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아주 오랜만에 들어왔어.
그동안 모두 잘 있었니?
지난 달에 뉴저지에 갔을 때 혜련이 주선으로
덕실이네 집에서 화정이랑 인숙이랑 모여서
덕실이가 마련해준 정성스런 저녁식사를 같이 하였어.
인숙이는 40년 만에 처음 만났는데 얼마나 고상하고 예쁘게 나이가 들었는지..
내 생각에는 옛날보다 더 멋지게 보이더라. 그러기 쉽지 않은데 말이야.
인숙이는 워낙 어릴 때도 조용한 하얀 얼굴이었던 것을 기억해.
화정이는 그 먼데서 비를 무릅쓰고 왔고..
집에 돌아 가니 12시가 넘어 버렸다니 아직도 피가 끓는 젊은이지?
자주 만날수록 정이 더 드는 것 같아. 그지?
우리 중 탁월한 미인 혜련이는 여전히 샘나게 아름답고...
이제 회장이 되어서 열심히 이멜도 보내주고 하니 고맙고..
무엇보다도 덕실이가 그 바쁜 중에 그렇게 우리들 먹이려고 더운날 애를 쓴 것 생각하면
참으로 미안하고 고맙고....그날 우리는 콩국수에 해물전에 한상 가득차려진 음식을 보고 입을 못 다물었어.
그런데 집에 갈때는 또 손수 농사지어 만든 꺳잎 장아찌며 김치며 콩국물이며 집집이
싸주기 까지 했으니 친구 너무 좋다고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지 뭐니
그렇게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의 덕실이를 어찌 아니 좋아할소냐지?
이 지면을 통해 다시한번 감사해.
그날 사진을 찍어둘 걸 못 찍었네...
10월 3일에 정례네 집에서 모인다고 하니 꼭 가고 싶은 마음이야.
허드슨 강변에 좋은 산책길 답사를 하고 있다고
연방 좋다고 하면서 아침에 전화를 걸었더라.
글쎄 그곳 정경이 너무 좋다면서 연인이랑 손잡고 거닐고 싶은 곳이란다.
와~ 표현이 근사하지 않니?
그래서 "왜 하나 만들지 그래?" 하고 말해주었어. 진심이었어..
나 잘했니~ 아니니? ㅎㅎㅎ
참 오랫만이네.
나도 큰 소식 있어서 알리고 싶었는데 짬을 이제야 내본다..
14년간 정도 들고 마음과 정성을 쏟은 나의 교단 선교본부
7월 31일자로 그만둔단다..
구조 개편이 꼭 있기를 바란 내 마음도 그렇고
요즘 경제불황 - 구조조정이란 상황에서
<정리 해직> 혹은 <자원 사직> 두쪽 다 해당되지.
1월 달 이사하기전 고민의 큰 부분이 나의 사역 현장이 교회 목회냐 현직에 그냥 머물러 기관목회를 하는냐 였지.
몸이 쉬이 지쳐옴이 건강 탓인지, 거리상인지 고민하다가
일단 현직에 남아 시험삼아보자고, 그래서 이사한 거였고
그 때만 해도 구조 조정 회오리가 이처럼 빨리 불어닥칠 줄 몰랐어.
결국 한치 앞 모르는게 인간임을 다시금 절실히 깨닫게 되더라고.
목회 현장으로 가려면
더 나이들기 전에 "이번이 기회"라고 결심을 굳힌데는 이삿짐과도 연결이 되더라고.
이삿짐의 책상자 대부분이 목화관련 서적인 걸 보면
목회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아있었던거였지.
그래서 교회 목회로 되돌아가서 은퇴시까지 일하자고 쉽게 정할 수 있었어.
하지만 이곳에서 구조 조정의 혼란에서 안정될 때까지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드리겠다고 했어.
그래서 8월과 9월은 미진했던 해외 관계 처리로 출장을 다녀오게 되.
몽고, 한국, 타이완, 통가 (적도 넘어 남태평양 군도 - 뉴질랜드에서 동쪽으로 있음), 미국에선 LA 지역.
