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마음 졸이던 일이 끝이나서 얼마나 감사하고 홀가분한지 모르겠습니다.
갓난 손자가 어찌나 처음부터 귀엽고 예쁜지 넋이 나가서 쳐다보고 쳐다보다가 왔어요.
어제 아침에 양수가 터져서 병원에 일찍 갔던 딸 부부에게
저녁 밥을 미역국과 함꼐 지어가지고 간 시간이 저녁 7 시경 이었습니다.
양수가 터진 후 12시간 안에 낳지 못하면 아기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차에
어쨎든지 12시간 안에는 낳으려나 보다.. 계산하고 갔더랬는데
가보니 아직 진통이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체격이 나랑 비슷해서 나 닮았으면 다른 것은 몰라도 아기 하나는 쉽게 낳으려니 하고
마지막 순간 까지 걱정을 전혀 안 하더랬는데
막상 쉽지않은 것이 느껴지니 속으로 걱정이 쿵쿵 올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상하게 배가 몹시 불러서 최근에는 너무 불편해 하면서 잠을 못자고
밤마다 설치는 딸이 너무 애처로워서
출산 촉진제 주사를 맞는다는 말에 크게 반대도 못하고 지난 수요일에 하게 내버려 두었었거든요.
그런데 아기가 일찍 나오기는 커녕 도로 올라가 버려서(!) 병원에서 별수 없이 쫒겨 나왔답니다.
그리고는 더욱 참기 힘들어 하는 딸을 안심 시켜주며
이왕 기다린 바에 좀더 기다리자고 달랬었지요.
이곳에 온지 일주일동안 날마다 데리고 다니면서 두어 시간씩 걷고 또 걷고...
빨리 아기를 나으려면 그 수밖에 없다고 믿고요.
그래도 어떤 여자 처럼 하루종일 걷고 다음날 낳았다는 행운은 차례가 오지 않았어요.
촉진제만 맞으면 당장 나오는 줄로 생각하고 사위는 2 주 휴가를 .넙죽 받아 목요일부터 쉬고 있으니
더욱 초조해지는 모양이었네요
아마도 자기 시간에,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나오려나보다...
서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자꾸 타일렀더니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못 펴더라구요.
아기가 나오려고 하면 지체할수가 없이 밀고 나오는 것인데 촉진제라니 쓸데 없는 짓을 한 것이었죠.
마치 세상 의술을 믿고 까부는 것을 야단 맞은 듯했어요.
아무래도 자기가 의사이니 더욱 첨단 의술을 의지하지 않을수가 없나 봐요.
하지만 사람의 기술이 하나님의 때를 완전 거스리지는 못하는구나 꺠달았다는...
사람이 죽을 때도 마찬가지로 막을수가 없고 나올 때도 막을 수가 없는것이 아니겠어요?
결국 어제밤 12시 반 부터 진통이 시작되어 두시간을 꼬박 애를 썼는데
마지막 판에 배큠으로 거들어서 꼭 3시가 되어서 "응아~" 하고 나왔답니다.
아기가 나오려면 고생할 만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 입증이 된 것이죠
장장 10시간을 병원에서 딸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정말 징그럽게 힘든 시간이더라구요.
사위는 그 모든 시간을 함께하면서 차디 찬 타일바닥에서 잠시 잔것 밖에는 쉬지 않았구요.
밤 12시 반에 소파에서 잠든 나를 깨우더라구요.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 되었다구요.
그때로부터 절절 매는 딸을 거들다가 출산장면을 제대로 보고, 후산과 정리가 다 끝나자 가져간 음식을 그제서야 먹이고
새벽 5시에 집에 돌아와서 잠시 눈을 붙였죠.
그리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다시 미역국을 끓여서 가져다 주었습니다.
해산관하러 온 목적에 입각하여 열심히 한번 해보려구요.
그런데 이번 딸의 출산을 가까이 보면서 세월이 얼마나 변했나 실감을 하였습니다.
애초에 임신한 때부터 요란히 축복을 받더라구요.
우리 때는 약간 부끄러워 한 일인데 이 아이들 세대에는 임신한 사람들을 많이들 부러워하고 축복하고
자기 자신들은 그 배를 조금도 숨길 생각없이 아니 자랑하듯이 쑥 내밀고 다니데요.
