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meister 오늘 아침 새벽 3시에 드디어 우리 두째 딸이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마음 졸이던 일이 끝이나서 얼마나 감사하고 홀가분한지 모르겠습니다.
갓난 손자가 어찌나 처음부터 귀엽고 예쁜지 넋이 나가서 쳐다보고 쳐다보다가 왔어요.

어제 아침에 양수가 터져서 병원에 일찍 갔던 딸 부부에게
저녁 밥을 미역국과 함꼐 지어가지고 간 시간이 저녁 7 시경 이었습니다.
양수가 터진 후 12시간 안에 낳지 못하면  아기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차에
어쨎든지 12시간 안에는 낳으려나 보다.. 계산하고 갔더랬는데
가보니 아직 진통이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체격이 나랑 비슷해서 나 닮았으면 다른 것은 몰라도 아기 하나는 쉽게 낳으려니 하고
마지막 순간 까지 걱정을 전혀 안 하더랬는데
막상 쉽지않은 것이 느껴지니 속으로 걱정이 쿵쿵 올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상하게 배가 몹시 불러서 최근에는 너무 불편해 하면서 잠을 못자고
밤마다 설치는 딸이 너무 애처로워서
출산 촉진제 주사를 맞는다는 말에 크게 반대도 못하고 지난 수요일에 하게 내버려 두었었거든요.

그런데 아기가 일찍 나오기는 커녕 도로 올라가 버려서(!)  병원에서 별수 없이 쫒겨 나왔답니다.
그리고는 더욱 참기 힘들어 하는 딸을  안심 시켜주며
이왕 기다린 바에 좀더 기다리자고 달랬었지요.
이곳에 온지 일주일동안 날마다 데리고 다니면서 두어 시간씩 걷고 또 걷고...
빨리 아기를 나으려면 그 수밖에 없다고 믿고요.
그래도 어떤 여자 처럼 하루종일 걷고 다음날 낳았다는 행운은 차례가 오지 않았어요.

촉진제만 맞으면 당장 나오는 줄로 생각하고 사위는 2 주 휴가를 .넙죽 받아 목요일부터 쉬고 있으니
더욱 초조해지는 모양이었네요
아마도 자기 시간에,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나오려나보다...
서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자꾸 타일렀더니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못 펴더라구요.
아기가 나오려고 하면 지체할수가 없이 밀고 나오는 것인데 촉진제라니 쓸데 없는 짓을 한 것이었죠.

마치 세상 의술을 믿고 까부는 것을 야단 맞은 듯했어요.
아무래도 자기가 의사이니 더욱 첨단 의술을 의지하지 않을수가 없나 봐요.
하지만 사람의 기술이 하나님의 때를 완전 거스리지는 못하는구나 꺠달았다는...

사람이 죽을 때도 마찬가지로 막을수가 없고 나올 때도 막을 수가 없는것이 아니겠어요?
결국 어제밤 12시 반 부터 진통이 시작되어 두시간을 꼬박 애를 썼는데
마지막 판에 배큠으로 거들어서 꼭 3시가 되어서 "응아~" 하고 나왔답니다.
아기가 나오려면 고생할 만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 입증이 된 것이죠
장장 10시간을 병원에서 딸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정말 징그럽게 힘든 시간이더라구요.
사위는 그 모든 시간을 함께하면서 차디 찬 타일바닥에서 잠시 잔것 밖에는 쉬지 않았구요.

밤 12시 반에 소파에서 잠든 나를 깨우더라구요.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 되었다구요.
그때로부터 절절 매는 딸을 거들다가 출산장면을 제대로 보고, 후산과 정리가 다 끝나자 가져간 음식을 그제서야 먹이고 
새벽 5시에 집에 돌아와서 잠시 눈을 붙였죠.
그리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다시 미역국을 끓여서 가져다 주었습니다.
해산관하러 온 목적에 입각하여 열심히 한번 해보려구요.
 
그런데 이번 딸의 출산을 가까이 보면서 세월이 얼마나 변했나 실감을 하였습니다.
애초에 임신한 때부터 요란히 축복을 받더라구요.
우리 때는 약간 부끄러워 한 일인데 이 아이들 세대에는 임신한 사람들을 많이들 부러워하고 축복하고
자기 자신들은 그 배를 조금도 숨길 생각없이 아니 자랑하듯이 쑥 내밀고 다니데요.
우리 세대에는 임신한 사실을 일부러 모르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될수있으면 티를 안 나타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었거든요.

마지막 날에는 그 몹시 부른 배를 기념으로 찍어 둔다고 사진을 열심히 찍더라구요.
그리고 병원에 가는 아침에도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구요.
우리 때는 그렇게들 사진을 안 찍었지요.
물론 배부른 사진은 전혀 안 찍고 아기만 병원에서 첫사진 한 장 달랑 찍어주었던 것이 보통이었어요.
사위는 아기가 나온 직후에 우는 모습이며 어리둥절하고 손을 휘젖는 모습이며
무엇이든지 새롭고 신기한 마음으로 수도 없이 사진을 찍더라구요.

헉...병원에 갈때 그 짐이라니...
큰 가방으로 무얼 잔뜩 넣었는지 사위가 세개를 양 어꺠에 매고 그것도 모자라서 또 양손으로 들고 갔다는게 아닙니까?
컴퓨터까지 사진기까지 커다란 볼까지...정말 많은 것을 가지고 가더라구요.
35 년전 초라한 이민 초년생 우리는 달랑 가방 하나도 헐렁 못 채우고 갔다 아닙니까?
퇴원할 때 내가 입을 옷과 아기 옷 그것뿐...ㅎㅎㅎ



아기 방은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있고요,

우리땐 없던 얼트라 사운드로 사진을 찍어 아들인지 딸인지 미리 알고 

아들 이름을 붙이고 아들 색갈도 아들에 맞추고 그림도 사서 붙이는등 아주 완벽해요.
옷장엔 옷이 가득, 크립에 아기 가구 일습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고 무엇이든지 차고 넘쳐요.
우리 때는 왜 그리 가난하고 초라했던지...크립하나 베비 싵하나, 옷 서너 가지 목욕 통하나 그것뿐이었는데
이 아기를 위해서는 그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준비에 준비를 다 했는지 비교 자체가 안돼요.

