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잘 나이 든 어른들에겐 빛이 있다.
젊은 것, 생명 있는 것을 축복해주는 신성한 빛이다.
내가 불교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여전히 교회에 가는 이유는 10여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그 어른들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이제 겨우 팔십이다'를 저술한 부부도 있고 결혼 50주년을 감사하며 금혼식을 올린 부부도 있다.
이름하여 일소(一笑)회! 이름처럼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어른들의 모임이다. 나는 깍두기고 마스코트다.
내가 거기에 깍두기로 끼어 있는 이유는 그 어른들이 좋아서다.
나는 젊음을 부러워하지도, 흉내 내지도 않고, 젊음에 아부하지도 않는 당당한 어른들이 좋다.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아니 벌써 이렇게 나이 들었음을 받아들이고 내보이면서 헛헛하게 웃을 수 있는 어른들이 좋다.
나이가 들었으니 또 세상을 떠나신다. 한 분이 돌아가실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고 서늘해진 그곳에서 젊음을 축복해주는 이의 신성을 아끼게 되고 오래오래 품게 된다.
"이 선생, 지난주, 그 칼럼 잘 읽었어! 우리는 읽는 즉시 잊어버려서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참 잘 썼어!"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말 속에 들어 있는 편안한 사랑을 안다. 1%의 질투도 섞여 있지 않은 사랑보다 깊은 축복! 그래서 흡족하게 웃으면 그것이 우리들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작은 화석을 건네준 어른이 있었다.
사방 20cm쯤 되는 바다나리 화석이다. 돌이라 무거운데도 들고 오신 것이었다. 주시면서 말씀하신다. 이 선생, 그거 알아? 빌 게이츠가 자기 방을 비싸디비싼 현대미술로 장식하는 게 아니라 화석으로 장식한다는 거야. 그래요? 왜 그럴까요? 글쎄, 안 물어봤는데…. 그러고는 한바탕 웃으셨던 그 웃음은 선연한데, 그 어른은 이제 없다. 그분은 돌아가셨는데, 잿빛 화석은 무심히 남아 문득문득 나의 마루를 아득한 성찰의 공간으로 만든다.
화석은 돌이다. 돌은 돌인데 돌 이상의 것이기도 하다. 한때 생명이었던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열달을 품으면 사람이 되고, 백년을 품으면 역사가 되고, 천년을 품으면 신화가 될 것이다. 그런데 화석이 되기 위해선? 백만년이 지나고 천만년이 지나고 억만년이 지나야 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지구라는 별의 주인인 양, 행세를 하게 됐을까? 인간의 문명사는 얼마나 됐을까? 길어야 5, 6천년이다. 그런데 나의 마루에 중심이 되고 있는 저 조그마한 화석은 2억만년 전, 나리처럼 피어났던 바다생물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현기증이 인다. 인간의 시간에 비교하면 분명 영원의 시간이므로. 자연사에서 인간의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이므로.
인간은 자연의 작디작은 일부분이고 찰나를 사는 존재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환상이나 거품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자연사적 관점으로 시선을 옮기면 인간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문명사적 애증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이 무심한 세상 멋지게 살아보자고 마음속의 현자를 깨울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로 빌 게이츠가 자기 방을 진짜 화석으로 장식했는지 그렇다면 어떤 화석들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을 들었을 때 개연성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는 인터넷의 속도 전쟁을 주도하며 빠르디빠른 세상을 열었다. 그 대가로 우리에겐 상상도 안 되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늘만큼 땅만큼의 돈을 가진 그가 대담하게도 선언한 것이다. 자식들에게 백만불씩만 상속하고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 그 선언은 돈을 신으로 섬기는 현대인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고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백만불, 일반인에겐 역시 큰돈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그의 재산에 비하면 0에 가까운 비율이 아닐까. 그에게는 성공에 집착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의 인간미가 있는 것 같다.
