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요 핀은 골동품상에서, 귀걸이와 부롯치의 세트로 되어 있었다. $45.00에 샀다. 한 20년전?
한 오만 오천원? 그러니 그린 에메랄드와 녹두색 제이드와 보라색의 캄비네이숀으로 아주 드믄 매혹적인 색갈이었다,
일단은 샀다, 그러나 그떄만 해도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그 귀걸이를 뭐하나? 버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흠, 나는 큰 핀을 좋아하는데? 그 귀걸이들을 핀에 붙여 놓아보면 흠족히 크며 너무 멋이 있엇다,
그리하여 어찌 이것을 연결하나? 쇠줄을 뒤에 대고, 맑은 비닐로 싸서 접착제로 붙이며, 나이롱실로 꿔맷다.
그리고 크라후트샵에서 파는 부로치핀을 두군데 엮어 묶었다/꿔맺다...그랬더니 흠족히 컸다,
밝은 초록색, 코발트색 벨벳, 진 연두색의 V넥탑 가운데에, 아님 오른쪽위 가슴에 코사지처럼 꽂으면 아주 Formal하고 우아하다.
그러나 그 Fabrication하는 자체가 쉬운것은 아니였다. 모두가 어거지로 꿰어 맞추는 것이니....
종시마, 니도 혀봐!!
암튼 시간이 철철 넘치는 말년이 아닝가베?
너의 한국에서의 말년을 축하한다,
참 잘한 일이다,
내가 이것을 나누기에는 마니 망서렸단다,
왜냐하면, 그 주제 자체가 참 예민하고,
오해할수 있고,,자랑인것 같을 수도 있고,
워쩜 내 자신을 싸구려 헌옷이나 줒어입는 천박한 여인일수도 있고설라무네,,,,
그러나 이제사 너희들이 나를 이해하니 가능하리라 싶어 혔으니, 마니 웃고 나누자
니도 이제라도 하나하나 꿍치꿍치부터 시작해서 여기에 올려보렴.
너희들은 잘 몰라, 다들 잘 나가는 칭구들이니,
그러나 내가 오래만에 가보면,
역시 한국은 주위에 대한 인식/의식이 아직도 많은 사회라는 것을 느낀단다,
그런 사회속에서 어찌하면, 주눅들리지 않고,
내 모습 내대로 떳떳이 살아갈수 있나?하는 삶의 지혜를 나누고 싶은
조촐한 마음으로 임하는 거란다,알긋지?
순자야!
아주 멋지게 생각하는 아이디어
고론 아이디어거 떠 오르다니...
아마 종심이의 악세사리도.....기발한 착상이 떠 오를 것
왜냐면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떠 올랐거든
나같은 사람이야 감히.....생각하는 사람 .....그 작품을 보며 놀라는
어리숙한 내겐 그저....어쩜 어쩜.....이리 골돌히 생각할까? 하고 놀랄뿐이었으니까
방장! 그대의 글 한마디가 나의 이 주제에 용기를 주시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그 순간 벌거벗은 여자를 생각했을기여,
지도 벗었잖능가베????하하하하
자기 로댕의 숨은 애인-(아유, 이름은 생각이 안나네?)읽어 보셨우?
