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제이고요,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하며 꼬까옷 입고 즐거워하던 나의 명절이
시집을 와서는 180도로 변신을 했다.
명절이 가까와 오면 한달 전부터 걱정이 앞서고 몸이 먼저 알아서 아프기 시작이다.
한번은 구정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갑자기 이가 아파 물 한모금을 넘길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부랴부랴 치과엘 갔더니 치아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신경외과를 가란다.
결국 병명은 들어 보지도 못한 "제3신경통"으로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나....
의사 선생님이 왼쪽 광대뼈를 만지니 까무러칠 정도였다.
그러나 명절이 코 앞이니 별 수가 있나.
명절내내 빨대로 물과 우유만 빨면서 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명절만 되면 겁이 앞선다.
맏며느리로 시집와 시어른 모시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안 해 본 사람은 절대로 모른다.
그런데 살면서 터득을 한다고 나름대로 지혜를 짜냈다.
못 하니까 남들보다 먼저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선 냉동실에 보관해도 될 것 부터 시작이다.
갈비는 기름기 많은 한우대신 L.A갈비를 찜용으로 썰어서 핏물을 뺀 후 갖은 양념에 잰다.
이때 내가 꼭 넣는 것은 콜라로 갈비가 부드럽고 짜게 되는 것을 예방해주기 때문에 애용한다.
무우 감자 당근등도 갈비 정도로 큼직큼직하게 썰어 찌는 갈비위에 부서지지 않게 살짝 얹어 익혀낸다.
다 익힌 갈비는 하룻밤 지나면 기름기게 하얗게 앉는다
그러면 기름기를 깨끗이 건져내고 또 다시 한번 중불에 익히고는
호일에다 갈비 두어점, 감자, 무우, 당근 하나씩에 고명으로 호두와 잣을 올려서는 보자기처럼 접는다.
이런 호일 보자기가 한 100개쯤 되야 갈비찜은 끝난다.
그리고 식으면 냉동실로 직행.
만들 때는 번거롭고 잔손이 많이 가지만, 먹을 때는 찜통에 넣어 뜨거운 김만 올리면 되니까
그릇에 기름기가 묻지 않아 깔끔하다.
물론 상에 올릴 때도 깔끔하기 그지없다.
탕국도 푹 고아 고기는 건져내 쭉쭉 찢어서는 갖은 양념으로 무쳐놓고
국물은 식혀서 기름을 걷어낸 후 냉동실로 직행이다.
산적도 충분히 두들긴 후에 갖은 양념에 재어둔 후 지져낸다.
북어찜은 잘라 놓은 북어를 사면 훨씬 싑다.
대강 물에 불렸다 가시를 발라서는 불고기 양념을 한다.
이때에도 콜라를 한잔 정도 넣으면 짜지도 않고 색깔도 예쁘다.
조기찜은 제일 쉽다. 평소에 소금에 절여 말린 것 중 실한 놈만 골라 두었다가 쪄내면 되니까.
물김치 식혜도 미리 해 두고
식구들이 기름진 음식뒤에 개운하게 먹을 수 있게 빨간 게장을 무치는 것도 게을리하면 안된다.
명절 전날은 녹두전 동태전 호박전 동그랑땡등을 해야 되니 바쁜데
실은 내가 제일 신경 쓰는 음식이 녹두 빈대떡이다.
왜냐하면 네모난 큼직하게 부쳐내는 빈대떡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출출하면 먹는 도시락이라고 배웠기에
녹두를 물에 불렸다 직접 갈아서 정성을 들인다.
맛이 없으면 저승 가는 길이 힘들까 봐.
잡채와 나물은 맨 마지막에 손을 댄다.
그리고 또 한가지
당면을 삶을 때는 간장과 소금 식용유 한방울을 넣으면 면이 엉겨 붙지도 않고 쫄깃쫄깃 해진다.
이렇게 차려야 하니 일 못 하는 나는 보름전에 준비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여러날 준비한 음식을 상위에 올리면 마음이 뿌뜻하다.
힘들었지만 내가 조상님들을 위해 무언가 한 것 같은 대견함도 들고
식구들이 맛있다고 하며, 이것 저것 싸 달라고 할 때에는 그 동안의 고생이 확 달아나버린다.
인사로 하는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이런 순간 때문에
나누어 준다는 작은 기쁨에 힘들게 준비를 하는 우리네 명절.
그래서 몸은 힘들어도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것도 습관이 되어 버렸는지
그렇게 옛날처럼 요란하게 아프지는 않으니
세월이 사람을 가르치는 모양이다.
옛날 우리 엄마들
연탄 때는 재래식 부엌에서 명절이면 얼마나 고생들을 했는지 절대로 잊지 못한다.