남편의 역할이 눈이 부셨는데요, 미리 부모되는 공부에 따라 다닐 뿐 아니라
휴가까지 철두철미 계획 속에 한달 이상 가지고 아기를 돌볼 작정이 완전히 되어있구요.
어디 그 옛날에 그랬나요? 여자 혼자 다 하고 남편은 그냥 완전 거저 도령이었죠.
우리 사위보니까 교육받은 대로 그 진통 겪는 내내 손을 붇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얼음물을 입에 넣어주며...말만 나오면 심부름 대기를 해주며
한번 푸쉬 할 때마다 "굳 잡...잘했어, 잘했어' 연방 격려해 주면서 쩔쩔매는 것이었어요.
 
아예 잠시도 아내 곁을 안 떠나고 며칠을 같이 지내고 있네요.
그렇게 깊이 사랑해 주는 남편의 아기를 낳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참으로 보기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그리고 출산의 고통을 줄이는 무통 분만 에피두럴을 하는 것이 크게 달랐어요.
우리 때는 큰 문제가 있는 산모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잖아요?
7-80 프로 이상의 산모들이 무통분만을 원한다고 합니다.
우리 딸은 " 엄마, 말리지 말아, 절대로 꼭 나는 할테야" 하면서 고집을 공연히 부렸습니다.
나도 막을 생각을 안 했지요. 큰 딸도 그렇게 해서 낳았다니까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알거든요.
누에가 고치에서 나와서 나비가 되려면 그 갇힌 고치 속에서 몹시 몸부림 치면서 애를 쓰는데
만약 사람이 그것을 보고 애처로와서 일부러 도와주느라 고치를 터쳐주면
그렇게 나온 나비는 나와서 비실비실하며 날지를 못한다는 이야기요...
그렇게 몹시 힘들면서 나와야 제 구실을 올바르게 할수 있다는 창조의 신비가 들어있다는 이야기에요.

사람도 왜 안 그렇겠나.. 창조주의 계획과 경륜속에 해산의 고통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일텐데
사람들이 꽤을 너무나 부리는 것이 아닌가...너무나 발전한 의학의 힘을 믿고 까부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혹 아이들이 자라서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있지도 않는 걱정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차마 입으로 그 이야기는 못하겠더라구요.
나이 설흔 셋이나 먹어 첫 아이를 낳으면서 얼마나 참기 힘들면 그러할텐데
확실치 않은 소리를 해가면서 아이를 힘들게 할수는 없겠지요.

에피두럴을 맞고 그렇게 몹시 불안해 하고 힘들게 진통을 겪던 아이가 당장에 편해졌어요.
너무 편해져서 언제 진통이 오는지 잘 모를 정도이었어요.
그 진통 오는 그 시간에 푸쉬를 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도표가 찍혀 내려 오는 것을 보고 이떄다..하면서 그 진통 기간에
세 번 내지 네 번은 온 힘을 다해 푸쉬를 하도록 도와 주데요.

요즈음 의사들은 얼마나 자상히 잘 가르쳐 주면서 도와주는지 그것도 옛날보다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너무 쉽게 아이를 낳아서 그들에게 기회를 안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의사가 옆에 앉아 자꾸만 보아주는 것...
때가 되니 배큠을 가지고 아기가 나오도록 머리를 빨아 내어 주는 것...너무도 신기한 일이었어요.
의사말이 산모가 90 프로 하면 자기들이 10 프로의 힘을 보태어 아기가 쉽게 나오도록 도와준다나요...
젊은 여자 의사였는데 아주 능력있게 해결하는 것이 참으로 좋아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때는 어찌 그리 무지했던지요?

요즈음엔 책에 디비디에 온갖 정보의 홍수에다가, 인터넷에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일초내에 답이 나오잖아요?

우리때에는 그냥 모르는채로 더듬을 뿐이었어요.


아기 젖주는 것도 많이 달라 졌는데요, 우리 때는 달랑 3 달만 먹이고 우유를 먹이도록 했거든요.
이제는 1년을 먹인다고 하네요.
그리고 태어나자 마자 울던지 말던지 끌고 가서 유아방 간호원들이 돌보았는데
이제는 산모 옆에 두는 것이었어요.
막 낳아서도 산모 배위에 아기를 올려 놓더라구요.
아기가 훨씬 안정감이 있을 것이 분명해요.

세월과 함께 달라진 것 중에 좋은 것이 이외에도 많이 있는데 한가지 우리들의 그떄가 더 좋았던 것이 있어요.
요즈음에는 출산한지 24시간에서 48시간 이면 퇴원하도록 하는 것인데
우리 때는 닷새고 일주일이고 원하는 대로 있을수 있었거든요.
그떄만해도 세월이 좋았죠. 요새는 의료수가가 너무나 비싸서 그렇게 못하는 모양이더라구요.
그나머지는 아무래로 요즈음이 더 좋은 것 같지요?

요즈음 사는 여자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보지만
다시 젊어져서 아이를 낳아 보라면? 글쎄...젊어지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사양 할래요.
내게 그 일이 옛날에 다 끝이 난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ㅎㅎㅎ(8-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