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행에서 찍은 동영상이다.

젊은 아버지의 연주,물색없이 돌아다니는 어린 딸,

너무 존경하는 어떤 분을 추모하며 오카리나의 곡을 선정했다는 설명을 듣고

툇마루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다.

 

어린 딸을 키워내야 하는 젊은 부부에 대한 안스러움

실제로 그들은 다 삭아가는 아주 오래된 차를 탄 채 기름값도 아끼려고 기름통을 차에 싣고 다녔다.

열심히 오늘을 사는 젊은 부부의 초상이 그려지니 나의 안스러움은 늙은이의 심술만은 아니었다.

 

오카리나 소리는 구슬프게 들렸다.

참 오랫만에 구슬프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슬프다`와 `구슬프다`는 그 뉘앙스가 다르다.

`슬프다`라는 느낌에다  `처량하다`는 느낌이 덧씌워질 때 `구슬프다`의 느낌이 완성되는 건 아닐까?

 

젊은 아버지가 너무 존경한다는 그분을 내가 비록 존경ㅎ지 않는다 해도

그의 생각을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라는 부사가 잘못 씌어지고 있는 것은 살픈 거슬렸지만....

`너무`는 부정문 앞에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요즈음 어떤 소리에 빠져있다.

아름다운 악기이다.

아름다운 소리는 우리를 정화시킨다.

 

사람 입에서 내는 뜻 전달 소리가 말이다.

 `예쁘다`를 남발하며 `예쁘다`를 오염시키는 몇몇 연예인들 때문에 단어의 이미지가 실추되곤 하는 세태이긴 하지만,예쁜 말을 담은 예의 있는 목소리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준다.

언행일치된 말을 예쁘게 할수록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마일리지가 쌓여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들을 주고 받는 인간관계에 의한 카타르시스는 거의 아름다운 음악에서 얻는 것과 동격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현격히 줄어든 나이가 됐다.

온갖 아름다움이 물안개 피어나듯 내 주위에서 피어나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기를 꿈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