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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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이 한 분에겐 연가의 장소로 한 분에게는 악몽의 장소로
대비되는 글을 나란히 올리니 더욱 재미 있습니다.
여산이 형의 글과 함께 나란히 이런 글을 올리는 걸 보니 역시 형제의 우애가 무척 깊군요.
뭐니뭐니해도 지나고 나면 고생도 멋진 추억꺼리가 되는 거겠지요.
돈키호테, 아이반호, 흑기사, 어린 왕자... 젊은 날의 청년에게는 뭔가 공통점이 있는 듯싶어요.
그래요. 이 세상에 우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필연이지요.
어쟀든 젊은 날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추억들이 모두 다 아름다워 보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일기장 선물한 그 눈이 큰 여학생은 혹시 이 번에 나타나시는 가요? ,
용상욱 선배님,
아니 모두에게 용사마가 되시는 멋진 선배님,
젊은 날의 청춘에게는 뭔가 통하는 필이 있어요.
필연일 수도 있고요.
당시 농촌에서 가기도 어려운 설악산에 형제가
간다니 어머니는 등골이 휘어지셨겠지요.
변변한 카메라하나 없어 은평구 사진관에서
케논카메라인지 뭔지 조그만 것을 빌려 무작정 떠났답니다.
한 열흘이 지나니 거지가 따로 없더군요.
저는 옷을 단벌로 가져가 더더욱..
형은 설악동 세탁소에 와이셔츠를 맡겨
늘 세련되고 가죽조끼에 카우보이로 남고..
형님이 만난 여인은 정말 멋졌어요.
그 사실을 인정하고자 합니다.
빨간 티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찰랑이는 머리결에 하얀피부..
늘씬한 여인이었지요.
형의 여인을 가로채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고딩인 저로서는...
낙산해수욕장에서 형이 서울에서 온 가족 중
한 여고생을 가르키며 사귀라는데 숫기가 없는
저는 바닷가 모래구덩이만 들이파다 더위만 먹었답니다.ㅎㅎ
아련한 추억의 일기장이랍니다.
여여하세요.
의좋은 용범, 용혁 형제님,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추억의 다양함은 남자들에게 훨씬 많은 거 같아요.
여자들에게 요란한 추억은 그리 많지 않아요.
허긴 상대가 여자였으니 그건 말이 안 되네요.
여자 없는 남자의 추억 얘기는 좀 시시하지요.
덕바위님의 노래를 자동실행 되지 않게 고쳐 놓았어요.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은 플레이 버튼을 누르셔야 합니다.
배경 음악이 너무 커서 글이 마음에 안 들어올 거라 생각되어 그리 했는데
덕바위님께 좀 미안하네요. 이해해 주시겠죠?
노래는 내일 라이브로 듣겠습니다.
김영주 선배님,
역시 큣하신 모습이 인일의 딸로 아름답습니다.
제가 그리 배려했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듣는 분들의 입장을 생각해 노래의 선택을
자유롭게 잘 하셨어요.
제 형님 글을 반겨주시어 감사드려요.
선배님, 귀좀 잠깐 빌릴께요.
이건 아주 극비사항인데요...
(아주 조그맣게)
저 내일 참석하려고 해요.
왕의 부마손이라 동선을 비밀에 붙이려 이제사
말합니다.
일전에 부탁하신 하모니카 정말
가져가야 하나요? 네? ㅎㅎㅎ
명색이 시인이니 축시를 하나 준비했는데
발표해도 되나요? (더 조그맣게)
수줍어서 그래요.
두개 다하면 넘 욕심이고 주객이 전도되어
안되죠?ㅎㅎㅎ
그리고 형보다 저만 이뻐해 주시면 안되나요?(더더욱 작게) ㅎㅎㅎ
저녁에는 제 대학동기들의 모교앞 9호선 개통
번개모임이 있답니다.
바쁜 하루가 되겠어요.
아무튼 내일 뵙도록 하죠.
인일모임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길요.
하모니카 연습 많이 해 갖고 가세요.
부르실 곡목은?
형님때문에 많이 당하고 사신 것 같네요.
어쩌겠어요.
그냥 팔자거니 하세요.ㅋㅋㅋ
나성의 고우신 선배님이 오셨군요?
저랑 내일 같이 가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특별기라도 띄울까요?
선배님을 위해...
