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자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동전 따먹기, 등 놀이에 꼬맹이들이 싫증을 내고 있는 눈치였다.

무슨 색다른 놀이를 해서 녀석들을 신나게 해줄 까? 현수는 골똘히 생각을 한다.

그 때 저 앞에 정민 네 검은 고양이가 지나가는 게 눈에 띈다.

 

“우리 집 쌤과 네 집 캐티와 싸움을 시켜보자. 어떤 놈이 이기나?” 현수의 제안에
정민이는 이게 웬 호재(好材)인가 머리를 굴린다.

또래 아이들보다 6살이나 더 먹은 현수는 골목의 대장이고

그보다 3살 아래인 정민이는 부대장 격이다.

헌데 농아(聾兒)인 현수에게 동네 꼬맹이 치고 얼른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주먹다짐을 받지 않은 애가 없다.

특히 정민이는 중간 통역을 해야 하는 역할인데 수화(手話)를 배운 것도 아니고

도통 알아듣지 못해 누구보다도 자주 얻어 터졌다. 때문에 늘 마음 한구석 응어리가 있던 정민은

이 기회에 현수의 기를 꺾고 더불어 꼬맹이들에게 실질적인 덕장(德將)이 되고 싶은 속내가 있었다.

그리고 사실 덩치만 크고 순해빠진 현수네 x개 쌤을 고양이 치고는 제법 크면서도 날렵한 캐티가

어렵지 않게 이겨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음날 점심을 먹기가 무섭게 동네 꼬맹이들은 이 흥미진진한 새로운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모두 모였다.

 

엉거주춤 쌤이 일직선으로 덤비는 순간에 캐티는 번개처럼 담장을 타고 오르다 휙 몸을 날려 쌤을 할퀴고는

다시 잽싸게 담 위로 몸을 날린다. 그 짧은 순간에 승부는 났다.

쌤은 콧잔등이 움푹 팬 채 피를 흘리면서 기세가 눌려 뒷걸음을 친다.

현수는 씩씩대며 쌤을 걷어차고 정민이는 귀엽다고 캐티에게 분유를 타준다.

현수에게 은근히 감정이 좋지 않던 다른 꼬맹이들도 내심 고소하다.

 

그런데 그 후 다시는 캐티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할 듯싶은 쌤이 캐티만 보면 다가서는 것이었다.

그러면 캐티는 으르렁 겁을 주고... 헌데 둘은 좀처럼 다시 격돌하지는 않는다. 

어느 날 캐티가 깜박깜박 졸고 앉았는데 쌤이 캐티의 꼬리를 그 둔중한 발로 슬며시 밟았다.

그러자 캐티는 화들짝 놀라 담 위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 후 캐티는 쌤을 보면 미리 저만치 피하면서 둘의 싸움은 완전히 끝난 듯싶었고

재미난 결정적 장면을 기대하던 꼬마들도 다시 옛날의 놀이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꼬마들은 참 희한한 모습을 보게 됐다.

쌤이 길게 엎드려있고 그 위에 캐티가 편안히 누워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그래도 역시 덩치가 두 배는 차이가 나는 쌤이 계속 덤비는 줄 알았거나

아니면 크고 힘센 놈으로서의 여유와 금도(襟度)를 지키며

싸움을 길게 이어가는 줄 알았던 꼬맹이들에게는
그 모습은 참 낯설고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어쩌면 두 녀석은 싸우면서 정이 들었을까?

아니 내 눈엔 처음부터 쌤은 캐티를 사랑했던 것을 알겠다.

돌이켜보면 녀석은 한 번도 이빨을 드러내며 눈에 살기를 띄고 덤비질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순둥이라지만 그래도 동네에서 왕초노릇을 하는 쌤이 기본기(基本技)는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두 녀석들이 늘 붙어 다니며 다정히 지내는 모습이

싸움을 부추기는 인간들로 인해 피를 흘리던 모습보다는 역시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종(種)이 다르고 심지어는 과(科)가 다른 동물들도 그렇게 사랑을 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에서 받은 감동이

내게는 평생 흔들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평화적 본능이라는 다짐의 거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