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모른다. - 중앙일보 한가위 특집 -


* 명절 : 아내가 며느리가 되는 날. 누군가의 며느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날. 그래서 아내가 시댁으로 가는 날. 전근대의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시간여행. 10시간 남짓 걸리는 길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십 년, 수백 년을 거슬러가는 길. 가부장제 질서 속으로 넘어가는 길. 이 기간을 전후해 아내는 멀미와 두통과 변비를 포함한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데, 이는 현대와 전근대의 시차에서 오는 생리적 현상이다. 가부장 질서 속에서 겪는 그 모든 스트레스에 대한 아내 몸의 농성이고 시위다.

한가위: 남편은 한가하고 아내는 가위 눌리는 날. -『부부어 사전』중에서


  추석 건너뛰기


 그러니까 아내의 추석은 보름 전부터 시작된다. 아주 희미한 기미와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과 함께. 한낮엔 아직 여름이 여전한데 아침 저녁으로 불쑥불쑥 가을이 얼굴을 들이밀 때쯤, 아내는 멀미를 시작한다. 물론 추석용 멀미다.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은 보름이나 남았지만. 퇴근해서 귀가한 남편을 아내의 결연한 얼굴이 맞이한다.


“당신 나랑 이야기 좀 해요.”

사소한 이야기라면 그냥 할 텐데 아내가 이렇게 말을 시작하는 것은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무슨…?”

“아무리 생각해도 낭비야. 비효율적이고. 그렇게 먼 거리를, 막히는 도로에서 시간 보내고, 받고 돌아서면 누가 준 것인지도 모를 선물을 사느라 돈과 시간을 허비하고.”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당신도 존 그리셤의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읽었죠?”

“그건 왜?”

“우리도 이번 추석 가뿐하게 건너뛰자.”

“그게 말이 돼?”


“그럼 당신은 추석에 벌이는 이 민족적 소동은 말이 된다고 생각해? 오며 가며 길바닥에 시간 버리고, 시댁 가서는 음식 준비에 손님들 맞이에, 수시로 내어놓아야 하는 상차림에, 2박3일 동안 집중적으로 과식하고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그래서 더부룩한 속과 아랫배에 가득 찬 가스에 불만과 스트레스와 편두통과 근육통에 짜증만 나고. 그런데 표정관리 되지 않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 억지로 웃어야 하고. 명절이 아니라 아내들만의 노동절이라고. 이건.”



“남들도 다 그렇게 해.”

“그러니까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요. 시댁도 친정도 가지 말고 추석 선물도 사지 말고. 우리끼리 그냥 쉬면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정 뭣하면 고궁이나 다녀오면서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며 그렇게 지냅시다. 휴가처럼. 진정한 휴가로. 나 요즘 몸도 안 좋아.”

“흠. 말이야 쉽지. 그게 잘될까?”

“안 될 게 뭐가 있어? 우리 마음먹기 나름이지. 그러니 이번 추석은 가볍게 건너뛰어요. 장대높이뛰기 선수 이신바예바처럼. 응?”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아내를 상상하는 남편은 불편하다. 아무래도 장대가 좀더 튼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뿌리치기 힘들다.그래 봐야 일 년에 겨우 한두 번인데요. 뭘

남편은 장 보러 나가는 아내를 따라간다. 테니스라도 치고 오는 듯한 차림의 이웃 부부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다. 이웃집 여자는 아내에게 인사를 건넨다.


“어디 가세요?”

“장 보러요.”

“아, 추석 선물 사러 가시나 봐요?”

“아니, 그건 아니고요. 그냥 뭐 좀 사려고.”

“추석에 안 내려가세요?”

“네. 저흰 이번에 안 내려가려고요.”

“아니 왜요?”


추석에 고향 안 가는 일이 그렇게 놀랄 일인가? 이웃 부부는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으며 마치 우리 부부를 무슨 신종 플루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쳐다본다. 특히 이웃집 남자는 남편을 힐난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남편은 잘못해서 교무실로 불려온 학생 표정을 하고 변명을 한다.


“워낙 연휴가 짧기도 하고. 여름휴가 때 다녀왔거든요.”

이웃 부부는 지금 그걸 핑계라고 대는 거냐는 듯 남편과 아내를 쳐다본다. 그들의 가을은 한창인 모양이다. 그들의 입 속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환청처럼 울린다. 쯔쯔쯔. 쯔쯔쯔. 이웃집 남자가 남편에게 말한다.