참 우리가 역사도 어느 관점에서 평가를 하느냐가 다 다르듯이,
그 숨은 애인의 측에서 본 로댕은 완전 다른 평가가 되드라고,
우리는 '로댕' 또는 그의 작품에는 조건없이 황홀하나,
물론 이니쉬에이트는 로댕자신이지만,
그의 수제자로, 여성조각가가 인정되지도 않든 그 당시,
시골서 파리로 유학해서 로댕의 제자가 되다가, 수제자가 되어,
로댕의 스튜디오의 구석방에서 아주 기거하며 로댕과 사랑에 빠진 그녀,
그러면서 로댕의 작품에 온갖 그녀의 사랑으로 뿜어나오는 혼을
손길의 호홉으로 어루만지며, 로댕에게 어루만져짐을 상상하며,
그 조각들을 완성하는 그 여인,,,,
그리하여 그것들은 전시회에 로댕이라는 이름으로 출품된다,
그러나 오랜 십년도 넘는 애정행각의 세월동안 도취에만 빠진 그녀는,
이미 결혼하여 있는 로댕에게 현실적으로 계산된 요구도 못해보고,
보수의 댓가도 구해본적이 없는 그녀는,
자기의 이름도 그냥 로댕속에 묻혀있다는 것에 대해 의심도 못해보지,,,
어느 세월이 흐른후, 로댕의 사랑이 가라앉으며 정신이 약간 들었을떄,
그리하여 자기가 그것으로 부텨 빠져나와 어쩔수 없이 독립을 선언해서
작품을 내어놀떄, 그녀는 알게 되었지,
아!!!자기의 혼혈이 들어있는 자기의 작품은 이미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것을,,,,
이미 세상에는 그것은 로댕의 것으로 이름이 나아있는 것임을,,,,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음을,,,,,,,,,,,,,,,,자기의 이름마져도,,,,,,,,,,,,,,
자기의 작품은 한낮 로댕의 모방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아ㅏㅏㅏㅏㅏㅏ아ㅏㅏㅏ!!!
이미 버림을 받은 여인,,,,아무리 자기가 자기임을 나타내려해 봐도
아무도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
그녀는 스스로 돌지 않았는데도 돌수 밖에 없겠지?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의 창살속에서 자기의 남아있는 맨정신으로
헝클어진 머리로 창살을 붙들고 자기가 정신나간 사람이 아님을
독백으로 클래임하는 여인,,,,
그런 그 여인을 세상은 비웃으며 또 돌은 여인이라 하겠지,,,,,,,,,,,,,,,,,,,,,,,,
방장! 내가 로댕을 꼬투리잡아 헛소리좀 해 봤우?
그래야 또 새 주제가 생기닝기,,,,,,,,,,,,,,하하하하하
그러나 저러나 그녀의 혼이 나에게 감사하것구마니,,,
완전히 잊혀진/사라진 자기의 진실을
내가 우리 잘나가는 몇만 이닐여인들에게 고발을 혀 까부렷으닝게,,,,,하하하하하
그러니 그녀의 진실은 우리이닐여인들을 통하여 세계야사에 남아가리라
그치 방장???,,,하하하하
그기 다 내핍알뜰 속에서 생긴 제 이의 성품의 발굴이여...
옛날에 처음 훌로리다에서 반지그릇이 없길래,,
우리 이이가 회사에서 크리스마스떄 타온 큰 햄깡통을(찌그러진 타원형)
종이 테입으로 날카로운 가장자리를 발라 가리우고
페인트로 칠하고 가장자리에 그림을 그려서 예쁜 반지그릇을 만든 기억이 나누만,,,,하하하하하
혜경, 영화의 표제화가 그 조각보다 들 아름답지비,,,,
그 어떤 조각에는 정말로 워찌 대리석에다가 그 숨결과 호흡이 패여들어가 느껴지는,
아픔으로까지 전달되는 섬세함이 있지 않우????
아! 영화로까지???
그 음악을 들려주실수????
맞아요, 을매나 많은 역사속의 여인들이 그런 사랑을,,,,
그러나 우리가 큰 우주의 흐름속에 하나의 먼지와 같다면,,,
역시 플레이보이의 사랑도 참사랑으로 받고 온갖것을 다 바치는 여인쪽이 승자겠지???
진실로 사랑을 했응게,,,,
옛날에 그런 일 많았잖우?
한국의 어렵던 시절,,,,
애인의 명석함을 아까와 한 여인이 땅콩장사를 하여 일류법대를 보내
급제하고 성공하고나니, 다른 부유한 가정의 딸과 결혼하능거,,,,
왜? 이 여인은 자기 수준에 웜매 모자르닝게????,,,,,,,하하하하하
진실이 무엔지도 모르는 헛남자,,,
자도 자랑할만한 게 있었는데 사진이 없어요.
전체는 없어도 우리 막내가 어릴 때 거기 앉아 있는 사진 다음에 찾아서 올려야지.
내용은요.
한국에 와서 셋방살이 하다가 겨우 아파트 하나 샀는데 빚이 집값보다 많았지요.