이번에 한국 방문 길에 가족 방문 기간을 추가해도 되냐고 했더니 아주 쉽게 허락받았어.
한주는 공무로 할애될 것이고. 그 나머지 3주 정도는 모처럼의 여유있는 삶.
떠날 사람들에겐 자비를 베푸는게 인지 상정인가?
직장을 떠나면서 이처럼 평안한 마음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목회자로서의 파송 보장> 이 있기 때문일거야..
갈 곳이 있고, 그 갈 곳으로 갈 때까지 생활을 하게끔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구나.
그게 얼마인지는 아직 모르겠다만, 혼자 입 풀칠 못하랴 싶어 마음을 비우니까 그런가봐.
평생을 일만 해서 쉬고픈 마음도 들곤 했었는데 그럴 수 없었던 형편이었는데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쉬겠니 싶다. 그렇게 생각이 들면 그냥 고맙지..
미래가 보장되지 못한 내 동료들의 불안해 하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기만 해..
똑같이 직장을 떠나는데 미지의 갈 곳이라도 보장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해 스스로 직장을 구해 나서야 하는
어찌보면 이 면에서도 불평등한 사회?
최소한의 삶의 보장이 모두에게 주어져서
수백만 실업자들이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인 고생을 하지 않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선 한낮 몽상일까?
그래서 다음 주 목요일엔 한식 (Korean Food)으로 우리 부서 동료들 (한 40여명) 점심식사 대접하겠다고 공고했어.
접시, 음료, 후식 등은 직원들이 자원해서 가져오기로 하고, 난 주 음식 (main dishes)만 준비해 오기로.
그동안 서로 감싸고 격려하고, 동료로서 존중하며 지낼 수 있게 된데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전하고,
또 떠나야 할 다른 동료들과 남아있는 동료들도 다른 부서로 나뉘어 가게 되었으니
마지막 친교를 한식으로 나누는 것도 의의가 있겠다 싶어서.
불고기/ 잡채 / 만두 / 한국식 Salad / 전 부침 종류 / 김밥 -흰밥 /.김치 / 김 /..
너희들 중 쉽게 하면서도 맛갈진 한식 요리있으면 하는법과 함께 알려줄레?
미국사람들 대접할 때 늘 해오던 위의 메뉴 밖에 아는게 없네.
자 내 퇴직 예기는 여기서 마치고,
이제부터 우리들의 이야기 나누자꾸나. .
어제 모처럼 집에서 사무실 일 하겠다고 출근을 하지 않았어.
아침 일찍 이사온 후 처음으로 강변 산책길을 찾아 나섰지.
와!!!
이처럼 좋은 곳이 있다니...
내 사무실 건물은 허드슨 강 건너편 동쪽이거던..
멀리 높은 빌딩이 눈에 뜨이네..
그쪽의 산책로는 수인이도 와봐서 알듯이 허드슨 강을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고
공원으로 넓직하게 조성되어 인공미가 정겹단다..
단, 강변도로 질주하는 자동차 소음이 옥에 티인줄 이번에 알았어.
반면에 이곳 뉴저지쪽은 절벽 밑에 난 강가 오솔길이라
자연미 그대로 인데다가 차 소음이 적더구나.
두사람의 옷길이 스칠정도의 좁은 오솔길.
새소리와 강물 파도소리도 들리고,
흙탕물이긴 하지만 손을 적실수도 있고,
오솔길 따라 산딸기가 빠알갛게 익어 있고
10월 3일로 예정한
인일 뉴욕 뉴저지 동문 모임
우리집에서 하기로 했는데.
날씨가 허락하면 이곳에서
야외 모임으로 하면 모두가 좋아할 듯 싶다.
저녁 식사를 이곳서 하고
서로 소개하는 시간 갖고, 놀이 한두개 하고 (가능하면)
끼리끼리 오솔길 팔짱끼고 걷고
모임 마친 후
우리 동기들은 2키로 미터 거리의 우리 집에서
수다로 밤새우면 되니까...
