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山
山은 무엇인가?
山은 무엇이길래
어리디 어린 고미영을 품에 안았는가?
山은 정말 무엇이길래
작지만 당찬 오은선을 돌려 보내셨는가?
아!!!!!
낭가파르밧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낭가파르밧에 고히 잠드신 故 고미영 대장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내년 재도전할 오은선 대장의 안나푸르나 정복 성공을 간절히 바랍니다.
- 어제 올린 글은 댓글이 없어 내렸습니다.
저는 그저 江가에 金모래 찾는 少年일 뿐입니다.
@ 두 대장 관련 방송 프로그램
KBS 1 일요다큐 山 / 히말라야에서 맺은 약속, 안나푸르나(2009. 11. 8)
KBS 1 환경스페셜 / 2009 특별기획 오은선, 도전은 계속된다. <아, 안나푸르나> (2009.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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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옥인님.
김옥인님 덕분에 아직 가보지 못한 유럽의 정취를 한껏 느끼고 있습니다.
山
山은 말이 없어 좋습니다.
오라 하지도 가라 하지도 않아 좋습니다.
말씀처럼 언제나 그곳에 있으면서 찾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어 참 좋습니다.
몇년 전에는 한달에 한번 정도 혼자 베낭을 꾸려 설악산을 찾곤 했습니다.
영하 20도가 넘는 酷寒 속 대청봉에서 보는 日出은 그야말로 壯觀이었습니다.
영상 35도가 넘는 暴炎 속 소청산장에서 보는 雲海 역시 그야말로 壯觀이었습니다.
寂滅寶宮 鳳頂庵 舍利塔도 항상 그대로였습니다.
이제 다시 베낭을 꾸려보아야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편안한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Wo ein Wille ist, ist auch ein Weg. (1990. 2.5 님의 일기장 중에서)
강세오님
산을 무척 좋아하시는 분이네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산에 묻혀
산신이 되었으니
그래서 "괜찮다" 라고 위로해 봅니다.
고미영님은
이제 산신이 되어
그녀를 찾아 오늘도 산에 오르는 연인이었던 김재수 대장이랑 그곳을 찾는 산악인들을 지켜주겠지요.
아울러
강세오님의 무사산행도 지켜주고요.
도산학님께서 이곳에 生命을 주셨네요.
오래 전부터 인인홈피에서 뵈었는데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만
이번 가을 800여명에 가까운 제고동문과 가족들이 열차를 타고 함께 한 두위봉 산행 후
제고넷에 올려주신 "산행열차는 가을 속으로, 가을 속으로 달립니다."는 님의 글은
제고동문들의 心琴을 울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요즘 이곳 자게판은 사진 경연장을 보는 듯 華麗합니다.
저도 저의 몇년 전 설악산 산행사진 몇장 올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원래크기의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가운데 사진은 봉정암 사리탑입니다.)
강세오님
과분한 말씀
오히려 민망합니다.
제고인들은 실력이 굉장한데 귀찮아 (왜냐하면 더 큰 세상에서 일을 해야 하기에) 쓰지 않고 있지요.
제가 객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뻔뻔한 줄 알면서도 감히 한 것 뿐이랍니다.
왜냐하면 제고는 나에게는 남이 아니니까요.
설악산 사진 멋지네요.
설악산 하면 정말 잊지 못 할 추억이 생생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처음 그곳을 따라갔지요
얼마나 얼마나 힘이 드는지 꼭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12시간 산행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를 초대한 그 지역 사단장인 양대장님이 올라가기만 하면 헬리곱타를 대기시켜 놓았으니 걱정말라고요.
그래서 기를 쓰고 올라 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보니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그 때의 그 참담함이란.....
산에 가면 다 거짓말장이가 된다는 것을 처음 안 날이었습니다.
첫 山行을 엄청 세게 하셨군요.
어제 인사 올렸으니 이제 형수님이라 불러도 괜찮겠지요?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죽을 것만 같았을까요?