방앗간에서 줄 서서 기다려 떡을 뽑아 오면
상위에 콩고물 팥고물 쫙 펼쳐놓고
김이 펄펄 나는 찹쌀을 찬물에 손을 담가 가며 떡을 만들던 일이며
물엿을 고아서 밥풀데기, 깨등을 묻혀 강정도 직접 만들고
만두는 밤을 새워가며 왜 그렇게 많이 만들었는지
식혜는 꽝꽝 얼어서 한입 입에 물면 이가 덜덜 떨렸던 기억 등등
그때에 비하면 일같지도 않은 요즈음 명절
어쩌면 우리는 지금 너무 편해서 아픈지도 모를 일이다.
이숙용님
우리가 만난 것은 다섯번도 안 되지만
만날 때마다 눈에 확 띄는 새봄같은 여자라 생각하곤 했지요.
늘 밝고, 환하고, 긍정적인 귀여운 여인을 연상케 하는 "모파상"이 그리는 여인 말입니다.
옥상에서 바베큐 파티를 가끔 하시나 보네요.
제고의 전임 정보위원장이신 안억봉님이
한의원 옥상에서 토요일마다 바베큐 파티를 열어 친구들을 즐겁게 한다 해서 부러워했는데
우리 인일에도 그런 분이 계셨네요.
저도 언젠가는 한번 초대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린 탕국위에 네모모양 다시마를 얹어놓고 (보자기)
숙주나물위에는 다시마를 채쳐서 얹어놓는데(멜빵)
무엇을 싸가지고 가실까?하고 생각 했는데
녹두 빈대떡이 도시락이었군요.
다음부터는 녹두전에 더 신경을 써야겠어요.
서순하 선배님
제가 음식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있답니다.
저의 시어머님 평소엔 친정에서 해 온 음식은 맛 한번 보고, 쓰다 말다 말도 없이 멀리 밀어 놓곤 하셨는데
임종을 앞두고 미음도 겨우 드시던 분이 갑자기 "너의 어머님이 하신 잡채가 먹고싶다" 하셔서
부랴부랴 친정엄마가 해 가지고 오시니
얼마나 달게 잡수시었는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것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음식이 될 줄이야.....
드시고 싶은 음식을 달게 드시고 가셨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그런 기억 때문에 때가 되면 소홀 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 오셔서 드시고 감을 저는 알고 있지요.
이런 Lesson좀 자주 해줘요~~~
(녹두전을 어찌하면 잘 부치나.... 번철종류도 여러갤 사봤지.
그렇다고 잘되는거 아냐. 녹두들이 사람 알아보나봐 ㅎㅎ)
사돈의 잡채를 마직막으로 청하신 얘기는...드라마감이요!
추석이 다가오면 벌써 보름전부터 준비를 시작한 그대....난 공식휴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도산학 선배님,
환자를 대하다 보니 명절증후군의
여성분들을 가끔 봅니다.
어렵게 내려가자마자 앉지도 못하고
전을 부치고 제수를 준비하는...
두통을 호소하고 소화불량이
따르더군요.
마음으로 이해하려 노력하지요.
삼차신경통을 알으셨군요?
안면근에 흐르는...
상당히 고통스러우셨을텐데요.
위로를 보냅니다.
큣하신 살림살이의 노하우도
전해듣는 귀한 시간이지요. ㅎㅎㅎ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아~!
명절 음식준비를 2주전에 하신 산학언니~
아마도 생각준비는 한달 전부터 하셨겠죠...?
막내며느리 같은 언니가
늘~ 포용하는 바다같은 마음이신게,
맏며느리 수십년 경력이시군요?
사실 "추석명절 즐겁게 보내세요~"하는 메세지보다
다음 명절전엔,
이런 명절 잘보내기 노하우를 미리 올려 놓으면 좋겠네요~~^*^
음식뿐만 아니라
예쁘신 마음까지 배우게요~~~~~~^*^
산학언니! 고맙습니다
명절을 대충 지내는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여자들에게 명절은 노동절이란 말이 실감나는 내용인데,
베푸는 마음이 있으면 즐겁고 뿌듯한 명절이 되는거군요~!!
산학후배의 글을 읽자니
울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엄마도 몇칠몇날을 철저히 준비하시더군요.
맏며느리로 시엄니 50년 모시고 사시면서
몰려오는 많은 친척들 대접하자니 보통 많은 음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개성사람이라 음식 장만이 보통 까다롭지가 않더군요.
몸살이 나도 시엄니 계시니 편히 눕지도 못 하셨어요.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 당시 큰며느리가 보통 힘들었던 것이 아니예요.
물론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지금은 모든 것이 편리해져서 그래도 낫죠.
산학후배도 야리야리한 그 몸으로 큰며느리 노릇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3 신경통을 다 앓았을꼬!!!
그러나
나눠주는 작은 기쁨을 맛보았다니 얼마나 다행일까!!!
받을꺼야~~~
김광숙 선배님
저는 "시집살이"를 하면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나"하나 밖에 모르는 철부지 였지요.
그러나 겪고 살다보니 세상의 이치가 보이더라고요.