이 글 마치면 달려가련다.
산딸기 따와야지.
그러려면 그릇 달랑 들고 갈꺼나.
참, 몇일전 이삿짐에서 이제사 찾은 사진기도
인선언니~요즘 많이 심란하시죠?
기분전환하셔요.
더 좋은 일들이 언닐 기다리고 있어요.
수인언니~오랜만이예요.
좋은 곳으로 여행 멋지게 하고 계심을 알고 있어요.
그림도 많이 올려 주셨잖아요.
건강하시죠?
정례언니~모국 방문 환영합니다!!!.
몽골방문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정말 장하십니다!!!
언니 글에 "뉴저지" 세 글자가 눈에 띄이는 것은
울 딸래미가 Palisades Park 어딘가에 살고 있어서인가봐요.
아직 한 번도 못 가봤어요.
가까운 시일내에 갈 수 있으려나해요.
좋은 글 또 기다릴게요.
시원한 수박 한 통씩 드셔요.
광숙 후배,
따님이 펠팍 (이곳 한인들은 그렇게 부르더군요)에 있군요.
인선 아버님도 그곳에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거주지에서 자동차로 교통이 막힌다해도 10-15분이면 족할거예요.
10월 3일 경쯤 따님 보러 오시어 동문들도 만나보면 어떨까요.
그리구 따님 전화번호 알려주셔야 해요.
아님, 제가 한국에서 뵙고 받아오죠.
그동안의 조국 방문은 2-3일 혹 길어야 4-5일이어서 어머님 옆에만 있다 왔는데
앞으로 교회 목회에 들어가면, 이처럼 3주 정도 짬을 내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또 헛된 물거품될 계획인지는 몰라도, 이번에 방문은 ,
첫째로 스승님들, 그동안 신세지고 사랑 많이 나누어 주셨던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어요.
환갑맞아 새 삶의 시작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람구실 때를 벗기고 싶네요..
그리고 조국 산천과 역사/정신이 숨쉬는 곳들을 찾아보고 싶어요.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경주, 속리산, 설악산 이외에 간 곳이란 제주도 다녀온 게 전부이거던요.
방학의 짬이 있는 동생 가족의 도움으로 남해는 어머님 모시고 다녀오구 싶구요..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쪽은 글쎄 배냥 여행? 어쩌나, ... 무슨 방법이 있겠지요.
참, 컴 교실은 언제 열리는지요. 컴 기술도 배우고 싶거던요. .
인일의 어여뿐 분들을 뵈올 수 있으면 더욱 좋고요.
인선아,
연인?
조----옷치?
근데 그 양반 어디에 계시노?
빈 물통 들고 나가서 산딸기 따고 있는데,
"어머! 목사님 아니세요?!"
아이고야 반바지에 세수도 하지 않았는데...
예전에 여선교회 훈련에서 만난 권사님과 또 다른 분...
지인을 만났으니, 산딸기 채집은 물건너 갔고.
뿌연 날씨라서 사진기술도 없는데 "척"하는 거 같아 포기하고
산을 타신다는 씩씩한 손님은 앞서고
우리 둘은 사는 예기하면서 걷는데
그동안 열댓분 지나치더라고.
한사람 빼고 다 우리말 쓰는데 놀라뿌랬어..
한인들이 많이 산다고는 들었지만
이럴줄이야....
기껏해야 전 주민의 3%도 되지 않을터인데..
오솔길을 걸으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걸까?
한국서 아드님 결혼 준비로 오셨다는 분은 충청도가 고향이러던데
오동나무, 뽕나무, 머루, 야생 쑥, 양귀비.... 등 등 이것 저것 이름을 알려주시는데
우리의 자연 선생님이 된 그 집사님이 하늘처럼 우러러 보이더라구.
이 동네서 얼마 살지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오솔길 산책은 계속하고 싶다.
누구든지 오면 이곳으로 안내하고 싶을 정도야.
