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동반 모임이 있는데 갈래?"

가자는 말인지 말라는 말인지 시큰둥하게 남편이 묻는다.

 "가자고 졸라도 갈까 말깐데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내가 좀 비싸걸랑요."

남편이 같잖은 듯 피식 웃는다.

 "무슨 모임인데요?"

 "왜 당신 초등동창생들 있다는 모임 있잖아. 부부동반 안하면 벌금 내라는데?"

 "그런 걸 지금 얘기하면 어떻해요?"

 "나도 이제 생각났어. 내키지 않으면 그냥 집에 있던지."

 

맘이 급해졌다.

작년에도 핑계대고 안갔는데 올해는 가야지 싶어 서둘러 찍어 바르고는

안하던 드라이기로 숱 없는 머리 부풀리고

옷이란 옷은 다 꺼내어 아수라장을 만들어 놓고 입었다 벗기를 수차례.

할 수 없이 얼굴엔 별로 받지도 않지만 제일 비싸 보이는(ㅋㅋ. 이런 속물) 쉐터에 안 입던 모직 스커트를 입고

추울까봐 두꺼운 팬티 스타킹을 두 개씩이나 끼어 입고 거울을 보니

아이구 촌스러워!

내가 봐도 영 아닐세.

쉐타를 바꿀까?

아냐 그냥 머풀라로 덮자.

 

귀걸이를 하니 좀 화사한 것 같기는 한데, 안하던 짓 하려니 귀가 근질거려 쑥 빼버리고 코트를 꺼냈다. 

해 묵은 황토빛 긴 코트는 초라한 나를 더 늙어 보이게 하고

깃에 달린 유행 지난 털은 촌스럽기 그지없다.

그때는 이 코트가 제법 세련돼 보였었는데 왜 이 모양일까?

 

 "아직 준비 덜됐어?"

남편이 내가 골라준 줄무늬 검정 양복에 화려한 넥타이를 매고 

검정 코트를 걸치고 나오며 머플라를 매어 달랜다.

어? 오늘 따라 훤하네?

오늘은 그 꼴도 영 밉다. ㅎ

 

 "이 코트 너무 늙어 보이지?"

 "춥지 않으면 되지, 뭐 선 보러 가?"

하여튼 멋대가리 없기는.

그래 50년 만에 만나는 초등 동창한테 선 보이러 가네요 왜.

속으로 툴툴대며 쭐레쭐레 따라 나선다.

 

일식집에 도착하니 일찍 온 부부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난 첫 모임이라 쑥스럽기 그지없다.

남자들은 남자끼리 여자들은 여자끼리 모여 앉는다.

이럴 거면 부부동반 모임은 뭐 하려고 하는지.

허긴 어색한데 잘 됐다 뭐.

 

제일 늦게,

키가 큰 남자 분이 부인도 없이 혼자 나타나서 설레발을 치면서 내 맞은 쪽 자리에 빗겨 앉는다.

연신 옆에 앉은 부인에게 귓속 말을 한다.

친한가 보다.

그 부인이 말을 못 알아 듣자 술이 올라 벌건 얼굴로 크게 소리친다.

 "유옥순이란 사람이 누군지 좀 알아보라구요."

 

아, 너였구나!

키득 키득 웃음이 나온다.

옆에 앉은 남자 분이 거든다.(이 사람도 동창)

 "글쎄 저 녀석은 앉기만 하면 맨날 초등동창 타령이라니까."

부인들이 수근거리며

 "어머, 초등동창? 누가? "

자수를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너무 웃기는 것은 내가 자수를 했는데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그 실망의 표정이라니.ㅠㅠ

 "참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고왔었는데."

ㅎㅎ  ' ~었는데' 란다.

이런 ~ ,  댁도 머리도 훤하게 번쩍이누만 뭘.

듣다 못한 그 옆의 부인이 내가 자기보다 손아래인 줄 알았다며 민망함을 덮어주려 하는데도

여전히 나를 빤히 보면서  ' ~었는데' 를 연발한다.

 

다른 부인들은 재미있다는 듯 지꿎은 눈빛으로 나를 힐금힐금 보며

뭐 저런 여자를 ~ ? 하는 표정이다. 

 "우리는 갈테니 동창분과 회포나 푸시죠. 호호."

 

언젠가 자게판에서 본 초등동창모임에서 보험사원이 된 동창을 폄훼하던 분의 글이 생각난다.

내 꼬라지가 딱 그꼴이다.

못 마시는 술 때문인지 얼굴은 점점 달아오르고.

그이는 내 마누라가 어떤 지경인지도 모르고 저만치서 연상 술을 주거니 받거니 허허댄다.

에이,  내가 다시 오나 봐라.

 

친구야,

미안하네 너무 초라하게 늙어서.

그래도 친구야,

살아서 만나니 반가웠네.

 

근데 네 이름이 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