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이 어느 듯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11월은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닌 달이라고 어느 인디언 부족이 그랬고

정희성 시인도 노래했지.


여기는 추수감사절 연휴(11월 넷째 주, 목요일부터)가 시작된다.

4개월 전에 여행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끝낸 아이들은

오늘 새벽 멕시코의 칸쿤으로 떠났다.

하와이 보다 더 좋더라고, 두 번 째가는 것이다.

공항에서 돌아오니 아직 아침 7시.


나는 내일 정숙이와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여행사 따라 짧은 여행을 하기로 했다.


자기들만 칸쿤 가기 미안했던지

집에 계시지 말고, 어딘가 여행하라고 하도 그러는 통에

그냥, 어딘가로 가려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즐거운 여행이 되리라 기대한다.

정숙이네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것이다.



11월 하면 내게 떠오르는 건

스산한 바람이 나뭇잎을 휩쓸고 지나가던

광화문의 그 분주함 속에서

군중 속의 아웃사이더가 되어 외로웠던 기억(재수 시절)과

아직 난로를 피우기에는 이른 11월의 교실(선생 시절)이다.

교실은 왜 그토록 오슬오슬 추웠던지.


마른손을 비비며, 양지를 그리워하던 그때의 쓸쓸함은

뒷짐을 지고서 망연히 바라 볼 수밖에 없는 ,

사라져 가는 한 해를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안타까움과 합쳐

더욱 괴롭게 느껴졌던 11월이다.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세월을 낭비한 것 같은 회한은,

내가 온전히 예수님을 믿기까지 그랬다.



십일월의 엘에이는 어디나 금빛이다.

반짝이는 나뭇잎들의 속삭임

떨어져 딩구는 낙엽마저

화가 울프 칸이 대담하게 사용하는 찬란한 원색이다.

하늘에서 황금의 폭죽을 쏘아 뿌린 듯, 사방에 부서지는 금빛의 향연들로

마음에서 수없이 많은 얘기들이 끌어 오르고

넘쳐나고 있다.


사라져가는 해에 대한 두려움이나 안타까움은 없어진지 오래인 지금,


이토록 눈부신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누구에게나 선물하고 싶은 심정이다.



 

 

 

 

  Counnas-Web_0002.jpg

 

* 나의 그림 선생님-- Carolyn Counnas? (우리 또래인데, 실물 보다 훨씬 젊게 나왔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 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 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정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