바로 옆에 고급 신축 아파트가 생겨서 그 아파트 사람들이 다 거기로 가는 바람에 집값이 아주 다운됬었거든요.
저희가 산 아파트는 아주 초기에 건축된 낡은 것이긴 해도 그 자리가 원래 조폐공사였다고
부자들이 그냥 재산으로 많이들 샀었대요.
여유자금이 많은 사람들이다보니 팔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집 비워두고 이사들을 많이 갔어요
이러구 저러구 해서 그집 중 하나가 우리집으로 됬는데 쇼파며 침대며 살 형편은 아니였지요.
일본서 이사 올 때 가지고 온 짐은 전기기구와 대부분 책과 책장이었거든요.
지금 같으면 다 버리고 왔을 텐데 그것도 재산이라고 배에 싣고.......ㅎㅎㅎㅎㅎㅎㅎ
스틸로 된 조립식 책장이 4개나 됬는데 사실 그걸 다 놓을 공간도 없었구요.
거실 벽 길이가 3.5m 인가 됬는데 작은거 두개를 눕혀서 붙여놓으면 얼추 꽉차더라구요.
그걸 눕혀놓고 목공소에 가서 제일 두꺼운 베니아판 두장 잘라서 용달차에 싣고와서 올려놓고
그다음에 메트리스 사면 엄청 돈 드니까 집에 당장 안쓰는 요랑 이불을 좌악 펴놓고
(이불은 친정엄마가 자꾸만 보내 주셔서 많았어요)
근데 요 부분이 좀 어렵더라구요.
이불과 요가 다 두께가 다르고 그렇다고 잘라버리면 이불로 못쓰쟎아요?
몇날 며칠 낑낑대고 드디어 마무리!
큰 시장에 가서 연한 갈색의 골덴 천을 사다가 카바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예쁜 파이핑 테프로 장식을 하는데
시상에 미싱으로 박아도 박아도 끝이 안나는거에요.
둘레가 3.5m x2 +1m x2 이쟎아요? ㅎㅎㅎ
낮으막한 싱글침대 두개가 붙어있게 됬는데 이게 얼마나 편안한지요.
낮잠 자거나 텔레비볼 때 최고였어요.
두사람이 그냥 서로 다리 마주하고 길게 누울 수가 있어요.
하도 길다보니 카바 천값도 만만치가 않아서 여름에는 오래 된 커텐 뜯어서 만들었어요.
그 당시는 한달에 한번씩 돌아가며 반상회란 걸 할 때였는데 이 부산 아지매들이 와서 보고는
"이게 침댄가요? 의잔가요? 묻는 거에요.
그래서 카바 들치고 보여주면 감탄하는 건 좋은데 또 한마디씩 해요.
"아이구 서울 여자들은 야시같이 별 짓을 다 하누마!"
일단 표준어 쓰니까 무조건 서울이라고 믿어요.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DIY 가구들이 없을 때였지요.
일본은 워낙 좁은 나라라 가정집에서는 수납장 대용 침대도 많이 쓰거든요.
상판 들치면 수납공간!
우리 것은 책장이라 칸막이가 있어서 수납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안쓰는 물건들 그 속에 넣어뒀지요.
나중에 집수리할 때 다 버렸는데 많이 아까웠어요.
요거하고 세트로 시집갈 때 가져간 고리짝으로 만든 장난감수납상자가 자랑꺼리였는데 사진도 안찍고 없애 버렸네요.
그리고요.
아주 중요한건
이 아파트가 우리가 이사가기전 한 10여년 가격이 계속 다운 됬었다는데
우리가 사고나서 일년만에 두배가 되더니 3년만에 3배가 됬어요.
융자금을 다 갚았는데는 좀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좀 어이가 없더라구요.
그 당시 은행에 적금 부어봐야 천만원 만들기가 너무 힘든데 이렇게 일이년새 두배 세배 값이 뛰니
전세사는 사람들은 언제 돈모아 집사겠어요?
그 집에서 20년 이상을 살고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한게 이제 6년이에요.
