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제고 10 장양국
?
인일 홈피가 이 세상에 태어난지도 벌써 6년이라니 세월의 빠름을 느낌니다
6년이란 세월이 이제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 같아 시간의 귀중함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 둘씩 쌓이는 나이테는 앞으로 이어질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가슴을 설레이게 합니다
지난 과거를 회상해 보니 웃음이 나옵니다
처음 성열익 박사로 부터 이 홈피를 소개를 받을 때 그의 엄중한 매너 교육과 주의 사항에 대하여 일장 훈시를
듣고 이곳에 들어 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서 6년이라니....
그 때 이곳에 벌떼처럼 들어와 댓글로 장미동산을 환하게 비춰주던 그들이 이제는 이 곳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서운한 감이 없지 않지만 나 또한 처음에 이곳이 나 하고는 별로 인연이 없어 보였고 그런 내가 이렇게
홀로 남아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였습니다
학창시절 여학생과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못 누렸던 나로서는 인일 홈피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큰 사건이 였습니다
더구나 여학생과 눈 인사만 하여도 얼레리 꼴레리 하고 놀림을 받던 그런 시절을 보낸 세대로서 ...
많은 수의 여학생들 앞을 지나노라면 얼굴이 빨개져 숨마저 헉헉 거리며 지나쳐야 했던 나로서는...
그래서 먼 발치에서 지나가는 여학생만 봐도 가슴이 콩땅 콩딱 두근거렸던 숫기없는 나로서는 ....
많은 호기심과 신비감에 빠져 인일 교정을 칠흑 같은 밤에 몽유병 환자가 되어 배회 하였던 나로서는...
그랬던 내가
이제는 3기방의 마당쇠라는 직분까지 꿰차고 앉아 떠날 줄을 모르고 있으니 낯 가죽이 두꺼워도 이만 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구나 행운인 것은 이곳 inil.or.kr에 최고참 기수에 해당된다 할 수 있는 3기 방에 일찍이
둥지를 틀다 보니 장미동산 3기방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과객에 불과 한 나를 친구로, 또한 선배로서 깍듯이 대해
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장미동산 후배들은 선배들을 대함에 있어 성심껏 깍듯이 모시는 것이 나에겐 여간 신기한 일인지 모릅니다
선배들의 지긋한 후배 사랑의 결과 이겠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후배들이 선배를 모시는 아름다운 전통으로
인하여 나 또한 그녀들의 선배로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니 이 어찌 행운이라 아니 할 수 있겠습니가??
이런 나를 보고 성열익 박사는 복을 꿰찬 넘이라고 합니다만 그가 질투를 느낄만도 하지요
지금도 3기방의 뜨거움이 어떤 후배 기수방 못지 않지만 초기의 3기방은 장미동산의 용광로 였습니다
브라질의 조영희씨는 참으로 많은 글을 올리신 분 이였습니다 많은 글 뿐만 아니라 국내에 계시는 3기방의 친구분
들이 연약한 면을 조금이라도 보이시기라도 하면 수호신처럼 앞장 서서 이끌어 가시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아마죤네스의 여전사라고 불렀으니깐요
(관)리자온니를 잊을 수가 없군요 그녀는 장미동산의 보모였습니다 초기에는 선택과 집중을 취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고참 기수의 호응도를 높으려 부단히 애를 쓰시는 모습이 꼭 보모 모습 그것이 엿습니다
inil.or.kr로 인하여 행복 합니다
최근에 내가 건강을 잃어 이곳에 근황이 소개 되었을 때 3동 친구분 이나 여러 후배들이 보여준 성원과 격려는
제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미국은 물론 캐니다 외딴 곳에서도 전화를 주시고 격려와 쾌유를 바라는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런 국내외 3동 친구나 그외 후배들을 보면서 내가 일찍이 inil.or.kr과 인연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국내는 물론이지만 외국에 계신 여러분 들과의 현실 상봉은 그 자체가 인생의 희열이엿습니다
영원히 불가능 하게만 여겨졌던 그녀들과의 상봉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inil.or.kr의 위력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또 한가지 행운은 45년 전 학창시절 영어 회화반에서 공부했던 인연들이 45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다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inil.or.kr은 나에겐 시공을 초월해 행복을 가져다 주고 있는 문명 이기 입니다
그외 inil.or.kr 과 나와의 인연이 여러 가지가 있으나 10년 후에 다시 쓰기를 기약하면서 inil.or.kr 6주년을
다시 한번 축하 드립니다
쇳님 납시셨군유
증말 지가 뵈도 이렇케 인일을 아셨다는것이 행복한 분이여유
여기 나성 6 김 춘자 후배가 건강을 염려 하던중
Human hair wig [미제로 ㅋㅋㅋ] 를 맞춤하여 우송 한다고 하던데
받으셨을때에 그 기분 상상이 갑니다
이런 저런 인일으 여 동상들 사랑스럽죠 ? 눈물좀 흘리셔야겠군유
쾌차를 총총
호문씨!!
