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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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향순이 이번에 나에게 3 장의 여중시절의 사진을 보낸것 중에 하나이지. 이사진은 중 2 아니면 중3에 송도로 소풍가서
찍은 사진으로 그러니 정말로 반세기 전의 사진이라네. 그때 소풍이란 아마도 공설 운동장에 모여 송도까지 걸어 얕은산에
올라 점심 한끼 먹고 오는일이 바로 봄 소풍 이었다네. 소풍음식이란 단연 김밥과 찐계란 이었고 아마도 삼립빵이 곁드려
있을까. 친구들 혹 이런 어린시절의 사진이 있다면 올려 보세요...
향순아 네가 보낸 이멜과 사진 3장 잘 받었는데 내가 보낸 이멜은 잘 않들어 가는 모양이야. 혹 들어 갔으면 연락 주기를
그리고 향순의 블러그 아주 재믿게 보았다네 너의 가족과 그리고 어머님 사진을 보니 그시절 아주 따뜻하시고 친절하신
향순의 어머님 생각이 났었지.그리고 향순의 신랑께선 정말 미남이시고 너의 결혼식 사진 아주 멋있고 향순 신부는 아주
꽃중이 꽃이더라고 정말 예뻣단다....
우리들 뒤로 보이는 초가집 동네, 정말로 푸근하고 아늑해 보이는곳 지금도 저런곳이 있을까 그때 그곳에
정말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구먼....
정보 위원장이 알려주신 한향순의 이곳 홈피의 아이디: 인천여중 15.한향순 으로 하면 들어와 자유계시판에 글을
쓸수있고 그리고 3기 계시판에는 댓글을 달수 있다고 합니다.부디 들어와서 좋은 글을 올려주시길바랍니다.
오늘 향순이로 부터 이멜을 받으니 한향순과 정희연이 드디어
10년만에 통화를 했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나도 무척
반가운 마음 이라네.조영희 한테 이멜 띄었으니 영희도 분명
이소식에 무척 반가워 하리가 생각하지.
이모두 인일 홈피 덕이고 그리고 영수 동생의 공이 크다네.
영수 동생, 미국 오면 연락하기를, 내가 대접을 잘 할것이네.
그리고 무척 고맙다네.... 2/3/2010
이런 사진을 수없이 이사 가면서 저리 잘 보관하였으니
사진은 지나면 지날수록 Priceless 이지.
향순이는 인천여중과 인천여고 라네.
세상에 그동안 나는 이곳에서 매일 먹고 잔것 밖에 없는데
갸는 10년전 부터 콤을 읽혔고 요즘은 싸이클로 전국을 누비거나
사진찍기 그리고 고전 무용을 배우고 있다는데
나는 다른것은 몰라도 고전 무용은 배우고 싶지.
운동은 못해도 고전무용은 좋아하는데 어디 그런데
있으면 배우려고 하지.
한향순,
여기 정희연의 전화 번호를 영희가 전해주웠네.
네가 부라질 까지 가서 희연이를 못만난것이 너무나
안탑깝다면서 골푸장 하는 정희연 이라면 한인들은
다 알고 있다뎐데.
곧 열락을 취하여 즐거운 그리고 기쁨의 만남이 되기를
바란다네. 내가 이멜을 뛰었으니 열어보기를 바라며.......
숙자,
정말 생각나네,
인천여중 뺏지와 교복 둥근 카라에 리본타이,
고등학교때도 그 리본타이 였지,
검은쉐터에 검은 스커트 아니 짙은 곤색이었지,
춥기도 했고 썰렁하기도 했지만,
몸매가 드러나기도 한 우리의 교복이었지,
너무 예쁘고 귀엽고 향수를 불러 일으키네,
난 그때 친구를 잘 못사귀는 성격이라서
소풍도 친한친구와 재미있게 보내지 못하기도 했지만,
사진을 보니 향순이도 숙자도 눈에 익네.....
정말 자알 올렸어~~~~
?
