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7205.jpg
 

    가을에 드리는 기도/윤 용 혁


    시나브로 초록이 떠난 자리

    가녀린 삭정이를 부여잡아

    혈색 잃은 나뭇잎 하나가

    가을바람에 체머리를

    둘레둘레 흔들다

    두멍에 내려와 몸져눕는 군요

    삶의 무게를 지탱하던

    바지랑대를 살포시 잡은 고추잠자리가

    이 모습을 지켜보다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을이 떠나는 계절로만 기억되지 않게 하소서

    가을에 더욱 사랑을 알게 하시고

    미움도 슬픔도 고별도

    모두 내려놓게 하소서

    소외된 이의 벗이 되게 하시고

    바닥에 누운 풀잎처럼

    겸손을 깨달아 낮은 데로 임할 때

    고운 단풍잎을 가져와 먼저 위로하게 하소서

    비록 가진 것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이게 하시고

    건강과 행복을 고루 나누어 주옵소서

    행여 철책너머 북녘을 향해 날아가는 기러기에게

    먹을거리를 부탁해

    시장터 수체구멍을 뒤져 국수 가락을

    건지던 충격의 꽃제비 소년들을

    배불리게 하소서

    고추잠자리의 기도가

    헛되지 않게 하시고

    가을향기 되어 흐르게 하소서

    가을에 드리는 기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