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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진강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서해 풍광


     

어머니의 영적 시험                                                   글  윤애단 (용범)

 

어머니는 양손을 비벼대며 빌고 또 빌었어요.

함지박 가운데 흰 쌀을 듬뿍 담아 그 위에 나뭇가지를 세우고요.

이웃 아주머니는 뭐라고 주문을 외웠지요.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나뭇가지를 잡은 그 아주머니의 손이요.

마구 떨리더라고요.

소위 접신이 된 것이라네요.

 

터주 대감인지 무슨 귀신들이 떼로 몰려 왔다 그랬어요.

시집살이 열통 터져 죽은 며느리 귀신도 왔고요.

서방이 던진 요강단지 맞아 골 깨져 죽은 여인네 귀신도 왔지요.


배가 고파 굶주린 배 움켜쥐고요.

뭐 좀 얻어먹을 것이 없나 왔겠지요.

 

어머니와 함께 빌고 있던 다른 아주머니도요.

몸을 부들부들 떨더라고요.


어린 저는 무슨 영문은 몰랐지만요.

어른들이 하는 모든 행태가 신기하고요.

호기심이 생겼어요.

 

어머니는 시집오시기 전까지는요.

하나님을 모르셨답니다.

외할아버지가 갓쓰고 장죽 담뱃대 물고요.

완고하신 분이었다네요.


“기지배가 소학교 마쳤으면 족하지 무슨 얼어뒤질 여학교를 간다고?

공부 더 해 봐야 말만한 것들이 괜히 허파에 바람이나 들어가 시집살이나

고달프지"

 

식민지 조선의 강화도 섬처녀가 여학교를 가겠다고 조른 것이요.

사치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이따금씩 외할아버지를 원망하시곤 했지요.

“오라버니가 인천 여학교 진학 준비를 다 해 주셨는데,

그때 돼지 판돈이라도 움켜쥐고 집을 나올걸,

그럴 껄 후회막심 꺼얼껄”


그 시절 진학을 하셨다면요.

인생행로가 달라 지셨을 수도 있었겠지요?

신여성으로 여사님이 되셨을 수도 있고요.
적어도 호미자루 손에 들고 힘겹게 농사일에요.

손마디가 거칠어지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어요. 

 

외교인 가정에서 시집와서요. 

하나님을 영접하셨다네요.


하지만 어머니는 믿음에 대한 확신은 없으셨답니다.

그냥 시집의 가풍 따라서요.

교회에 출석만 한 것이지요.

영국 신부님의 서투른 한국말 설교도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요.

 

어머니는 소싯적 소학교 육상선수로 뛸 만큼 건강했답니다.

시집와서 교회 출석을 하면서부터 병고에 시달리게 되었지요.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이요.

기도하는 것을 방해라도 하는 것 같더래요.


자주 가위 눌리기도 하셨고요.

애기 낳다 죽은 올케 언니가 자주 꿈에 보인다고요.

놀래시기도 했고요.

밤저녁이면 시커먼 귀신이 덮쳐 오는 것 같아서요.

두려움에 떠셨다네요.

 

소위 사탄의 시험에 들었다는 것이지요.

주변에 굿하기 좋아하던 친척 동서들의 말을요.

더 신봉하시게 된 것이고요.


“읍내 장날 싼값에 사 온 적삼이 귀신 붙었어,

부엌 등판도 새로 고치는 것이 아닌데 왜 고쳐?”


그 말에 등판을 고쳐 준 아저씨가 발끈해서요.

한 바탕 소동이 나기도 했지요.


"이런 제기랄, 이 여편네들아!

터진 주둥아리로 내 뱉으면 다 말인 줄 알아?

귀신은 무슨 얼어 죽을 귀신 탓이라고,

헛소리 그만 작작들 하라고!

힘들여 등판 고쳐 주고 품삯도 못 받게 만들지 말라고!”

 

아버지는 강화도 천석꾼의 막내로 곱게 자라셨지요.

선생님이시라요.

귀가 여리고 착하시기만 했어요.

무당 불러 굿을 해야 상처(喪妻)를 하지 않는다니요.

속수무책이셨고요.


어머니는 이따금 눈물을 흘리면서요.

제 손을 잡고 물으시곤 했어요.


“너 엄마가 죽으면 새 엄마보고 엄마라고 부를 거냐?”


저는 엄마가 죽는다는 말이요.

조금은 슬픈 것 같기도 했지만요.

이내 이웃 또래들과 농악놀이하며 놀았지요.


“탱탱 가물락. 탱탱 가물락 가물락 가물락 탱탱 가물락.........”

 

굿을 할 날자가 정해졌어요.

어린 저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게 생겼으니요.

신이 났고요.

 

어머니가 아파서 죽는다는 것이요.

제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으니요.

정말로 신이 났지요.

장고치고 북치고 징치고 덩실 덩실 춤추고요.

떡 먹고 구경거리가 생겼으니 까요.


이윽고 소동이 났었어요.

신부님과 큰 아버지를 위시로 이웃 신자들이 반대를 했지요.

성공회 모태 신앙인이 그것도 성전 바로 앞집에서요.

굿 장단을 펼치겠다니요.

 

무당을 위시한 이웃 아주머니들은요.

어머니를 더욱 부추겼고요.

 

“대감귀신을 모시지 않으면 죽는단 말이야,

저승사자가 옆에 지키고 있어,

정말로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어머니와 아버지는 난감해 하셨고요.

저는 맛있는 떡을 못 먹게 되어 섭섭했어요.


고모가 귀신에게 시험을 받는다고 하니요.

어머니 친정 조카딸이 문병하러 왔어요.


“고모! 다 필요 없시다.

그까짓 귀신들 터주까리 다 불태워 쫓아 버리시겨,

오로지 주님만을 영접하고 의지하면 되이다.”


그리고 주문같은 기도를 외우더라고요.
"쌀라! 쌀라!

주님! 믿습니다. 어쩌고저쩌고,
영어도 하고 중국어 같기도 하고"


이어서 말했어요.

“나도 시집가니 시댁의 온갖 귀신들이 대접 안 해 준다고 괴롭혔시다.

어느 날 한꺼번에 아궁이에 터주까리 다 처넣고 불 살라버렸시다.

고조 해래비 귀신이건 핼미 귀신이건 모조리,

그날 저녁 뜨끈뜨끈한 방에서 등 따습게 잠만 잘 잤시다."

 

이어서 역설했지요.

“고모, 힘내시겨!

그 까짓 아무런 능력도 없는 귀신 나부랭이들 한꺼번에 다 쓸어 버리시겨,

믿음 생활 굳게 하시겨!

능력의 하나님이 보혈의 능력으로 다 쫒아 내실 것일 시다.”

 

어머니는 용기를 얻으시고요.

변화 되셨어요.

귀신을 두려워하시던 어머니가요.

용기백배해서 기도에 정진하셨어요.

 

능력의 주님!

나사렛 예수님의 보혈로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 주옵시고........”


제가 군대 입대할 때 시작하신 새벽기도는요.

숨질 때까지 계속 하셨고요.

 

한마디의 말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요.

살리기도 한다네요.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해요.

말은 파장이 되어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고요.

사고는 행동으로 나타날 테고요.


상심의 말, 낙담의 말, 거친 말, 유혹의 말 등은요.

사람을 어둡게 하고요.


진실 된 말, 부드러운 말, 긍정적인 말, 감사의 말 등은요.

사람의 마음을 푸르게 하고요.

밝고 환한 삶으로 안내한다네요. 아-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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