡인데 경찰에 쫓겨 다 듣지 못했던 잊지못할 아름다운 곡이라고요)
그 곡을 찾았으나 레코드가게는 한밤중이라 문을 닫아 구할 수가 없어
교도소내의 죄수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의 단장을 깨워 설명을 했더니
그 단장이 악보도 없이 휘파람으로 일일이 불어 단원들에서 연주를 시켜 녹음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 뿐인 곡이 만들어진 순간이지요.
그리고 교도소장은 가스실로 들어가 최후의 순간을 맞는 사형수에게 그토록 듣고싶었던 그 곡을 들려주었습니다..
난생 처음 회개의 눈물을 흘리던 사형수는 일일이 단원들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전했다고요.
또 다른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친형에게 자기가 보던 성경을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지요.
품위있는 죽음이란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 글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김광숙 선배님
너무 애통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언젠가는 그 길을 순서대로 갈 것이니까요.
김광숙 선배님,잠을 잘 못주무시는군요.
저도 그랬읍니다.피부에 백납이 다 왔으니까요. 그걸 고치려다 약 부작용으로
혈소판 수치가 나쁩니다.백납은 나았어요. 오늘 주보에 화답송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큰 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라는 말씀이 있었읍니다. 지난 금요일은 요셉성인 대축일이고
십자가의 길 바치는 날이었지요. 저도 12년 전에 온갖 고통 다받으시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손수건 한쪽이 푹 젖어있더라고요. 아버지의 대세 본명이 요셉입니다.
아울러 언니 생각이 많이 났읍니다.언니, 기운 차리시고 밥도 때 맞춰 잘 드세요.네?
오늘은 성가집 127장 "십자가 바라보며"보내 드립니다.
산학이가 아주 절절히 위로의 말씀을 드렸네요. 언니, 저도 마음이 애립니다.
애린 마음을 아는지 바람도 세차게 뼈속깊히 파고 드는 것 같습니다.
새순이 돗듯이 언니도 얼른 마음 추스렸으면하는 바램입니다.언니야, 기운네.응
산학아~재화야~~
너희들의 맘과 똑같이
나의 맘을 달래주느라
때 아닌 함박눈이 내 맘을 깨끗이 덮어주었네.
나 이제
너희들의 위로속에
헤매지 않고 우뚝 설게
고마워~~~~
산학아~재화야~~
너희들의 맘과 똑같이
나의 맘을 달래주느라
때 아닌 함박눈이 내 맘을 깨끗이 덮어주었네.
나 이제
너의 위로속에 헤매지 않고 우뚝 설게
고마워~~~~
광숙선배님, 저도 더 열심히 살려고 운동 열심히 하고 왔어요.
우뚝 서시고 싶어도 사람 마음이 여린지라 금방은 안 되실지도 몰라요.
산학이도 더욱 열심히 활동해주길 바라며 정말 때아닌 하얀눈이
흩날리더라고요. 정말 따뜻한 정을 나누니 쓰린 마음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 같아요. 항상 선배님의 따듯하신 말씀에 감사한 맘으로
몇자 올렸읍니다. 제가 고맙습니다.
산학아 고맙다.좋은 글로 나를 깨우쳐 주니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참 좋으신 분들입니다.뒤늦게 인덕이 많다고 생각하면서요.
산학아, 어젠 아파트에 하루종일 전기가 나가서 엘리베이터도 안되고,,,,
오늘은 중증장애인 화가 윤석인 수녀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미사가 있었어.
신부님은 유명한 예수회 소속 박성구신부님이신데 얼마나 "영가"가 훌륭하신지,,,
정말 음악은 누구나 좋아하겠지만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 같아.
그리고 거짓이 없잖아. 피아노나, 뭐 바이올린소리가 거짓이 없잖아.
그리고 순수하고 잊어버리게 하고 나름대로 위로를 받고 그렇지 뭐.
네 글도 감동을 주고 눈물도 나게하고 또 위로도 주고 아름다운 생각도 나게하지.
사람들 느낌은 대체로 비슷하니까.그나저나 광숙 선배님이 추스리시는 것 같애서 고맙습니다
글쎄, 음악 전공하신분들이나 아실까?
요새 운동에 조금 재미붙이는데 좀 쉬어야 된다.월요일에" 발낭종수술"
에그, 생각하기 싫어.요럴때 음악이 좋아.ㅎㅎ
재화야
참으로 신기하다.
"영혼을 울리는 악기는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조차 갖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1차 세계대전은 왜 일어났지?
2차 세계대전은?
이런 종류엔 관심이 있었는데
시험에 나오지 않아서일까?
재화가 또 수술을 하는구나.
잘 될게야.
힘내
그래. 가벼운 수술이라도 수술은 수술인가봐. 외래에서 안한다고 하니,,,
예, 우리 Ludwig von Beethoven 의 Piano Sonata No. 14 Moonlight.
3악장 presto agitato. 같이 듣자. 쾅쾅 거리고 내가 좋아하는 거야.
그리고 일본애 인형하고 눈 떴다 감았다하는 인형하고 쏘련인형 좋아해. 얘네들은 침묵이라 좋아해.
마음쓰지 마라. 괞찮다.고마워.
법정스님의 "서있는 사람들"을 몇년 전에 우연히 보았다가 요즘 맘에 와닿은 부분만 다시 읽어.발췌해 보았다.
행진곡
미당 서정주님의 시에서,,,,,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르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거두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씩 취해가지고
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
<중략>
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선
난타하여 떨어지는 나의 종소리.
수술을 무사히 끝냈다고?
그래도 회복기가 더 중요하지
잘 먹고 조심해.
그런데 인형을 좋아하는 이유가 말을 안해서라고?
우리 나이에 인형을 안고 노는 친구가 신기한 것은 왜일까?
응, 정형외과 교수님하고 수술팀이 해 주셨다.
으윽, 마취할때 넘 아픈데 소록도에서 편지가 왔는데 어느 의사 신부님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시다가 젊으신데 생을 마감하셨다기에 꾹 참았더니
주치의 선생님이 칭찬해 주시더라. 글구, 요새 사고지역애들들이 아직 연락이
없어서 사진갖고 우는 엄마모습보니 너무 애처롭더라.살아서 돌아와주어야 할텐데,,
난 딸이 없어서 그런가 봐.장식장안에 그런 인형하고 강아지데리고 기도하는 인형,
또 기도, 또 성가부르시는 수녀님인형,등등,,그래도 기모노 입은 일본애가 제일 얘뻐.
시는 괞찮니? 난 좀 멋있게 느껴졌는데,,,.잘자.안녕.
도산학! 잘 지내고 있지요?
며칠 서울을 떠나 있었더니
이런 아름다운 수채화전이 열리고 있었네요.
언제까지 전시회가 열리는지.. 나도 꼭 한 번 다녀오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