우리 세대에는 임신한 사실을 일부러 모르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될수있으면 티를 안 나타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었거든요.
마지막 날에는 그 몹시 부른 배를 기념으로 찍어 둔다고 사진을 열심히 찍더라구요.
그리고 병원에 가는 아침에도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구요.
우리 때는 그렇게들 사진을 안 찍었지요.
물론 배부른 사진은 전혀 안 찍고 아기만 병원에서 첫사진 한 장 달랑 찍어주었던 것이 보통이었어요.
사위는 아기가 나온 직후에 우는 모습이며 어리둥절하고 손을 휘젖는 모습이며
무엇이든지 새롭고 신기한 마음으로 수도 없이 사진을 찍더라구요.
헉...병원에 갈때 그 짐이라니...
큰 가방으로 무얼 잔뜩 넣었는지 사위가 세개를 양 어꺠에 매고 그것도 모자라서 또 양손으로 들고 갔다는게 아닙니까?
컴퓨터까지 사진기까지 커다란 볼까지...정말 많은 것을 가지고 가더라구요.
35 년전 초라한 이민 초년생 우리는 달랑 가방 하나도 헐렁 못 채우고 갔다 아닙니까?
퇴원할 때 내가 입을 옷과 아기 옷 그것뿐...ㅎㅎㅎ
아기 방은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있고요,
우리땐 없던 얼트라 사운드로 사진을 찍어 아들인지 딸인지 미리 알고
아들 이름을 붙이고 아들 색갈도 아들에 맞추고 그림도 사서 붙이는등 아주 완벽해요.
옷장엔 옷이 가득, 크립에 아기 가구 일습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고 무엇이든지 차고 넘쳐요.
우리 때는 왜 그리 가난하고 초라했던지...크립하나 베비 싵하나, 옷 서너 가지 목욕 통하나 그것뿐이었는데
이 아기를 위해서는 그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준비에 준비를 다 했는지 비교 자체가 안돼요.
남편의 역할이 눈이 부셨는데요, 미리 부모되는 공부에 따라 다닐 뿐 아니라
휴가까지 철두철미 계획 속에 한달 이상 가지고 아기를 돌볼 작정이 완전히 되어있구요.
어디 그 옛날에 그랬나요? 여자 혼자 다 하고 남편은 그냥 완전 거저 도령이었죠.
우리 사위보니까 교육받은 대로 그 진통 겪는 내내 손을 붇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얼음물을 입에 넣어주며...말만 나오면 심부름 대기를 해주며
한번 푸쉬 할 때마다 "굳 잡...잘했어, 잘했어' 연방 격려해 주면서 쩔쩔매는 것이었어요.
아예 잠시도 아내 곁을 안 떠나고 며칠을 같이 지내고 있네요.
그렇게 깊이 사랑해 주는 남편의 아기를 낳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참으로 보기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그리고 출산의 고통을 줄이는 무통 분만 에피두럴을 하는 것이 크게 달랐어요.
우리 때는 큰 문제가 있는 산모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잖아요?
7-80 프로 이상의 산모들이 무통분만을 원한다고 합니다.
우리 딸은 " 엄마, 말리지 말아, 절대로 꼭 나는 할테야" 하면서 고집을 공연히 부렸습니다.
나도 막을 생각을 안 했지요. 큰 딸도 그렇게 해서 낳았다니까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알거든요.
누에가 고치에서 나와서 나비가 되려면 그 갇힌 고치 속에서 몹시 몸부림 치면서 애를 쓰는데
만약 사람이 그것을 보고 애처로와서 일부러 도와주느라 고치를 터쳐주면
그렇게 나온 나비는 나와서 비실비실하며 날지를 못한다는 이야기요...
그렇게 몹시 힘들면서 나와야 제 구실을 올바르게 할수 있다는 창조의 신비가 들어있다는 이야기에요.
사람도 왜 안 그렇겠나.. 창조주의 계획과 경륜속에 해산의 고통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일텐데
사람들이 꽤을 너무나 부리는 것이 아닌가...너무나 발전한 의학의 힘을 믿고 까부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혹 아이들이 자라서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있지도 않는 걱정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차마 입으로 그 이야기는 못하겠더라구요.
