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사모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3.이명구
*경험으로 미루어 여행 가기 전에 사전 지식을 가지고 가는 것이 여행을 보다 알차게 할 수 있더군요.
여사모 여행 일정을 시간되는대로 천천히 올려볼까 합니다.
실크로드
실크로드 또는 비단길은 육상, 또는 해상을 통한 근대 이전의 동서 교역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동(東), 서(西)라 함은 중국과 유럽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실크로드라는 언어의 기원 자체가 중국의 비단이 로마 제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크로드는 역사를 통해서 더 다양한 교역품들을 전달하는 통로로 확대되었고, 더 나아가 문화가 유통되는 통로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 중국 역사학, 교류사, 그리고 중앙아시아사에서 실크로드 연구가 가지는 입지는 크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동서를 잇는 횡단축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남북의 여러 통로를 포함해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한 하나의 거대한 교통망으로 보아야 하며, 이에 따라서 실크로드의 개념 또한 확대되게 된다.
실크로드는 3대 간선과 5대 지선을 비롯해 수만 갈래의 길로 구성되어 있는 범세계적인 그물 모양의 교통로이다.
3대 간선
동양과 서양을 횡으로 연결하는 길로 세개의 간선이 있다.
초원길
중국 한나라 이전의 문명 교류의 주통로로 사용되었던 길이며, 유라시아 북방 초원 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길이다.
서쪽의 끝인 카스피해 연안 혹은 발트해 남단으로 부터 흑해의 동북편과 남러시아의 카스피해와 아랄해 연안을 지나 카자흐스탄과 알타이 산맥 이남의 준가리아 분지를 지나 몽골 고비 사막의 북단 오르혼 강 연안으로 이어진다.
이후 동남향으로 바꾸어 중국의 화북지방에 이르러 그 동쪽 끝에 이른다. 그러나 이길을 연장하여 한반도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일찍이 문명 교류의 처음을 연 비너스상이 1만 년 전에 이 초원로를 따라 북방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동서로 널리 전파된 것으로 짐작된다. 기원전 4천~3천년경에는 채도 문화가 이길을 거쳐 서아시아에서 중국 및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이 길을 '채도의 길'이라고도 부른다.
서아시아에 기원을 둔 청동기나 로마의 유리도 이길을 따라 전파되었다.
일본 사학계의 기마민족설에서 말하는 고분문화기(3세기~5세기)의 기마문화도 초원로를 통하여 전달되었다고 여겨진다.
오아시스길이란 중앙아시아의 건조지대(사막)과 반사막에 점재하는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동서로 뻗은 길을 일컫는다.
사막을 비롯한 건조 지대의 군데군데에 항상 물이 고여 있어 수목이 자라고 인간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오아시스다.
오아시스는 사막인들의 생활의 보금자리일 뿐만 아니라, 교역의 중심지로서 거기에서 문물이 집산되고 교통이 발달되어 왔다.
실크로드 중에서 가장 심장부에 위치한 오아시스길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역사시대 전에는 초원로가 많이 이용되었으나 이후에는 오아시스길이 동서교류의 주요 통로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서아시아 지대에는 이미 상당히 발단된 교통로가 만들어졌으나, 파미르 고원이 장애가 되어 완성되고 있지 못하다가 기원전 138~126년 후한의 장건(張騫,~BC 114)이 파미르 고원의 지나 대월지에 이르는 길을 개척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길이 만들어졌다.
한서 서역전에는 남,북 두 길의 노정을 밝히고 그 길위에 있는 주요 국가들의 중심지와 장안이나 서역도호부, 그리고 인근 국가들 간의 방위와 거리를 기록하고 있다.
바닷길
기원후 후한은 서아시아와의 교류에 관심을 나타냈고,
전성기에 접어든 로마제국이 남해로를 통한 도서 교역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로마의 시장에는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각지의 명산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1세기 중엽에 로마의 항해사였던 히파루스(Hipalus)가 아라비아인들로부터 인도양 계절풍의 비밀을 알아낸 후, 아테네로부터 홍해를 지나 인도양으로 향하는 직항로를 개척함으로써 로마의 동방 원거리 무역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비로소 중국에서 인도로 반출된 비단이 인도 서해안으로부터 해로로 로마에 운송되기 시작하였다.
3세기 중엽에는 로마의 배가 인도차이나나 광동성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카티가라(Kattigara)까지 항해하는 성선도 나타났다.
The Silk Road and Arab Sea Routes
■오아시스의 도시 ‘화주’ 투루판
투루판 지명의 유래는 15, 16세기에 이 분지에서 세력을 떨쳤던 투르판국(國)과 그 도성(都城)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연간 최고 기온은 47.5℃, 지표의 온도는 70℃나 된다.