“그래도 가셔야죠?”

내가 안 가겠다는데 왜 자기들이 난리지. 가든 말든. 그런데도 그들은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무리 고생을 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지치고 아프더라도 가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그래 봐야 일 년에 겨우 한두 번인데요. 뭘.”

아무 말도 못하고 쩔쩔매는 남편 대신 아내가 한 말씀한다.

“그러니까요. 매년 한두 번씩 그런 일을 치른다는 게 끔찍하지 않으세요?”


불효막심한 남편과 아내

장 보러 나오는 게 아니었다. 동네 마트고 재래시장이고 백화점이고 할 것 없이 온통 추석맞이 상품전이다. 백화점에서는 민족 최대의 명절을 맞아 어린이 씨름대회와 씨름여왕선발대회를 개최한다고 곳곳에 배너를 걸었다. 얼마 이상을 구입하면 각종 경품을 준다고 유혹하는 안내문을 나눠준다. 추석 분위기를 띄운다고 초가집을 설치하고 한복 차림으로 기념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도 만들어두었다.


추석특별상품대전 코너에는 각종 추석용 효도선물세트가 즐비하다. 안마기 같은 건강보조용품, 영양제와 비타민제, 오메가3, 전통주 세트와 한과 세트 등이 불효막심한 남편과 아내의 눈을 아프게 한다. 화장품 세트, 차세트, 커피세트, 홍삼선물세트 등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델이 절하는 모습과 함께 진열되어 있다. 예쁘고 잘생긴 모델은 어서 지갑을 열고 카드를 꺼내어 효도를 하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속삭인다.


한쪽에서는 천편일률적인 선물에서 벗어나 좀 더 기억에 남는 색다른 선물을 하라면서 볼펜·명함지갑·원두커피·와인·버섯 등 역시 천편일률적인 상품을 추천한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 지갑으로 손이 가는 남편의 손을 아내의 손이 꽉 붙잡는다. 제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남편과 아내는 추석맞이 상품전을 간신히 통과한다. 죄인처럼. 포로처럼. 아내와 남편은 추석을 맞이하는 사람이 아니라 건너뛸 사람이므로. 남편과 아내는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서야 죄인과 포로는 깨닫는다. 사야 할 물건은 하나도 사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은 추석특집

추석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TV에서는 벌써부터 추석특집 편성이다. 아예 추석을 통째로 생중계해줄 모양이다. 이번 추석연휴에 고향 가는 길은 어느 정도 걸리는지 몇 시간이나 걸릴지 아예 시뮬레이션해서 예측해 준다. 올 추석연휴 기간 중 고속도로 정체가 예년에 비해 유난히 극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로공사는 올해 추석연휴가 예년에 비해 짧아 고속도로 정체 길이가 최대 330㎞에 이르고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소요시간도 9시간에 달하는 등 사상 최악의 정체 현상이 나타날 것 같다고 밝혔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10월 1일부터 5일까지 추석 연휴기간 고속도로를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량은 하루 평균 360만 대로 지난해보다 17만 대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수도권 관문 영업소를 이용하는 차량도 1만7000대가 증가한 하루 평균 65만 대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뉴스를 보면서 아내는 말한다.


“역시 잘 결정한 거 같아.”

“응?”

“추석 건너뛰기로 한 거 말야.”

“아냐. 아무래도 내려가야겠어.”

“뭐? 뉴스를 보라고. 뉴스를 봐. 저렇게 차가 막힐 텐데.”

“그러니까 가야겠어. 하루 평균 360만 대가 고향으로 간다는데, 지난해보다 17만 대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는데 우리만 안 내려간다면 불효막심한 놈이 되는 거 아니냐고!”


뉴스는 추석 물가 안정 실태 점검에 나선 시장의 모습을 비춰주고, 또 추석 선거법 위반 행위 특별 단속에 나서겠다는 선관위의 소식을 전한다.아내는 채널을 돌린다. 홈쇼핑에서는 추석선물을 안방에서 편안하게 주문하라고 유혹한다. 아내는 채널을 옮긴다. 화면은 추석에 올 자식들을 기다리는 노부부의 모습을 시골의 풍광과 함께 담고 있다. 아내는 채널을 바꾼다. 날씨도 추석 이야기다. 경제도, 사회도, 정치도, 연예도, 문화도 온통 추석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커버스토리는, 토픽은 추석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추석특집인 것이다. TV를 끄는 아내가 남편의 눈에는 이카로스처럼 보인다. 장대높이뛰기 선수 이신바예바가 아니라 태양을 향해 날다가 추락한 이카로스처럼.