보여준 사진은 두 여학생이지만 여백을 통하여 보이지는 풍경은
우리가 60년대 생활했던 풍경들이 어렵프시 보여서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중학교 1.2학년 때에는 소풍가는 곳이 정해지다 시피해서 송도로 많이 갔엇지요
그 때가 생각납니다만
우리들이 소풍가는 날 혹시나 여학교에서도 같은 장소로 소풍을 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
" ... 수없이 이사 가면서도 저리 잘 보관 하였으니 사진은 지나면 지날수록 Priceless지.."
맞는 말입니다
저도 중고교 시절 사진을 비교적 많이 간직한 사람인데 그것은 내가 수집벽이 있어서가 아니고
본가가 시골에 있다보니 중고교 시절 사진들을 집에 갖다 둬 어머니가 이사를 몇차례 다니면서도
아들 것에 대하여 소중히 간직한 결과로 중고교 모습들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지금도 학창시절 사진들을 시골집에 남겨 놓고 있답니다
그런데 여자분 들은 이사뿐 아니라 시집까지 가니 학창시절 사진들을 간수 하기가 더욱 어려운
입장인 것 같습니다
양국씨 저도 사진뒤에 시골 농천 배경이 너무나 한가롭고 따뜻해 보이고
또한 짙은 향수를 느끼게 한답니다.
그당시에는 사진들이 별로 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진들에서
느끼는 아련히 또 오르는 옛추억들이 정말로 우리를 흐믓하고도
풍요로운 기쁨을 안겨주곤 하지요. 제 사진도 어머님이 챙겨 미국 까지
들고 오셨지 내가 스스로 챙길수가 없었지요. 허니 저런 추억의 사진들은
아마도 부모님 집에 그냥 놔 두는것이 최상의 보전 방법 일것입니다.
이제는 저런 시골 풍경을 어디서 찾아볼수 있을런지 아마도 민속촌을
찾아야만 볼수 있을까요??
김숙자 선배님은 별로 변함없이 현재의 모습이어요.세월이 비껴 갔나봐요^^
중학교 교복입었을때 하얀칼라를 빳빳이 하느라고
가다가루(지금은 녹말가루라고 하나요???)로 풀입혔었는데요...
어떤때는 너무 풀이 세어서 목있는데가 아펐었기도.
그 시절 어느분이 요렇게 사진을 찍으셨는지 궁금하고요^^
어떻게 두분 선배님 모두 약간 사선으로 시각을 두셨는지 요즘 사진 모델들 보다 더 자연스러워요.
옛날 자료사진들을 평소에 자주 보지만, 아시는 분 사진을 보니까 실감이 더욱 나면서
동 시절 초등 2학년쯤되어서 교복없이 사복을 입었던 저 자신이 떠오르네요 ㅎㅎㅎ
옥인후배, 녹말가루로 흰칼라 예기를 하니 옛 시절이
더욱 생각납니다. 맞아요. 옥인 후배는 그래도 녹말가루로
칼라를 세우셨나보네요.녹말가루를 사용하는것은 아주
선진적 이지요.
나는 밥을 헝겁주머니에 물좀붓고 주물주물
하여 밥물이 나오면 거기에 칼라를 넣어 풀을메기고 말리고
다리고 그리고 꼬매서 아니면 옷핀 3개로 부착하고 입지만
그야말로 풀이쎄면 그날은 목에 버얼건 줄이 나기도 하지요.
아마도 사진사가 그렇게 옆으로!! 하고 찰칵 했나봅니다.
그때 옥인후배는 겨우 초등 2년 얼마나 이쁘고 귀여웠을까
상상 해 봅니다. 참 홈피가 좋아요. 교정에서 한번도 부디쳐
본일이 없지만 인일 이라는 맥으로 이렇게 만나면 즐겁고
흐믓하니 말이죠. 그럼 또 만나요....
하하하하 숙자,
정말로 귀한 나눔일세,
우리를 순식간에 50년 전으로 데불고 가삐렸네?
향순이도 인일?
참 이번여행이 귀한 출입이였구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