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41012_2.jpg

 

대학 때 미대 후배가 내게 말했어요.

시드는 꽃도 아름답다고..

시드는 꽃은 쓰레기 통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애의 말은 생각을 좀 하게 만들어 주데요.

나이 들어 가면서 가끔씩 그 말을 곱 씹어 봅니다.

아름답다고 보아 주는 사람에게는 시드는 꽃도 아름답겠지요?

흔한 아름다움 보다 남들이 보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기른다는 것은 창조적인 일일테지요.

21141012_3.jpg

 

온실에서나 사람들의 보살핌을 많이 받고 키워지는 꽃들은 당연히 아름답고

사람들이 아끼는 꽃들이 모두 다 예쁜 것도 분명하지요.

그런데 요새 새 카메라를 가지고 나가서 들판을 헤매며 찍어 대다가 보니 잡초도 참 아름답더라구요.

사람들이 귀히 여기지 않는 꽃들과 잡초들...

특히 시카고 남서부 교외에서 전에는 수도 없이 지나치던 들판에 자라는 잡초와 들꽃들의 세계가 아름다운 것을

정말 처음으로 깊이 느껴 보았어요.21141012_4.jpg

 

인생도 아무 고생하지 않고 온실에서 자란 화초같은 인생도 복되고 좋겠지만

잡초같이 고생하며 함부로 자라 나름대로 꽃 피는 인생도 멋진 것이라고 비유해서 생각해 봅니다.

그런 민초들을 많이 보았어요.

나 자신도 그중의 하나기도 하구요.

우리가 이민 와서 낯 설고 물 설은데 와서 생 고생을 하면서 살아갈 때

아무리 한국서 고이 자랐다고 해도 이곳에서는 잡초같은 인생이 되고 말았어요.21141012_5.jpg

 

도저히 할수 없는 일도 아이들을 생각하고 참아 냈고

남의 땅에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 치며

많은 것을 내려 놓고 마음을 비우며 살아야 했었는지요.

21141012_7.jpg

 

다시 시카고에 와서 전에 일했던 곳에 가보니 그런 세월이 있었던 것이 기억에 가물가물해요.

드라이클리닝 액체를 끓여서 새로 정수할 때

얼마나 자주 넘쳐서 치우느라 그 냄새를 맡고 혼이 났었던지...

나 같이 냄새에 민감한 사람에게 그것처럼 징그런 고역은 없었죠.

21141012_32.jpg

 

그 당시는 아이들 넷을 거느리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사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할때도 많이 있었는데

이제 많은 날들이 지나 돌아 보니

그렇게 산 것이 꼭 시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온실의 화초같은 아름다움은 없어도 밑바닥에서 살아남은 것이 더 귀할수 있다는 것을요.

21141012_24.jpg

 

아직도 고생의 한복판에서 절절매며 애쓰는 친구들을 보면서

모든 것이 다 지나갈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악착같이, 잡초같이 살아 남아 있기를 격려해 주고 싶어요.

모두 다 힘든 이 어려운 때에 끝까지 잘 견뎌 주기만을...


며칠 전 어떤 사람이 철모르는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놓고 혼자 저 세상으로 떠났어요.

한때 잘 나가던 옷가게들이 고전을 해서 파산을 생각하다가 우울증에 걸려서

그랬다고 하네요.

미국 땅에서, 파산 보호법이 잘 되 있는 나라에서 왜 그렇게 까지 해야 하였을까요?

그동안 살림만 하며 곱게 살게 해 주었던 부인과 아직 학생인 자식은 어떻게 살라고 그리했을까요?

21141012_34.jpg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요즈음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이겠어요?

집을 잃어버린 사람, 사업을 잃어버린 사람,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 너무나 많아요.

그렇지만 우리 모두 부디 죽지 않고 살아서 좋은 날이 오는 것을 볼수 있기를 기다려 봅시다.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 남아 꽃을 피울 때를 볼수 있기를...


이번에 고모는 내게 자꾸 말하데요.

"사노라니 언니도 지금처럼 좋은 날들을 지나는군요..."


비록 크게 여유롭지는 못해도 걱정 근심 없이 손자들과 놀며

사진기 들고 돌아 다니는 것이 참으로 보기가 좋고 부러운 모양이에요.


그래요. 잡초처럼 살던 저도 이렇게 잘 살아내고 웃음을 지으며 사는 날을 맞았으니

날마다 아직도 빨래 해서 다림질을 지긋지긋해대는 고모부도..

그런 중에도 매달 떨어지는 매상으로 비지네스가 내일 어찌 될지 고민하는 고모도

바닥을 쳤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있다고 애써 스스로를 격려하는 ㅅ님도

힘을 낼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09년 9월)

21141012_6.jpg

옛날에는 이런 표지판이 붙어있는지도 몰랐어요. 너르고 너른 들판에 풀만 잔뜩 있는데...

21141012_31.jpg

조금씩 가을 물도 들어가는 들판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참 행복했어요.

21141012_35.jpg
작은 개울이 있어서 좋았어요.

21141012_36.jpg
생명력 충만한 들꽃들에게서 위로를 받습니다.

21141012_37.jpg

집으로 돌아가는 차속에서도 바깥을 내다 보면서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21141012_38.jpg
이사진은 새벽에 찍은 것인데 안개가 멀리 있어서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그 주위에 많은 들풀들이 있었습니다.

21141012_39.jpg

사람의 키보다 더 큰 잡초들입니다. 그런대로 참멋이 있더라구요.
21141012_40.jpg
아주 평안하고 조용한 들이 시카고에서 한시간도 못되는 데에 널려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