자게판에서 호문씨를 뵈니 반갑습니다
이곳이 장미 동산의 창이라 만인이 주시하고 있어
내 마음 속 戀情를 날려 보낼 수도 없고 ... 장기 자랑도 할 수 없고... ㅎㅎㅎㅎ
춘자후배가 보내 준 가발을 잘 받았습니다
7월 31일 받아 그 가발을 쓰고 인일 홈피 생일 잔치에 참석하려 햇으나 시간이 없어 포기 했습니다
춘자 후배가 만들어 보내 준 가발을 쓰고 멋진 폼으로 한 곡조 꽝 하려 했었는데....
숙자네!!
인일 홈피 개설 6주년 축하 글을 쓰다 보니
45년 전 숙자네와 영어 회화 크럽에서 어설프게 만났던 추억을 쓰게 됩니다
그걸
이 문명의 이기속에서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신기롭기 까지 합니다
일전에 박정욱군을 만나 대충 이곳에서의 Evergreen상봉소식을 전했습니다만
그도 45년 전 일을 소상히 기억을 하고 있지를 않더군요
아마도 몇년이 걸릴 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 한번 만나면 그 때는
그 때의 추억들이 되 살아 나겟지요
요즈음의 남학생과 여학생들이엿다면 많은 추억들로 대화거리가 많았을 텐데요
아쉽기도 하고 후회되는 장면이 많습니다
만약에 숙자네가 고국에 나온다면 그 때 남학생 셋은 꼭 대령하리라!!
?
양국씨!
우리 3방 친구에다 3방 마당쇠님에다 저 위의 글 덕바위 글을 읽으니
제게 가을쯤 세경을 올려 드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참으로 6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네요.
초창기에 용광로 같이 뜨거웠던 그 시절~~~~
이루 말할수 없는 친구들이 아마 컴에 눈 뜨면 매달렸지요
전 아마 양임이 찾아주며 건식씨 댁에서...... 두렵고 어려워 형오기 이끌고 모임에 갔을때.....
그땐 작가친구 형오기도 주옥같이 아름다운 글 참 많이 썼지요.
조영희는 말할 것도 없고 광서니, 미서니 정우, 재선 등등등....
그후 부라질커피데이로 7기 순희 딸도 만나고 ......
참말로 기라성같은 우리 3기 친구들~
현재는 순자 숙자로
현재까지 계속되는 컴 친군 미서니, 광선, 정우, 형오기, 혜경, 호문이~
양국씨!
세경 소리 들으니 전 그 생각은 지금 첨인데
참말로 미안하네요.ㅎㅎㅎ
친구 사랑으로 돌보고 갚을께요
친구같은 , 그리고 혈육같은 양국씨~
건강 더욱 더 좋아지시고 숙자 올 땐 꼭 만나요
근데 용순 가기전에 얼굴 봐야 될 것 같은데.....
정보위원, I I C C 에서 아마 30명은 올 걸요.
이젠 선 후배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요.
?양국씨!