정례야 우리가 다 연인이 아니겠어?
나이 들어 얘, 재 하면서 만나기만 하면 한도 없이 웃으면서 즐거워 할수 있는 우리들...
지난번 세븐 레이크에 있는 산에 며칠을 내리 올라가면서 만난 사람들은
80-90프로가 다 한국 사람이더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기가 바쁘더라고...
설악산보다도 더 멋지고 웅장한 그 산이 눈에 삼삼하게 그리워.
그래서 뉴저지가 살만 하다는 것이아니니?
울 아버지가 도대체 왜 아무도 없는 아리조나 살고 있느냐고
이제는 빨리 뉴저지로 이사오라고 하시지만
정말로 뉴저지가 제일 살기 좋은 곳 같다.
맘대로 한다면 이집 팔고 그쪽으로 이사가고 싶어졌어.
예들아,
절벽 아래 강물 따라 산책 오솔길...
조지워싱턴 다리 밑 저 어디까지에서 부터
뉴욕 주 그 유명한 Bear Mountain까지
간간히 끈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쪼옥 길이 있다다더구나.
다리 근처,
자그마하면서도 깔끔한 인공 공원까지 갔다가 되돌아 왔지.
피크닉 시설과 어린이 놀이터도 있어.
주말엔 꽤 사람들이 모일 듯 싶네.
강을 뒤로하고 쳐다보는 절벽의 절경!
시조 한 수 경선인 읖조릴 수 있겠지?
수인이는 단아한 감상글
인선이는 유연한 수필을 쉽사리 엮어낼 수 있을거야.
글쎄,
수노는 절벽 위가 그립겠지. 그것도 가능해.
허나
뛰어내릴 생각일랑 아예 꿈에도 하지 말래이...
벗들아!
새로운 인생 (환갑) 멋지게 맞이하며
읖조리는 소원이
메아리쳐 강물에 빠질 듯
허나
석조의 찬란이 다시금 빨아드려
창공을 날아갈거야.
그러니 오지 않으련?
내가 다른 곳으로 또 짐꾸리기전에.
한달치 앞을 볼 줄 몰라 이사한 얼떨이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으련다.
이 비경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서너달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니까.
참, 또 사는 예기 하나.
덕실이가 꾸민 사택 뒷뜰 - 온갖 야채 화초 가운데
깻잎, 난 종류등 몇그루 얻어다 심었지.
영숙네서는 코스모스, 고추, 깼잎울 구해다 심었구.
출장 2-3주 나갔다오면 뒷뜰에 나가 눈 반쪽 감고 들여다 보곤 해.
다 시들어 말라 죽었겠다 퐁당대는 가슴을 보듬고.
근데 신기하더라 거의 다 살았어.
알고보니 열집 자동 물 뿌리기에서 튀기는 물이 그 작은 텃밭을 조금은 적셔준 거 같애.
그리고 비도 자주 온 거 같고.
잔디는 무성하지만 깍아주면 되니까.
물론 양/쪽 집 할아버지들한데 쬐끔 미안하지. 워낙 깔끔한 정원인데 우리집만 엉성하니까.
앞으론 잔디깍는 이에게 부탁했어. 두달씩 나가 있어야 할 형편이니까.
깻잎 4그루에서 수확이 꽤 되더라고.
값으로 치면 수박 참외랑 비교가 되겟냐만 ,
마실 꾸러미로 당당히 들고 간단다.
내 텃밭 농사라고.
.
주렁 주렁 도마도 중 한개가 바알게져 신나하구
그 다음날 퇴근 후 들여다 보니, 누군가가 갉아 드셨어.
토끼님일까, 다람쥐 님일까?
그래, 그래 ... 공생하자꾸나.
하여튼 덕실이는 후덕하고 정많고..
1987년 뉴저지에 이사와 교역자 가족 여름 수양회에서 날 먼저 알아본 이후
내가 많이 의지해온 좋은 친구야...
참, 덕실이 큰 아들 이번 8월 마지막 토요일에 결혼한단다. 작년에 결혼한 둘째 아드님에 이어...
