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누렁이는 긴 혀를 연신 내밀며 턱을 까불 때 귀여운 강아지들은 물던 구수한 어미젖을 곁에 두고 네 다리를 벌려 볼록한 배들을 너나할 것 없이 내밀고 대자로 누웠다. 잠시 농사일에서 짬을 낸 동네 형들은 어깨에 병아리를 가둬 키우던 싸리나무로 만든 둥근 발과 종다래끼를 들쳐 매고 대열을 이루어 방죽으로 향했다. 반두를 가지고 봇도랑을 뒤지던 어린 나는 미꾸라지와 피라미만 한 주발씩 잡히는 것에 지쳐 좀 더 큰 잉어나 메기 또는 가물치 같은 민물고기에 욕심을 품고 자꾸 미끄러지는 하얀 고무신짝이 귀찮은 듯 벗어들고 그들의 뒤를 뒤질세라 종종걸음으로 바짝 따라갔다. 방죽은 정말 넓고 깊었다. 그곳에서는 반두 같은 조그만 그물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여러 동네에서 온 어른들은 둥근 발을 물속에 연신 찍어 퍼덕거리는 팔뚝만한 힘이 엄청 센 가물치나 잉어를 잡아 올렸으나 나는 여기서도 송사리나 피라미만 걸려드니 낙심하여 가져온 반두를 두렁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알몸으로 한길이나 되는 수로의 갈대숲을 자맥질 하며 손으로 뒤져 나갔다. “와!” 소리를 내며 여러 사람들이 흐려놓은 흙탕물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물밑 수렁 속으로 맨손을 들이민다는 것이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물귀신이 손을 잡아끌고 들어갈까 몹시 겁이 났다. 손에 물컹하고 뭐라도 만져지면 소스라치게 놀라니 가뜩이나 형편없는 나의 더듬이질 실력에 고기는 날 놀리듯 잡아봐라 하였다. 갑자기 따끔거려 엉덩이를 만지니 거머리가 빨판을 살에 대고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너무 놀라 벌거숭이를 한 채 뭍으로 나와 마른 흙을 비벼 그 놈을 떼어냈다. 너른 방죽에서 사는 놈이라 그런지 논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크고 징그러웠다. 그래도 고기는 잡아야겠고 사나이로서 집에가 빈 망태만 내 밀 수 없기에 돌 틈도 뒤지고 수초사이를 헤집고 있을 때 갑자기 물 위로 물뱀이 쏜살 같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어찌 피할 방도가 없어 물속으로 머리를 푹 박고 혐오스런 그 놈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숨을 참고 기다렸다. 다행히 내 머리 위를 가로질러 그놈이 사라진 다음에야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 한나절의 물질로 허기가 져 이제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큰 문제였다. 태양은 비웃기나 하듯 이글거려 등줄기를 볶아대고 산자락에 걸린 집은 멀기만 하였다. 빈 꼴망태에 반두만 땅에 질질 끌려가며 알 수 없는 무수한 그림을 길게 그려놓고 있었다. 이제 다리가 풀려 도저히 한발 짝도 움직이기 어려웠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먹을 것은 없다. 때 마침 바람에 머리채를 휘두르는 갈대가 눈에 크게 들어와 언젠가 동네 형들이 갈대의 속살을 벗겨 먹던 기억이 나 허기진 배를 채우려 허겁지겁 벗겨 보드라운 갈대 순을 입에 물었으나 어찌나 맛이 없던지 입맛만 버리고 길가에 슬며시 내려놓았다. 너무 지쳐 개천가 풀숲에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얼굴로 뛰어든 청개구리의 입맞춤에 놀라 눈을 떠보니 서산의 해는 미안한 듯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겼고 풀벌레 소리만 귓전에 맴돌았다. 간신히 몸을 가누어 집에 도착하니 벌겋게 농익은 나의 얼굴을 보신 어머니는 툭하고 한마디를 내뱉으셨다. “오늘도 고기가 널 잡았구나?” 