나이 설흔 셋이나 먹어 첫 아이를 낳으면서 얼마나 참기 힘들면 그러할텐데
확실치 않은 소리를 해가면서 아이를 힘들게 할수는 없겠지요.
에피두럴을 맞고 그렇게 몹시 불안해 하고 힘들게 진통을 겪던 아이가 당장에 편해졌어요.
너무 편해져서 언제 진통이 오는지 잘 모를 정도이었어요.
그 진통 오는 그 시간에 푸쉬를 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도표가 찍혀 내려 오는 것을 보고 이떄다..하면서 그 진통 기간에
세 번 내지 네 번은 온 힘을 다해 푸쉬를 하도록 도와 주데요.
요즈음 의사들은 얼마나 자상히 잘 가르쳐 주면서 도와주는지 그것도 옛날보다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너무 쉽게 아이를 낳아서 그들에게 기회를 안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의사가 옆에 앉아 자꾸만 보아주는 것...
때가 되니 배큠을 가지고 아기가 나오도록 머리를 빨아 내어 주는 것...너무도 신기한 일이었어요.
의사말이 산모가 90 프로 하면 자기들이 10 프로의 힘을 보태어 아기가 쉽게 나오도록 도와준다나요...
젊은 여자 의사였는데 아주 능력있게 해결하는 것이 참으로 좋아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때는 어찌 그리 무지했던지요?
요즈음엔 책에 디비디에 온갖 정보의 홍수에다가, 인터넷에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일초내에 답이 나오잖아요?
우리때에는 그냥 모르는채로 더듬을 뿐이었어요.
아기 젖주는 것도 많이 달라 졌는데요, 우리 때는 달랑 3 달만 먹이고 우유를 먹이도록 했거든요.
이제는 1년을 먹인다고 하네요.
그리고 태어나자 마자 울던지 말던지 끌고 가서 유아방 간호원들이 돌보았는데
이제는 산모 옆에 두는 것이었어요.
막 낳아서도 산모 배위에 아기를 올려 놓더라구요.
아기가 훨씬 안정감이 있을 것이 분명해요.
세월과 함께 달라진 것 중에 좋은 것이 이외에도 많이 있는데 한가지 우리들의 그떄가 더 좋았던 것이 있어요.
요즈음에는 출산한지 24시간에서 48시간 이면 퇴원하도록 하는 것인데
우리 때는 닷새고 일주일이고 원하는 대로 있을수 있었거든요.
그떄만해도 세월이 좋았죠. 요새는 의료수가가 너무나 비싸서 그렇게 못하는 모양이더라구요.
그나머지는 아무래로 요즈음이 더 좋은 것 같지요?
요즈음 사는 여자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보지만
다시 젊어져서 아이를 낳아 보라면? 글쎄...젊어지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사양 할래요.
내게 그 일이 옛날에 다 끝이 난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ㅎㅎㅎ(8-2-09)
인선후배 글을 읽으니 정말 내가 출산 했을때와 비슷하군요.
가방에 옷 몇가지 넣은것 박에 그야말로 헐렁한 가방 이었지요.
남편은 애기 낳은다음 들어오고 세째는 함께 했지만...
인선후배 외손자 보심 축하 드림니다....
인선언니~외손자 보심을 축하드려요.
추카추카!!!
다시는 생각하고프지 않은 그 산통!!!
아구 무서워라~
요즘 진짜 좋은 세상이죠???
아가가 슬기롭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면서...
인선아~
어쩜 그렇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지 꼭 옆에서 듣는 것 같다.
진짜 진짜 축하해.
손주 보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
하느님은 참 오묘하시다 했어.
세상 낙이 없어질 만 하니 "요걸 몰랐지?"하며 가장 큰 선물을 주신것 같아.
순도 높은 100프로의 사랑 바로 그거란다.
난 우리 손녀 첨에 봤을때 눈물이 막 나더라.
사업 접었어도 기쁜 일이 많지?
해산간호 하느라 니 건강 해치지 말고 쉬며 쉬며 해.
인선아,
축하한다.
정말 많이 변했지 ?
나도 옆에 다른 가족 아무도 없이 임신도 하고 아이를 낳았네.