정말로 세월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나 하나 죽이면 세상이 편해지는 이치를 자연스레 터득한 셈이지요.
우리 엄마들 다 그렇게 살아 왔기에
우리도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겠지요.
훗날 우리 아이들도 광숙선배님처럼 엄마를 그리워하며 꼭 같이 가슴 아파 울 것입니다.
선배님
어머님은 아직도 많이 힘드시지요?
휴~ 이제야 정신들어 산학후배 글을 읽다보니 또 다시 명절준비합니다.
뒤 늦게 시집살이하면서 나 역시 사람되어가고 있어요.
전을 부쳐가며 간을 봐 주십사 연로하신 시아버님께 여쭈워보며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하니 괜스레 가슴이 스려오더라구요. 고생만하시고...
산학후배님의 상차림처럼 저 역시 그리했답니다.
성격 급하여 얌전하게는 못해도 후다닥 ~ 후다닥 ~맏 며느리니깐요.
아무리 급해도 다음에는 갈비찜을 산학후배가 권하는대로 해 볼까요?
정신머리 없는 나는
얼굴 팅팅 붓도록 준비한 음식 빼먹을새라
냉장고 문에, 음식점처럼 메뉴를 죽~ 적어 놓았었죠.
서툴러서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때가 그립습니다.
도산학 선생님 저는 13기 김혜경인데요~ 저희때 교생실습나오셨던 국어 선생님 맞으시죠?
제 기억에는 선생님(선배님?)이 매우 가냘프시고(바람불면 날라갈것 같은 모습으로 기억됨)
손끝에 물도 안묻히실것같은 분위기셨는데 맏며느리로 시집가셔서, 이렇듯 음식장만을
매우 규모있게 하신다니 상상이 안되네요? 반가와요 선배님~~~
저는 지금도 선배님이 수줍게 입가리로 웃으시던 모습이 그려지고... 소풍을 같이 갔던것 같은데...(?)
담에 총동창모임이 있을때 꼭 뵈어요~
저는 서울 잠실에서 씩씩하게 사업하며 커리어 우먼으로서 잘 지내고있지요~ㅎㅎ
명절 증후군을 제대로 겪으셨군요. 삼차신경통까지 얻어걸리실 정도니...
처음 산학 님을 보던 그 때부터 작은 거인이라는 느낌을 받았지요.
참 다부지고 옹골찬 사람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개성이 뚜렷하고 올곧은 사람이라는 인상!
그런데 역시 제 짐작이 틀리지 않았어요. 꼭 막내 며느리 같은 데 기실 맏며느리인 사람!
시자가 붙으면 일단 서늘하지요. 하지만 그 큰 살림과 가정을 이끌어나가며 사람이 되었다 하시지만
늘 어머니 앞에서 내놓고 아내 역성을 들어주지는 못하고 그저 안쓰러운 눈길로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던 그 분의 말없는 깊은 사랑이
수십년 세탁기 아닌 물빨래만 해야할 정도였던 시집살이를 견뎌낸 진짜 원동력이었겠지요.
음식솜씨는 엄마에게 닮는다는데 산학 님의 솜씨가 좋은 줄 이젠 알겠어요.
아무튼 존경의 염을 금치 못합니다.
산학언니~~~언니 글을 읽으니 즐거운 글인데도 가슴이 아려오네요
옛날 울 엄마 고생하시던 장면을 생생하게 적으셔서 그런가봐요
명절 전에 읽었으면 저도 좀 더 정성껏 음식을 했을 것 같아요
조목조목 정성들인 음식이 눈에 선해서 군침이 돌고 반성도 되고...ㅎㅎㅎ
한 줌 이슬같은 여린 몸으로 일은 황소보다 많이 지혜롭게 하시며
나눌 때 기쁨까지 누리시는 언니 모습이 <꽃보다 아름다우셔요~!! >
아들 교회청년팀들이 조금 후 6시30분부터 옥상에서 숯불구이해먹으러 온다는 말만 듣고
저네들 야외 대신이니 알아서 한다길래 내버려두러했는데 언니 글 읽고 반성되네요.
빨리 일어나서 청년녀석들 깜짝이벤트로 몇가지 참견 좀 해줘야겠어요...
얼렁 묵은지에 보쌈고기얹어앉히고, 매실쨈과 고추가루로 도라지오이양파 살짝 무쳐놓고,
청년들 좋아하는 간장소스샐러드(닭가슴살과 양상추 )... 또... 대충 남은 음식들 거덜내야지....
오늘 밤은 옥상에서 기타치고 노래하고 같이 놀아야지...
울아들 엄마 힘든다고 지들끼리 알아서 한다기에
철없는 이 엄마 얼씨구나하고 교회연습실로 플륫연습이나 가려했는데 ...ㅋㅋㅋ
언니 덕분에ㅡㅡㅡ베풀 생각을 하니 기분이 행복해지네요
이래서 역쉬...선배님들이 감사하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