다시는 그 방죽에 가질 않았다. 대신 형이 친구와 작은 그물을 가지고 용내천의 송사리, 참붕어, 피라미, 미꾸라지와 또 한 번의 씨름을 할 때 나는 밖에서 냄새나는 형들의 신발과 옷가지를 들고 따라 다녔고 긴급요청이 있을 때만 물고기몰이에 투입되어 허둥대다가 잘 한다고 한 짓이 결정적인 순간에 물이끼에 미끄러져 잽싸게 들어 올리려는 형의 그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니 그 많던 물고기는 다 도망가고 형은 물고기대신 동생이라는 수 인어를 잡고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나의 실수에 형은 황당해하다가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동생의 모습이 너무 웃겼는지 배꼽을 잡고 낄낄거렸다. 그리고 형은 고기를 나누는 계산법을 새롭게 고안해냈다. “나하나 그물하나 너 하나” 하고 쥐꼬리만큼 잡은 물고기를 삼등분하니 형의 친구에게 돌아가는 것은 다 말라비틀어진 피라미 서너 마리밖에 안되니 분통이 터진 형의친구는 냅다 논바닥에 그놈들을 내 던지고 그래도 성이 안 풀렸는지 달려가 맨발로 짓이겼다. 옷만 다 버리고 집에가 빈손을 내밀면 그 집 부모님에게 혼날 생각에 잠시 후 자존심을 접고 형에게 다시 그물을 빌려달라더니 혼자 수초를 발로 잘도 풀썩거렸다. 그러나 그 많던 붕어 떼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미꾸라지나 검불만 건져 올리자 그만 고기잡이를 포기하고 허공만 쳐다보다가 쓴 웃음을 짓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추억의 서툰 더듬질, 수년전 어린 딸아이와 옛일이 생각나 그물을 가지고 그 여울목에서 물고기를 잡은 적이 있다. 고기가 잡힐 때 마다 딸아이는 넘어져 물을 먹어가며 신기한 듯 마냥 좋아했다. 내 어릴 적 추억을 딸따니에게 물려주려 부단히 노력하는 중인데 바소쿠리를 지고 지나가던 한 동네 어른이 한마디 던지셨다. “이봐! 자네, 어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게. 그 물 말일세. 비가 오는 날이면 동네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이 뒷간에서 인분을 퍼다 붓고 있다네.“ 아뿔싸!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쩐지 시냇가의 고인 물이 부영양화 되어 이끼가 새파랗게 끼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시골의 맑은 개울가도 옛날과 달리 그렇게 오염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놀랍고 안타까웠다. 추억의 더듬질, 언제나 다시 해 보려나? |
ㅎㅎㅎㅎㅎ
용선배님,
벌써 구월이가 다가와 살랑이는군요.
오늘아침 테니스 두게임을 땀흘려 건지니
기분이 상쾌하군요.
청안하시지요?
어릴 적 할머니들이 잘 쓰시던 말
"이악스럽다."를 오랜만에 들으니
정겹고 반갑군요.
형은 심보가 놀부과였나 봅니다. ㅎㅎㅎ
한번은 다 자란 남의 집 가지를
따 배에 숨겨 가져오자 남의 물건에 손대면
절대로 용납 못하시는 어머니께 단단히 혼나고
그걸 그 집에 가져다 주고 사과를 하라고 일렀는데
그냥 그집 마당에 휙 내던지고
왔다는군요. ㅎㅎㅎ
그래도 우직하며 순수한 분이랍니다.
용선배님,
사진이 저의 고향동네에서 내려다본 정경이에요.
바다가 보이는 끝 부분이 방죽이지요.
바다건너 산이 석모도라는 섬이며
삼대 관음도량 중에 하나인 보문사가 자리한
유서깊은 곳이랍니다.
추억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여산!
오늘도 참 재미 있는 童心의 세계를 펼쳐 주셨네요.
늘 듣던 동산과 언덕의 이야기에서
방죽의 물고기 잡이 이야기로 무대가 바뀌었네요.
반두와 봇도랑이라는 말도 새로 익혔어요.
그리고 역시 그 형은 그 때도 참 이악스러웠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