남녀가 결혼해 살면 아이가 생긴다는 지극히 간단한 진리도 못 깨닫고, 속이 너무 오랬동안 미슥거려 내과에 진찰 받으러 가서
임신이라는 진단을 받았지.
3대 독자의 집안이라 아이를 모두 기다리시는데,"노산이라 걱정이다" 하시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누가 노산을 한다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나더라고.
그래도 얼마나 좋은지 그 다음 주에 교회에 가서 목사님을 만나자마자 "목사님 저 임신 했어요 "
너무 좋으신 분이였는데 "어, 잘했군, 경사야 "하시며 저녁을 사주시던 걸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와.
그때 의사 선생님이 출산 예정일이 7월 31 일이라고 해서 나는 그날 아이가 나오는지 알고 배가 아프다고 분만실에 입원을 했어.
그 날이 주일이라 축도 시간에 지금 진통을 겪고 있는 인숙에게 같이 해달라는 기도를 목사님이 하셨는데, 아기가 나올려면 아직 멀었다고 퇴원을 시켜서, 그 다음 주일에 배가 부른 채 다시 교회에 간 것 있지.
집에 오자 , 남편은 아이에게 청결한 환경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서 읽고 밤낮으로 삶는 거야, 무엇이나 다 - 우유 병, 솔, 숫깔, 걸레....... 나는 배가 곺아 죽겠는데, 유리창이 뿌옇토록 집안의 모든 물건을 삶다가는 미역 국을 끓여 왔는 데, 고추가루를 넎고 끓인 것 있지, 시원하게 할려고 했다나 뭐.
아무튼 네가 딸 산후 조리 한 얘기를 읽으니 내 속이 다 시원하다.
나도 우리 때 같지 않게 너무 잘 해 줄꺼야 .
네 딸 부부에게도 인사를 부탁한다
양곡의 누님이시자 피닉스의 고우신 선배님,
정말 축하를 드려야겠군요.
자고로 옛 선인들은 아들을 낳는 기쁨을
농장지경 (弄璋之慶) 또는 농장지희라 하였지요.
경사가 났어요.
하느님의 축복 속에 태어난 새로운 생명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 세상에 빛이 되는
큰 인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선배님을 쏙 빼닮은 둘째 따님의 출산을 곁에서
지켜보는 그 마음도 헤아려 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지요.
따님에게도 멀리서나마 강화도령이
축하메시지를 보낸다고 전해주세요.
하느님의 무궁하신 사랑이 따님네
가정에 함께 하심을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 방문하신 분을 소개하는 시간에 이인선 선배님의 성함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침에 손자를 보셨다는데 저희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피곤하신 기색이 하나도 없고 그저 기뻐하시는 젊고 예쁘신 모습 너무 좋았어요.
하나님과 모든분들의 축복속에 태어난 아기와 부모님 축하합니다.
처음 미국이민와서 아내가 순산을 했는데 영어로 어떻게 말을 할지 몰라서
Easy delivery 했다고 콩글리쉬로 말했다지요.
순산을 확실하게 뭐라고 하는지 우리친구 백경수한테 물어봐야 겠네요.
이인선 선배님, 외할머니 되심을 다시한번 축하드리고 수고 많이 하세요.
경숙후배 이렇게 멋진 사진으로 축하인사를 해주었네. 고마워.
그날 오랜만에 후배가 올갠치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서 너무나 멋져서 부러워 했는데...
실은 찬양대 석에 있으려니 아무리 보아도 없는거야.
그런데 올갠치는 사람을 보니 비슷하고...ㅎㅎㅎ
목사님도 인상이 좋고 자기도 목사님 닮아 환하고
그 교회에는 행복한 사람이 많이 있는 것 같더라.
인일 후배들이 여럿이 그 교회에 있으니 아무래도 이성호 목사님이 복많이 받으셨지.
그날 떡을 두보따리나 싸줘서 우리 딸도 사위도 같이 먹고 좋아했네요.
축하 떡을 다 받은 셉이니....
다음 주에 또 만나요!
인선후배, 하고 싶은, 사랑을 따님에게 부어주는 것을 보니 잘 지내시는것 같아 기쁘군요.
우리 옛날의 아이낳는 일과 지금을 비교분석??? 새롭군요.
