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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님, 귀 좀 잠깐 빌릴게요. 이건 아주 극비사항인데요.(아주 조그맣게)

    저 내일 참석하려고 해요.

    왕의 부마손이라 동선을 비밀에 붙이려 이제야 말합니다.

    일전에 부탁하신 하모니카 정말 가져가야 하나요? 네? ㅎㅎㅎ

    명색이 시인이니 축시를 하나 준비했는데 발표해도 되나요? (더 조그맣게)

    수줍어서 그래요.

    두개 다하면 넘 욕심이고 주객이 전도되어 안 되죠?ㅎㅎㅎ

    그리고 형보다 저만 예뻐해 주시면 안 되나요?(더더욱 작게) ㅎㅎㅎ”


    상기의 글은 이미 참석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에서 댓글로 김영주 선배님께

    고하는 전상서예요.

    덕바위 형님은 수시로 전화해 확인하고..

    “나는 파라다이스호텔커피숍에서 제고 후배들과 열한시 반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리로 올래?”

    “관리약사가 열두시까지 오기로 해서..”

    마침 고교친구 동호가 약국에 놀러왔기에 같이 가자는 저의 제안에 흔쾌히

    따라 나서주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군요.

    늦게 도착한 관리약사에게 미처 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택시를 잡아 달리는

    차창 너머로 짙푸른 옷으로 갈아입은 가로수들이 달려와 제 뿔에 넘어지네요.

    “내가 업무시간에 환자를 멀리하고 여학교 행사에 초청되어가다니..”

    “나는 지금 왜일까?” 스스로 자문을 구해봅니다.

    고교시절 동인천의 한 학원을 다닐 때 먼발치로만 쳐다보던 원형교사가

    먼저 보이던 금남의 인일교정..

    수줍어 까만 리본의 상큼한 여학생들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래려 지금 달려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보상심리로?

    그러나 그간 글을 공유하고 정을 나누며 쌓아온 소중한 인연이 제 마음에

    신작로를 내어 안내하고 있네요.


    언덕에 자리 잡은 파라다이스호텔, 구 올림포스호텔로 알고 있었는데요.

    내려다보이는 서해바다가 풍요를 노래합니다.

    인일여고홈피탄생 6주년 기념장 팻말을 보고 잘 찾아 왔구나하는 안도와

    이때부터 가슴이 쿵쾅입니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분명 여기는 호랑이 굴이 아니고

    화사한 누님들이 반가이 맞아주는 사랑의 공간입니다.

    “어떻게 해야 짜잔 하고 멋지게 등장하지?”

    속으로 말합니다. “이 바보야! 네가 오늘의 주인공은 아니잖아?

    누가 널 잡아 먹니? 떨기는?”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드려!” 누군가 명령을 내리는 것 같군요.


    “딩동!” 8층.

    눈이 부시는군요. 순간 아무것도 안 보여요. “내가 왜 이러지?”

    14기 인옥님이 반기며 가슴에 명찰을 붙이고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옵니다.

    사회 석에 계시다 달려와 살갑게 맞아주시는 영원한 소녀 같은 김영주

    선배님이시군요. 포근한 감정이 듭니다.

    캠을 만지시던 훤칠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전영희 선배님도 미소로

    화답을 주실 때 급히 덕바위 형님을 찾으니 코를 벌름거리며 뷔페식 줄에

    서 계시는군요.

    듬직하고 친근한 맏형 같은 용상욱 선배님과 악수를 나눕니다.

    흥복이 형도 이웃사촌 동기 찬호님도..

    싸인 석에 계신 권오인 선배님에게 달려가 인사를 드립니다.

    여기서는 남자 분들이 더 반갑지요. 수줍음을 덜 수 있기에..


    식사를 마치니 식이 진행되네요.

    국수를 늦게 말아 후루룩 마시던 어느 선배님의 입장이 곤란해지는군요.

    세월을 빗겨가 곱디고우신 1기 허회숙 선배님의 인사말과 2기 유 선배님..

    모두가 1학년 9반이시군요. 소녀같이..