산 정상에 헬기는 없었어도 많은 것들이 있었을텐데 너무 힘든 나머지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하늘과 바람과 돌과 詩가 있었을 것이고, 형수님의 가슴 속엔 무엇인가 해냈다는 成就感이 있었겠지요?
저 아래에는 구름과 계곡과 바다와 人間들이 있었을 것이구요.
형수님의 윗글 넷째줄에 의하면
이곳에 글 올리는 저는 '더 큰 세상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네요.
맞습니다. 맞고요..... 전 自由를 좋아하는 自由人이지요.
自由란 스스로 말미암은 것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한번 웃자고 해 본 소리입니다.
사진 멋있게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강세오님
제 글 중 "더 큰 세상에서 일을 해야 하는" 이라는 글귀가 그리 해석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결코 그런 뜻이 아니고
다만 프로와 아마튜어의 차이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프로는 돈을 받고 글을 쓰고
저와같은 아마튜어들은 그냥 저 좋아서 쓰니 차이가 엄청 크지요.
가수들도 스스럼없는 자리에서조차 남의 노래는 그냥 부르지만 자기 노래는 그냥 안 부르더라고요.
일종의 자존심이라고나 할까요?
프로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나는 산악인"이라고 하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닐까요?
"산악인"은 돈을 받고 산을 오르는 프로를 지칭하니까요.
박영석님이나, 오은선님이나, 김재수님 같은 분들이 "산악인" 입니다.
그런 뜻에서 한 말이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까뮈가 "이방인"의 뫼르소를 통해 부르짖었던 자유인.......
참 멋진 말입니다.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야 뭐 걸릴 것이 있을까요?
자유인이신
강세오님은
멋진 분이시네요.
어쿠,
도산학 형수님, 그저 웃자고 해본 소리입니다.
심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9.김옥인님께서 올리신 글 3513번 "프라하에도 가을이~"에서
카프카에 대해 筆談을 나누던 중 實存主義를 얘기하며 까뮈의 이방인도 거론했었는데
형수님께서도 까뮈 말씀을 해주시는군요.
멋진 사진, 멋진 분.....
형수님으로부터 '멋진'이라는 얘기을 이곳에서 오늘 두번이나 들었으니 不亦悅乎 不亦樂乎
산행사진 몇장 더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지리산 뱀사골코스 가을, 설악산 한계령코스 겨울, 설악산 오색코스 여름)
강세오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리산....
20여년 전 처음 지리산 천왕봉을 올랐습니다. 장터목산장으로 해서 말입니다.
추석이 가까운 어느 날이었지요.
엉기는 나를 끌고 가려니 우리 아저씨 참다참다 성질이 났는지 혼자 휙 하니 가 버리고
약이 오를대로 오른 나는 "어디 두고 보자" 하고 기를 쓰고 따라갔습니다.
돌아보지도 않고 가고 있는 우리 아저씨......
오기로 앞섰더니
박수를 치며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증명 사진"을 찍어 둬야 남들이 믿지, 네가 천왕봉엘 올랐다면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는 것 알지?
결국 그날
하산길에 하룻밤 신세지려 들른 장터목산장은 만원이라
그냥 그 길로 중산리까지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그 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요?
뱀이 나올까 무섭고 넘어질까 봐 무서워, 엄살도 못 부리고 투정도 못 부리고 꼼짝없이 예정에도 없던 강행군을 했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렌턴 하나에 의지하고
그나마 보름이 가까와 달빛에 의지했지요.
내려오다 보면 무덤이 떡 하니 가로 막고
내려오다 보면 길을 잘못 들어 낭떠러지에 서 있고
그런데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들.....
반가와 다가가니 무속인들이 산기도를 하느라 오르는 중이라고요.
바로 그 밑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법계사" 라는 연기조사가 지었다는 절이 있습니다.
저는 무속인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그날 실제로 보았습니다.
허기진 우리에게 그들은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그 힘으로 마을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요....
그리고 중산리...
강세오님의 지리산을 보니
가고 없는 사람이
천왕봉이 중산리가 못 견디게 그립습니다.
말문이 터억 막힙니다.