말하면 뭘해요, 유학오자 울면 공부 못할까봐 할머니, 할아버지께 아이를 두고 왔는데
또 임신이 되니, 기뻐하기는 커녕, 한숨을 치쉬고 내리쉬며 걱정하는 내------------------------ㅁ편,
옆에는 애 낳은 축하로 꽃다발이 둘 때가 없는데
그때만 해도(1970) 우리 한국냄편들이 꽃에 대한 인식이 있어요?????????
그 돈 있으면 쌀을 더 사 놓겠지,,,하하하
지금은 지난일들,,,,,,,,
자기가 직접 걱정할려니 얼매나 힘들어요.
지나고 생각하니 우리가 애들 낳고 받는 축복이 넘치고도 넘치는데ㅡㅡㅡㅡㅡ
애들 낳았기에 굶어 죽은 사람들 하나도 없잖아요???
우리 큰 딸은 만삭이 되어 하와이에 친구들하고 놀러가서
부부들이 다 같은 계통의 친구니까,
왼쪽부터,,,남자친구,큰딸, 제 남편이 하와이언 프린트 샤쓰에 밀집모자에
배들을 다 내어 놓고 옆 모습으로 춤을 추는 포즈로 찍으니,
셋이 배가 다 만삭이라 누가 임신했는지 모르겠더라구요,
떠어억 벽에다 액자해서 걸어 놨더군!!!하하하
요즈음 시대의 일면이지요, 부끄럽다니요,,,
김인숙후배 얘기도 너무 재미있네요.
아무튼 축하합니다!!!!!!!!!!!!!!!!!!!!!!!!!!!!!
인서니 선배님
기쁘시겠어요.
외손자를 순산하셨다니.......
외손자와 산모 그리고 선배님께 하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드립니다.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불현듯 제 어머니 말씀이 생각납니다.
"큰애 낳다가 죽는 줄 알았어, 3일 낮과 밤을 끈덕지게 밀어 대기만 해서, 세상에 나와서도 끈덕지게 속을 썩이네......"
뒤늦게 나마 이제 어머니의 진통의 고통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글구 사진 잘 보았습니다.
후배분이야 성령이 충만한 얼굴이시니 그렇다 치고 선배님 얼굴이 너무 젊고 밝으십니다.
좋은 시간 가지세요.
안녕히........
이인선 선배님
그렇게 고우신데 벌써 할머니시라니요.
따님의 순산을 축하드립니다.
정상분만은 normal delivery 라고 하고 제왕절개는 cesarean section이라고 하지요.
보통은 정상분만을 하는 걸 권하지만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은데
따님은 순산을 하셨군요.
저는 분만실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애 낳는 과정을 많이 보는데
애 낳는 일,정말 어려워요.
쉬운 분만은 없어요.
다들 잊어버려서 그렇지---
요즘은 애기를 낳자마자 엄마에게 안겨주고 수유를 권하는 추세
맞아요.
그렇게 하는게 여러모로 좋다지요?
모유가 좋은 건 잘 아시죠?
경숙씨
easy delivery,맞아요.
그렇게 easy 하지 않았을 걸?ㅎㅎㅎ
이인선 선배님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집안에 웃을 일만 남았네요.
우리 옆집 할머니는 현재 팔순이신데
피난지 연천에서 밭을 메다가 아이를 쑥 나았다고 이야기를 들려주십시다.
꼭 전설 같아요.
우리 외할머니도 그랬대요. 아이를 쉽게 낳는 분들이 계시긴 해요.
아님 참을 성이 강해서 고통이 와도 그냥 일에 묻혀 지내던 시대여서 그랬나?
언젠가 산학 님은 출산하던 달이 오면 늘 다시 새롭게 심신의 몸살을 앓는다는 글을 올리셨지요.
시인의 감성이기에 더욱 그럴 거라 생각해 봅니다.
어쟀든 이인선 님이 요즘 기운을 차리고 씩씩하게 움직이시니까 보기에 좋죠?
저는 인선 님이 언젠가 한국에 오면 그저 인선 님의 얘기 보따리에 취해
실컷 듣고 싶은 소망에 요즘 행복한 기대를 하죠.
제가 말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들어주는 것도 잘 하거든요.
상우기 선배님
저 이 시간 웃으워서 뒤집어 질 것 같아요.