소박하고 신실한 목사님의 두 아드님이 목회자의 길을 가고...따님도 어쩜 내년에 갈지 모른다 하네.
그런 친구의 도움없이는 10월 3일날 음식 준비 죽 쓸게 뻔해.
얼마나 일을 척척 재빠르게 하는지
희자도 일찍 와서 도와 줄 태세이고.
그 두 사람만 있으면, 식단 메뉴 염려 이미 놓았단다.
그러니,
뉴욕 구경오고 싶은 친구들 꼭 와.
서순석 선생님 모실려고 하구.
반갑게 만나자꾸나..
인선과 정례가 오니 방이 풍성해지고 참 좋구나.
정례 한국에 온다구? 연락해.
정례의 글 보니 그 때 뉴욬에 가고파라.
너희들 꽤 재미있게 지내는 모습 그려진다.
이국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 아름다워
아름다운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여 ㅎㅎ
경선아~ 너 올래?
그럼 나도 꼭 갈께.
정례야~
미국 사람들, 김밥 잡채 불고기......좋아 해. 네 메뉴면 충분 할 것 같은데........
그래 한국에도, 딸네도 느긋하게 다녀 오려므나.
여기오면 우리 또 만나고....그러자.
전화 할께.
인선아~!
너의 마음이 보이는 긴 글 읽었다.
그 글을 읽으며 너무 공감하여 가슴이 먹먹 하더라.
나도 20여년 끌어 안고 있던 내 사업장을 재작년에
내놓을 때 참 파란만장했던 지난날이 떠오르더라.
혼자 저울에 달아보았어.
내일을 계속하는것이 인생에 플러스인가?
애기를 돌봐주는것이 인생에 플러스인가?
내가 계속 내일을 갖고 너울너울 시간을 보내는건
나로선 아주 편한일이지.
오랜시간 하던것이니 힘든건 없었어.
딸네집을 근처에 두고 병원에 갈때도 아줌마를 데리고 가면서
들락날락 관리해 주는 정도였지.
근데~
가끔가끔 불쑥 불쑥 들러보면
애기가 나를 보면 자지러지게 울며 안겨오기도하고....
내가 있는데도 버릇 가르친다고 야단치고 애기 식탁의자에
앉혀놓고 꼼짝 못하게 하고 애는 슬슬 눈치보고.......
눈똥그랗게 뜨고 있는 애있는데서 긴쇠바늘로 뜨개질하고...
탄천에 있다고 해서 가보면 동네 간병인,파출부,애보는이들이
모두모여 수다떨고 심지어 한편에선 고스톱도치고
우리애긴 유모차에 실려 한귀퉁이에 쳐박혀서 낯설고 무서워서
울먹울먹하다가 날보고 크게울며 안겨오고.....
해외여행 가기전에 애한번 보고 가려고
잠깐 들러보니 미장원에 가서 5개월밖에 안된애를
세사람이 파마하는 파마약냄새가 진동하는 좁은 공간에서
지무릎에 앉혀놓고 애는 머리하는것을 빤히 바라보고
약이라도 눈에 튀면....
그날 여행 떠나면서 참 가슴아팠다.
이런 가슴아픈일을 보자고 내가 지금까지 애면글면 살았던가?
이건 애를 버려두는 것이지 봐주는것이 아니더라.
결심했지.
딸을 위해 뒷바라지 해줄테니 걱정말고 니일이나 잘해라 ~했지만
딸인들 맘이 편했겠니?
돌 지나면서 우리 윗집으로 데리고 와 사람 안두고 애기는 내가 보듬고 있단다.
편하고 즐겁기는 내일을 갖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애는 보고싶을 때 보면 되는데
목숨같은 내새끼가 남의 손에 크면서 눈치보며 자란다는건 절대 용납 못하겠더라.
내 딸 때문에 젊은날 나의 천직인 학교도 그만두었는데
까이꺼 인생 황혼기에서 이보다 더 귀한일이 있겠나 싶어
미련없이 접었다.