大靑峰의 楊장군도 그러하셨고.
天王峰의 先輩님도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아니, 天王峰의 先輩님은 더욱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中山里에서 출발하여 天王峰에 올라 大源寺로 하산한 적이 있습니다.
大源寺의 그 고즈넉했던 雰圍氣가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아릿합니다.
우스개 소리 한번 하겠습니다.
산장이 만원이면 이만원 주고 두 분이 주무시고 오실 걸 그랬습니다.
또, 웃자고 한번 해 보았습니다.
가고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함께 있을 것입니다.
작은 거인 楊장군님이 그러하셨듯이
보름달 아래 함께 하셨던 先輩님은 더욱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저도
天王峰이,
中山里가,
그 휘영쳥했던 보름달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도산학 형수님,
또 한주의 日常을 정리해야 할 금요일 저녁입니다.
괜시리 저의 글로 인해 아린 기억 속으로 힘든 시간여행을 하신 건 아니신지요?
아리지만, 아프지만 회상할 수 있는 追憶이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異邦人'의 뫼르소도 저와 같은 생각이겠지요?
'變身'의 그레고르도 저와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마트에 갔더니
한봉지 1500원 하는 홍합과 한병 1100원 하는 막걸리가 있더군요.
2600원의 效用價値가 이리도 큰 것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홍합탕에 막걸리 한잔, 天下를 다 얻은 것 같으니까요.
모든 것이 다 마음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오후 아스라한 追想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 보았습니다.
장농 속 깊은 곳에 있던 CD에 담긴 산행사진들을 쭉 훑어 보았지요.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아니 모든 것이 다 없었습니다.
모레 일요일에는 靑鶴寺에 가 부처님을 꼭 뵈어야겠습니다.
3천배는 못하더라도 5백배는 꼭 해야겠습니다.
(지리산입니다. 첫번째 사진은 天王峰 아래 '살아 千年, 죽어 千年'이라는 朱木 앞에서입니다.)
강세오님도 중산리 쪽으로 오르셨네요.
하긴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연한 일이지요.
지리산을 100번쯤 오른 사람도 수도 없이 많으니까요.
잠깐 "법계사"가 생각이 나지를 않아 사진첩을 들추었습니다.
옛날 옛적에 이곳 험한 산까지 찾아와 기도드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까지 먹먹해지곤 했는데
벌써 이름까지 까마득히 잊다니요.
세월이 간사합니다.
그 "법계사"를 알고 계셨네요.
"대원사"도 좋아하시고요.
저는
인월에서 뱀사골로 들어서면
"실상사"의 본사인 "백장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좋아서 가끔 찾습니다.
남들은 "실상사"가 말사라면 좀 의아해 하지만 실상 "실상사"는 "백장암"의 말사 이지요.
우리나라 "선"의 맥을 꽂은 자리라고 교과서에서도 배웠습니다.
한 켠으로 쑥 들어간 산속에 위치해 있어 눈에 잘 띄지않는 암자이지만
"백장암" 뜰에서 바라보면 지리산이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신비한 곳입니다.
찾는 이 별로 없는 암자엔
공부하는 스님들만이 찾아왔다 100일을 머물다 돌아가고
찾아 오는 이들을 위해
스님들이 감을 통째로 깍아 멍석에 널어 놓고 먹고 가라는 곳
그 꾸득꾸득한 반시의 맛을 잊지 못 해 가을이면 생각나 찾곤 했지요.
누군가는
지리산이
가도 가도 지리해서 "지리산" 이라고 말했지요.
아닙니다.
지리산은 풍요의 여신이 머리 괴고 편히 누워 쉬고있는 산이랍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리산을 몇년째 못 가 보고 있으니......
강세오님은
마음이 내키면 주저말고 훌쩍 떠나십시오
함께 계셨군요.
여유로운 주말 되시길 빌겠습니다.
'백장암', 기억 속 한켠에 담아 두겠습니다.
百丈庵이네요.
큰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던 암자인가 봐요.
母岳山 金山寺 末寺인 實相寺 부속 암자라 하네요.