존경스런, 자랑스런 명옥후배,
이 글을 다 읽는 내 눈에 감격의 눈물이,,,,,,,,,,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명옥후배,,,더 고맙고 존경스러운 것은 그 곳의 주위 문화에서 꼭 쉽지많은 않을
생활의 떄 뭍은 야그를 들어내 나눠주시는 마음이 무척 아름답읍니다.
어찌 그리도 알뜰하신지, 우리 유학생활을 한 사람들은 다 그런 경험이 있겠죠.
감사합니다,
우리 더 많은 그런 야그 나눕시다.
우리의 늦으막의 파우어는 오직 진실을 진솔히 나누는거라 믿어요.
근데 그 놈의 고르떙 시트에 파이핑을 둘르는데 하도 길어서 영 끝이 안났다드라는디,,,,.
그 뭐, 둘레가 3.5m x2 +1m x2 ,,,,,합계 내기가 실력이 딸리셔서 안 내셨능감요?
내가 내 주지비ㅡㅡㅡㅡ도합 9m, 맞능겨? 하하하하하
또 잘난척이 아니비고, 또 한번 웃어보자고,,,,잉....
명옥이 얘기 들으니 나두 처음에 미국가서 텅빈 방에 살고 있으려니까
누가 쓰지 않던 낡은 안락 의자을 가져다 주는데 겉 헝겁이 너무 더러워서
꽃병 받침이나 짜던 실력으로 코바늘로 그 큰 의자에 커버를 짜서 덮었던 기억이 있네.
털실이 온갖 가을 빛을 다담은 그런 색으로 기억이되.
어디 사진이라도 한장 남아 있으려나?.......
아이고, 혜경,
그거 아직도 가지고 있우? 아님 철읎이 버리셨우?
만일 버리셨담, 가보 칼과 칼집을 엿하고 바꿔먹은 우리 이이하고 뭐가 다를까?
세상에 명옥후배나 혜경이나 친정 엄마들꼐서 들으셨담,
눈물꼐나 흘리셨것네,,,
고 구정물에 손하나 안 넣어본 딸들이,,,,,,
....털실이 온갖 가을 빛을 다담은???? 그런 색으로 기억이되......
엘에이 동문회에서 만난 이희본--정말로 점잖고 우아하게 영글으셨드구만...
내 왈, 아니 고생하나 안 해 봤든 사람이 워찌 미국에서????
희본 왈, 지금의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무엇이든지 자신있는 지금의 자신이,,,,
우리 금방 오랜 지기이듯 진실안에서 가까워졌지비,,,,
서순석선생님, 부페음식을 담으며 옆에 계신 선생님꼐
선생님은 미국오셔서 고생 하나도 안 하셨나봐요,
지금도 그리 아름다우시니,,,,
선생님, 나를 쳐다보시며 Are you kidding???
무슨 말씀을요.
우리 친정 아버지와 엄마는 그런 거 만들어놓은 거보시면 얼마나 재미있어 하신다구요.
사방에 자랑하고 다니셔요.
원래 엄마가 재활용의 원조시거든요.
아버지께서 선수시절 받아오신 은 트로피들 녹여서 은수저 만드시고(다른 건 어려서 모르겠고 그것만 생각나요.)
집도 좁은데 어디 장식할 곳도 없으니 잘못하다간 버리게 된다 싶으셨겠지요.
속으로는 안쓰러우셨을지도 모르지만 내색을 안하셨어요.
제가 알기로 혜경언니 어머니께서도 알뜰이라면 챔피온급이셨는데요.
혜경언니 쇼파 카바 뜬 이야기 들으니까 생각나는데 전 원피스 짠 적 있어요.
처음에 연습으로 제 조끼. 그다음에 시아버님 조끼, 시어머님 조끼 ,아들녀석 모자달린 쟈켙. 그리고 제 원피스
이 순서대로 짰기 때문에 우리 아버님 것이 제일 엉망이고(제 껀 그나마 입어보면서 짰으니까 좀 낫고요)
마지막에 만든 원피스는 아주 훌륭했어요.
우리 시어머니는 그야말로 뜨게질의 달인이시거든요.
편지로는 아주 잘짰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몇년이 지나고 보니까 다 풀어서 그야말로 멋지게 다시 만드셨더라구요.ㅎㅎㅎ
일단 색상은 근사했으니까요.
