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옥님

잘 지내셨는지요?

일전에 양평에 같이 가자했을 때 회원이 아니라 자격도 없고 더 더군다나 중요한 일이 있어 아니 온다고 했지만

그래도 혹여 마음이 변하여 오지 않으려나 내내 기다렸습니다.

며칠 전 부터 회원도 아니면서 이날의 송년모임을 위하여 선물을 준비하는 등 이것저것 챙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꼭 같이 가자 했던 것인데

선물도 중간에 전달하다고 하기에

혹여 오지 않으려나 하는 야무진 상상을 했나 봅니다.

혹시 나 차편이 힘드니까 데려다 달라고 했으면 왔을까요?

 

벌써 12월

이런저런 힘들고 고단한 하루하루가 속절없이 지나가고 한해의 마즈막을 정리할 때입니다.

뒤돌아보면 해 놓은 것은 없고 회한과 덧없음만이 스산한 겨울바람이 되어 메마른 가슴을 후려치고 갑니다.

이번 송년회도 중년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래고저

아름다운 양평에서

그것도 따끈따끈한 황토 찜질방에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속에 1박 2일을 함께 하면 얼마나 정다울까 해서 이루어졌지요.

하룻밤을 지내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했던가요?

양평에 위치한 "참 좋은 생각"에 25명이 좋은 생각만 하며 하룻밤 같이 하자고 모였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를 좋은 생각으로 장식하자고 모인 송년회

부지런한 이상옥님은 2시에 제일 먼저 도착해 샤워를 마치고 우리를 기다립니다.

4기 선배님들은 새벽에 나와  용문산을 거쳐 오는 중이라고요. 

막상 도착해 보니 주변의 경치가 마음을 사로잡아 다음에는 좋은 사람들을 꼭 데려와야지 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인옥님과 어둠어둠 밀려오는 겨울밤 긴  이야기를 나누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선물로 보내주신 포도주와 케잌으로 건배를 외칠 때는 더욱 생각이 났습니다.

행여 시골집이라 염려해서인지 컵까지 넉넉히 보냈을 때에는 그 엽엽함에 혀를 다 차기도 했습니다.

인일 동문이라면 누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편한 자리가 바로 이곳이 아닐까 했습니다.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샤워를 마치고 정말 생얼굴로 마주 앉은 편한 얼굴들이

위선을 벗어 던지고 스스러움 없이 마주 앉았습니다.

 

인옥님

꿈인가 생시인가

창 너머로 산이 고요하고

들에는 안개가 자욱한 듯 하늘로 달이 언뜻 올랐으나

흥에 가득찬 황토방 안에서는 뜨거운 방보다도 더 후끈한 이야기속에 까르륵 까르륵 넘어가는 웃음소리만이 가득합니다.

세상에 오직 웃음만이 있다는 착각에 휩싸일 만큼이었지요.

 

여고시절로 돌아간 듯

별 이야기 아닌데도 데굴데굴 구르며 웃어도

세월은 어쩌지 못 하는지 5기 공인순 선배님의 건강을 위한 강좌에 다들 열심입니다.

덧붙여 풍을 예방하기 위한 안면지압이 있었는데 다 끝나고 9기 김영희의 얼굴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요?

양 볼따귀를 얼마나 세게 문질러댔는지 옛날 짖궂은 남자아이들 동상에 걸려 얼굴이 빨개 진 것처럼 멍이 들었습니다.

자기 얼굴을 저렇게 멍이 들 정도로 짓이겨 놓은 사람은 저도 처음 본 일이었으니 웃을 수 밖에요.

3기의 한선민 선배님과 4기의 서순하 선배님의 퀴즈풀이에서도 우리는 풀지도 못 하면서도 웃기에 바빴습니다.

역시 4기 선배님들의 단합된 힘은 전초현 선배님이 원심력인 모양입니다.