유치원에 다녀오는 손주데리고 댕기는 할매대열에 들어섰다.
간간이 생각하면 팔다리가 묶인듯 답답하지만
내강아지 에게 퍼붓고 싶은 만큼의 사랑을 맘놓고
퍼부으니 이보다 기쁜일은 없더라.
인선아 ~!
사방이 꼭 막힌것 같아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봐....
천장이 뻥 뚫려있고 별이 총총하지?
더~~~~좋은일이 기둘리고 있단다.
일에서의 놓여남과
자유로운 시간들과
새록새록 볼것들이
그얼마나 많을텐데...
축하한다 너의 굴레벗음을 ~~~~!!!
(에고~! 내일 멕일라고 삼계탕 끓이고 있는데
다 쫄것다 3=3=3=3=3=3=.....ㅎㅎ)
경선아,
올 수 있으면 오렴.
순호도 올 수 있나? 아예 귀여운 손주랑 오면 안될까?
엄마/아빠가 놓아주질 않겠지?
그래 나이가 들면서, 이처럼 가슴 털어놓을 수 있는 벗들과 장소가 있는게 고맙지.
이 나이에 숨길 것도 없잖아. 숨겨봤자 답답하기만 하지 뭐.
방금 내 상관이 점심 사준다고 해서 전철타고 당신이 사는 근처 브로드웨이 103가에 있는 인도식당에 다녀왔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애인으로 꼽는 <쥴리 앤드류스> 처럼 눈이 해맑은 부인이랑 동석을 했는데
둘이서 처녀/총각으로 아프카니스탄에 선교사로 일하다가 만난 경우지.
모처럼 브로드웨이에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이 예기 저 예기 곁들인 식사 .
그러다가 예전 생각이 나더라고.
16년전 찬 바람이 쌩쌩부는 12월이었어..
브로드웨이 어떤 작은 식당에서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며 홀로 커피 마시고 있었어.
창밖 양측 차길 가운데 앙상한 나무 아래 걸인이 두 사람이 오돌오돌 떨고 있더니
한 사람이 길 건너 내가 있는 식당으로 들어오더라.
커피 한잔을 시켜 다시 거리로 가 제 자리에 않는거야..
"나 한모금, 옆 친구 한모금"...
커피 김이 모락 모락, 쌍바람에 곧 살아없어지는데...
그 모습이 내 뇌리에서 사라지질 않으면서... 충격적이었어.
그 시기 참 힘 든 때였어.
아이들 아빠가 위암 수술 후 얼마나 더 사실런지 긍긍할 때였는데
조금 낳아지셨다 싶으니까 일하는데 까지 운전해 달라 해서
뉴욕시에 들어왔다가 기다리던 중이었어.
그런 처지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장면이 나를 팍친거야.
그 해 성턴 전야 설교를 <가정이 없는자에게 ... (<he Homeless...> 라는 주제로... 요지는 대충 다음처럼.
그 두 걸인이 보여준 커피 한잔의 나눔은
그들이 비록 건물 집은 없어도, <houseless>는 될지언정
<Homeless>는 아니라고, 가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멋지고 크고, 대궐같은 집에서 사는 우리들 가운데
옹그라든 가슴을 따스한 차 한잔 서로 한모금씩 나누어 녹일 수 없는 집에서 산다면
우리가 바로 <Homeless>라고.
아기 예수의 탄생은 바로 우리, Houseless에게 Home의 은총을 경험하게 하는 거져받는 선물... .
왜 그 설교가 기억에 생생한고 하니,
12월 26일날 남자 교인 한분이 날 찾아왔어.
한뜻이랑 동갑내기 (당시 7학년)인 딸이 자기가 바로 <homeless>라고 고백하더라며 집에 와서 울더래.
부부가 다 교사인데 자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자식에게 너무 무심했었는데 ... 고맙다고... .
그래,
살다보면 돈도 잃고, 직장도 잃고, 병도 앓아.
