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유아교육 20년 동안 이번 주만큼 공포감을 느낀 때가 있었을까?
미치라는 남자아이는 아기 때부터 내가 돌보던 아이인데 학령기를 1년 넘긴 올 가을 초등학교에 진학예정이다.
이 달 말에 졸업을 앞 둔 몇 명의 아이들이 졸업파티를 할 예정인데 미치의 엄마가 집에서 기르는 뱀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우리가 바깥놀이를 하는 공원으로 그 뱀을 가져오겠단다.
예정대로 미치의 엄마가 오기로 한 날, 그녀는 하얀 색 자켓을 입고 부드러운 천에 싸인 그 뱀을 마치 아기를 안은 것처럼 감싸안고 잔디밭 건너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줄서기에 익숙한 이 곳 아이들은 그 뱀을 보기위해 재빨리 줄을 선다.
부드러운 베게 커버에서 그 뱀을 아주 소중한 물건 다루듯이 꺼내자 옆에 앉아있던 미치가 그 뱀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 입맞춤을 하고있다.
"오,마이..."
아이들이 마치 신기한 물건을 보듯 눈을 반짝거리고 손으로 그 뱀을 만지고있다.
교실에서 울기를 잘하는 해일리가 그 뱀을 만지더니 야, 정말 부드럽다. 마치 실크같아!
그러자 뒤로 한참 물러나 서있는 내게 동료교사 매리언이 다가왔다.
"애나, 내 자켓을 만져봐. 해일리가 실크처럼 부드럽다잖아. 바로 내 자켓을 만지는 그 촉감이야."
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노우, 노우."를 외쳐대었다.
아니 세상에 뱀을 애완동물이라고 저렇게 손으로 만지다니... 아니 목에 두르기도하고...
한 번 만진 아이들이 한 번 더 만져보겠다고 줄 뒤로 가서 다시 줄을 서기도하고, 나이 어린 반에서 요즈음 우리 반으로 적응 훈련을 하는 크리스토퍼가 아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웃고 서있다.
그 뱀의 종류는 "콘 스네이크"란다.
아마도 잘 익혀놓은 옥수수처럼 노릇노릇한 색깔이라서 그랬을까?
함께 일하는 보조교사 크리스는 늘 내게 말했었다.
자기는 메뚜기가 무섭다고...
언제가 나는 한국에서 어렸을 적에 메뚜기를 잡아 후라이팬에 소금을 넣고 구워먹었다고하자 마치 나를 이상한 야만인 보듯이 하더니 ... 오늘은 이리저리 뱀을 만지면서 그 무늬가 예쁘다고 나를 자꾸 쳐다보았다.
하긴 언젠가 한국에서 유치반 졸업반 아이들을 데리고 '개미"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미집을 어항 속에 넣어와 관찰하면서 "개미책"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흙 속에 하얗게 쌓여있는 개미알이 부화하는 과정을 일기로 써보기도하고 개미집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으로 그려보기도하면서.
그런데 "뱀"이라니... 이것도 문화의 차이인가?
미치 엄마가 이제는 사무실로 돌아가야한다며 서둘러 일어서서 그 뱀을 다시 베게 커버에 넣고 아기처럼 안고는 다시 빠른 걸음으로 그녀가 일하는 변호사 사무실로 돌아가고있다.
나도 모르게 "휴- 우" 한숨이 나왔다.
아이들은 아무렇지도않게 다시 잔디밭으로 돌아가 공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심술을 잘 부리는 애비가 유리병에 풀잎을 잔뜩 넣어 벌레 한 마리를 가져왔다.
아침 바쁜 시간이라서 자세히 보지 못하고 오후에 그 병을 들여다보았는데, 털이 숭숭 달리고 아주 무섭게 생긴 독충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무서워하는 뱀과 벌레가 연속으로 이틀 동안 나를 공격해오네.
그 날 오후 아이들에게 자유놀이영역을 만들어주면서 얼마 전에 사온 장난감-커넥스를 테이블에 놓아주었다.
커다란 여러가지 형태의 고리를 연결하여 곤충을 만드는 놀이인데 아이들이 나비를 만들어 보여주기도 하고 잠자리를 만들기도하면서 재미있게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마이클이 만들었다고 보여주는 사진에 커다란 벌레 한마리가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었다.
장난감으로 만든 그 벌레 위에 아주 작은 사진의 실제 벌레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배고픈 애벌레" 의 캐터필라의 친근한 모습과는 아주 달랐다.
마침 옆에 서있던 매리언에게 저 벌레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다.
"애나, 저건 인치 웜(inch worm)이야. 저 벌레는 발이 앞과 뒤에만 있어서 1인치, 2인치 이렇게 걸어움직이지.
노래 중에도 인치 웜이 있지. 앤 머레이라는 가수가 부르는데... 아마 노래 테이프가 있을거야."
매리언이 서랍 속에서 이것 저것 뒤적이더니 노래 테이프를 찾아내어 오디오에 넣었다.
앤 머레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늘어진 테이프 때문인지 더 늘어진 목소리로 울려 나오고 있다.
"인치 웜, 인치 웜, 너는 수학을 하듯이 거리를 재고 있구나."
이민 오던 첫해였던가?
영어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받고 대이케어로 내려오면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자는 아이들에게 늘 음악을 틀어주는데 옆 반 교실에서는 언제나 이 음악을 틀어주곤했던 기억이 난다.
무심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흥얼흥얼" 따라부르던 노래가 이 노래였다니...
뱀과 벌레 때문에 공포의 한 주를 보낸다고 생각했더니 그 공포 속에서도 이렇게 여러가지를 배워가는 나의 삶이 참으로 감사하기만하다.
공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케이티가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 아주 쿨(cool)한 날이었어."
아마도 뱀을 본 것이 아주 좋았다는 이야기 같은데 그 아이를 바라보며 나도 활짝 웃어주었다.
어려서 부터 동물사랑을 알려주는구나.
내딸은 여자아이인데도 애기 때 부터
벌레를 손꾸락으로 막 집어 내더라.
난 보기만 해도 무셔서 소리지르고....
난 징그럽던데,
지금도 벌레같은건 신경도 안써 갸는. ㅎ
아마 뱀도 갖구 놀라믄 갖구 놀꺼야.
금재덕에 옛날일을 추억해봤네. ㅋ
이곳은 무지 춥단다.
건강 조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