그당시 외출복 한 벌 사려면 대략 3만엔정도 했어요.
그런데 미디 원피스에 숄까지 해서 3000엔 들었으니 알뜰하게 산거지요?
허지만 첫 달에는 실사고 바늘 사고 책사고 뭐사고 하느라 꽤 들었지요.
그래도 그거 입고 나가면 마치 뜨게질의 대가 취급을 하더라구요.
다들 그리 큰 작품은 엄두를 못내나봐요.
그랬던 이 몸이 지금은?
아이고 눈아프고 안보이고 .............................. 목도 아프고.......................................................
우선 시간 아까워서 그만뒀어요.
미싱은 몇 번 수리하다보니 (그게 일본에서 선배부인이 새거 사시면서 물려준 거였거든요)
너무 거금이 나가길래 이사할 때 버려버리고 요즘은 10센티 이상 박을 땐 무조건 수선집으로 가져가는 신세가 됬습니다.
다른 건 다 치워 버렸는데 제 평생에 두번 다시 그런 짓을 못할 것 같아 가보로 남겨뒀어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렇게 작은 걸 어찌 내가 입었을까 싶네요.
우리 절약 하며 산 이야기만으로 방 하나 만들면 재미있겠어요.
저도 아기 맡길 곳은 없고 다들 노는 사람이 없길래 집에서 하는 아르바이트감 얻어다가 한 적도 있는데
암튼 임금이 어찌나 싼지 종일 하면 드링크 하나 값이더라구요.
양장점 바느질 마무리 하는 것도 있었는데 스커트 단 공구르기, 단추달기 이런 것들인데 한벌당 100원, 2백원 그렇더라구요.
30 년도 더 오래된 이야기지만.
문제는 타이트 스커트나 주름 스커트가 가격이 같아요.
치마단 공구르기하려면 4배도 더 되는데 말이지요.
바보같아서 알고는 할수 없는 일들이에요.
결국 힘없는 주부들의 노동력 착취지요.
싫으면 그만두라는!
학생때 알바이트하면 일주일에 한두번 가고 몇 명만 가르치면한달 월급만큼 벌수있고
반주다 뭐다 암튼 고급 알바이트만 하다가 완전 밑바닥 노동을 해본 셈이지요.
결국 아들이 운좋게 구립보육원에 들어가게되서
아예 취직을 해서 돌아올 때까지 몇년간 정식 회사생활도 해봤답니다.
그 당시는 한국 회사들이 정식 현지법인이 없고 그냥 연락 사무소가 많아서
우리같은 유학생부인들이 많이 다녔어요.
면접 보러가면 묻는 게
"타이프 칠 수 있나요? 텔렉스 할 수 있나요?"
이렇게 두가지인데 전 아무 것도 못하쟎아요
난감해진 상대방이
"그럼 뭘 할수 있나요?"
"피아노요"
재미있는 건 이런 말도 안되는 대화를 하다보면 잘 풀리더라구요.
"어느학교 나오셨어요?.
우리집사람이 거기 출신이에요."하면서 그 지사장님들이 막 친절해져요.
정식으로 유학간 한국사람들이 별로 없을 때여서 덕을 많이 봤지요.
마지막에 다니던 곳은 할아버지 지사장님이었는데
면접보러갔더니 "타이프 못치지? 괜찮아." 하시더라구요.
할 일도 별로 없는 한가한 곳인데 회사에 타이프 있길래 피아노 연습하듯 열심히 연습했더니 너무 쉽대요.
그당시는 팩스는 없고 본사와의 통신업무는 텔렉스라는 기기에 의존했는데
그 회사는 지사에 직원이 없는 대신 일년내내 본사에서 출장을 오더라구요.
전 일단 일본어를 유창하게 잘했기때문에 본사에서 오시는 분들에게는 귀중한 존재였어요.
그래서 다른 업무는 자기들이 알아서 다 하시더라구요.
한가한 분들은 텔렉스 보내는 법도 가르쳐주고 해서 나중에는 아주 잘하게됬어요.