하지만, 나눌 수 있고 작은 것으로도 풍요로운 가슴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린 행복한 거지?
인일 홈피가 바로 힘든 우리들이 <인일인의 가정> <Inil Home Sweet Home>을 이루어 서로 힘을 얻는 곳이잖아.
너의 진솔한 이야기로 "나 만이 아니구나" 라며 힘을 얻는 사람들이 하나만 있어도 귀한 삶이라고 말해도 되나?
광숙 후배,
정은이랑 통화했어요.
음색이 너무 곱고 활달하네요.
출장 가기전 퇴직 정리로 짬이 나지 않으면
10월 3일날 만나자고 했어요.
.
순호야,
은범이는 참 좋겠다.
돌봐주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나봐.
참 행복한 할머니네.
그리고 현명한 결정도 내렸고.
나도 이번 휴직이 딸네미네게 도움이 되었으면 싶네.
인선언니가 동기들과 자미롭게 노시니
이젠 됐네요~~
눈물도 그친것같고.......
순호언니!
삼계탕 타는 냄새가 여기까지 나네요~~~
광숙이는 좋겠다.
정은이가 함정례언니랑 가까이 사니
얼마나 잘 챙겨주실까????
어서 임자 만나 시집 보내야할터인데.......
춘자야~반갑다~~
엊저녁에 전화번호 올렸더니
언니가 벌써 통화하셨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홈피덕분 아니겠니!!!
누가 그리 챙길꼬!!!!
고마울 뿐이야.
빨리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 가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참 춘자야~너의 샵으로 내 동생이라 하면서
언제나 들른런진 몰라도 찾아가는 아이가 있을꺼야.
35년 전에 이민 간 울 당숙 아들이야.
이민가고 첨 만났단다.
넘 엉성한 것을 써서 네 생각이 떠올라서 얘길 했어.
멋쟁일 만들어줘.~
오늘 출국해서 내가 지금 공항에 가려고해.
인선,정례,그리고 순호야~
너희들이 쓴 댓글을 보면서 가장 바람직한 홈피의 기능이랄까 그런 걸 발견하며
많이 흐믓해지고 있어.
우리가 처한 이 시점에 우리의 생각을 나누는 우리 방이 된다면 이 방의 존재 이유는 아주 큰 것이겠지.
인선의 사업 접음, 그것에 대한 순호의 동일 체험 나눔...참 보기 좋다.
난 그런 체험이 없어 끼지는 못하지만 멀리서 니들의 얘기 귀기울여 듣고 감동받고 있단다.
인선아~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했지?
이곳에 많이 많이 쓰면 좋겠다.
이곳보다 공간적 배경의 이점이 너한테는 있어.
여기는 이 나이에 이르러도 여러 굴레가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는 것이 보여 그것에 자유롭지 못하거든.
인선인 원래도 솔직한 사람인듯도 하지만 이국에서의 생활이 더 열린 마음을 건전하게 다져주며 승화시켜주는 듯하다.
정례도 그렇고.
수노야 여태것 니가 쓴 글 중에서 제일 감동적이었어.
글이란 감동을 줄 때 빛을 발하는 게 아니겠니?(또 못말릴 ㅎㅈ 기질 나오려 하네 ㅉㅉ 더 진도나가기 전에 ...ㅋㅋ...3333)
5기 선배님들, 왜 아침부터 이렇게 여러번 절 눈물 나게 하시는지요?
슬퍼서가 아닌 감동, 공감의 눈물이랍니다.
어쩌면 모두 그렇게 곱고 순수한 마음, 베푸는 마음으로 사시는지,
내 정리되지 못하고 너그럽지 못한 삶과 비교가 되었습니다.
김순호 선배님의
'사방이 꼭 막힌것 같아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 봐....
천장이 뻥 뚫려있고 별이 총총하지?
'
그리고 함정례 선배님의
'Houseless' 이나 'Homeless'는 아닌, 커피를 나눠 마시는 부부 이야기가
교훈 되어 제게 남을 거 같습니다.