곡명은 제가 좋아하는 짐리브스의 He'll have to go를 처음 불어 보았는데
자주 삑사리가 나는군요.ㅎㅎ
제가 영광스러운 여학교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니 "어메징 그레이스"를 불면 어떨까요?
이은미의 "찔레꽃"은 넘 슬픈가요?
연습은 환자들로 인해 잘 못하겠군요.
불려하면 들어오고.. ㅎㅎㅎ
집에서 연습하면 마눌님인 곽샘한테 혼나고요.
맞아요.
형때문에 당한 일이 많지요.
당시로써는 팔자거니 했어요.
워낙 고집불통에 변덕까지.. ㅎㅎ
이제 되돌려 받아야겠군요.ㅎㅎ
각자 가정을 이루니 간섭도 없는 독립체로 편하군요.
선배님의 마음도 모시고 갔다 오겠습니다.
행복하세요.
어라! 여산 선생 까꿍!!
누가 보면 형제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 줄 아시겠네요.
이 글은 제가 초등학교 홈피에 올린 글인데........
이곳에 올릴 줄 알았으면 크리스마스 때 일기장을 건네준 여고생 이야기는 숨겨야 하는데요. ㅋㅋ ㅎㅎㅎ
다 밝혀 버렸네요.
괜찮아요.
지난 날 추억담을 공유하는 것이고 청순했던 그 여고생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
바로 지금과 같은 휴가철이었지요.
그렇게 가슴 뭉클했던 젊은 날이 진정으로 있었네요.
여산 선생
꽃다웠던 제 청춘을 돌려 주십시오.
내일 뵈요.
늦게 나온 죄로 고생이 많소이다. ㅎㅎㅎ
영주님께 애교 부리는 답글이 너무 재밌네요.
내일 형제분의 장기자랑이 인일의 얘기거리가 되겠지요?
아쉽지만 저는 뒷 담화나 들어야겠네요.
(조그맣게) 내일 형님 기를 팍 꺾어 버리세요. 알았죠? ㅎㅎㅎ
그래도 제가 형님에게 이끌려 여기 온 거 아시죠? ㅎㅎㅎ
어제 오랜만에 만난 흥복 후배, 그리고 처음 만난 덕바위, 여산 형제들 참 반가웠습니다.
난 덕바위와 악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허깅도 했지요.
여산 선생의 하모니카 연주를 못 들은 것이 좀 아쉽지만 여산은 정말 군살이 하나도 없으면서
실제 인상은 더 소년 같고 좋더군요,. 그리고 형제들이 음성이 참 우렁차면서도 좋아요.
아! 참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그 노래는 우리 선친께서 취기가 올랐다 하면
즐겨부르시던 백년설의 나그네설움인데 내가 착각을 일으켜 선창이라 했네요.
언제 노래를 한 10곡씩 불러봅시다. 약국도 잘 운영되시길...
나에겐 악몽의 여름휴가
70년대 초 고등학생 인 나와 대학생인 형은 어머니가 애써 길러온 인삼 밭이 잘 안되어
헐값에 팔아 넘긴 돈의 일부를 겨우 타내어 여름방학 때 설악산을 가기로 하였다.
어머니는 형의 돈 씀씀이가 미덥지 않으신지 내 팬티 속에 비상금 오천원을 실로 꿰어 주며
형에게 절대 말하지 말고 비상시에만 꺼내 쓰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형과 서울로 올라와 사진관에서 카메라도 빌리고 코펠 버너와 텐트를 챙기니 배낭이 차고 넘쳤다.
마장동에서 속초까지 가는 버스는 장장 열 시간을 넘게 걸려 도착하여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설악산에 도착하니 주위는 온통 깜깜하였다.
랜턴을 비춰가며 야영지를 찾아 가는데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로 한남자가 “보소!보소!
와 남의 얼굴에 비치고 그라는 겨”하며 시비를 거니 참 난감하였다.
적당히 달래고 설악동 매점근처에 텐트를 치고 밥을 짓자 시간은 벌써 오후 열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석유버너도 난생 처음 사용하는 관계로 처음부터 펌프질을 많이 하여 불을 피우니
시커먼 연기만 나고 밥은 설고 첫날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카우보이 복장의 형은 등산을 와서도 설악동 세탁소에 들러 와이셔츠에 주름을 잡고
가죽조끼를 받혀 입고서는 한껏 멋을 부렸다. 그러나 나는 교련복에 헐렁한 모자를
씌우니 폼도 안 나고 며칠을 그런 식으로 보내니 얼굴은 까맣게 타고 점점 거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사이 형은 친척집 매점에 내려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숙대 화학과에 다니는 여대생을
사귀기 시작하면서 난 안중에도 없었다.