우리는 괜찮다

아내는 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이번 추석엔 안 내려가기로 했다는 말을 하며 아내는 그 이유를 늘어놓는다. 시댁에서도 전화가 온다. 남편의 어머니다.


“이번 연휴가 짧으니 뭐 왔다갔다하면 너무 피곤하고 그러니 무리해서 내려올 필요 없다. 휴가 때 다녀갔고 했으니.”

“네…. 그래서 저희도 어쩔까 생각하는데…. 네…, 그럼 이번엔 그냥 그럴까요?”

“그러려무나. 뭐 우리야 너희들이 굳이 온다면 그것도 좋지만… 하긴 다른 집들 다 오는데 손주들도 보고 싶고… 나야 뭐 암시랑토 않지만 너희들 아버지가 기다리시기는 하더라만… 안 오면 허전하고 서운하긴 하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힘드니 어쩌누. 이번 연휴가 너무 짧다. 아범도 피곤할 테고. 우리야 괜찮으니까. 이번엔 내려오지 말거라.”

“네…. 생각해볼게요.”


아내는 며느리다. 며느리는 전화를 받으면서 이카로스처럼 지상으로 추락한다. 추락하는 이카로스는 원망하는 눈빛으로 남편을 본다. 자신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올리는 남편을.


아내의 추석

어깨를 으쓱 올리는 남편과 함께 결국 아내는 시댁에 간다. 그리고 우리가 매년 반복하는, 화기애애하고 사랑과 정이 넘치는, 즐겁고 풍성한 추석을 보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는 바로 그 한가위를 보낸다. 누구나 다 아는, 그러면서도 모두 모르는 체하는, 아니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체하는, 입 가진 사람이면 모두 아내의 명절 스트레스를 이야기하고 걱정하고 위로하는, 그런 인사와 걱정과 위로가 오히려 아내의 명절 스트레스를 더욱 짓누르는, 그리하여 결국 그 누구도 대신하지 않고 아내가, 아내만이 감당하는, 추석을 보낸다. 아내의 추석을.


추석을 지내고 돌아오는 길. 귀성길 도로는 아내의 불편한 속처럼 꽉 막힌다. 추석 연휴 내내 멀미와 편두통과 변비에 시달린 아내의 얼굴에는 불편하고 지친 기색이 뚜렷하다. 남편은 아내를 위로하고 싶다.“내년에는 정말 추석 건너뛰자. 응?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그냥 우리끼리 보냅시다.”


남편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가당찮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인지. 그러니까 내년에도 아내의 추석 건너뛰기라는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시댁이, 친정이, 이웃이, 재래시장과 백화점이, 언론이, 국가가 그리하여 온 우주가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무 대꾸가 없다. 차라리 드러내놓고 화라도 내면 남편 마음이 편하련만. 막히는 도로만 노려볼 뿐 아내는 고요하다. 그런 고요가 남편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차는 왜 이렇게 막혀? 삼천만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것부터가 이게 정신 나간 짓이지. 그것두 딱 사흘 동안.”


남편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나온다.민주당은 현재 사흘간 쉬도록 한 추석과 설 연휴가 주말과 겹칠 경우 휴무일을 하루 연장, 나흘간 쉴 수 있도록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경일 및 공휴일에 관한 법안’을 조속히 제정키로 했다.그 뉴스를 듣고 남편이 말한다.


“그나마 연휴가 하루 더 늘어나면 좀 낫겠군. 당신도 하루쯤은 푹 쉴 수 있을 테고.”

“세상에. 당신 정말 그렇게 생각해? 하루 연장하면 내가 하루 더 쉴 수 있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내의 노동절이 하루 더 연장되는 거잖아. 명절 연휴가 짧으면 짧아서 못 내려간다고 핑계라도 댈 수 있지. 이젠 그런 핑계도 못 대고. 이건 아예 옴짝달싹 못하게 법으로 추석을 강제하려는 수작이잖아. 남자들이 하는 생각이라곤.”

화내는 아내를 보니 비로소 남편은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다.


김상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