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이라는 세살박이 조카딸이 있다.

우리 남동생의 딸로 , 맨날 "이모"이기만 했던 나를 처음으로 "고모"가 되게해 준 기특한 아이이다.

콩알만한 것이 어찌나 예쁜지 딱 인형이다.

분결같은 쬐그만  얼굴에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새까만 눈동자.....

분홍 원피스에 엉덩이를 씰룩대며 걸어다니는 모습이 앙징맞어 보는 이들마다 저절로 눈길이 가는 아이이다.

 

그런데 생기기와는 달리 모든 것이 늦되 걱정이 태산 같았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말을 제대로 못 해 "왜 이렇게 늦될까?"했는데 이즈음에 말문이 트이자 주위를 놀라 자빠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만나면 내가 자꾸 장난감등을 뺏는 등 못살게 구니까

나만 나타나면 "치워, 치워, 치워야지"하면서 장난감을 숨기기에 바쁘다.

아마 나를 자기 라이벌로 느끼는지 그 모습이 가관이다.

큰고모와 자기가 55살의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안  들어 야단이라도 치려고 목소리가 좀 높아지면 그 새까만 눈망울에서 금새 눈물이 뚝뚝뚝

품을 파고 들며 우는데 도대체 야단을 칠 수가 없다

그것도 할아버지가 영향력이 제일 크다는 것을 아는지, 꼭 할아버지 품에 달려가 눈물을 흘리니

아이 버릇을 가르칠래도 도무지 틈을 주지 않는다.

흘리는 눈물도 일초 후면 흔적도 없이 말짱하니 분명 거짓 눈물임에도 별 뽀족한 수가 없다.

 

얼마전 여행을 함께 했는데

제 에미가 엉덩이 한짝을 가리키며 "이것 누구꺼" 하니 "엄마꺼" 한다.

그리고 다른 쪽을 가리키니 "이건 아빠꺼" 라며 쫑알댄다.

그래서 내가 입술을 만지며 "이건 누구꺼" 하니, 그것은 에미가 가르치지 않았는지 웃기만 한다.

이때다싶어 "그건 큰고모꺼야"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입술만 가리키면 "큰고모꺼" 라며 앵무새처럼 쫑알거린다.

그러더니 세뇌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지, 급기야는 한술 더 떠 내가 시무룩하니 앉아 있으면

어느 틈에 달려와 제 입술을 가리키며 "이건 큰고모꺼" 라며 귀여움을 떤다.

 

얼마 전엔 자꾸만 읽어준 동화책을 또 읽고 또 읽어달라 하기에 귀찮아

":나 집에 갈거야" 하면서 지갑을 들고 일어났더니 아무래도 이상했던지

'진짜 갈거야?" 하면서 "나 미워서 가는거야?"한다.

두달 전까지는 말문도 열지도 못 하고 반토막 말만 하던 것이 어쩌다 이런 심리적인 말까지 술술 나온단 말인가?

신기하고 신기해서 웃고 또 웃었다.

그리고 이런 깜찍한 아이를 순간 귀찮아 한 것이 미안해

"아니야, 예원이가 밉다니!  예원이가 이뻐서 아이스크림 사러 가는 것이지" 했더니 나를 잡고 방방 뛴다.

 

자식 많은 집안에

또 그 자식들이 새끼 친 자식들로 인해 우리집은 항상  시끌법석 웃음꽃이 끊이지를 않는다.

한 아이가 "할머니, 나 외국에서 자주 못 오니까  보고싶을 때 내 사진 보세요" 하며 사진을 갖다가 걸어 놓으니

줄줄이 "나도" "나도" 하면서 갖다 걸어 놓은 것이 어느덧 한면을 채우고

어쩌다 송림동에 와서, 점검을 하고 제 위치에 있어야 안심을 하는 귀염둥이 아이들이 있어 돈이 없어도 즐거운 우리집.

 

얼마전

아프리카 아이들이 한 달에 2000원, 3000원이 없어 굶어 죽어간다는 기획 특집 기사를 보고는 생각이 참 많았다.

우리 아이들이 귀하고 예쁘면 남의 아이들도 귀한 법인데

우리 아이들만 예뻐하지말고 배고파 죽는 아이들을 위해 한달에 2만원이라도 후원을 꼭 하리라고.

그래야만 우리 아이들이 편히 살 수 있는 좀 더 좋은 세상이 빨리 오지 않을까?

대학시절 

김수환 추기경님의 강론을 듣고 한달에 1000원을 낸 후원금이 오늘의 꽃동네로 클 줄을 그때는 상상도 못 했듯이

우리들의 아이 사랑의 조그만 정성이   훗날 어떤 큰 결실이 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우리 예원이랑 싸우고 놀면서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우리 예원이처럼 차고 넘치는 사랑속에 티없이 자라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