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 가나안 농군(農軍)학교 가다.>

“자네들, 이게 뭔가? 잔뜩 취해서. 그냥 돌아가게.”
“총재 님. 우리는 학교의 경계선을 넘는 순간 바로 모범적인 가나안 농군으로 바뀝니다. 충성”
녀석이 비록 취해서 흔들흔들 비틀거리며 왔지만 <범일> 교장에겐  

그 하는 짓이나 말투가 밉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날 저녁 밥이 나왔다. 큰 양푼에 거친 깡 보리밥 하나 가득,

반찬은 콩나물국과 김치, 무장아찌였다.

 

농군 학교 생도들은 처음 그 밥을 보고 사실 대부분이 숟가락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치약도 5mm 이상 쓰면 안 되고 밥도, 반찬도 남기면 안 된다는 강원도 원주 신림에 있는

그 유명한 가나안 농군학교 아닌가? 어쨌든 다른 생도들이

겨우겨우 양푼을 비우느라 기를 쓰고 있을 때

“총재님, 밥 한 그릇 더 먹으면 안 됩니까?”하는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그 녀석이었다. 저 앞 구멍가게에서 선채로 소주두병을 나발 불고 왔다는 ...

그는 이번에는 양푼에 더 고봉으로 담은 밥을 뚝딱 해치운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5시 아침 체조 후 구보시간!
때는 소한(小寒)추위가 몰아쳐 여기 기온은 섭씨 -21도이다.

모두 트레이닝 복속에 내복을 껴입고도 추워서 이를 달달 부딪치고

숨을 쉬는 대로 코 주위에 서리가 내려앉는데

녀석이 갑자기 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어젖힌다.

물확의 얼음물을 깨고는 그 물로 냉수마찰을 한다.

그리곤 팬티만 입은 채 맨 앞에 서서 구보를 한다.

그 광경에 다른 생도들은 아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만 크게 뜬다.

 

아침 시간에 김범일 총재는 “이번 기(期)의 총 반장을 선임해야하는 데 누가 좋겠는지?” 묻는다. 

“여기 우리 연(延)부장님을 반장으로 제청합니다.”라는 녀석의 말을

그 때쯤에선 아무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평균 100~150명이 온 LG나 SK, 현대등 대기업에서도 그 누구 하나 감히 토를 달지 못한다.

겨우 12명이 온 이 작은 중소기업에서 총 반장이 되는 것에...

 

그는 원래 영등포의 주먹꾼이었다.
물론 맨주먹으로 싸우던 낭만주먹시대의...
120여명의 직원들과 가끔 팔씨름을 하던 나, 몇 년 간 단 3명에게만 졌다.

그러던 중 그들이 하나 둘 모두 퇴직하고 내가 조금은 민망한 1인자노릇을 하고 있을 때

“이사 님 서울 영업부에 항우가 하나 새로 입사했대요.” 라는 직원의 말에

난 그날 저녁 바로 영업부에 나갔다.

그는 6척이 넘는 거구에 팔뚝이 마치 무슨 통나무와 같았다.

그는 “전 내기 아니면 안 해요. 술사기라면 몰라도...”

첫판을 지고 두 번째는 간신히 이겼다. 그리고 마지막 판에 힘없이 넘어갔고...

물론 그게 모두 그의 계략이었고 나도 그걸 처음부터 알았다.

팔씨름이란 처음 딱 잡아보면 그 즉시 알 수 있는 것이니까...

아무튼 그날 이후 우리는 가끔 계급장을 떼고 어우러져 마시고 호탕한 웃음을 뿌리고 다녔다.

 

그는 비록 가방끈은 짧았지만 주먹만 센 것이 아니고 머리가 비상하고 생각하는 게

무척 합리적이며 회전이 빠른데다 판단이 예리했다. 그는 배움과 자라온 환경이 사뭇 다르건만

조금도 가식 없이 자기를 형제처럼, 인간적으로 대해주던 내 순수한 열린 마음이 좋아 반했다며

끝까지 내 측근으로 남겠다했고 우리는 아무 벽도, 거리도 없이

그렇게 서로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형제처럼 지냈다.

그와 함께 그의 친구로 경찰학교 무술사범인 태권도 5단의 S, 양남동 호랑이라던

유도 4단의 A등과도 가끔 어울렸다.

그들은 유단자라는 것을 떠나 직접 실전(實戰) 즉 싸움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고

가끔 내가 마치 그들의 조폭 두목인 듯싶은 상황과 에피소드도 생겨났다.

 

사원 중에 도박에 빠져 그 아내가 자기 남편 버릇 좀 제발 고쳐달라던 D, 퇴근하기가 무섭게

매일 술집에서 살며 월급날은 외상값 갚고 난 빈 봉투만 아내에게 내밀던,

산 도적처럼 긴 머리를 너풀대고 다니던 P, 겉멋이 들어 어깨를 한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여

꺼덕대며 설치던 젊은 친구들인 Y와 J등을 모두 이번 기회에

자연스럽게 군기(軍紀)를 잡아오라고 그 친구에게 부탁하여 보낸 터였다.

결국 농군학교 졸업 후 그들은 술도, 도박도 끊고 착실한 남편, 모범적인 사원이 되었다.

?물론 젊은 친구들 어깨도 <피사의 사탑(斜塔)>에서 반듯한 탑이 되었고...

 

그런데~~~!!!그런데~~~!!!
평생 병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던 그 장사(壯士)가
이제 느닷없는 불치의 병마에 시달리며 생명의 불꽃이 사위어가고 있고
난 지금 그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아! 세월의 덧없음이여...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잔인함이여...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간의 무심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