다양한 끼로 우리 모두를 올렸다 내려놓았다 하니

저런 재주는 타고나는 것으로 배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한 쪽에서는   찜방에 들락날락하며 피곤에 지친 몸을 지져댑니다.

그런 소란스러움 중에도 용케도 벌써 곯아 떨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벽 3시가 되어도 한자리에 앉자 일어 설 줄을 모릅니다.

새벽 5시

우리의 회장님이신 2기의 차유례 선배님이 찜방으로 들어옵니다.

오늘 집에 중요한 일이 있어 7시까지 차를 오라고 했는데 벗어 둔 바지가 없어졌다고요.

전부 깨울 수도 없고 불을 켤 수도 없으니 걱정이라시더니 결국은 찜방옷 입은 그대로 누가 깰세라 빠져나가셨습니다.

역시 우리 회장님.....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그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인옥님

세상살이가 고단하고 힘들어도

생각해보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 많은지요?

집안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기꺼이 참석하신 회장님을 비롯해

서순하 선배님 김자미님 김영주님 그리고 전영희님들의 노고가 오늘의 자리를 있게 한 것도 감사한 일이고요

뒤에서 알게 모르게 물심양면으로 응원을 주신 인옥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차편이 없어 고민하다 뻔뻔한 줄 알면서도 "같이 갈 수 있겠냐"는 전화 한 통에 선뜻 응낙을 해 준 14기의 정혜숙님

올 때도 이혜숙 선배님과 제 편의에 따라 점심만 먹고 서둘러 길을 줄었습니다.

이런 귀한 마음들이 차가운 겨울을 난롯불처럼 녹이고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처음 얼굴을 뵙는 4기의 고전무용을 하신다는 선배님이 방 뒷정리를 다 하고 계셔서 얼마나 민망했는지요

마침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이곳의 사장님과는 아이들 예고 엄마로 예전에 알던 사이라고

우리에게 반찬을 더 새로이 내 오고 해서 기분이 좋은 하루의 시작을 열어 주셨습니다.

 

인옥님

정말은 모임에 쫓아 다니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함을 이번에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난 밤, 잠들을 거의 자지 않았음에도 남한산성을 씩씩하게들 올라갑니다.

잠을 못 잔 나는 옆사람의 이야기가 멀어졌다 가까와졌다 병든 병아리처럼 정신을 못 차리는데

마침 올라가다 아는 분을 만나 반갑다며 벤치에 앉아 그 분이 싸 온 커피를 마시며 "세상이 좁구나" 했습니다.

이 날, 이 자리에서, 이 순간 마주치다니 

또 만나서 서로를 알아보고  커피를 같이 하다니

오늘은 꼭 내 날만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 아무도 모르지요.

단 한 순간의 인연도 어찌 소중하다 하지 않을까요?

 

점심은 김광숙 선배님의 제안으로 닭백숙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맛난 닭백숙은 처음으로 밑바닥에 눌러붙은 누룽지까지 박박 긁어 먹었습니다.

우리 모임도 해가 가면 갈수록 이런 누룽지같은 맛이 나지 않을런지요.

그런 날을 기대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돌아서야 할 시간입니다.

저녁에 7기 유순애님의 재간둥이 딸이 기획한 연극이 대학로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동문들만 가기로 하고 아쉬운대로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인옥님

언제 시간을 내서 우리 같이 이곳에 올 수 없을까요?

아니면 친구들이랑 꼭 한번 들러서 1박 2일을 하며 긴 밤을 지내보십시오.

다만 계절은 겨울이면 좋고 눈이 펑펑 내리는 그런 날이면 더욱 가슴이 설렐 것입니다.

중년이 되어도 20대의 설레임을 갖는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축복이 아닐까요?

인옥님을 몇 번 보지는  않았어도

만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요. 반성도 많이 하고요.

 

잘난 세상에

숨어서 남 모르게 궂은 일 하는우리 인옥님

 

늘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