그러나 사막기후의 특성상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해가 지면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 15℃ 정도가 된다.
투루판은 부근에 목화·포도 등이 많이 나서 포도주 생산지로 유명하고, 여러 시대에 걸친 도성유적을 비롯하여 고분군(古墳群) 등의 사적이 많다. 여름에는 매우 더워 '화주'라고도 칭해진다.
오아시스 도시이기 때문에 규모가 크지 않아 걸어서도 도시 전체를 볼 수 있고, 거리에는 차보다도 양이 더 많이 지나다니며, 독특한 이슬람 문화와 어우러져 이국적이고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고창왕국의 유적지인 고창고성(高昌故城 : 까오창꾸청)
황량함 속에 옛 고대인들의 생활자취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옛 고창왕국의 유적지로 후한이 멸망한 후 번성했던 투루판의 중심지였다.
투루판시 동쪽에서 40㎞ 떨어진 화염산 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불타오르는 듯 화염산을 배경으로 폐허만 남아있다. 기원전 1세기에 고창벽이 지어졌으나, 13세기에 전쟁으로 훼손되었다.
교하고성과는 달리 흙벽돌로 축적된 사각형으로, 벽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버들가지나 마른풀을 섞었는데 황국이 멸망한 후 주위 농부들이 벽돌을 깨서 비료로 쓰는 바람에 폐허가 된 것이라 한다.
지금은 사원과 궁전 유적 이외에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파손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성윤곽은 남아 있다.
고창고성은 장방형으로 매우 크고 길이는 5㎞이며, 외성, 내성, 궁성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세상에나~~~~!!!!!세상에나 ~~~!!!!!!
임경선언니 ~~~~역시 핵심을 찾아 여행을 즐기시는 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여사모가아니고 어디가서 이렇게 사전 지식을 쌓아갈수있겠어요 ~~~!
현지여행가이드도 이렇게 선배님 처럼 세심하게 학식적으로 설명해주지는못할겁니다.
와아~~~임경선선배님의 `~~실크로드 탐방 사전 학술연구보고서입니다.
선배님께서 올려주신 설명 잘읽어보고 현지에가서 실크로드의 역사를 돌아보는 생의 귀중한 시간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님 ~~~~유익한 정보 제공해 주셔서 많음도움이 되었습니다.
선배님 덕으로 실크로드의 역사의 근간을 공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스타나 고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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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얼러
쿠얼러 또는 쿠를라 (중국어 간체: ??勒, 정체: 庫爾勒, 병음: K?'?rl?)는 중화인민공화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 위치한 중소 도시이다.
쿠얼러는 바잉궈렁 몽골 자치주의 주도로, 면적은 프랑스보다 크며 중국에서 가장 큰 주이다.
옛날부터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로 번창했었지만, 최근에는 타림 유전이 개발되면서 유전개발의 기지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이에 따라 한족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대다수를 차지하던 위구르족은 거주지를 잃고 한족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쿠얼러는 배의 산지로 유명하다. 쿠얼러향배(庫爾勒香梨) 는 당도와 맛으로 유명하다. 갈색의 한국 배와는 달리 초록색을 가지고 있으며, 언뜻 보기엔 사과처럼 보인다. 육질은 사과와 같고, 즙은 훨씬 더 풍부하고 달다.
와아~~임경선언니의 실크로드 대하 역사 드라마입니다.
여사모 회원님들 그냥 보시지만 마시고 선배님께 힘찬 찬사의 박수를보내드려요.~!!!!
우리 여사모의 이런 사전 공부를 현지 가이드가 안다면 흔히 현지가이드들이
술술 풀어내는 안내방송의 목소리가 파르르르 떨것같아요 ~~~
때로는 가이드를 직업으로하는분들도 연결이 어려우 부분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니까요.
임경선언니~~~삼복더위에 정말 수고많으셔요 ~~~!!!!
임경선 선배님, 모든 정보 잘 읽고 동영상도 잘 보았습니다.
선배님이 가시면 명쾌하고 핵심 있는 여행기를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여사모 회원님들 다녀오신 다음에 사진을 보면서 여기 정보들을 다시 읽으면
저도 앉아서 비단길을 누비는 셈이지요?
많은 정보의 홍수에서 핵심을 찾아 가져온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라
인일홈피에 읽을 거리를 주시는 선배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자미 후배님은 여사모 일 추진하느라 많이 바쁜가 봐요.
어딘가 떠난다는 기대가 있어서 행복하겠어요.
여사모 여행이 좀 고품격이라 하니 그리 큰 고생은 안 되겠지요?