"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 하신 百丈禪師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합니다.
百潭寺 부속 암자인 鳳頂庵이 백담사보다 더 유명한 것과 같은 경우인가 봅니다.
설악산과 지리산 중에 고르라면 저는 당연히 지리산이지요.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 관악산..... 岳자 들어간 山들은 왠지 거칠어요.
평안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강세오님
언젠가는 한번 꼭 들러보십시오
"백장암"은 제가 말한 이상을 찾는 이에게 안겨 줄 것입니다.
암자이든 교회이든 성당이던
왠지 마음에 끌리는 곳이 있더라고요.
좋은 자리에서 오랫동안 기도를 해서일까요?
뉴질랜드에서는 여행 중 "세상에서 제일 작은 교회"를 만났습니다.
바다같은 호수를 배경으로 서 있는 교회인데
들어가니
넓은 창이 가득 호수를 담고
벽에는 십자가 하나만이 달랑 걸려있는
의자도 몇개 뿐으로
입구엔 엽서만 놓여있는 작은 교회......
나도 모르게 무릎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았습니다.
기도가 저절로 나왔지요.
눈물이 흘렀습 니다.
그 작은 교회와
지리산 구석에 있는 백장암
느낌이 그렇게 같을 수가 있을까요?
강세오님
좋은 곳을 다녀 오신다고요.
어딜 가시나 편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南無佛, 南無法, 南無僧
一灑東方潔道場
二灑南方得淸凉
三灑西方俱淨土
四灑北方永安康
南無常住十方佛, 南無常住十方法, 南無常住十方僧.....
山에 다녀 오겠습니다.
(첫번째 사진은 강화 마니산 첨성단 開天節 행사의 7仙女입니다.)
오늘 청학사에 가 부처님을 뵙고 왔습니다.
108배를 세번 324배의 절을 올리고 왔지요.
500배를 올릴 생각이었는데 아직 信心이 부족한가 봅니다.
내일부터 또 日常이 시작되니 무리는 하지말자는 생각도 있었구요.
첫 108배를 마칠 무렵 대웅전의 중앙 츨입문이 열려 깜짝 놀랐습니다.
주지스님도 중앙문을 사용하지 않고 중앙 옆문으로 출입하기 때문이지요.
신도들은 측면의 출입문을 이용하구요.
검은색 등산용 점퍼를 입은 보살님이셨습니다.
그곳은 부처님께서 사용하시는 문이라고 정중히 알려 드렸습니다. .
보살님 나갔다 측면의 문으로 다시 들어와 저에게 묻는 말,
'절은 아무데서나 해도 되지요?'
'네,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는 저의 대답을 듣고 자리를 잡고 절을 하더니
제가 두번째 108배 중 70배 정도 했을 때 절을 마치고 가셨지요.
부처님께서 오셨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108배를 마치고 解憂所도 다녀오고 목을 축이러 약수터에 갔습니다.
그곳 앞 돌탁자에는 빨간색 점퍼를 입은 보살님이 과일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물론 등산복 차림이었지요.
세번째 108배를 하는 도중 이번에는 주황색 점퍼를 입으신 보살님께서 오셔서
불전함에 시주도 하고 절을 올리고 가셨습니다.
역시 등산복 차림이었습니다.
등산인구가 많이 늘었다는 것을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그동안 맹활약 하셨던 유순애 교수님, 도산학님, 김옥인님을 비롯해
이곳과 因緣이 있으신 모든 분들께 健康과 幸運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악산입니다.첫번째 사진은 봉정암을 출발 소청봉을 거쳐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던 중 만난 새벽 黎明입니다.
세번째 사진은 공룡능선입니다. 오른쪽 뒤로 멀리 동해바다의 水平線이 보입니다. 山과 바다와 하늘이 만나고 있습니다.)
山은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찾는이들을 기다리고 있지요...
산을 사랑하시던 고인의 영면을 진심으로 애도 드립니다.
고인께서도 다음분을 위해서 하늘에서 인도하실거에요.
강세오님에게도 위로의 손길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