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소리도 없이 펑펑 내린다.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설이라고 뉴우스는  속보로 전하는데 등산화 끈 조여매고 털모자를 쓰고 집을 나선다. 

마침 오늘이 치과 예약된 날이라 눈길에 대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섰는데 중간에 걸려온 전화......

원장님이 눈때문에 못 나오시니 다음날로 예약을 잡겠단다.

할 수 없지.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니 눈이 너무 아쉽다.

어디로 갈까?

무작정 약속이 있는 사람처럼 빨간색 강남행 광역버스 9100번에 올라탄다.

따스한 버스안

창 밖은 갑자기 크리스마스 카드 속의 풍경처럼 아늑하고 사람들은 그 속을 부지런히 걸어 어디론가 가고있다. 

금방이라도 징글벨 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은 도시가 온통 하얀색으로 침잠을 한다.

하늘도 하얗고

땅도 하얀 은빛 세계의 향연이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면 왜 설레이는 것일까?

누군가를 꼭 만나야 할 것만 같은 설레임에 약속도 없이 무작정 오른 강남행 버스.

속정 깊은 사내와 사랑도 해 보았고

가슴 도려내는 애틋한 이별도 해 보았건만

무엇 소진할 것이 아직 있다고

기다려 줄  사람도 없건만 눈은 설레게 하는 것일까? 

 

느릿느릿 기어가는 버스가 오늘은 오히려 고맙다

친구에게 달려가 커피를 사 달라고 할까?

아니면 집으로 찾아가 놀래켜 줄까?

전화를 한다.

"눈 오는데 뭐 해?"

"이런 날은 꼼짝 말고 집에 있어야 돼"

"눈이 너무 멋지게 와."

"우리 나이에 잘못 넘어지기라도 하면 무조건 골절이야"

"아예 돌아다닐 생각말고 집에 얌전히 있어라"

그래 맞는 말이다.

그래도 그냥 가기가 아쉬워 예쁜 머플러 하나를 샀다.

나는 왜 여기가 강남이라고 너희 집 근처라고 말을 못 했을까?

 

점점 눈은 무섭게 쏟아진다.

거리의 연인들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빨간 우산속의 연인들 위로 축복처럼 하얀 눈이 계속 쏟아진다.

언제까지 이 눈은 계속 되려나?

되짚어 그 자리에서 인천행 9100번 버스를 탄다.

약속도 없이 나왔건만 갈 때는 급하게 가야 될 일이라도 있는 듯 서두른다.

평소엔 1시간이면 족했는데 2시간이나 걸리는 거리.

그래도 너무 좋다

크리스마카드같은 풍경속에 내가 있으니까

아직도 내 속에 설레임이 있으니까.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설은 내게는 무엇이었을까?

 

                                     *누구라 꼭 올 것만 같다*

 

                              누구라 꼭 올 것만 같다.

                              밤은 어둠어둠 밀물해 오고

                              주전자 끓는 물에 깊은 밤이 익는데

                              문밖에선 누가 지금

                              마악 문을 두드릴 듯

                              그는 어쩌면

                              지나온 반생의 길가에서

                              묘비처럼 떨어져간 어떤 사람

                              또는 나머지 반생의 여정 가운데

                              아주 잠깐 줄타는 광대처럼

                              애처로운 웃음만 남길 사람.

 

                             꼭 누구라 올 것만 같은 아쉬움에

                             먼뎃 눈 오는 소리가

                             가만이 와 멎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