부럽습니다.
유럽 여행과는 아주 다른 여행이 될것 같으네요
2000년전,낙타가 지나가든 사막 밑으로 송유관이 뭍어지고
고유의 엣모습은 커다란 쇼팡센터가 들어서면서 사라져가고...
실크로드 의 중심지였던 캐스가 -- 아직도 전통적인 생활 모습이 남아있지만
그녀의 의 소원처럼 오래 오래?유지되기를 원하는?6 세대째 ?도기를 굽고있는?
?할머니도 언제 서구화에 밀려 그의집이 부셔져 나 갈지를 걱정합니다.
그런 저런 이유에서
아직도 엣모습들을 가지고 있는 ?캐스가 꼭 보고 오세요.
찬찬히 경선 후배 글을 읽다보니까 북경으로 날라가고픈 생각이
마구 솟네요
경선언니~ 이렇게나 좋은 자료를 주시다니!!!
감사~
역시 공부하는 언닌 달라~~~~요.
덕분에 열심히 공부할게요.
시원하게 한 잔 드시와요.
*??이번 여행의 백미 돈황(敦惶)
모래의 마을(沙州)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도 불리던 돈황은 석굴의 백미인 막고굴,사막 속의 작은 샘 月牙泉 등으로 인해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한번쯤 여행하고 싶어 하는 곳이다.
기원전 2세기 장건에 의해 개척된 실크로드는 사막 너머 세계가 존재함을 중국인들에게 알려 주었다.
단지 천리마를 구하기 위해 개척한 이 길은 곧바로 상업루트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돈황은 사막을 건너기 직전 마지막으로 쉴 수 있는 안식처이자 전초기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절,사선을 넘어야 하는 인간들의 두려움은 종교로 승화됐고,돈황에는 수많은 사원들이 건립됐다.
최고의 전성기던 당나라 시절 돈황은 아침,점심,저녁으로 하루 3차례나 장이 설 정도로 번영을 누렸고,돈황 최고의 볼거리인 막고굴도 바로 이 시기에 건립되었다.
*막고굴
실크로드가 낳은 최고의 금자탑이자,세계 최대의 불교 석굴군으로 유명한 막고굴.
前秦 시대인 건원 2년(366년) 돈황에 머물던 낙준이란 승려가 사방으로 빛나는 금빛을 보고,석굴사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이후 위진남북조와 수,당,5대 10국,송,서하,원나라를 거치며 1000여년에 걸쳐 석굴이 굴착됐다.
한창 전성기 때의 막고굴은 1618m에 걸쳐 735개의 동굴이 있었다니 인간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
현재 남아 있는 석굴의 수는 모두 492개,
약 1400개의 불상과 4만 5000 제곱m의 벽화가 석굴 안에 모셔져 있다.
이쯤 되니 사람들이 막고굴을 세계에서 가장 큰 노천 박물관이라고까지 부를 정도이다.
12세기쯤 사라졌다가 19세기에 다시 발굴 각광받기 시작했고 도굴을 당했다
??*명사산 (鳴沙山)
돈황에서 5Km 떨어진 모래 砂丘로 높이 1650m, 총면적 800K 제곱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
언덕에 모래가 날리는 소리가 마치 사람의 흐느끼는 소리 같다고 해서 명사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명사산 아래에서 두 나라의 군대가 전투를 벌였는데,어디선가 모래바람이 불어와 두 군대를 파묻어버렸다고 한다.
결국 명사산의 우는 소리는 땅속에 파묻힌 유령군대의 울음소리라는 것.
전설 속의 으스스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명사산이다.
해이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바뀐다는 명사산의 Gradation,달빛 아래 환상적인 야경을 구경하려면 무조건 시끄럽지 않은 공원 외곽으로 빠지는 것이 좋다.
* 월아천(月牙泉)
명사산 골짜기에 있는 초생달 모양의 오아시스로 3000년이 넘게 단 한번도 마른적이 없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돈황이 갑자기 황랼한 사막으로 변하자,하늘의 선녀가 너무도 슬픈 나머지 눈물을 흘렸는데,그 눈물이 떨어져 현재의 월아천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 돈황 일대는 3만 년 전만해도 오늘날과 같은 사막이 아닌 삼림지대였다고 한다.
죽 전설이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라는 증명인셈.
최근 10여 년 사이 월아천이 점점 마르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고비사막이 점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슈카르
???신장위그르자치구 최대의 오아시스 도시이자 고대 교역로의 핵심.
현재 인도,파키스탄,아프카니스탄,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 등 6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경 무역의 중심지다.