호텔 예약에 비행기 예약에 전화해주고 길 가르쳐주고 통역해주고
가족이 오면 대책없는 애엄마 따라 유치원에도 가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다들 점쟎고 좋은 분들이라 많이 고마워했어요.`
그 때는 오는 사람마다 웬 향수를 그리 선물로 가져다 주는지.
생활비는 달랑달랑인데 고급 향수는 몇개씩 있었지요.ㅎㅎㅎㅎ
그 회사 생활이 재미있었어요.
할일없는 할아버지 지사장님은 아침 7시에 출근하셔서 운동삼아 화분에 물주고 책상 다 닦아 놓으셔요.
그럼 서울에서 오신 부장님은(이분 서울에서는 무지 유능한 영업부장이셨다는데 아주 인간성이 좋은 분이셨어요)
어른이 일하시는게 걸려서 자기도 다시 한번 닦아요.
마지막으로 제가 출근해서 또 한번 걸레질(전 애 보내고 오니까 더 빨리 갈 수는 없거든요)
3년 있었는데 돌아올 때 필요한 거 사가지고 가라고 퇴직금도 많이 주시고 암튼 참 좋은 분들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값진 경험이에요.
?혜경! 사람 잡능기도 여러가지요?
이 본인으로 말쌈하실것 거트면,
고생싸게싸게의 대가가 아닝가벼어요?
?그대들처럼 그토록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물에 손한번도 안 당궈보고 귀하게 자란 막내둥이로 피차일반인 내가,
우연히 사고로 드라이클리닝 비지니스를 사 가지고설라무네,
처음에는 하이힐 신고 비양기화사 퇴근후 돈만 걷으러 갔다가,
그기 아닝걸 알골라매, 직장도 그만두고 매네져 내어 보내고,
들어가 아무것도 모르는데다가 코를 박았다능거 아니유,
아! 이러다간 어느날 의사가 니는 6개월뿐이 못 산다고 할수도 있것다,,,,,
증맬로 죽기 살기로 했다오,
마치 타쟌처럼 날라다니며 일을 했다오,
내 이미지가 그대로 있능건 아마 오기로 그랬나부지,,,잉? 하하하하하
그건 농담이고 거기서 배운것이 아! 무조건 감사하자, 무조건 기뻐하자,라오,
내가 스스로 기뻐할수 없는 만족이 없는 우리의 속성,
그러기에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무조건 감사, 기뻐하는것을,,,,,,,,,,,,,,
명옥후배, 내가 친정어머니들이 우셨것다는건,
한국서 살으셨음, 농백이를 싸게싸게 해 주시고 을매나 잘 살았을걸,
유학이랍시고 떠나서 사니, 농백이 하나 없이,
빈방이라고 하는 혜경이 말씀에 근거한 거라오,
암튼 우리들 모두 다 자랑스럽지비?????그치??????이?????
아! 숙자! 이 야그가 로댕의 벌거벗은 것으로 흘러간것이 다 방장땁시 아니간?
나를 칭찬해 주신다능거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하시는 바람에,,,
내가 그 로댕을 더 볏겨버링거지비,,,,하하하하
그건 농담이고 이리 야그를 잡아빼니 이리 좋은 야그들로 풍성히 흘러갈수 있능기
우리 홈피의 위력이지비?
으쨰 안 보이시기에 뉴욕에 가셨다고 풍겨삐릴려고 했구마니,,,,
숙자가 읎으면 안 도ㅕ,,,,
자기가 로댕을 롱댕이라고 일부러 치싱거 알고있지비???하하하하하
혜경! 너무 고마워라,
정말 그 작품들을 통해 그녀를 느끼겠구마니,,,
그 야하게 웃을 줄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
작업에 몰두한 소녀, 작업하다 일 손을 멈추고 쉬는 소녀,
까망 망또를 뒤집어 쓴 여인, 이미 기쁨이 없어진 얼굴,
열정을 불사르는 남녀,
늙어빠진 롱댕(숙자버젼), 그리고, 그리고,,,
그토록 애절히 피리를 부는 여인,,
이미 상처투성이로 도ㅑ뿌린 여인,
죽음으로 가는 타임터널에서 썰휭을 하는 모습들,,,
아마 그 까만 모습의 보기싫은 남자의 모습은 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그녀가 본 로댕일거야, 잉?