어쩌면 남에 산실에 들어오셔서 애 낳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신데요?
산부인과 의사도 아니시면서 천연덕 스럽게.......ㅋㅋ ㅎㅎㅎ
아예 산파로 나서셔도 잘 하실 것 같아요.
조산원을 차리시던지.......ㅋㅋ
글구 산하기님네 할머니는 얼마나 애를 잘 낳으시면 밭 매다가 낳으셨데요?
애 낳는 선수도 아니고 돼지가 새끼를 낳는 것도 아닐텐데......ㅋㅋ
그럼 산하기님은 논 매다가 논 바닥에 애를 낳았느냐고 여쭤 보세요.ㅋㅋ ㅎㅎ
조금은 결례가 될 지도 모르니 선배님이 조심스럽게 물어 보셔야 돼요.
저도 어릴적 이웃집 아주머니가 콩밭 매다가 진통을 느껴 혼자서 볏집을 깔고 출산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탯줄도 혼자 끊고 열 두명을 낳았다고 하데요.
이래 죽고 저래 죽어 남은 건 사남매 뿐이고요.
글구 이런 이야기도 있고요.
제 고향 마을에 앵무새 새끼라는 별명을 가진 새댁이 있었어요.
남의 말을 실시간으로 잘 전파한다고 해서...........
해서 소박 맞고 시댁을 나간 새댁이 뭐 소피보다 요강에 애를 낳았다고 하데요.
물론 제가 본 것은 아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근 거리더라고요.
"아! 글쎄 얼마나 칠칠맞으면 애를 요강단지에다 빠트렸겠시꺄? 알아 볼쪼지.....그 앵무새가...."
ㅋㅋㅋ ㅎㅎㅎ ㅋㅋㅋ
이 저녁 좋은 시간 되세요.
웃자고 한 마디 던진 말인데 결례가 되었다면 선배님이 혼자 다 뒤집어 쓰시고요. ㅋㅋ
이인선 선배님,
뭔진 모르지만,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고 계시네요.
저는 지금 한국 영락교회 갈보리 찬양대의 연주회를 다녀왔어요.
지휘자 박신화씨는 옛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산시립 합창단의 '메밀묵 사려' 로 인상 깊었던 분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연주하나에 관심이 많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찬양에만 깊히 빠져 있었습니다.
다음에 또 오신다고 말씀하셨지만, 다음 주에 한번 시간 내셔서 함께 식사하시면 어떨까요?
언제가 좋으신지 주일날 말씀해 주세요.
용선배님도 오실 수 있으세요? 오시면 정말 좋겠는데...
인선아,
축하한다.
할머니 노릇 기막히게 할끼다.
나 지금 한국야.
어제 도착해서 아직도 멍한데
중국 비자를 미처 해오질 못해서
오늘 서울에 올라와 동생의 도움을 받고 그 회사 컴퓨터를 두들겨보네.
집에 같이 내려갈려고 기다리는 중야.
딸애의 둘째 아이 출산 예정일이 8월 31일인데
가보지도 못하고...
이번 장기 출장 다 마치고 난 후 10월 중순 경에나 갈 생각이란다.
이번에 할머니 노릇 실컨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나도 가슴이 설렌단다.
우리 나이가 할머니로서의 특권과 의무를 기쁘게 감당할 때이네.
피닉스의 옥사나 님!
우선 외손자 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정말 인선 님의 글을 보니 많이 변했군요.
병원에서 처치하는 방법도, 남편들이 준비하는 것도...
저도 요즘 아이 낳을 때 남편이 출산실에 들어가서 아내 손을 잡아주고 함께
2세를 맞는 그것이 참 바람직하고 좋아보이더군요,
저의 경우는 아예 그 방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제 아내는 아이들을 진통이 오면 2시간,
빠를 때는 1시간 이내에 낳아서 재빨리 병원에 가야 했지요.
요즘 사람들은 그 태교라는 걸 정말 잘 하는 듯싶어
말씀처럼 <거저 도령>이던 우리 세대와는 참 달라요.
하지만 여기 한국이나 미국이나 장모가 애 쓰는 것은 비슷하군요.
무엇보다도 인선 님이 요즘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이 푸근합니다.
좋은 글 계속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