중국에서 하서주랑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쳐 서쪽으로 내달리던 대상들은 카슈카르에서 한숨을 돌린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파미르 고원을 넘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서쪽에서 온 푸른 눈의 대상들 또한 본격적인 중국행을 준비하기 위해 카슈카르에서 머물렀다 한다.
따라서 고대 카슈카르 최고 비즈니스 중에 하나는 외국어 학원이었다.국경을 넘어야하는 장사꾼들이 앞으로 갈 지역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기본이었을 것이다.
현재 카슈가르는 인구의 90% 이상이 위구르족으로 이루어진 이슬람 도시로,중국어도 잘 통하지 않는다.
???*타슈쿠르간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 한가운데 위치한 중국과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도시.
해발 3600m로 가벼운 고산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타슈카르간 최고의 볼거리는 해발 7546m의 고봉 무스탁 아타와 7719m 콩구르 산을 끼고있는 산정호수 카라쿨 호.
특히 7~8월 설산 초원 그리고 하늘보다 더맑은 호수의 아름다움에 도취디고 싶은 심심찮게 방문하곤 한다.
이외에도 타슈카르간 시내에 있는 작은 성터 석두성도 볼만한 곳 .
현재는 양떼가 뛰노는 황무지 같은 곳이지만, 지대가 높은 탓에 설산과 타슈카르간 시내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돈황의 사랑 - 윤후명
두해 전 중국 감숙성에 있는 돈황 근처를 지난 적이 있다. 그 길에 타림분지 동쪽 폐허 누란 옆을 지나가기도 했다. 서역 삼만리, 모래가 울고 있는 명사산, 사막의 길이다.
그보다 훨씬 전에 사자의 껍질을 쓴 사내 하나가 춤을 추며 먼저 그 길을 질러 갔으니 바로 '돈황의 사랑'을 쓴 윤후명이다. 그때 난 스물한살이거나 스물두살이었다. 나 역시 서역의 길이 때없이 눈에 애타던 몰골이 창백한 청년이었다. 서역과 서울은 이렇게 작 품 속에서 아득히 연결된다. 그 연결의 시간은 바야흐로 천세다. 천세를 가슴에 품고 밤마다 서역 삼만리 모랫길을 가는 사자 껍질의 사내. 석굴암의 원류가 되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고 또한 한반도 북청의 사자춤이 비롯된 곳이다. 사자의 발자 취를 찾아 헤매는 동안 나는 또 누란에서 소녀의 미라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공후에 대해 알고 있다는 노인을 찾아갔다가 앳된 소 녀가 부르는 공후인을 듣게 된다. 세종문화회관 기둥에 상원사 동종 의 비천상을 돋을 새김으로 옮겨놓은, 천녀가 가슴에 안고 있는 서역 의 악기 공후. 그것은 영원의 길이며 정화의 길이며 곧 돌사자의 길이다. 싸리꽃을 쫓아다니는 청년을 따라가려다 실패한 사춘기 때의 나, 또 격렬비열도라는 섬으로 가려 다 폭풍에 길이 막혀 돌아오는 나,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앞두고 며칠씩 실종되는 나, 그렇게 서역으로 가는 길은 하도 멀어 매하루가 삼만리다. 발을 옮길 때마다 모래소리가 들린다. 달빛에 쓸리는 모래소리인가. 시간에 쓸리는 모래 소리인가. 아니면 서역 삼만리를 아득히 울어온 공후 소리인가.". |
■우루무치(烏魯木齊) -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
사막의 오아시스인 우루무치(烏魯木齊)는 신강자치구의 중심도시로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강 위구르자치구의 성도로, 박격달산(博格達山)의 서부에 위치해 있는데, 남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곤륜산맥에 닿아 있고 서쪽은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였던 인닝을 지나 구소련과 파키스탄으로 이어진다.
우루무치는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로, 아시아 대륙의 중심이면서, 옛날 서양과 동양의 다리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위구르족, 한족, 회족, 카자흐족 등의 민족들이 오래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고 찬란한 고대 서역문명을 창조해냈다.
여러 민족의 각기 다른 생활풍속은 우루무치의 특색 있는 문화를 형성하였다.
유목민족 특유의 경마, 씨름 등의 경기와 정교한 옥조각, 자수와 전통악기, 향이 짙은 밀크티와 각종 전통 먹을거리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고원지대의 특성상 연평균 기온은 섭씨 7도이고 가장 추운 계절 1월의 평균은 영하 10도, 가장 더운 7월의 평균기온은 섭씨 14도 이다.
우루무치는 매년 5월에서 10월까지는 우루무치를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고 광활한 대륙과 천연염호, 석유, 철, 망간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고 수많은 야생 동식물 종이 서식하고 있다.