아아 참으로 표현이나 평가조차 거부하는 작품들,,,,
혜경, 그대가 있기에,,,,,,,,,,,,,,,,,,,,,,,,,,,,,,,,
명옥후배, 이 사진 꼭 찿아 올려보세요,,,,,
,,,,,,,,,전체는 없어도 우리 막내가 어릴 때 거기 앉아 있는 사진 다음에 찾아서 올려야지,,,,,,,,,
하하하하 파아노 치듯 타이프치니 을매나 쉽갔어요.
그 떄는 같은 것 여러장을 칠떄 까만 먹지를 사이사이에 끼어 넣었지요?
흐흐 그러다가 한자가 오타되는 날에는,,,,,
.......우리 절약 하며 산 이야기만으로 방 하나 만들면 재미있겠어요.,,,,,,
동감, 동감. 동감....그러나 낭중보자능거 무섭지 안타닝게
이 3기방에서부터 풀어놉시다,,,,,,하하하하하
저는 선배님들보다 한국을 늦게 떠나와서 조금 물자가 나아졌을 때이라서인지
한국에서 전기밥통은 물론 이불,침대커버에 수저세트 부억용 기구 가지가지까지 가져오기도 했었고요..음악공책에, 스타킹까지 ㅋㅋ
이곳의 물건값이 비싸다는 현지에 사는 지인의 충고에 따라 이민가방에 바리바리^^
그때는 비엔나 집을 렌트할때, 모든 가구와 수저그릇까지 해주던 시절이라 당장 아쉬운데로 지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데, 우리 한국KAL비행기안에서 덮는 체크무늬 담요가 그런데로 세련되기에(진 겨자 노랑색인것과 와인자주색 두가지 종류)
비행기내에서 사용했던것은 가져오면 안되는데도 집으로 가져와서는 탁자나 피아노 덮개로 사용했지요^^
그 후에 우리 집을 방문했던 한국에서 방문하는 친지들이 다 하나씩 들고오거나
하물며는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해서 사용 안한 포장지안에 있는 것까지 가져왔어요ㅎㅎㅎ
어느 순간 부터 포화상태에 이르렀어요. 하나 둘은 애교로 봐 주지만 집안 전체는 우습잖아요.
그래서 오스트리아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그랬더니 KAL광고 표도 안 띠어내고 민속관광품처럼 자동차 시트에든가, 소파덥개로 사용해서 저의 폭소를 받게했지요.
그 친지들이 지금까지도 사용해서 그것들을 볼때마다 옛생각이 저절로 떠오르지요^^
저는 겨울에 현관문 아래 바람막이로 길게 접어서 바닥에 깔아놓고 문틈사이를 막고 있어요.(오늘도요 ㅎㅎㅎ)
저는 여러선배님처럼 직접 손으로는 안했어도,전혀 돈 안들이고 물자 이용은 나름대로 한셈이지요?
하하하하 옥인후배, 9-3해도 6년 차이,
또 더 늦게 유학생활이 시작되얐음, 훨씬 물자가 풍부할때겠죠??
저는요 을매나 철이 늦게 들었는지,
집에서 그리도 정성껏 해서 보내주시는 고추가루, 메주가루, 미수가루등
그런것의 소중함을 몰라서 으례 고추가루말고는 다 주어버리고,
살림맛을 늦게 알은 막둥이였죠.
이제사 우리 다 살림의 대가가 되었죠?
그래도 아직도 고추장, 된장, 떡, 그렁거 한번도 직접 못해봤거든요?
아직도 큰 일은 무서워하는셈이죠,
살림이라능게 알뜰히 살기로 말하면 배우능기 끝도 없지요?
우리집도 일본항공 , 캐세이 파시픽까지 있답니다.
전에는 워낙 비행거리가 짧으니까 그런게 있는 줄도 몰랐구요,
어쩌다 오는 아들이 가져다 주더라구요,ㅎㅎㅎ
이젠 그런 것도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사은품으로하도 많이 줘서 필요도 없어요.
순자야
나의 기발한 아이디어!
내게 있는 망가진 고물 악세사리들
네게 보내면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