지난번 컴 생일잔치에서도 용점씨 명찰도 < 3 . 주용점 >
이렇게 안내 후배가 써서 붙여 주는 것을 보고
10여명 제고 동문들과 같이 앉으셨는데...
우리 3방 테이블에 저와 형오기 있는 곳으로 모시고 왔었습니다.
먼 곳에서 축가 불러 주시러 오신 고마움에 대한 배려 였습니다.
양국씨!
이 진솔한 글이 자게판에 묻힐 것 같아 일단은 우리방으로 손잡고 데려 왔습니다.
많은 친구들 함께 이야기 나눌려고요.
괘안하지요.!!!!!
또 우리방에 글을 쓸 수 없게 된 것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선민아~~~
항상 책임감으로 중무장되어있는 선민아!~~
네 덕에 우리3기방에 꾸준히 후배 들과 친구들이 이야기 꽃을 피우는구나.
양국씨 글을 읽고 참 옛날 생각이 많이 나누나.
처음 싸이버 세상을 접하고 정신 못차리고 빠져들며 마냥 즐거웠던 시간들이.....
그땐 결혼후 내생전 처음으로
웃터골 친구들도 만나게 되는 행운도 갖게되고.....
양국님을 우리 3기 장미동산에 마당쇠로 상주시키는 영광도 있게 되고...
모르는 선후배 만나 동창애의 뜨거운 사랑과 배려도 받게되고...
잃은것보다는 얻은게 너무나도 많은 은혜로운 공간이 되었다.
서로 기쁨과 슬픔과 괴로움을 나누면서
정말 동기간 보다 더진한 정을 나누는 이 온라인 공간이
새세상을 만들어 주었으니
이렇게 고마울수가 더 있겠니?
그리고 양국님께서 이리 긴글을 술술 풀어 쓰셨다니
꽤 오랜시간 컴앞에 앉아 계셨을텐데
건강에 무리를 주진 않았는지 걱정된다.
부디 쾌차하셔서
내년 7주년 홈피 생일에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미서나!
월욜부터 컴 교실 열리는데 가능한 꼭 참석해 주셔~ㅇ
영분이도 참석 한다 했으니께니 꼭 오시고
난 겨울 컴 교실 공부는 했지만 복습은 커녕 노트 펼쳐도 안 보았으니...
지진아는 면 할려면 참석은 해야 되는데....
설사 이 나이에 지진아면 어때
어느 누가 스텝 옆에 두셨습니까?
했는데... 스텝 둔 것은 아니고....
스텝이 있은 들 그 일을 누가 해 주겠습니까
사진 올리기, 퍼오는 것 은 잘 하지만..
그 외에 것은 실습을 안해 본 것임.
(월욜.....겡제붕까위온쟁 이라 앙카나......고 친구래......내 짝꿍 하고프당)
내 컴교실 친구로.
양국씨!!!
저 위에 손은 누굽네까?
브라질 영희가 우리 사무실로 보내 준 것 형오기네서 개봉 중인데....
그 장면이 누구신지?
아리송합네다.
답을 주세요.
장양국 선배님, 자유게시판에서 뵙다니, 너무도 반가워서 먼저 달려왔습니다.
어제 기념 행사의 뒷정리를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와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여기저기 댓글로 인사를 대신하러 들어왔는데
장양국님의 글이 보여 그런 일은 다 뒤로 미루고 여기부터 온 거지요.
인일홈피를 저보다 더 오래 사랑하신 장양국님,
이렇게까지 inil.or.kr 에 큰 의미를 부여해 주시고 아낌없는 사랑의 표현을 해주시니
뭐라 표현할 수 없을만치 감사합니다.
장양국님의 이 글을 읽고
그 옛날 용광로 시절의 3기 선배님들이 하나하나 다 모이셔서
또 다시 꽃을 피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글 마무리의 10년 후에 다시 쓰신다는 의미는요?
이리저리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가볍게 그만큼 소중한 얘기라는 뜻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어제 오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었답니다.
한선민 선배님만 졸랐었지요.
장양국님, 나날이 더 건강해지셔서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심과 애정이 담긴 글이 정말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