더운 여름날 혼자 텐트를 지켜가며 사랑에 빠진 형을 기다리자니 한심한 생각도 들고
집 생각도 나고 눈물이 났다. 용돈은 다 떨어져 가는데 형은 신이 나있다.
늘 나를 남겨두고 다닐 생각에 대청봉은 너무 힘들고 토왕성 폭포는 미끄러워서
안 된다고 텐트만을 지키라니 이게 무슨 여름 휴가이고 등산인가?
몇 알 되지않는 김치는 쉬어 꼬부라지고 밥에다 통조림 식사는 식상한지 오래고
불편한 잠자리에 몸과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다.
가본 곳이라고는 비룡폭포와 비선대 뿐이니 나의 불만은 커지기 시작했다.
다른 대학생형들을 따라 등산에 나섰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뻔했다.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등반을 하다가 정말 큰일 날뻔하였다.
돌아와보니 형은 보이지 않고 돈이 떨어져도 집에 갈 생각은 않고 모든 것이 다
문제의 여대생 때문이라 생각하니 형도 그 여자도 모두가 싫어졌다.
드디어 나타난 형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얼마나 좋으랴 예쁜 여대생을 만났으니 동생이 굶든 떨어져 죽든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낙산 해수욕장을 거쳐 강릉에 도착하니 수중에 돈은 한 사람만 간신히 서울 갈 차비와
서울시내버스 갈아탈 돈뿐이라며 나 먼저 집에 가서 설악동 우체국으로 돈을 부치라는 것이다.
아니면 빌려온 카메라를 전당포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어머니와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내 팬티 속에 비상금 오천원이 있다고 하니까
형은 반색을 하며 우선 더우니 그 돈으로 수박을 사먹자고 하였다.
형의 고집불통에 밀려 정말 큰 수박을 사서 둘이 먹으니 배가 터지게 불렀다.
대책도 없고 즉흥적인 형의 제안에 속수무책 따라 갈수 밖에 없었다.
경포대 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자려는데 낮에 먹은 수박 때문인지 아니면
비상금을 다 써버린 걱정 때문인지 배가 아프기 시작 하면서 설사가 났다 .
형도 마찬가지로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잠을 못 이뤘다..
나중에 귀찮아서 텐트 안에 모래를 파고 거기에다 큰일을 치루고 덮으니
그날 밤은 화장실에서 잠을 잔 거나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형과 헤어져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를 타니 왜 그리 서글프고 집에 돌아가면
이 일을 어떻게 어머니에게 설명하며 그 뒤에 혼날 생각을 하니 하루종일 우울하였다.
차 안에는 남편과 함께 서울 청량리 정신병원으로 가는 아주머니와 뒷좌석에
동승하게 되었는데 말끝마다 외치기를 “피는 물보다 진하다!”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니 정말 내가 미칠 지경이었다. 이 소리를 형이 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피를 나눈 형제임에도 사랑에 눈이 멀어 동생을 홀로 떠나보내는 형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버스가 휴게소에 들렀을 때 남편이 화장실을 다녀와야 한다며 그 아주머니의 손목을
꼭 붙들고 있으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난 무서웠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내가 손목을 잡으니 그 시끄럽던 아주머니가 순한 양이 되어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나의 처치가 자기와 비슷하다고 측은하게 여겼는지
아니면 낯선 학생이 손목을 잡아서 그랬는지 그 아주머니 정신이 오락 가락 하니
물어 볼 수도 없었다.
형이 하숙 하던 친척집에서 강화에 내려가는 차비를 빌려 집에 오니 어머니 벌써부터
형에게 할 욕을 나에게 다 퍼붓고 단지 형을 따라 나선 것이 죄인이 되어 며칠을
어머니 잔소리 속에 보내게 되었다.
아 악몽의 여름휴가 내 다시는 가나 봐라 하며 굳게 다짐을 했건만 그래도 8월이 오면
오래전 여름날의 쓰라린 추억이 떠올라 쓴 웃음을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