    말씀들을 차분히 얼마나 잘하시던지..인일이 낳은 자랑스러운 딸들임에

    틀림없어요.

    인일의 산 역사를 보는 순간입니다. 

    단 아쉬움이 남아요.

    ‘발해 물에 번쩍이는 드높은 전당’하며 시작되는 여고의 교가를 육성으로

    듣고 싶었는데 시간상인지 생략되었군요.

    저는 다른 학교의 교가 듣기를 좋아한답니다.

    ‘빛나는 아침 해 문학에 오르고’ 인고의 교가는 물론 ‘여기는 희망의 빛

    제물포고교~‘ 등등.


    1부가 끝나자 2부에 시 낭송시간이예요.

    처음 순서의 선배님이 아름다운 시를 성우다운 목소리로 낭랑하게

    읽어 주시니 감동이 밀려옵니다.

    드디어 제 차례.. 병이 또 도지려합니다.

    성당에서 성경을 읽을 때면 긴장을 너무하여 말더듬이가 되는 증상이지요.

    준비한 인사말도 잊고 “저, 떨지 않도록 기도해주세요.” 하고 멘트를 날립니다.

    저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가하는 표정들이시군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 여산 윤 용 혁” 여기까진 그런대로 좋습니다.

    원고를 든 손이 가볍게 떨리고 이어 다리마저도 후들거리려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목소리는 떨리지 않아 안도감이 듭니다.

    “지금 덕바위 형님이 듣고 있다. 기를 살려라.” 속으로 외칩니다.

    아마 형이 초등학고 6학년 때 일거예요.

    교내웅변대회를 나간다고 새벽시간 원고를 외우던 형이 옆에서 곤히 자는

    내 배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하다 놀란 어린 나는

    그 때 배가 터져 죽는 줄 알았어요. 얼마나 세게 내려치는지요.


    저보고 돌파리 시인이라고 놀리는데 평가를 어찌 내릴 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형님과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뜻 깊은 일 중에 하나로 기억

    되겠군요.


    “행님아,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멋진 행사에 같이 동행하게 되니 그

    기쁨이 넘치지요?

    스탕달의 적과 흙,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탐독하면서 고시공부에

    매달려 권력의 속성을 부르짖을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입니다.

    그 당시로써는 지금과 같은 이 일은 사치요 낭비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제

    참석해 마음을 열고  마음을 나누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야 학창시절 클럽활동과 주일학교 교사로 레크레이션 등으로 교제의 폭을

    넓혔지만 고시공부에만 전념하던 행님아는 상상도 못할 일인 포크댄스까지

    추니 참으로 신기하고 멋지더군요.

    어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이웃과 더불어 가는 동행의 좋은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참석해 주셔서 정말 고맙고 열린 마음에 찬사를 보내고자합니다.

    아울러 공복으로서 더욱 나라를 위해 주어진 시간까지 충실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행님아를 따르고 사랑하는(이말 처음이라 낯이 좀.. ㅋㅋ)

    여산올림.”


    모두가 망가지는 아름다운 시간에 참석한 모두는 하나가 됩니다.

    제 출신 고교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부분 내 외빈과 연식이 좀 되셨다고

    생각하시는 선배님들은 공식적인 자리가 끝나기 무섭게 다들 도망가시지만

    인일인은 정말 뭔가 달라도 다릅니다.

    고우신 1기 선배님부터 15기 후배들까지 남아 여흥을 즐기고 인일임을

    자랑스럽게 표현해낼 때 역시 명문의 딸들임을 깨닫기에 충분하지요.


    멋지고 세련된 사회, 선후배가 어우러지는 축제의 한마당,

    인일 인이 살아 숨 쉬는 따듯한 공간, 격상을 높여가는 홈피의 발전상,

    이웃을 배려하고 열린 마음의 선후배님들을 보고 돌아옵니다.

    불러주시고 함께했기에 인일인 모두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지난 토요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지요. 

    제 생애에 기적하나를 연출합니다.

    참 하모니카를 준비했는데 언제 불죠? ㅎㅎㅎ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인일여고홈피탄생6주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