내가, 혹은 내 가족이 'Homeless'가 아닌지 생각도 해 보고
힘든 날엔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겠습니다.
선배님들 모두, 지금 나이 그대로,
늘 건강하시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이 이어지시기 바랍니다.
임경선 선배님,
5기 게시판에는 글 잘 쓰는 선배님들이 다 모이신 거 같아요.
최상의 게시판이 되겠어요.
선배님 말씀대로 글은 감동을 줄 때 빛을 발하고
감동을 주는 글은 숨김없이 솔직한 생각과 감정의 표현에서 오는 거 같아요.
경숙 후배,
댓글에 댓글다는 법
할줄 몰라 여기다 쓰네요.
딸 멀리 보내놓고 안스러워하는 마음
그냥 마음에 와 닿네요.
그게 엄마의 마음이잖아요.
정은이 용기있어 보여요.
악기 전공한 것만 봐도...
제가 출장 전에 만나봐야 겠어요.
그래야 후배님의 마음 놓일 보고를 할 수 있잖아요.
인선아
나는 그 날 너와 만나 한참을 얘기하는데 네가 미술시간에 (유경복 선생님 이셨던가 ?) 그렸던 수채화가 떠 올른것 있지 .
나무 그림이였는데 갈색이 많은 그런 그림이였어, 나는 또 속으로 인선이와 모두들 이렇게 젊은데 왜 나 혼자만 이렇게 할머니가 되얐을
까하며, 좀 그랫었거든 .. 그런데 이상하게 집으로 오는 길에 마음이 따뜻해지며, 즐거워지고 요다음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어 . 선희자가 동창들이 모인다고하면 나같이 바쁜 사람은 그런 곳에 도저히 갈 수가 없다고 아예 날짜도 기억을 않했지, 그런데 요
즘 홈 페이지에 희자가 눈에 않띄자 걱정되어 전화를 하며 속으로 웃었어.
그리고 네 사업을 접으며 쓴 글 너무 잘 읽었어
이제 너에게 축복이 시작 된거야,
창세기 9장 31-32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심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 한 고로 상하지 아니 하였더라
여기에 남겨진 밀과 나맥을 의지하여 그들은 다른 일을 만나게되지
나도 십여 년전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은 때가 있었는데, 그때 이 귀절을 읽으며, 다 잃은 것에 감사를 했는데 , 아직도 누구에게나
똑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
시월 눈시리게 아름다운 가을의 Hudson강 가에 앉아 있을 생각에 공연히 마음이 출렁이네
곧 보자
인숙아 이곳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네.
세상에 마상에... 나도 못 기억하는 내 수채화를 네가 기억해주었다고?
어떤 그림이었을까 너무 궁금해.
나는 수인이가 네 이름을 말하였을때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었어.
흔한 이름을 가지면 손해 보는거지뭐. 그런데 너를 보는 순간 너를 기억에 떠오르지 못한 내가 너무나 바보같더라.
부평에서 통학한것 까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이번에 너를 다시 만난 것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는 종종 만날 기회를 만들어 보자.
그런데 창세기가 아닐세. 그래서룻기인가 하고 떠들어 보니 그것도 아니고 여호수아서인가 하고 보니 그것도 아닐세.
빨리 고쳐서 알려줘. 너무나 멋진 주님의 말씀이다.
정말 그래. 축복의 시작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흥분이 되는 나의 남은 날들이겠니...
잃은 것에 감사했던 너의 옛이야기... 언제 꼭 들려주기를 바란다.
10월 3일에는 꼭 가보도록 노력할께.
반가워 인선아~
샌프란으로 뉴욕으로 많이 다녔지?
너가 오니, 갑자기 우리방에 활기가 느껴진다.
친구들, 만나니 괜히 좋지?
지난 오월에 덕실이 잠시 만났었어. 정례랑.
전에 갔을 때도 그즈음인데, 시월 초면 꽤 덥더구나.
나도, 가는 것 한 번 고려 해 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