출세를 한 사람에게서 풍기는 자신감이 있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는 일의 희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되는 인생에는 여백이 없다. 시간에서, 관계에서, 나눔에서 여백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완고해지고 냉혹해진다. 명령만 하고 듣지는 않는, 힘의 관계만 있는 구태의연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여백이야말로 마음속 현자에로 통하는 숨길이다.
오래된 것들의 향기가 있다. 오래된 것들의 소리가 있다.
침묵을 닮아 나지막하게, 그러나 깊게 퍼지고 박히는 것!
이제부터는 누구를 비난하는 말은 삼갈 것이라며 모든 비난의 말을 지중해 바닷가에 던져 버리고 왔다는 일소회 어른이 이런 말 같은 것! "인생이 짧아! 저승에 한 발을 담그고 사니 보이네! 젊은 적엔 좋지 못한 생각을 해도 몸이 견디더니 이젠 당장 탈이 나! 좋지 못한 생각은 세포를 병들게 하거든. 누군가를 미워하려면 나부터 다쳐야 돼. 그럴 거 뭐 있어! 생은 덧없고 좋은 사람, 좋은 생각은 많은데!"
가슴이 따뜻해진다. 마른 지식을 아무리 쌓는다 해도 저 지혜에는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내게 어른은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을 때 촉촉한 물색의 지혜로 젊은이의 황폐함을 치유해주는 현자다.
진심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도 서로에게 매이는 법이 없고, 서로서로 좋아하면서도 기대하는 법도 없는 저 어른들이 있는 한 나는 교회에 갈 것이다. <이주향, 철학자>

맞다.
혜경언니가 딸하고 함께 연주하던 거다.
이렇게 머리가 나빠요.
난 요즘 디지털 피아노로 멜로디부분을 다른 악기로 녹음해놓고 거기에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즐긴다.
단선률이라고 조금도 쉽지가 않더라구.
꿩대신 닭이지 뭐.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요령만 늘어간다. ㅎㅎㅎ
경선!,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 잘 읽었어.
그러나 좋은 글이 사람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는 것도 알아.
시어머니에 대해 '미움'의 말을 일삼는 어떤 사람이
자신은 언제나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만.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서서 자신을 바라 볼 수 만 있다면
'일소회'어른들 같은 삶이 되어질텐데.....
감동을 주는 좋은 글, 고마워.
수인아~
온전히 일상으로의 복귀.
새벽에 다시 일어나지네.
좋은 글을 읽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작가가 있더라.
그렇더라도 읽어야된다는 쪽이거든 나는.
오랜 시간의 숙성을 거쳐 결국은 그 사람의 자양분이 될 것을 의심치 않으므로.
다만 가파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는 없겠지.
여유있는 사람들이 문자와 사맛지 못하는 건 많이 아쉽지만.
여백의 의미가 살펴지니 노년도 좋을 수 있다는 잔잔한 희망!
그렇지....
자양분이 되는 좋은글이지.
남해섬 생각난다.
새벽동기끼리 만났네. 그랴~~!
일상으로의 복귀를 추카해여~~~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사돈께서 지금쯤 이륙하여, 태평양 위로 날고 계시겠구나.
나도 이제야 일상으로 복귀.
그러나 주말부터 일주일 뉴욕여행을 마쳐야 온전한 복귀가 되겠지.
명옥이, 나름대로 만들어 즐기고 있으니, 보기 좋고
순호도 여전히 손주랑 동문들이랑 재미가 솔솔하겠지.
남해 생각하면,
독일마을 즈음에서야 해가 떠오르던 생각이 언제나 나지.
혜옥인 지금 옐로스톤 여행 중이라
조금은 쓸쓸한 생각도 드네
바다나 보러 갈까......
나의 소망!
언제나 지금(그 때그 때)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충실하게 살자!
경선이덕분에 또 푸근해지는 하루가 됬다.
이 음악!
많이 듣던 건데 제목이 안떠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